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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7.29 영화 무서운 이야기 - 공포영화는 롤러코스터가 아니다(?)
posted by RushAm 2012. 7. 29. 16:07

(내용 누설 조금도 없습니다. 안심하고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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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는 주로 신인감독들이 메이저 등용문 격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파이더맨 같은 월메이드급 블록버스터 영화와 더불어 이른바 '극장의 어트럭션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는 장르 중 하나인데요. 영화계가 도의적으로 이 공포라는 장르를 신인들에게 '배정'해주듯 뿌리다보니 특별히 공포라는 장르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영화를 만들어온 거장이 나오기 쉽지 않은게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그 신인들이 진자 파라노말 액티비티정도의 아이디어를 갖고 나오는것도 아닌 것 같고 말이죠.

 

무엇보다 공포영화는 '저예산'이라는 공식을 아예 고착화시켰다는 점이 한국 공포영화계가 스스로 자생할수 있는 여지를 막아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사람들은 여름하면 납량특집 공포영화를 찾는 고정 객층이 발생하고 있고 그 파이를 영화계에서 영화꿈나무 육성을 위한 짬짜미성격으로 활용하고 있다면 영화계가 사립단체 스스로의 영달을 위해 결국 문화계를 이용해먹고 있는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거든요. 신인만 가득하니 그들끼리의 경쟁이 수준이 높을수도 없고 또한 메이저에서 공포영화 장르에 정착한다한들 얼라들과의 경쟁이 작품성 향상에 그리 많은 도움을 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 공포영화 장르가 지금까지 신인 등용문으로서 얼마나 순기능적인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을 만큼 근 10년여간 이쪽 장르로 데뷰한 감독들이 지금와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도 많지 않거니와 대부분 그대로 공포영화 파이를 먹는데에 안주하는 경우도 많았다는 점은 이 업계가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웰메이드 호러무비를 표방하며 야심차게 발표한 '무서운 이야기' (2012 수필름) 가 가지는 영화계의 지금과 앞으로의 역할은 매우 무겁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공포라는 장르가 영화가 아닌 일종의 극장어트럭션화 되어버린 지금 상황에서 어트럭션에 익숙해져있는 관객들과 그 속에서 약간의 작품성이라도 건지고픈 감독들 사이에 달린 무게추 중심이 얼마나 균형감있게 잡힐 수 있을지에 대한 거의 마지막 실험이었다고 해도 무방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한국 공포영화 웰메이드급이라 칭하기에 하등 부족함이 없는 영화 '기담'을 만들어낸 정범식 감독이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 이 영화가 가진 무게감과 의미는 결코 하찮을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기대를 충분히 상회합니다. 신인 감독들이 가져오는 기상천외한 소재의 파격성도 없고, 유명한 배우들이나 인기절정의 아이돌 가수도 나오지 않으며, 사람을 난도질하는 고어물에 훨씬 못미치는 잔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평범한 소재 속에서 5인의 감독들은 각자 전혀 다른 세계관의 공포를 녹여냅니다. 그리고 그 영화 4개가 따로 놀지 않도록 영화를 완성시켜주는 민규동 감독의 훌륭한 짜임새 역시 놓치기 힘든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죠.

 


각 에피소드 30분이라는 제한은 언뜻 쉬워보일수 있습니다. 1시간 30분동안 지루할 쓸데없는 스토리 다 쳐내고 사람들 소리지를 것들만 꽉꽉 채우면 깔끔하거든요. 롤러코스터로 치면 출발하자마자 계속 떨어지고 올라가고 휘고 한바퀴돌고 하는걸 끝까지 쉬지않고 반복하는것과 똑같습니다. 다 쏟아붓는거죠. 확실히 그러면 좀 있어보입니다. 밀도도 높고 만족도도 크니까요.

 

그런데 이 영화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30분으로 축약하기에 심히 어려운 소재들을 훌륭하게 30분으로 마무리지으면서도 어트럭션처럼 사람을 놀래키는 연출을 극도로 아낍니다. 마치 자신들의 영화가 롤러코스터 취급받는 것을 꺼려하는 듯이 말이죠.

 

 

롤러코스터를 무서워하는 것과 공포영화를 무서워하는 감정은 모두 공포로 치완되지만 극단적으로 다릅니다. 롤러코스터는 타기 전에는 매우 긴장되고 공포스러우며 타는 도중에도 공포에 몸부림치다가도 결국 내린 뒤에는 공포는 간데없고 상쾌함만이 남지만 공포영화는 가슴에 뻐근한 왠지모를 찝찝함이 남게되기 마련이죠. 지금까지의 공포영화들은 너무 '납량특집'이라는 역할에 충실한 나머지 영화를 보며 맘껏 소리를 지르게 해주거나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역할만에 충실하도록 올라갔다 떨어지는 것을 반복하는 각본, 그리고 뒤끝이 남지 않는 부실한 전개와 결말을 살리지 못하는 연출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사람들은 매년 수많은 공포영화를 보지만 기억에 남는 영화는 손에 꼽게 되는 것입니다.

 

 

무서운 이야기는 공포영화입니다. 그리고 공포영화로서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갖춘 작품입니다. 무서운 이야기라는 작품 자체가 아닌 무서운이야기 작품 속 어떤 에피소드 하나만으로 기억될 가치도 충분할 것입니다. 이 작품에 참여한 5인의 감독들을 기억해두신다면 앞으로 그들이 만들어내는 작품들이 단지 한 시즌만을 소화할 바캉스 상품이 아닌 언제든 두고 볼 수 있는 영화로서의 가치를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증받으실 수 있습니다.

 

공포영화는 그 자체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훌륭한 영화 장르임에 다르지 않습니다. 신인감독들의 등용문으로 활용될만큼 가치가 없지도 않고 함부로 그딴곳에 쓸 수 있도록 허락되지도 않았습니다. 무서운 이야기를 만든 5인의 감독들은 그들의 작품 '무서운 이야기'를 통해 그렇게 말하고 있으며 그렇지 않은 영화를 만들어낼 권리와 사명을 가졌음을 관객들에게 어필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관객으로서 제대로 된 공포영화를 볼 수 있는 권리에 대해 그들과 공감하게 될 것입니다.

 

 

 

진짜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그들과

앞으로 더 많은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줄 그들의 계속되는 도전에 찬사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