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업으로 대표되던 기업에서 분사 후 제 갈길을 가는 와중에도 별로 쳐지지 않고 굳건히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고 있는 L사에 대한 이미지는 S사에 대한 경쟁심리 때문인지 언제나 2인자의 이미지가 팽배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L사를 단지 회사의 규모나 S사에 비교할만한 대상 기업만으로 치부하기에는 L사가 가진 개성이 너무나도 많기에 구직을 준비하는 분들이 L사나 L사의 기업 마인드를 모방하는 기업에 입사하는 분들이 단순 이분법만으로 입사를 결정하는 것은 조금 위험합니다. 개성이 강한 만큼 인재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운영 방침도 꽤 재미있는 편이거든요.
엔지니어들의 천국
S사와 자주 비교되는 L사의 이미지는 겹치는 사업 분야가 많다는 점 이외에도 L사가 가지고 있는 S사에 대한 피해의식이 상당히 강하게 곳곳에서 드러나는 것으로 대표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분은 단지 2인자의 컴플랙스 같은 게 아니라 뭔가 좀 억울해하는 모습이라고 해야 어울리는데요. 왜냐하면 L사는 계열사의 90%이상이 이공계 엔지니어들만을 위한 사업들을 주력으로 하고 있을 만큼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자부심이란 이들이 '기술력'이 당장 세계를 재패할 만큼 뛰어나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엔지니어로서 남의 손을 빌리거나 기술적 꼼수를 부리는 것을 매우 꺼린다는 부분을 시사합니다.
L사의 대표 계열사를 생각나는 대로 살펴보죠.
화학
전자
생활건강
생명과학
이동통신
반도체
...
물론 그밖에도 계열사는 제법 됩니다만 아무도 이들 이외의 계열사를 L사를 대표하는 계열사 중 한 곳으로 꼽지 않습니다. 물론 S사도 기술산업쪽 계열사를 주력하고 있지만 S사가 자금줄로 활용하고 있는 생활 속 밀접한 관계 '보험회사'가 현 시점에서 그룹 내에 없다는 점이나 무역 마케팅을 주력으로 하는 계열사가 없다는 점을 비추어볼때 L사는 적어도 엔지니어들에게 있어서는 무척 좋은 대우를 기대할 수 있는 그룹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실제로도 S사와 견주어볼때 당장의 임금적인 측면에서는 차이를 보이기 힘들지만 실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연구 환경이나 업무 압박 강도 측면에서 훨씬 자유롭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자유로운 환경은 그만큼 독창적인 기술력을 많이 보유하게 되고 그 기술력은 고스란히 기술에 대한 자부심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때문에 그들은 S사가 부족한 기술력을 마케팅으로 매우는 것에 매우 염증을 느끼기도 하죠. 이러한 열등감은 기술력에 대한 독자적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것으로 오히려 시장이 악화가 양화를 밀어내는 형국을 매우 억울해하는 모습에서 나오는 열등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S사가 디자인 표절로 홍역을 치룰 만큼 아이폰에 급하게 대응하느라 분주할 무렵 L사는 비록 초창기 제품에서 수많은 욕을 먹으며 시행착오를 겪을 지언정 컨셉을 따오거나 비윤리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걸었습니다. 결국 아직 판매량이나 마케팅에서 뒤지고 있지만 제품에 대한 품질을 인정받을 수준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L사 엔지니어들의 우직함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만큼 경영이나 마케팅 등 실제 '만들어진 물건을 팔아야 하는' 부서나 계열사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박한 대우를 받는 그룹 내 분위기가 없지 않다는 전언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아무래도 이쪽 업무에 출중한 인재가 L사를 선택할 확율이 적고 이는 고스란히 L사의 마케팅 능력 부재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L사의 경영, 마케팅 인재 부족으로 인한 소양 결핍은 단지 판매 실적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데요. 아무래도 엔지니어들의 대우가 다른 쪽 계열 대우보다 상대적으로 높다보니 내부 승진 역시 엔지니어 실무진쪽이 월등히 빠르고 그렇다는 것은 결국 실무적인 부분 이외에 경영 마케팅쪽의 결정권자 역시 경영 마케팅 전문 실무진이 아닌 엔지니어 출신 인재들이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이같은 흐름은 아주 뿌리깊은 부분에서부터 문제를 야기하기 시작하는데요. 바로 업계 내에서는 물론 일반 소비자들도 이미 체감하고 있는 '1차원'마케팅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짓을 하게 만드는 대기업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후진적이죠.
L사는 그 회사 규모에 걸맞지 않게 사원들을 '영업사원화'시키는 작업을 꽤 오랜 기간동안 지속해오기로 유명한데요. 이를 테면 전혀 관계없는 계열사인 화학쪽 계열사에게 이동통신 계열사의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회선 10여개 가량의 판매를 맡기고 주변 지인들에게 이를 팔게끔 하는 대기업답지 않는 네트워크 마케팅을 지금 현 시점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이는 똑같이 엔지니어 중심의 간부 체계로 운영중인 대표적인 통신회사 K사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이런 마케팅 방식은 같은 경쟁사인 S사나 기타 대기업들에서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수준에서 그치는 매우 초보적이고 구태적인 마케팅 방식인데요. 심지어 임직원은 물론 협력업체들까지 전개하기도 하는데, 이같은 행태가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은 그로 인해서 잃을 수도 있는 회사 외적 이미지를 고려할 경험이나 지적 여유가 부족한 엔지니어 중심의 조직 체계가 불러오는 참사일수밖에 없는 것이죠.
계열사별로 실적과 목표까지 할당합니다. 물론 이 할당이 채워지지 않으면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죠. 이에 부담을 느낀 임직원들은 대부분 하청업체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문화까지 이미 정착이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밑바탕에서 좋은 마케팅이 나오기는 쉽지 않습니다. L사는 비단 이런 부분이 아니더라도 광고나 홍보 마케팅 측면에서 대기업답지 않은 많은 약점을 노출하고 있는데요. 가진 기술력에 비해 엔드 유저들이 피부에 와닿을 만큼 강력함이 없는 밋밋한 마케팅 능력은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말하면 L사가 그만큼 이에 대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거나 혹은 노력에 비해 결정권자의 무능함으로 인해 나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반증이겠지요. 어떤 결과로든 L사의 기술력 대비 경영 마케팅 능력은 매우 미숙하며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 역시 상당히 부족하다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L사의 사원들에 대한 복지 수준은 대기업다운 수준에서 살짝 부족한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만 반면 노조 설립이나 자율적인 의사결정에 있어서는 큰 제약을 두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이는 특별히 경영진이 노조에 관대하다기보다는 노조를 먼저 휘어잡을 수 있는 장악 능력 자체, 다시 말해 결국 앞서 언급한 '경영 스킬 부족'이 여기에서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부분이 되는데요.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노조가 상당히 유연한 태도를 보인다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노사 갈등이 심각하지 않다는 이야기인데요. 이는 경영진들의 무능함으로 노조 설립이나 운영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반대급부적인 부분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엔지니어들 중심의 조직 체계에서 노조같은 사회과학적인 측면이 필요한 조직 체계에 익숙하지 못한 임직원 내부 분위기상의 한계도 존재하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한마디로 어느쪽도 치고 나가지 못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인지 임직원들에 대한 복지 수준보다 어쩌면 더 중요할수도 있는 근무 환경 여건 개선 측면에서 L사는 여전히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24시간 3교대 근무 체계가 지금 시점에서도 이미 많은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어서 H사를 중심으로 야간 근무 자체를 폐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와중에 L사는 최근까지도 24시간 2교대 근무를 고수하다가 간신히 3교대로 바꾸는 데에 그치고 있어 아쉬움을 남기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에 대해 크게 심각함을 느끼거나 부당함을 설파하기보다 그냥 묵묵히 일하는 이공계 엔지니어들의 워커홀릭적인 특성과 더불어 이들이 주요 요직에 승진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근무 환경 여건 개선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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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의 삶에 가치를 두고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는 기업으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는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지금의 위크포인트를 기회로 어기고 L사를 바꿔보겠다는 야심찬 도전을 품고 있는 경영 마케팅 분야의 인재가 계시다면 지금은 좀 말리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바꿀 만큼의 위대한 능력을 가졌는지는 별개로 치더라도 그렇게 바꾼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이 그렇게 크지 않을 거라는 점이 그러한 열정을 굳이 꺾어주길 바라게끔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정을 꾸리는 것을 꿈꾸는 사람이라면...글쎄?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매우 뛰어나야만 합니다. 엔지니어들 중심으로 짜여진 조직체계는 매우 남성적이고 여성들이 끼어들 틈바구니가 적으며 그만큼 흔히 볼 수 있는 여성들이 만들어내는 조직 문화는 없지만, 그만큼 요구되는 능력 수준이 높고 외부 조직에서 흘러들어오는 이른바 '굴러온 돌'에 대한 냉혹함도 존재합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L사에 뼈를 묻겠다는 심산으로 들어온다면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어느 정도 직위에서 L사로의 전직은 조금은 말리고 싶습니다. 물론 업계 관행처럼 가져갈 수 있는 직위는 그대로 이어갈 수 있겠지만 조직 내에서 당신의 입지는 충분히 체감할 만큼 한계가 분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L사형 기업은 개성이 강하긴 하지만 유니크하지는 않습니다. 비단 L사 뿐만 아니라 L사처럼 엔지니어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대부분 L사의 기업 문화를 닮아있습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 말하는 것들은 비단 L사에 입사를 바라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기전자,화학,반도체 등 엔지니어링에 올인하는 중소기업들에게도 거의 동일하게 적용될 것입니다. 물론 L사가 이정도라는 것은 L사가 지금 보여주는 것이 그 조직 체계에서 얻어낼 수 있는 복지나 업무 환경이 가장 극한까지 끌어낸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시길 바랍니다. 아마 그 이하는 있을 수 있어도 그 이상은 있을 수 없다는 점 반드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특별기획 '취업' - 기업 생태연구 보고서 : L사형 기업 편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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