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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14 허정무 감독이 주는 교훈 몇 가지...
posted by RushAm 2010. 6. 14. 18:14
1. 치대면 일단 결과는 복불복...

기본적으로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축구선수를 20년이나 하고 은퇴 후에도 축구계 안떠난 사람보다 더 축구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축구 사이트에서 나오는 그에 대한 '축구 전술적 관련 비난'은 어찌 보면 헛구호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꼭 우리나라만 감독을 까느냐만 그렇지만도 않다. 잉글랜드 축구사도 그렇고 이탈리아는 뭐 말할것도 없이 냄비근성이 쩐다는 것을 축구문화사를 연재해주고 계시는 필독님께서 최근 가르쳐주고 계시듯이, 현장과 팬들의 정보력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은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아무튼 첫 경기 결과가 좋았다. 이게 상당히 복불복이었을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허정무 감독은 참 운이 좋다. 기본적으로 실력이 뛰어난 감독이란 없다고 본다. 누구나 가진 경험이나 정보력 전술에 대한 철학적 깊이는 비등비등하다. 다만 그 시기에 얼마나 잘 어우러지는가와 당시 얼마나 좋은 선수들이 그와 만날 수 있었는지일뿐...

2. 허정무를 비판하는 마음이 정말 허정무 개인에게로만 향했던 것일까?

조금 논란이 있겠지만 아마 허정무 감독은 선임 당시부터 지금까지 정말 쉴틈없이 단 한번도 호평을 받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필자도 그렇다. 그런데 이 허정무를 좋게 보지 않은 이면에는 '축구협회'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허정무의 선임 과정이 얼마나 공정했는지는 일개 팬으로서의 정보력 부재로 인해 제대로 아는 사람을 찾기 어렵고 대부분 추측에 의거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축구협회는 어떤 이유에서든 국내 감독을 원했다는 것이다.

허정무를 비판하는 이면에는 이러한 축구협회의 전 근대적인 행정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켜도 이상할 게 없을 미숙한 여론 대처 능력이 있었다. 즉 허정무를 옹호하면 축구협회를 옹호하는 것이 되고 결과적으로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련의 한일전을 통한 여론 물타기 오해(?)등을 지지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배경때문에 호평이든 악평이든 제대로 된 순수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감독이 허정무 감독이 아닌가 싶다. 물론 여기에는 그의 화려한 선수시절 커리어도 한 몫을 했으리라...

3. 사람은 변한다, 그리고 허정무도 변했다.

요즘 취업난을 겪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지금의 회사들은 '신입'을 도무지 뽑으려 들지 않는다. 어떻게든 상대 회사의 '잔뼈가 굵은 경력자'만을 즉시전력으로 투입하려는 생각만이 가득하다. 회사라는 곳은 돈이 좀 들더라도 바로바로 성과를 내주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 지극히 고리타분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허정무는 한번의 국가대표팀 감독의 실패를 겪었다. 전남에서의 감독 생활에서도 딱히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기 힘든 시즌이 많았다. 그런데 그런 그가 그 실패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을까? 그건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특징이라면 '실패'에 대해 너무 저평가한다는 점에 있다. 해외에서는 '실패'한 프로젝트의 경력도 성공한 타이틀 못지 않게 인정해주는 것에 비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아무튼 그는 한국에서 성공보다는 실패한 감독이었고 국대에서도 실패의 행보를 겪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근 10년간 대한민국 국가대표 감독 중 가장 오랜 기간 재임하고 있는 감독이 허정무라는 사실이다. 최근 10년간 국가대표 감독 재임 기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간중간에 있었던 감독 대행 인물은 제외한다)

2000년 12월 ~ 2002년 6월 : 거스 히딩크 (1년 6개월)
2003년 02월 ~ 2004년 4월 : 움베르투 쿠엘류 (1년 2개월)
2004년 06월 ~ 2005년 8월 : 조 본프레레 (1년 2개월)
2005년 10월 ~ 2006년 6월 : 딕 아드보카트 (8개월)
2006년 07월 ~ 2007년 8월 : 핌 베어벡 (1년 1개월)

2007년 12월 ~ 2010년 6월 : 허정무 (2년 6개월)

최근 10년간 외국인 감독들이 대거 이어지면서 보여준 국대감독의 수명은 성공한 히딩크를제외한다면 적제는 8개월 길어야 1년 2개월을 채 넘기지 못한 단명 감독에 가까웠다. 그만큼 축구협회는 외국인 감독에 한해서만큼은 성과는 고사하고 자신의 축구 철학을 녹이는데에 걸리는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외국인 감독은 마치 클럽팀의 외국인 선수처럼 당장의 성과를 내지 못하면 즉각 퇴출되어야 하는 이방인으로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감독직은 다르다. 적어도 두 시즌 정도를 기다려주지 않는 축구 클럽 혹은 대표팀은 변방이 아니고서야 찾아보기 힘들다. 이미 변방을 졸업하고 탈아시아를 선언한지 8년이 다 되어가는 대한민국이 저지르고 있어서는 안되는 짓이었다는 말이다.

허정무 감독은 까일 만한 성적이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월드컵 최종예선을 통과했으니까,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본프레레 감독 시절도 다를 바 없었지 않았던가? 그도 혹평 속에서 월드컵 예선전 보란듯이 통과했다. 그런데 동아시아 대회가 문제였다. 여기에서 졸전을 벌이니까 두말할것도 없이 경질수순을 밟았다. 동아시아 대회 하니 생각나는 경기 있지 않은가? 공한증이 깨진 중국 3:0 패배 사건, 그 사건 당시 경질 여론은 본프레레의 졸전 이상이었지 이하는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축구협회는 넓은 마음으로 받아줬다. 그리고 월드컵까지 절대 안짤릴거라고 약속까지 해줬다.

허정무 감독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 정도의 신뢰를 받고 있다면 변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까? 한때 독이 든 성배라고 불리며 비아냥을 받았던 한국 국대 자리를 2년 넘게 계속할 수 있고 그대로 월드컵에도 나갈 수 있다는 보증을 받았는데, 지금까지 자신이 해왔던 걸 쏟아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그걸 안 하면 정말 문자 그대로 바보가 아닌가, 그렇게 허정무는 지난 국대 감독에서의 실패 그리고 클럽팀 감독으로서의 경험에다가 너무나도 귀중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직 2년 이상의 연임의 경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배울 수 있는 것? 모르긴 몰라도 아마 어마어마할것이다.


2년동안 수많은 실패와 그 실패를 눈감아줬던 축구협회의 전폭적 지원(?)으로 허정무는 어쩌면 이번 월드컵에서 2년이상의 '국대감독 경력'에서 얻은 - 좋은 감독의 능력 -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허정무 감독이 원래부터 감독의 능력이 뛰어났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2년 이상의 시간이 주어진 감독이라면 능히 보여줄 수 있을 자신의 최대치를 선보일 기회를 얻었다는 것임에는 분명할 것 같다. 이후 결과가 어떻게 되던 그 결과는 어떤 변명이나 평가절하할 필요도 없는 허정무 감독의 100%라고 생각한다.

허정무 감독의 성적은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성적을 떠나 허정무 감독 본인이 지금까지 어떻게 변해 오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좋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정말이지 해묵고도 해묵은 그리고 기본적이고도 기본적인 그것 '감독에게는 적어도 자신이 가진 전술 철학을 펼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려 10년여동안 되지 않았던 대한민국 국가대표였다는 사실이 씁쓸하고 그게 결코 자발적인 의지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 안타깝지만 아무튼 좋은 선례가 이제나마 겨우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4. 감독은 왜 기다려줘야 하는 존재인가?

허정무 감독이 가진 능력이 '50'이라고 치고 세계적인 명장이 가진 능력이 '100'이라고 가정해보자, 자신이 가진 전술적 능력을 100%기동시키는 데에 2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감독은 2년동안 50, 혹은 100을 한달에 2 혹은 4씩 나누어서 현실화시킬까? 그건 아닐것이다. 세계적인 명장이 아무리 100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들 1년 남짓의 시간을 부여받았다면 채 30도 발휘하지 못할수도 있고 허정무 감독이 2년간 충분한 시간을 받아 발휘한 50만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아주 적절한 히딩크의 명언 하나가 있다.

- 하루에 1%씩 승리 가능성을 높여나갈 것이다 - 월드컵 100일 전 히딩크 감독의 인터뷰

즉 감독이란 무슨 회계 짜듯이 2년동안 정확하게 이길 확율을 한달에 몇%씩 높이는 존재가 아니라 그 목표가 어디에 향해있는지를 직시한다음 그에 따른 충분한 준비를 거친 후 대회 직전에 그것을 현실화시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감독은 자신의 계약 기간을 우선 살펴보고 자신의 계약 기간동안 어느 정도까지 레벨업을 위한 경험치를 쌓을 수 있을지 계획을 짜는데 여기에는 선수 선발부터 선수들에게 자신의 전략을 이해시키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전략에 맞게 개조시키는 작업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기나긴 바탕 작업이 끝난 뒤에 실전을 위한 전술을 시험하는 것으로 실전 대비를 시작하는 것이다. 즉 지금까지 히딩크 이후의 외국인 감독들은 이 작업을 채 절반도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 결과를 보여주라는 외압으로 인해 설익은 경기력을 선보였다는 죄로 쫒겨났던 것이다. 계약기간이라는 의미는 이미 없었다. 그들에게는 계약기간을 분명히 명시하고 그 계약기간 내에 맞춰 대표팀에 대한 계획을 짤 어떤 시간적 여유도 주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허정무 감독도 자칫 이런 악순환에 휘말릴뻔하기도 했다. 허정무 감독이 동아시아 대회, 즉 다시말해 월드컵 100일 조금 더 남았을때의 국가대표팀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오버랩해보면 답이 금방 나온다. 사람들이 깜짝 놀랐던 것은 국대가 갑자기 다른 팀이 된 마냥 평가전때와 달리 강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무전술 감독처럼 보였던 허정무가 백전노장 오토 레하겔을 수싸움에서 이기는 모습에서 전율까지 느낀 사람도 많았으리라

2년 중 1년 6개월정도는 팀이 전혀 변화가 없어도, 오히려 쇠퇴하는 모습을 보여도 이상할 게 없다는 것, 우리는 이미 히딩크 때 배웠음에도 지난 10년간 이것을 잊은 채로 살았다. 그리고 지금 허정무 감독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그 진실'을 증명해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허정무 감독이 주는 교훈은 다른 게 없다. 앞으로 국내파 감독이 되던지 외국인 감독이 새로 물망에 오르던 중간에 어떤 개차반 성적을 내던 일단 적어도 자신의 전술 철학을 팀에 녹일 만한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면 팀은 절대 강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본인이 직접 결과를 통해 시전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아마 허정무 감독은 아무런 억울함이나 안타까움이 없을 것이라 개인적으로 확신한다. 모든 걸 전력을 다해 쏟아낸 다음 받아들 수 있는 성적표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정직한 자기 자신의 거울일테니까 말이다.


모쪼록 허정무 감독이 가르쳐준 이번 교훈을 축구인들이 오랫동안 잊지 않기를 마음속 깊이 염원해본다. 그리스전이 편안했던 이유, 그리고 앞으로의 경기가 승패를 떠나 너무나도 기다려지게 만든 이유는 다른 게 없다. 그리스전에서 보여준 그것 우리가 언제나 부상에 울고 불운에 울고 감독 교체로 어수선한 상황에 제 실력을 국제 무대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역사가 겨우 바뀌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붙으면 아르헨티나든 나이지리아든 제대로 붙어서 우리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인정받을 수 있는 납득할 만한 성적표가 나올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드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런 팀, 우리가 당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담은 100%풀전력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팀이 나오려면 감독을 먼저 신뢰하자, 그리고 적어도 축구에서만큼은 테스트가 아닌 결과로 평가하는 문화를 정착시켜보자,

목적은 단 하나
'대한민국 축구가 강해지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