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4. 2. 23. 02:50

결과론적으로 분명히 말씀드립니다만, 이번 김연아의 은메달은 세계 유수의 언론들과 피겨계 명사들이 말하는 그대로 공정하지 못한 판정에 의한 러시아의 농간이 있었던 것에 분명합니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에게 들려드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지금까지 김연아가 이곳 소치까지 오는 과정, 그리고 러시아라는 무대의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이야기로 김연아가 잘하고 못하고의 차원에서 금메달이 수여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피겨 전문가도 아니거니와 어디까지나 비전공자의 개인적 감상자 관점에서 쓰여진 글이라는 점 다시 한번 강조하며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


째 IF 

라 '블'면? 



아디오스 노니노의 프로그램 완성도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물론 아주 훌륭한 완성도임에는 분명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디오스 노니노가 정말 연아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느냐면 조금 의문이 남는데요. 일단 곡이 좀 가볍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이런 가볍고 발랄한 느낌의 곡은 다른 곳은 몰라도 러시아에서의 평론은 그다지 좋은 평론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면 레미제라블은 당시 영화 개봉의 어떤 붐 조성 자체 때문에 일찍 뚜껑을 열었던 적도 있지만 시즌 베스트 점수 기록만 보더라도 아디오스 노니노보다 훨씬 높았고 일단 곡의 무게감 자체가 아디오스 노니노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묵직합니다. 누가 보아도 누가 들어도 아디오스 노니노보다는 연아의 피날레 무대를 장식하는 데에 있어 이쪽이 더 어울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무엇보다 레미제라블 프로그램은 공개 당시 러시아 피겨 팬들에게서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던 전례도 있던 만큼 레미제라블이 순서를 바꾸어서 올림픽 시즌에 맞춰 공개하게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파 판정도 있었지만 김연아 선수의 점수에서 제일 충격적이었던 건 예술점수를 무척 야박하게 준 부분이었거든요. 러시아 심판이 4명이라는 것은 편파도 편파지만 적어도 러시아 사람이 예술점수를 줄 만한 무언가가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더랬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대놓고 러시아 선수를 밀어주는 데에는 답이 없었겠지만요.


...


째 IF

 바 를 고 에 면?


아사다 마오가 밴쿠버에서 참패할 당시 타라소바 코치의 오판은 피겨계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신 채점제와 맞지 않는 점프 구성과 점프의 난이도를 중시하는 러시아 스타일의 피겨를 추구했던 타라소바의 피겨는 인정받지 못했고 김연아의 물 흐르듯 이어지는 구성과 예술성을 중시하는 피겨가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죠. 당시 강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에브게니 플루셴코가 별다른 실수 없는 클린을 거두었음에도 에반 라이사첵한테 밀려 은메달에 머물렀던 사례 역시 이러한 피겨계의 변화를 뒷받침해주는 사례로 충분했습니다. 그 뒤로 뭔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아사다 마오는 타라소바와 결별하고 트리플 악셀에 집착한 피겨인생을 후회하는 발언을 하죠.


현 러시아 피겨팀 고문으로 있는 타라소바는 아사다 마오에게 '연습으로 인한 과로'를 걱정했으며 김연아의 연기는 '지루하다'고 혹평했다. 소트니코바에게는 최고의 연기라는 찬사를 날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 역시 자신의 피겨 인생이 소치까지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일본 여자 싱글에 신인들이 생각만큼 잘 커주지 않았고 애엄마 안도 미키까지 나와서 경쟁할 만큼 하향 평준화가 될 줄은 일본 빙상계 어느 누구도 몰랐을테지요. 결국 버릴 카드로 취급받던 아사다 마오에게 어느새 다시 기대를 거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아사다 마오는 언제나 그랬듯 망가진 컨트롤과 피겨계의 로비 버프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만, 결과는 메달권에 다다르지 못했죠. 이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지금까지 해오던 피겨를 부정하고 열심히 김연아를 흉내낸 것에 따른 부작용이 아니었나 보여집니다. 무엇보다 아사다 마오가 프리 스케이팅에서 보여준 연기 그리고 받은 배점이 증명하듯 결국은 트리플 악셀의 성공과 예전 타라소바가 추구했던 흐름은 개나 줘버리고 그냥 점프만 고난이도로 뛰는 피겨가 먹혔던 게 다름아닌 소치 올림픽이었으니까요. 그녀가 타라소바가 추구하던 피겨를 포기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소치까지 끌고 왔더라면 김연아를 이기는 것은 어렵겠지만 적어도 이번처럼 빈손으로 귀국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


째 IF

가 지 면?



러시아의 국민적 영웅인 에브게니 플루셴코의 허리 부상 기권 후 은퇴 시사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체감을 못할 뿐 러시아 국내에서는 지금 김연아가 금메달 못 딴 만큼의 반향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러시아가 피겨에서 금을 원했다면 여자 싱글보단 오히려 남자 싱글쪽이 맞다고 보아야겠죠. 소트니코바는 사실 경력이나 명성에 있어서 플루셴코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맞서서 보잘것없는 선수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냥 러시아가 금메달을 따서 기쁜 정도이지 국민적으로 난리가 날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거죠. 그리고 러시아 국민들도 생각이 있기 때문에 플루셴코가 아무리 늙었더라도 플루셴코가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이랑 소트니코바가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 중 어느쪽을 더 신뢰하고 납득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우리가 연아에게 거는 기대감을 러시아 국민들은 플루셴코에게 걸고 있었다.


플루셴코가 만일 부상으로 기권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가 본 김연아 금메달 강탈 사건이 남자 싱글에서 이미 벌어지고도 남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남자 싱글은 밴쿠버 금메달리스트 라이사첵이 부상으로 불참했고 결국 뜬금없는 신인 하뉴가 금메달을 가져가는 모습을 지켜보셨던 것처럼 (그것도 금메달에 어울리지 않는 연기로) 만일 플루셴코가 나오기만 했더라도 지금처럼 김연아 같은 절대적 인물이 없는 남자 싱글 판에서 별 잡음없이 금메달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 테니까요. 부정을 저질러도 티가 나지 않고 오히려 국내외에서 명망이 훨씬 높은 선수가 금메달을 따주는 편이 러시아가 노리는 바를 더 잘 이룰 수 있는 모양새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러시아는 기술 위주의 피겨를 추구하는 나라인데다 여자 싱글에서 이렇다할 슈퍼스타가 나와주지 않은 최근 상황에 비추어볼때 만약은 없는 스포츠계이긴 합니다만 더더욱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아닐 수 없네요.


플루셴코를 존경한다는 하뉴의 금메달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무리 오서 코치에 윌슨 안무가 곁들여진다 하더라도 하뉴의 연기는 김연아의 그것처럼 매끄러워 보이지 않았다. 플루셴코가 추구했던 피겨 철학, 고난도 기술이 곧 예술이다 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듯한 연기였으니까, 러시아는 이런 하뉴의 모습에서 플루셴코를 보고 그에게 금메달을 수여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


운이 없었습니다. 여러 모로 김연아에게 불리하게 돌아간 올림픽이었습니다. 러시아의 편파가 있었다고 해서 반드시 그 화살이 김연아에게 돌아갈 필요가 없었을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아쉬움이 남는데요 특히 3번째 IF가 그렇습니다. 러시아가 플루셴코의 금메달로 피겨에서 금메달 욕구불만을 충분히 해소했다면 굳이 국제적으로 욕을 처먹으면서까지 김연아를 건드리지 않았어도 됐을텐데 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특히 그렇습니다.



소치 올림픽도 이렇게 저물어 가네요. 메달리스트를 포함해 참가한 모든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빅토르 안의 쇼트트랙 3관왕 역시 축하합니다.



또 뵙죠...

posted by RushAm 2013. 4. 11. 23:53

어느 정도 문고리 좀 식었죠? 상대가 소녀시대이다보니 쩝...


가능하면 아티스트라고 불러주셨으면 좋겠어요. / 하지만 저는 저를 아이돌이나 아티스트 어느 한 쪽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 아이돌이랑 아티스트는 다르다고 생각하니까


소녀시대가 일본 방송에서 자신들을 이제 아이돌이 아닌 아티스트로 바라바주길 원한다는 발언을 해서 한동안 화제를 낳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발언 취지는 지금 네티즌들이 오해하고 있는 그런 투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소녀시대를 비난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라 우리가 아티스트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개념 정립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소식을 맞닥뜨렸을 때에 일어나는 파급력이 불과 10년 전 문희준의 발언 당시와 비교해볼때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에 경악했기 때문에 쓰게 된 글입니다.


자 우선 아티스트란 무엇일까요?


소녀시대 논란에 즈음하여 소녀시대가 아티스트다, 혹은 아티스트가 아니다라는 논쟁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키워드를 몇 가지 살펴보았습니다. 아티스트는 'art+ist' 로 만들어지는 단어인데, 한마디로 '예술을 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대명제가 갈리는 것은 여기에서 말하는 '아트'가 과연 '창작'이나 '기술'이냐에 대한 부분으로 소녀시대 아티스트론의 찬반을 가르는 가장 결정적인 핵심 논점이었는데요.


창작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예술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하며 작곡가, 화가, 안무가 등 어떤 작품을 무에서 유로 창조하는 것을 말합니다. '표현'은 이미 만들어진 작품을 안무나 노래, 기타 다른 수단을 통해 표현하는 것을 말하죠. 소녀시대 아티스트론자들은 '피아니스트'나 '김연아', '강수진'의 예를 들며 표현도 충분히 예술의 범위에 들어가기때문에 단순히 만들어진 것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아티스트라 불리울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반면 창작론자들은 보다 원초적으로 아티스트들이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 '감각'이 표현이든 창작이든 녹아있어야 한다는 점을 내세웁니다. 따라서 만들어진 것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재현하기에만 급급한 소녀시대가 아티스트라 불리기 어렵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데요.


양비론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려 죄송합니다만, 

어느 쪽도 아티스트 논쟁에 별로 접근한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아티스트는 단지 창작이나 표현 어느 한 쪽만 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며 그 것이 두 가지 수단으로 표현되지만 결국 전해지는 것은 한 가지로 취합되는 것이 예술이니까요. 설명 웃기지 않습니까? 그만큼 이 단어가 이상한 단어라는 이야기입니다. 아티스트는 직업이 아니에요. 그냥 대명제이고 칭찬의 단어일 뿐인거지요. 여러분이 제가 말한 아티스트 설명에서 들은 난잡함이 이 단어에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뭐 하나 정의되지 않는, 또한 그것이 예술이라고 말하는 앞뒤 안맞는 프랑스인의 감성이 묻어나있죠.


우선 김연아는 아티스트가 아닙니다. 강수진도 직업이 '아티스트'가 아니에요. 피아니스트도 직업은 '피아니스트'이지 그들을 '아티스트'라고 부르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김연아 해외 중계를 잘 들어보면 이런 말이 가끔 들리긴 합니다 '오오~ 정말 예술적 (artistic)이네요', 강수진의 발레도 이런 찬사를 들은 적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유명한 피아니스트나 첼리스트들 역시 '예술적'이라는 찬사를 들은 적이 많다는 것이죠.


이분은 연습이랑 실전이 똑같군요 발전이 없네


위에 예를 든 3개 직업군의 모든 사람들은 '창작'을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저런 찬사를 듣죠. 그런데 주목할 만한 것은 그들을 '아티스트'라고 공식적으로 지칭하는 걸 들은 적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예술의 경지에 오르다'는 찬사는 받았지만 그들을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고 지칭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냥 피겨 스케이터이며 발레이나이고 피아니스트와 첼리스트일 뿐입니다. 아티스트는 직업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주목할만한 부분은 예를 들은 사람들 모두 '스스로'를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라든지 '아티스트'라 불러달라는 식의 인터뷰를 하거나 공식석상에서 그와 같은 발언을 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티스트라는 단어 자체의 무게감이 엄청나게 숭고하다거나 한 것 같지도 않은 것 같은데 말이죠. 아티스트라는 말은 오히려 프랑스처럼 구분없이 매사 모든 게 예술로 치완되는 사람들을 비웃기 위한 단어라는 설까지 있을 정도이니 자칭하는 것이 어법상 얼마나 어색한지 스스로 잘 아는 사람들의 손쉬운 대처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소녀시대가 스스로 작곡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안무를 하는 데에 있어 위키백과에서 나온 아티스트의 정의대로 어느 수준 이상의 숙련이 되어 있어 일본 아이돌들의 유치찬란한 안무와는 비교당하기 싫다는 취지로 말했을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분과 아티스트랑은 크게 상관이 없으며 차라리 표현할 단어가 없었다면 아티스트라는 표현은 자충수를 둔 감이 있는데요. 대중들이 아티스트에 대한 본질적 지식을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 정도로 반감을 갖게 된다는 것은 그 단어가 가진 시건방짐 여부와는 별로 관계가 없을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족을 달 시간이군요.


자 그럼 작곡가 유영진은 아티스트인가요? 아니요 '작곡가'입니다. 어느 수준을 넘어섰다고요 어휴 그럼 '아주 뛰어난 작곡가'인 거죠. 소녀시대는 아티스트인가요? 아니요 '댄스 보컬 그룹'입니다. 군무도 아주 칼같고 노래도 잘한다고요? 그럼 '아주 뛰어난 댄스 보컬 그룹'인 거죠. 


지금 제가 그들을 폄하하는 것 같으신가요?

아니요 오히려 제가 보기엔 그들이 그들 스스로 자신들을 '아티스트'라 불러달라고 하는 게

스스로를 폄하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데요.


왜 자신들이 기껏 '특정 분야'에서 '숙련되어서' 정점에 이른 것을 평가해주길 바라면서

표현 자체는 뭉뚱그려서 '예술하는 사람'으로 평범하게 마무리지으려 드는 건지 안타까워서 그렇습니다.


왜 꼭 그 분야 최고가 되면 '클레스 체인지'를 하고 싶어하는 걸까요?

성장해서 정상에 오른 그 분야를 지칭하는 것이 부끄러운걸까요? 딴따라라고 놀릴까봐?


소개합니다! 세계 최강 '여성 댄스 보컬 아이돌'그룹 스파이스 걸스입니다.


제가 박지성이나 김연아라면 말이죠.

저는 '스포츠맨' 입니다. 라고 소개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세계 최고의 구단에서 뛰는 축구 선수'입니다. 라던지

저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피겨 스케이터'입니다 라던지...있잖아요


...


자신이 있는 분야에서 정점에 오른 그 분야 자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 분야에서 정점에 오른 자신들을 인정해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최고의 아이돌이 '나는 아이돌이라고 불리는게 싫다'라니...이게 무슨



posted by RushAm 2010. 2. 28. 00:35
이 글은 국가적인 관점을 접어두고 (검색해보면 김연아가 아사다 마오를 이겨야 하는 이유를 일제침략기와 관련되어 서술하신 분도 계십니다만) 현재 한국 언론들이 쏟아내는 경기력과는 전혀 관계없는 인신공격성 기사에 보충해 많은 분들의 알 권리 차원에서 쓰여지는 글입니다. 전 아사다 마오의 팬도 아니고 김연아 선수를 아주 좋아하지도 않으며 피겨에 대한 조예가 깊지도 않은 비전문가입니다. 참고 자료로서 봐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과잉 보호 및 지나치다싶을만큼 자녀 교육열이 높은 것에 비해 일본은 그 다양성에 있어서는 자식의 미래에 대해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철저하게 자식의 인생은 자식의 인생으로 내버려두는 쪽이 이들의 스타일인데요. 아이의 인생을 먼저 앞서나가 컨트롤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방식이라면 한발짝 물러나 있으면서 쓰러지면 뛰어가서 잠시 일으켜주거나 상담을 들어주는 식이 일본식입니다. 따라서 어릴때부터 신동을 만들어내기 위해 조기교육을 시키거나 하는 풍경은 '진성 일본인'이라면 좀체로 보기가 힘든데요.

아사다 마오는 이 부분에서 조금 달랐습니다. 5살 때부터 자의였든 타의였든 피겨 부츠를 신게 된 그녀는 부모의 지독한 교육열에 의해 다소 혹독한 유년기를 거치는데요. 물론 이런 조기교육시스템은 피겨 자체는 물론 일본 사회 전반에 있어 지극히 보기 드문 시스템입니다. 부모가 직접 나서서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고 컨트롤하는 문화 자체가 생소하기 때문이죠. 아무튼 이러한 부모의 적극적인 관심과 조금은 타고 났다고 볼 수 있을 운동신경으로 아사다 마오는 같은연령대의 실력을 멀찌감치 추월하며 월반행진을 이어나갑니다. 연령별 국내대회 재패는 물론 에초 스타트 지점 자체가 달랐던 마오는 이제 막 진로를 정하기 시작한 초보 티를 못벗은 동연배들이 상대가 될 턱이 없었을테니까요.

이런 쾌속행진에도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던 아사다 마오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점은 역시 세계대회였습니다. 세계에서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것은 어린 나이에 국내를 재패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니까요. 때마침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피겨 선수들을 육성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던 일본은 마오의 급성장과 그에 따른 눈부신 성과에 반색합니다. 쥬니어 대회의 우승이긴 했지만 피겨 대회의 특성 상 한번 만들어진 세대에서 최강자가 된 이상 그 세대는 고스란히 황금세대가 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미셸 콴처럼 한 사람의 선수가 그 세대 자체를 꾸준히 지배한 사례는 피겨계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으며 대부분 같은 세대에 태어났던 2인자들은 그들을 현역 내내 뛰어넘지 못했으니까요.

이제 초등학생 티를 겨우 벗기 시작한 그녀에게 쏟아지는 언론의 관심은 실로 엄청났습니다. 건전한 이미지에 광고 요청이 쇄도했고 그런 와중에서도 성적은 꾸준히 이어졌었죠. 당시 김연아가 등장합니다만 당시 수준으로서는 아직 마오를 넘지 못했었기에 일본이 마오에게 거는 기대는 거의 정설로 굳어지고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피겨의 신 세대를 만들어낼 뉴에이지 세터가 등장했다고 말이죠.

그런데 이런 승승장구 속에서 김연아라는 존재가 무섭게 성장하며 추격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걸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일본에게 갑자기 얻어맞은 마지막 쥬니어 대회에서의 역전패는 정말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일본이 믿고 있던 시나리오는 향후 10년간 마오의 독무대가 될 절대강자 마오의 모습이었지 도중에 한국에게 그 행보를 발목잡히게 될 것은 계산에 없었던 일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첫 시니어 대회였던 2006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마저 김연아에게 패배하자 일본은 6년여간 마오 전담 코치였던 야마다 마치코를 대신해 미셸 콴의 전담 코치로 이름을 알린 라파엘을 전담 코치로 앉히고 피겨계의 전설로 통하는 타라소바를 음악, 안무 담당에 배정하는 등 이른바 '마오 최강자 개조'프로젝트에 착수합니다. 일본의 안좋은 풍토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겠는데요 자식을 길러낼때에는 철저하게 후견인으로서 일관하더라도 이미 아이가 성장하여 일정 수준 이상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어이의 포텐셜을 단 1포인트라도 잃지 않기 위해 직,간접적인 설레발을 통해 당사자에게 부담감을 가중시키게 되는 것이죠.

다시말해 그 선수의 미래 달성 목표를 그 선수가 정하는 게 아닌 언론과 여론이 이미 정해버리고 그에 맞춰 국가는 그 선수를 억지로라도 그 위치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갖은 지원을 퍼붓는 것입니다. 일본은 책임을 지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는 사회 풍토가 자리잡고 있어 원인이 어떻든 일단 여론이 원하는 정도까지 그 선수가 도달하지 못하면 누구든 그 책임을 져야하며 만일 지지 않기 위해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는 걸 증명해야만 합니다. 마오의 TV CM 출연 등으로 적지 않은 이득을 본 후견인들은 이미 '공공재'가 되어버린 마오가 기대치만큼 성정하지 못할 것에 대한 화살이 자신들에게 돌아올 것을 우려했던 것이죠.

이런 항생제같은 특별 과외는 처음에는 효과가 있는 듯 싶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거의 같은 시기였던 2006년 7월 김연아의 전담 코치로 영입되었던 브라이언 오서에 비해 러시아의 선진 피겨 기술을 주입시킨 마오의 기술은 다시금 시대를 압도하기 시작했으니까요, 트리플 악셀은 빠르고 날카로웠고 고난도 기술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김연아와의 차이를 확고히 합니다. 김연아는 당시 고질적인 부상에다가 새로운 코치의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피겨 방식을 아직 완전히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죠.

그런데 운명이란 참 오묘하게도 김연아의 부상이 회복되고 차츰 오서 코치와의 호흡이 맞아가는 와중 마오의 성장이 정체되기 시작합니다. 트리플 악셀이 성공한다면 고득점은 확실하지만 성공하지 못할 경우 그냥 안뛰니만 못한 감점을 각오해야 했으니까요. 여기에 오랜 기간 말도 잘 안통하는 외국인 코치들과 거의 개인교습에 가까운 외로운 생활이 계속되자 멘탈리즘에도 서서히 문제를 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트리플 악셀 성공율이 좀체로 높아지지 않고 김연아가 무섭게 뒤를 추격하자 라이벌의 존재보다는 마오의 독주가 필요했던 일본은 라파엘 코치를 대신해 안무, 음악을 담당해 왔던 타라소바를 새로운 코치로 부임시킵니다.

당시 일본은 마오가 선진 피겨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음악과 안무를 담당하는 타라소바가 직접 담당하지 않아서 생기는 라파엘 코치와의 코드 차이에서 오는 갭이 있었다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만, 이런 상황에서도 마오의 멘탈 상태를 문제삼거나 우려하는 목소리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새로운 코치 타라소바는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인데다가 자신의 경력에 대한 상당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화려한 경력에 대한 자부심과 편견이 매우 심했는데요. 이것이 두고두고 마오의 선수생활을 망가뜨리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타라소바는 코치가 된 이후에도 마오를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모습을 자주 보이지는 않았으며. 대부분의 연습 과정 밎 교육을 부코치에게 위임한 채 자신은 이전과 다름없이 음악과 안무 작성에만 열중합니다.  문제는 이 '코치'라는 직책이 타라소바에게 가져다준 마오 팀 내에서의 입지인데요. 일단 치프 코치이다 보니 다른 부코치들은 이 타라소바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고 여기에 타라소바 특유의 아름답지 못한 성격에 비뚤어진 편견까지 결부되어 자신이 정말 완벽한 곡과 안무를 만들어주었는데 그 아름다운 곡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마오와 코치진을 다그치는 것 이외에 이렇다할 가르침이나 노하우 전수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타라소바가 만드는 안무와 음악은 이전 10점 만점제가 시행되던 기술 피겨의 시대에 걸맞는 어려운 기술을 가능한 많이 구사하고 강력한 카리스마로 관중을 압도하는 무겁고 음울한 분위기의 이른바 '최강자 포스'를 내뿜는 작품들이 많았는데요. 이런 피겨 스타일은 동양인 체형의 자유분방하고 발랄한 이미지와 그에 걸맞는 피겨를 해왔던 마오에게 소화하기 매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오의 이러한 어려움은 여론의 기대감에 묻혀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죠. 이미 마오로 인해 많은 돈을 벌었던 후견인들은 이른바 '마오로 인해 얻은 지분' 즉 주가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마오에 대한 안좋은 기사나 소식들은 최대한 밖으로 세어나가지 않도록 철저하게 은폐 관리했던 것입니다.

코치진은 코치진대로 타라소바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마오를 타라소바가 만든 안무에 맞춰 낼 수 밖에 없었는데요. 트리플 악셀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평소의 회전 속도보다 더 빠르고 점프도 훨씬 높아져야만 하는데다가 뛴 다음에 재대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근지지력, 그리고 그 뒤에 다른 점프를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큼의 강인한 체력이 필요했습니다. 마오는 이들에 의해 강도높은 체력훈련을 받으며 트리플 악셀의 성공력만을 높이는 데에 전념하게 되죠.

이렇게 정체되는 동안 김연아는 오서 코치가 의도한 만큼의 포텐셜을 서서히 폭발시키며 시대를 지배해나갑니다. 그러나 언제나 결정적인 그랑프리 파이널이나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마오에게 간발에 차로 밀리거나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죠. 이 당시 마오는 적어도 자신에게 걸린 기대감을 무너뜨릴 우려가 있는 큰 대회에서만큼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몸이 버텨내기 힘들 만큼의 무리를 하고 있음이 분명했으며 이는 정상적인 플레이로는 도저히 김연아를 이기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마오의 몸이 남아날 리가 없었죠. 결국 부상에 신음하며 올림픽을 목전에 둔 2009 그랑프리에서 마오는 최악의 연기로 김연아에게 완패합니다. 패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경기력 역시 현저히 떨어져 있었죠. 이를 사실상 처음으로 직접 확인하게 된 일본 국민들은 경악했습니다. 밴쿠버 올림픽을 향한 순항이 계속되고 있다고만 생각했던 일본은 마오의 드러나지 않았던 불안 요소가 일시에 폭발하자 원인조차 제대로 찾지 못한 채 허둥댔으며 언론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죠.

마오가 무너진 데에는 무리한 체력 훈련에 따른 부상이라고 알려져있긴 했습니다만 사실 부상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보다는 마오의 멘탈 문제가 가장 크지 않았나 하는데요. 마오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타라소바의 가르침에 이렇다할 반기를 들지 않은 채로 묵묵히 최선을 다 해 왔습니다. 그녀를 견디게 할 수 있었던 건 다름아닌 '타라소바'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었죠. 제대로 된 학창시절을 겪었다고 보기 힘든 그녀에게 있어 정신적 성장은 또래들에 비해 지극히 느릴 수밖에 없었고 그녀에게 있어 '코치'의 존재는 절대적이었습니다. 언제나 최고라고 인정받고 칭찬받으며 그것을 위해 피겨를 해 왔던 그녀에게 있어 타라소바에게 인정받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없었을테니까요.

그런데 타라소바가 2009년 무렵부터 당뇨를 이유로 아에 연습장조차 나오지 않게 되는 일이 잦아지자 그녀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있던 마오의 멘탈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나마 칭찬은 거의 나올리가 없을 성격의 타라소바였겠습니다만, 아직 심적으로 나약할 수밖에 없었던 마오에게 있어서는 없어서는 안될 의지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녀가 무너진 시점은 타라소바가 건강을 이유로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시기와 거의 일치하고 있습니다.

사태가 이쯤 되자 마오를 이용해 돈을 벌었고 앞으로도 많은 돈을 벌어야 할 마오의 후견인들은 이른바 똥줄이 타기 시작하는데요. 투자한 것도 있지만 만일 마오가 이대로 무너진다면 국민적인 책임론 저항에 자신들 역시 크게 휘말릴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여기에 쇄도하던 광고 요청이 뚝 끊기고 동시에 개런티도 급락했으며 언론 역시 마오에게 서서히 등을 돌리는 등 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그야말로 파토 직전까지 몰리는데요. 이들은 정말 최후의 수단으로 이른바 항생제를 주사하듯 마오의 대외 활동을 철저하게 제한한 채 마오의 경기력 향상에 거의 모든 것을 걸게 됩니다. 반년 남은 올림픽에 거의 모든 것을 걸겠다는 심산이었죠. 물론 이 처방도 그리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그냥 계속 이 상태로 대회를 내보내서 멘탈을 망가뜨리기보다는 은둔시켜서 제대로 몸이 만들어질때까지 대회 출전을 시키지 않는 것 뿐이었고 주안점은 여전히 트리플 악셀 등 고난도의 기술을 소화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죠.

그 뒤 약 반년만에 돌아온 마오는 이전의 불안한 모습을 완전히 벗고 트리플 악셀을 실전에서도 완벽하게 소화하는 등 마침내 완성형 '병기'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만, 말 그대로 점프 뛰는 병기가 되었을 뿐 밝고 명랑한 이미지의 마오는 점차 입에서 그 특유의 밝은 미소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체형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으며 경기 스타일 역시 선이 굵은 연기를 스크립트 대로 망설임 없이 소화하는 모습을 보이며 다시금 일본 내 여론을 반전시키는 데에 성공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타라소바의 안무와 음악에는 정말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었습니다만, 그것은 마오의 안무 소화 여부를 떠난 '캐릭터 파악'부터 빗나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마오의 얼굴은 턱이 거의 나오지 않고 전체적으로 얼굴선이 가는 아직 소녀 티를 벗지 못한 전형적인 일본식 여성의 캐릭터, 한마디로 '동안'이었습니다만, 그녀의 프로그램은 강인한 여전사를 연상시키는 의상과 이를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안무, 그리고 그에 걸맞는 고난도의 점프가 주를 이루었던 것이죠. 그 결과는 이번에 올림픽에서 여러분들이 지켜보신 그대로입니다.

이른바 숙명의 라이벌이라 불리는 두 명의 천재 피겨스케이터의 운명은 시니어에 데뷰한 2006년부터 2010년 밴쿠버 올림픽까지 너무나도 다른 길을 걷게 된 것 같습니다. 김연아는 오서라는 그녀에게 더할 나위없는 파트너를 만나 그 꽃을 정말 화려하게 피워낼 수 있었던 반면 마오는 그녀를 위한 그 어떤 것도 운으로서 주어지지 못했던 결정적인 갈림길이 있었던 것이죠. 단지 운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다른 인생을 걷고 있는 그녀들의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마오가 걷는 길이 평탄해보이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실력 외적인 부분까지 마녀로 치부되고 있는 아사다 마오입니다만, 그냥 선수로서는 누구보다 피겨에 대한 열정이 강하고 순수한 선수일 뿐이었죠. 너무 순수했기에 일련의 불합리한 조건 속에서도 오히려 그 속에 순응하며 타라소바 코치에게 인정받기 위해 맞지 않은 옷을 입고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끌어내 이번 올림픽에서 폭발시켜낸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피겨의 트랜드는 타라소바의 고지식한 20세기 피겨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현대적인 '예술적 아름다움'과 '물 흐르듯 부드럽게 이어지는 연기의 자연스러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김연아는 이러한 트랜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오서라는 최고의 파트너를 만나 자연스러운 연기와 부드러운 표정으로 장내를 압도한 반면 마오의 연기는 아무런 감정이 들어가 있지 않은 짜여진 대본에 의한 그것이었고 마오 역시 패턴을 소화하는 데에 그쳤을 뿐 자연스럽게 연기에 동화되지 못했죠. 게다가 그녀의 소녀틱한 이미지를 전혀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보여주는 카리스마 연기는 화려한 불협화음을 야기하며 심판진의 마음을 얻어내지 못했습니다.

일본에서는 '김연아의 심판 매수설' 이 나오고 있다고 한국에 보도되고 있는 걸로 압니다만, 실제로 신문,TV같은 메스미디어의 반응은 전혀 다릅니다. 오히려 알려진 것과는 반대로 '김연아는 어떤 변수로도 어떻게 하지 못할 절대 범접할 수 없는 최강포스'라는 걸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죠. 이는 김연아를 재빨리 새로운 피겨계의 상품으로 만들려는 것과 동시에 아사다 마오의 패배를 정당화하려는 포석이 깔려 있습니다. 즉 마오가 못해서 진 게 아니라 김연아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졌다고 말이죠. 우리가 축구에서 브라질에 3:2로 패배했다고 한다면 아무도 선수들을 질책하지 않듯이 일본은 김연아를 지나칠 정도로 띄움으로서 마오에게 가는 타격을 줄이는 데에 열심히입니다.


마오 인터뷰를 자세히 들어보면 주목할만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제 연기는 트리플 악셀 두 번....그것뿐이었습니다' 와 '2014년 소치 올림픽에 다시 도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인데요. 마오 역시 올림픽이 끝난 시점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피겨가 자신에게 맞지 않았음에 대한 의사를 처음으로 표현하는 한편, 2014년부터는 자신만의 피겨를 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마오의 이번 올림픽 은메달 이상의 성적이 소치에서 나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이번 대회에서 급격한 성장을 보여준 한국의 곽민정과 미국의 나카스 미라이 등 유망주들이 즐비한데다가 다시 스타트 지점부터 재시작하다시피해야하는 마오에 비해 너무 멀찌감치 앞서가 있는 연아를 따라잡기에는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죠.

마오가 결코 나쁜 성적을 거둔 건 아닙니다만 일본 여론의 기대치, 즉 '목표가'에 못미친 주식이 되어버린 마오는 정말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하지 않으면 점차 주류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본의 신성들은 지금도 쑥쑥 크고 있고 어디에선가 불쑥 제 2의 마오라도 등장한다면 캐릭터가 겹치는 마오는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리게 될 것이 분명해보이니까요. 하지만 이후 어떤 성적으로 어떤 선수 인생이 되더라도 자신에게 있어 후회가 없는 선수 인생을 남길 수 있는 길을 가기를 바래봅니다. 적지 않은 재능과 피겨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충만한 선수 아사다 마오, 그녀만의 피겨 연기를 다시금 은반 위에서 볼 수 있기를 기다려봅니다.



posted by RushAm 2009. 11. 28. 05:54
으악 이게 뭐야! 라는 말이 정말 오랫만에 절로 튀어나왔습니다. 지금까지의 일본이라면 전혀 이상하게 생각할 게 없지만 역시 지금으로서는 한국이 짱먹고있는지라 이들도 어디까지 세상을 속일 수는 없었던 것이겠지요 (94년도에 나왔던 축구 게임을 생각해보면 참...) 아무튼 이쪽 세계에서는 정말 저어어어엉말! 좀처럼 보기 드물게 모에 계열 게임에서 한국인이 등장하는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2009년 12월 10일 발매를 예정하고 있는 닌텐도 DS 대응 게임 소프트웨어 'くるくるプリンセス’(굳이 번역하면 빙글빙글 프린세스) 시리즈의 최신작 ~ ときめきフィギュア☆めざせバンクーバー~(두근두근 피겨 노려라 밴쿠버!)가 그 주인공입니다. 피겨 스케이팅을 주제로 한 게임으로 직접 피겨 스케이트 선수를 조작해 프로그램별로 기술을 구사해 점수를 얻는 형태인데요. 한국에는 김연아 외에는 아직 국제 무대에서 알려진 선수가 많지 않은데에 반에 일본은 오래 전부터 국제 무대에 도전하기 위해 유소년들을 대거 육성해왔고 지금은 남,녀를 막론하고 국제 무대에서 일본 선수들의 성적이 괜찮은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피겨의 인기도 '선수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스포츠 자체로서 즐기는 팬층이 이미 다수 형성되어 있을 만큼 일반화된 인기스포츠로 자리잡고 있기에 이런 게임이 나오는 것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만!


그런데 이 게임에 김연아를 모델로 하는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이름은 '김 소연' 초상권 문제도 있으니 가명을 쓰고 실물을 완벽하게 재현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캐릭터를 딱 봐도 누굴 모델로 했는지 바로 알아차릴만큼 아주 노골적으로 그려놓고 있습니다. (다른 3명의 캐릭터들이 특별한 모델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게다가 캐릭터 설명을 보면 '올림픽에서 금매달이 가장 유력시되고 있으며...' 라든지 '한국의 절대강자'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는데요. 타이틀 화면도 그렇지만 이건 누가 봐도 최종보스급이네요 ^^; (사실 보스 캐릭터는 아닙니다, 직접 골라서 조작이 가능하지요, 먼치킨 캐릭터쯤 되는 것 같습니다)

시리즈 최신작이라는 소개문구에서 눈치를 채셨겠지만 이 게임은 전작이 두 편 존재합니다. 2007년 3월 15일에 발매된 くるくるプリンセス ~フィギュアできらきら☆氷のエンジェル~(빙글빙글 프린세스 ~ 피겨로 반짝반짝 은반 위의 천사 ~) 와 2007년 12월 13일에 발매된 くるくるプリンセス 〜夢のホワイト・カルテット〜 (빙글빙글 프린세스 ~ 꿈의 화이트 콰르텟)이 있는데요. 이 두 게임에서는 김연아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이때는 아직 아사다 마오가 라이벌로서 건재했을 시절이었고 둘 중 누가 위에 있는지 확실하게 말하기 힘들었을 시기였기에 굳이 김연아를 등장시킬 필요가 없었던것이죠. 사실 전작 어디에도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했다는 느낌을 주는 캐릭터 자체가 없었으니 처음으로 실존 모델을 연상시키는 캐릭터가 등장했다는 점에서도 한층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게임 자체만으로는 그냥 평범합니다만...(중간에 나오는 김소연 연습 복장에 주목)>

이 부분은 보기보다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큽니다. 사실 캡콤이나 코나미에서 발매되는 게임에서 김연아가 나온다면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아무리 그들이 극우적 성향을 가지고 있더라도 지금 짱먹는 선수를 빼먹을리가...) 에초 메이저 제작사는 '리얼리티'를 강조하기 때문에 실존 선수의 라이센싱과 현 세계 랭킹을 대거 반영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일본 내에서만 팔 생각이 에초 없을테니 한국에서도 팔리게끔 김연아를 넣는 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위닝이나 피파에서 이제 듣보잡 선수가 나오던 시절은 머나먼 추억이 된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이 게임을 제작한 스파이크라는 제작사는 꽤 많은 작품을 만들어온 중견 제작사임에는 분명합니다만 그 작품들을 살펴보면 국내에 거의 소개된 작품이 없습니다. 대부분 일본 내에서 소화가 가능한 '일본 로컬'제작사라는 것이죠. 더구나 이런 마이너한 작품이라면 더더욱 구매층은 제한적일수밖에 없고요. 그런 제작사를 통해 김연아를 모델로 한 게임이 등장했다는 것은 피겨 분야에서 일본 역시 김연아를 '지존'으로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가 이미 굳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상식화되는 것이죠. 예전에는 아사다 마오의 라이벌로 몇몇 피겨 팬들에게만 기억되던 김연아가 이제는 일본에서도 여자 피겨의 '고유명사'로 자리매김한 것입니다. 그것도 최강자로서, 오랜 기간 세계 최강을 목표로 절치부심하며 피겨 선수를 키워왔던 일본에서 자국 선수가 아닌 대한민국 선수가 말입니다.

마오의 부진과 더불어 그 뒤를 이을 이렇다할 수준급 강자가 당장은 등장하기 힘든 상황에서 (일본은 아라카와 시즈카의 금매달 이후 아사다 마오, 안도 미키, 나카노 유카리가 황금세대를 만들어줄 것으로 잔뜩 기대했었죠) 김연아의 독주가 일본으로서는 반갑지만은 않겠습니다만 이미 일본의 피겨팬들은 국적을 떠나 피겨를 즐기고 있는 마당에 그 팬들에게 언제까지고 애국심에 호소할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어쩔 수 없이 김연아를 인정하고 상품화 시키는 움직임을 속속 보이고 있습니다. 피규어 뉴스는 김연아에 집중되어 있고 중계진 역시 마치 육상의 우사인 볼트를 보듯 김연아가 얼마나 더 대단한 연기를 보이는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월드컵, 축구 야구, 이번엔 피겨까지 ...정말이지 일본으로서는 돈은 돈대로 들여서 열심히 만들어놓으면 어느새인가 거저먹듯 (일본입장에서는 분명 그렇게 보일) 자신들이 일궈놓은 걸 가로채가버리는 한국이 얄미울 법도 하겠네요.

끝으로 당구장에 걸려 있는 문구 하나를 인용해볼까 합니다.
'억울하면 승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