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3. 10. 21. 23:58

<?>


제가 학교다닐때는 말이죠.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우리는 누구나 평등한 권리를 가진 자유민주주의평등국가라고 제일 처음에 배운 것 같거든요. 그런데 제가 정작 사회에 나와 살아보고 주변 친구들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습도 지켜보자면 그때 배운 게 맞나 싶기도 해요. 우리는 정말 직업에 귀천이 없는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에서 살고 있는 게 맞나요? 왜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굽실거려야 하고 그 화풀이를 꼭 누군가에게 해야 하는 폭탄돌리기를 하며 살아야만 하나요?


<!>


선생님들이 거짓말한게 그것 뿐이라고 생각하세요?


공화국 사회교과서 1장에 보시면 학교가 절대 정직한 집단이 될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너무 순진하셨어요. 하기야 그때 순진하지 않으면 언제 또 순진해봅니까? 꼭 우리나라만 그런 것도 아니긴 하지만, 그걸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세대들의 시각에서 재해석할 여지 자체를 주지 않는다는 건 좀 우리만의 문제이긴 해요.




흔히 대통령이 국민 아래에 있고 모든 권력 국민에게서 나온다 뭐 이런 이야기가 헌법에 쓰여있잖아요. 근데 그걸 체감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권력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이고 그 사람들이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고 자신들의 사유재산을 챙겨먹기도 하죠. 그럼 왜 이 헌법이 존재하느냐, 명목상인거에요. 사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이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는 것 자체가 에초에 과거 봉건주의 사회와 관료주의 사회의 모델에서 전혀 발전하지 못한 모양새거든요. 당연히 시행 초반에만 반짝 컨벤션 효과를 냈었겠지만 고무줄 돌아오듯 금새 사람 사는 사회는 예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채로 회귀하고 있는 거에요. 


왜 이 사회는 평등하지 못할까요? 그리고 앞으로 정말 평등한 사회란 올 수가 있을까요? 당장은 해답을 드리지 못하겠지만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


나랏님 탓


흔히 하는 착각중에 하나가 지금의 공화정에 비해 절대왕권봉건주의 사회에서는 왕의 권력이 절대적이며 백성들은 결코 이 권력에 저항하지 못한다고 믿고 있다는 거에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에요. 봉건주의 사회는 그만큼 계급화가 명확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각 벼슬이나 왕권이 지금의 공화정제 관료들보다는 훨씬 공고하고 표면적으로는 영구집권과 세속이 가능한 구조를 지니고 있어요. 근데 진짜 그랬을까요? 그리고 지금 공화정이 영구집권과 세속을 완전히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이긴 한가요? 


공화정 하에서 정권을 잡은 자들


대통령과 일개 시민이 평등하다고 교과서에서 늘 배우지만 실상은 결코 그렇지 않죠? 대통령이 가진 국가 권한은 너무나도 막강해서 국가를 개인 사적 감정으로 패망시키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요. 과거 조선의 왕들이 군사를 일으킬 때 백성들 중 건장한 청년들을 차출하는 것처럼 대통령 산하 국가조직 역시 젊은이들에게 명목상으로는 '자율적'이지만 헌법상의 의무라고 못을 박아둔 채 병사를 차출하고 또 이용하는 모습은 전혀 다를바가 없잖아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서 몸 아픈사람 빼주고 부양가족 있는 사람 빼주고 그런다고요? 조선시대라고 그런 거 없었던 게 아니에요. 조선시대에는 심지어 '결혼'만 하면 애를 생산해야한다는 의무를 지기 때문에 전쟁에 차출되지 않기까지 했어요. 다친 사람이나 지병 있는 사람은 말할것도 없죠. 지금 병역 면제 기준 한번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아마 면제를 받는 것이 조선시대에 비해서 과히 민주적이고 간단하지 않다는 건 징병대상자가 되어본 남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부분이에요.


지금은 민주주의라서 대통령이 뭐 잘못하면 국민들이 힘을 모아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니 왕권주의보다 낫다고 보는 분들도 있어요? 근데 그게 반드시 공화정이 되고 나서야 겨우 생겨난 특권일까요? 정말 왕권주의때에는 그런 일이 없었을까요? 적어도 우리나라에 한해서는 그게 아니었어요.


조선왕조 500년 실록을 보면 우리나라 왕 중에는 종이나 조로 끝나는 사람도 있는데 드물게 '군(君)'으로 끝나는 사람도 있어요. 연산군이나 광해군이 대표적이죠. 그들이 폭군이라서 그렇게 기록되었다고 알고 있는게 일반적이에요. 그런데 이상하죠? 왕권이 절대적인 왕권주의국가에서 폭군이었다고 해서 한낱 서기관따위가 임금 역사를 그따위로 기록한다니 말이에요. 그리고 에초에 폭군이라고 평가를 한 주체가 있었다는 거잖아요. 그러면 기본적으로 왕이 자신에 대한 역사적 평가 하나 좌지우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렇게 쉬운 걸 왜 못해?


...


연산군의 기록을 보면 이런 얘기가 있어요.


- 조선 연산군은 매사냥을 경기도 청계산으로 다녔는데 매번 한강에 부교를 설치하는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고 한다. - 


매사냥이 뭐냐, 당시 동시대 유럽 귀족들의 필수 교양이라고 할 만큼 가진 자들의 평범한 취미 정도였단 말이죠. 왕이 문제가 아니라 흔히 부르는 공작 백작 남작, 우리로 말하면 고을 원님들도 흔히 즐기던 수준이었다는 거에요. 그런데 왕이 그거 좀 한다고 백성들이 무려 '원성'씩이나 냈다라는거죠. 이건 당시 왕권이 약하고 강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만큼 조선의 봉건주의가 일반적인 유럽의 봉건주의와는 그 궤를 달리했다는 이야기가 되요. 



우리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봉건주의 자체에 대해서는 유럽의 그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요. 강한 왕권과 정복자, 지배자, 피지배자로 나뉘어지는 복잡한 유럽의 역사에서 생겨날 수 밖에 없었던 그 봉건주의 말이죠. 그런데 역사 교과서 주장대로라면 침략을 수도 없이 당하기만 했을 뿐 어디 하나 침략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순둥이 국가 대한민국의 봉건주의가 이들과 성격이 같다는 건 분명 모순일 거에요. 한마디로 지금 현대의 많은 국가들은 봉건주의에서 공화정으로 바뀌는 역사의 수순을 밟고는 있지만 그 공화정 자체의 성격이 어떤 나라에서 만들어진 획일화된 기준으로 모든 나라에 적용시키기에는 그 한계가 분명 있다는 거죠.


유럽의 봉건주의는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데. 기본적으로 지배와 피지배, 타민족과의 경쟁, 그리고 전쟁 수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몇십배에 달해요. 전쟁이 많다는 것은 무엇이냐. 그만큼 체재 전복에 대한 위협을 왕이 깊숙하게 느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며 지배와 피지배 타민족과의 경쟁이 반복된다는 것은 전혀 뜻을 같이 하고 있지 않은 민족들과 국경 속에서 합의 하에 같이 살아가야만 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단일 민족이었고 삼국 시대 뒤엔 고려가 생기고 그 뒤엔 조선이 생기고 그 뒤엔 일제침략기를 거쳐서 대한민국이 생기는 사슬 구조의 우리나라와는 사정이 많이 달랐다는 거에요. 


이런 환경에서 왕이 과연 백성들을 믿고 백성들을 위한 선정을 펼칠 수나 있을까요? 내일 당장 전쟁이 벌어져 순식간에 나라가 망할 수도 있고 외부 민족들이 공존하는 백성들 중 그들이 진정 우리 편이 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불투명한데 그들을 모두 백성으로 인정하고 나라의 안정을 꾀할 틈이냐 있었겠냐는거에요. 게다가 공작, 백작, 남작 이런 단어에서 알 수 있겠지만 당시의 왕 제도는 중앙집권체계가 아니라 암묵적으로 군소 국가들이 연합해서 연방을 구성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각 지역 영주들의 권력은 그 지역 내에서는 왕에 필적했어요. 유럽 중세 소설을 보면 사실 왕이 와서 행패를 부리는 모습은 별로 없고 백작이나 남작, 후작 같은 사람들이 악역으로 많이 등장하잖아요. 그만큼 그들의 권력이 그 지역 내에서는 절대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하죠.



사정이 이런데 과연 왕이라는 존재가 온 백성을 아우르는 성군이 될 수나 있었을까요? 당연히 각 영주들보다 더 위에 있으려면 더 많은 권력과 권세를 누리지 않으면 안되었던거죠. 왕은 일반 백성들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일반 백성들은 각 지역 영주들이 사실상 그들의 왕이나 다름없었어요. 각 지역 영주는 이변이 없는 한 대물림되며 세습되었고 왕이 특별히 문제를 삼지 않는 한 세습을 트집잡을 수도 없었던거죠. 우리나라는 어땠나요? 부패한 관리가 있다는 탄원이 중앙정부로 접수되면 암행어사가 떠서 싹 쓸어버리는 장면 익숙하시죠? 유럽에서 이 장면을 보면 눈이 휘동그래질거에요. '아니 어떻게 감히 영주한테 개길수가 있지?'



우리나라는 이미 조선시대때부터 영주는 물론이고 왕조차도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하면 폭군으로 기록되며 유럽에서는 남작 나부랭이도 하는 매사냥조차 백성들 눈치를 봐야하는 그런 봉건주의를 가진 나라였어요. 물론 왕권이 강력하다는 것은 이견이 없지만, 그 왕권자체의 강력함과는 별개로 백성들이 느끼는 삶의 질과 정치적 참여에 대한 권리는 유럽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는거죠. 대부분의 민란들도 결국 범국민적으로 끓어오르기 시작한건 조선 후기의 그 악명높은 허수아비 선조 시대 안동 김씨 세력들이 득세할 때 본격적이었지 실제로 중국의 통일국가 역사에 비추어보아도 이렇게까지 반란에 대한 기록이 적은 나라가 또 없어요.


이런 백성친화적인 봉건주의 사상을 일찍부터 가지고 있던 우리나라가 왜 민주주의 국가에 이르러 이모양이 되었는지에 대해 궁금하실거에요. 그 해답은 그다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일본을 공격해야 해요.


...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뿌리를 찾기가 참 애매해요. 우리나라는 입헌군주제 국가가 아니라 대통령제 국가이기 때문에 굳이 가져오자면 미국의 민주주의를 표방해야 하죠. 그런데 미국처럼 연방제국가가 아니기때문에 단일국가의 민주주의 모델로 개량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이 개량 작업을 해야 할 시기에 딱 일제강점기가 겹치게 되요. 뼈대는 미국식 민주주의인데 속살은 일본식 민주주의라는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잘 감이 안오시겠지만 일단 들어보세요.


일본은 입헌군주제국가이므로 당연히 왕이 있어요. 따라서 일본의 민주주의 하의 정치적 최고권력자는 총리대신이 됩니다. 그런데 이 왕의 존재 자체가 일본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신'과 같은 위치에 있거든요. 일본 여행을 하다보면 신사(神社)가 있고 데라(寺)가 따로 있다는 것에 의야해보신 분들이 있으시겠지만, 일본은 그 동네, 혹은 그 지방의 큰 어르신이나 그 지방을 개척한 토호를 신으로 모시는 데에 굉장히 익숙해져 있어요. 이런 문화는 중국에도 있는데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나 조자룡이 출생지역 상산 등지에서 신격화되고 참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물론 일본쪽이 훨씬 더 맹목적인 구석이 있지만요.



이런 문화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섬나라이다보니 불교 문화가 태동되기 전까지는 이렇다할 종교가 침투될 여지가 없었고 그렇다보니 토착 종교 즉 토템이 발전을 거듭하여 된 모양새가 조상신을 넘어선 그 마을, 더 넓게는 나라의 국왕을 신으로 모시는 풍토가 자리잡았다고 볼 수 있겠죠. 이건 사회교과서 5장에서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예전 이집트에서나 볼 수 있는 굉장히 원시적인 종교 문화에요. 그만큼 교류 자체가 적을 수밖에 없었던 섬나라의 폐쇄성이 만들어낸 특이점이라고 보는 게 맞을거에요.


이런 토착 종교 문화는 국가 문화를 극도의 보수성으로 옭아묶게 되요. 일본은 도요토미히데요시가 통일을 하기 전까지는 4개 국가에 수십개의 크고 작은 통치 지역으로 나뉘어져서 통치되었는데, 중앙정부가 존재했고 일왕도 계속 명맥을 잇고 있었지면 아무도 그들의 권력에 별로 관심을 보이진 않았고, 일왕 역시 각 지역 구석구석까지 자신의 힘이 닿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시대였죠. 대부분 각 통치 지역에 있는 영주 (일본으로 치면 쇼군) 들이 자신들의 통치 영역만을 얌전히 통치하면서 지냈어요. 이른바 센고쿠 다이묘 시대인데 일본의 사극 대부분은 이 시대부터 시작하고 있어요. 그만큼 일본 역사는 그 이전 역사가 제대로 갖춰진 역사라고 보기에는 너무 원시적이었다는거죠.



그렇게 다 제각각 나라를 갈라먹고 평화롭게 오랫동안 살다 보니 나라가 굉장히 오래 갔고, 각 지역별로 우리나라로 치면 '단군할아버지'급의 인물들이 한 명씩은 존재했어요. 물론 우리의 천도교처럼 하나의 종교로서 고착되었음은 물론이고요. 특징이 있다면 그들은 그 혈통을 보존해서 계속 왕으로 모셔 오고 있다는 거에요. 한마디로 한번 지도자로 모신 혈통은 계속 세습하여 지도자로 모신다는 북한의 3대 세습은 울고갈 유구한 역사의 세습문화가 일본에 정말 상상도 못할 기간동안 오래 지속되었다는 거에요. 그러다보니 죽은지 너무 오래 되어 그 위대함을 해아릴수없는 지경이 되면 그 지도자 혈통의 시조급은 이른바 '신격화'가 될 수밖에 없죠.



일본 대기업의 역사는 수백년을 아우르는 곳도 있는데 대부분 이런 명문 가문이 기업화된 곳들이 많다. 미쯔비시그룹의 마크도 원래 가문의 상징을 회사 심볼화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의 카스트는 정치계뿐만 아니라 경제계에도 이처럼 깊숙히 박혀있다.



이런 나라가 통일이 되었다고 생각을 해 보세요. 상상만해도 끔찍한것이 각 지역별로 신이 있는데 그 두 지역이 싸워서 이긴 지역이 진 지역을 흡수해버리면 사실상 그 지역의 토호 혈통이 끊어진다는 건데, 이미 그 혈통이 깊숙히 신격화되어있는 국민들이 이를 가만 둘리가 있었을까요? 이미 다른 지역의 토호로 갈아탄다는 차원을 뛰어넘는 더 뼛속 깊은 트러블이 예고될 수밖에 없었어요. 일본은 그만큼 통일이 쉽지 않은 나라인거죠.


아무튼 통일은 통일임


그러던 와중에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전국을 통일시키는데 성공했으니 실제 그 내부 진통은 어느정도였는지 예상이 되시나요? 물론 도요토미는 이를 타파하고 일본을 결속시키기 위해 전쟁 카드를 꺼내서 우리나라를 괴롭혔는데, 실제로 우리 나라를 먹겠다는 목적보다는 일본 각 지역, 특히 시코쿠와 큐슈 지역의 토호 세력들의 '전투력 소모'의 목적이 더 컸어요. 중앙 정부가 있는 혼슈와는 다르게 바다 건너 있는 시코쿠와 큐슈에까지 단기간에 통치력이 닿지 않았기 때문에 통일빨이 다 하기 전에 그들의 전력을 소비시킬 필요성이 있었던거죠. 한마디로 그는 통일은 했지만 각 지역의 토호들을 모두 잠재웠다고 보기는 어려웠어요 여전히 도요토미는 물론이고 중앙정부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국민들이 대다수였을정도니까요. 도요토미 사후에 즉위한 도쿠가와 역시 중앙집중안정책을 취하긴 하지만 토호들의 권력을 완전히 빼앗는게 아닌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충성을 유도하는 유화책으로 평화를 이끌어내는 선에 그쳤어요. 한마디로 어느 쪽도 완전한 하나의 국가로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일본은 공화국이 되어서야 지금의 일본이라고 불릴 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데, 이때 일본의 입헌군주제가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요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한 것이 왜 기존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권을 창출했는데, 새로운 왕이 탄생하지 않고 제국이 되었는지에 대해 알아볼 필요성이 있었는데요.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하나의 일본을 만들기 위해서는 각 지역 토호 위주의 '신'을 모시는 문화를 모두 타파하고 통일된 하나의 신을 모시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들은 그때까지 실질적으로 혈통만 존재할 뿐 어떤 권력도 없었던 일왕 혈통을 이용하기 시작하는데, 막부 시대에는 궁핍하여 즉위식은 커녕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해야 했던 일개 몰락 귀족 혈통에 불과했던 일왕은 그 유구한 역사와 정통성으로 인해 일본에서 가장 오랜 가문으로 모셔지기에 충분했어요. 이런 역사적 사실을 들어 일본 제국을 세운 자들은 이를 일본 전국에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하는데 여기에는 일본 유신을 완성한 자들의 스스로의 권력다툼으로 인한 죽음을 걱정한 나머지 누구 하나 1인 권력을 쥐는 것을 원치 않았던 이유로 이들은 일왕 가문을 내세워 일왕 가문을 보호하는 내각총리 체계를 완성하게 되요. 이런 내각총리 체계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고 패전의 쓴맛을 보며 입헌군주제로 변할 지언정 그 체계는 지금까지 무너뜨리지 않고 이어오고 있죠.



일본의 초대내각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 일왕의 직할 통치론을 최초로 주장하며 일본의 제국화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때부터 일본의 정치인은 국민이 뽑은 봉사자가 아닌 완전한 각료, 관료, 벼슬아치가 되었으며 이는 지금의 일본 사회가 가진 신 카스트의 기본 토대가 된다



일본 제국이 일왕을 얼마나 신격화하는데 성공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모습, 일본 제국군인들은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일왕처럼 신으로 받들여 모셔질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자살폭탄공격을 기꺼이 수행했다. 그리고 일본은 놀랍게도 그 약속을 아직도 지켜나가고 있다.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건 일본 건국 이념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니까.



...


일본 이야기는 저도 많이 하기 싫으니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할 것 같군요.


왜 이렇게 싫은 얘기를 길게 했는지에 대해 이미 눈치채신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일본의 전국시대부터 일본 제국, 입헌군주까지의 역사가 지금의 일본 내에 미친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이에요. 일본은 그 나라 크기에 비해 각 지방이 가지고 있는 독립적인 경제권과 자치권이 다른 어느 나라에 비해 높고, 표준어 구사율이 경제규모에 비해 상당히 떨어지며, 지방분권이 어느 나라보다 잘 되어있는 나라가 되어있죠. 그들에게 있어 일왕은 단순한 왕이 아니라 일본의 신이며 그들의 통치를 받는 것은 응당 당연한것이죠. 각 지방에서 선출되는 국회의원들이 아들 손자 며느리까지 3대 세습은 우스울정도로 세습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도 전국시대부터 이어져온 토호 세력의 제왕적 봉건주의가 뼛속까지 스며 제대로 된 자발적 민주주의가 꽃필 토양 자체가 아예 생길 여지가 없는 한계가 있고, 총리대신을 국민이 아닌 각 지역 토호들이 선발하는 문화 역시 에도시대와 일본 제국을 거치면서 생긴 중앙집권화의 잔재인 것이죠. 한마디로 일본은 이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거에요. 그들에게 있어 민주주의란 아직도 너무 먼 이야기일 뿐이고 그것은 그들 스스로 자초한 문제에 지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토호 세력들이 공포정치를 펼친 적도 없고 왕은 일찌기 중앙집중화를 이룩해내어 중앙 임명식 봉건제를 완성시켜 지역 토착 세력이 자리잡을 여지 자체가 없었으며, 통일신라,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라의 건국과 멸망은 결국 관리들의 부패로 인해 민심이 등을 돌리면서부터 시작되었을 만큼 나라의 흥망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 백성들의 역할이 매우 컸던 나라에요. 그런데 이런 나라에서 태동된 민주주의가 지금의 이 모양이라면 답은 하나밖에 없죠. 바로 일본 탓이에요.



우리나라는 입헌군주제가 아닌데도 정치인들은 어떻게해서든 정치권력을 자식들에게 세습화하고 놀랍게도 국민들은 이를 당연하다는 듯 문제인식 없이 용인하죠. 지역 출신 대통령을 신처럼 모시는 의식이 각 지역별로 횡횡하고 있고, 중앙집중체계가 잘 이루어졌던 조선으로부터 이어진 나라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지역주의가 팽배한 나라가 되고 말았어요. 민주주의 하에서의 관료들은 마치 봉건주의의 그들처럼 권위의식이 높아져만 가고 놀랍게도 그런 권위의식에 대해 마치 봉건주의 귀족들을 보듯 당연시어기는 국민들이 아직도 많아요. 심지어 이런 계급사회의 체계는 굳이 정치판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하는 회사 내 심지어는 우리가 사는 이웃의 소득 격차에서도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으며 심지어 이를 좀 더 공고히 하려는 움직임도 있어요. 민주주의는 국민에게서 권력이 나오는 체계인데 오히려 조선시대보다 못한 국민권력을 가지고도 지금의 민주주의 권력이 오히려 과잉이라며 스스로를 책망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아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꽃을 피워야 할 때 하필 그 뿌리를 다져야 할 때 일제강점기가 있었어요. 그들은 일제강점기 동안 일왕을 섬기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생기는 이른바 제국주의 계급사회 체계를 뿌리박았어요. 해방 후 우리나라는 그 잔재를 청소하는 데 실패했고 그 계급주의의 혜택을 듬뿍 입은 자들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 초대 정권을 잡으면서 그들에게는 한없이 유리하고 행복하며 영원불멸할 수 있는 일본의 입헌군주제식 민주주의를 뿌리박는데 성공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는 헌법 제 1조가 존재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체감권력은 한없이 약하게 느껴지는 기형적인 나라로 지금에 와 있는 거에요.


이같은 패배의식이 남아있고 입헌군주제식 민주주의 잔재가 남아있는 한 아무리 1인 1표제, 직선제 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민주주의에 의한 정치적 결실을 얻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봐요. 토호 세력이 신을 섬기듯, 우리나라는 자기 지역 출신 정치인을 섬기고, 그가 임기를 마치고 나서도 그 권력을 계속 유지하는 영주와 같은 역할을 하는 반쪽 이하의 민주주의는 그들이 지금 당장 부패한 거와는 관계없이 우리 어르신들 세대에서부터 뿌리박혀 있는 이상 진정한 민주주의 하에서 나올 수 있는 사회체제가 확립될때까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을 정도에요.



....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언제 평등할 수 있나?


우리나라 현대사를 완전히 망가뜨렸다고 봐도 무방할 일본의 입헌군주제가 정치체계적으로 전혀 호환되지 않은 우리나라에 녹아들었다는 점이 사뭇 납득이 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두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는 태생부터 사상까지 분명한 대척점에 있는 것이 사실이거든요. 그런데 말이죠. 사실 민주주의가 정말 봉건주의 사회와 완벽한 대척점을 지니는 정치 혁명이었다면 지금처럼 입헌군주제를 표방하는 국가가 나올 수가 없지 않겠어요? 아무리 껍데기뿐이라고 해도 공화정 혁명이 왕권이랑 호환성을 보이는 것 자체가 원론적으로 있을 수가 없는 거겠죠. 다시말해 지금의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쓴 봉건사회이고 그렇기 때문에 모양새만 다르게 한 채로 결정적 투표권을 줬다는 것 하나로 헌법 제 1조를 만들어 국민들을 착각하게 만들고 있어요. 입헌군주제냐 완전한 민주주의냐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그 사상만으로 모든 국민들을 민주주의에 최적화시키도록 만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거에요.


일본의 근현대사를 소개해드린 부분을 읽으시면서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결국 뿌리깊은 봉건주의로 인해 자리잡아 있는 카스트 제도는 그 형태만 달리했을 뿐 이른바 일본식 민주주의로 그 색깔을 그대로 유지한 채 굳건히 자리잡고 있어요. 이들은 결코 낮은 카스트들을 위한 정책을 펼칠 생각이 없어요. 행여 그런 정책을 취한다고 해도 국민들은 그 부분이 자신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일 바에야 그냥 예전 영주들처럼 국민들 피나 왕창 빨아먹자는 게 일본의 관료주의 하에 놓여있는 상위 카스트들의 생각인거에요. 



일본인들은 대체로 이런 정치판에 큰 불만이 없어요. 그들은 민주주의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죠. 그들은 정치판이 내게 뭘 해줄지를 기대하기보다 그저 황국 신민으로서 내 위치에서 묵묵히 열심히 회사를 위해 나라를 위해 일왕을 위해 내 위치에서 내 역할 내 일을 열심히만 하다가 죽는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죠. 일본인들의 이런 특성은 외부에서는 우직함과 성실함으로 비추어지지만 실은 오랜 카스트에 익숙해진 뼈에 사무친 패배감에 지나지 않아요.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없다는 F1레이싱이 일본에서 인기가 있다는 점, 각종 헐리우드 스타들이 폭넓게 인기가 있는 이유 그들이 특별히 범세계적인 문화 소비 성향에 눈을 떴을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냥 유명하니까 의무감으로 봐야 한다'라는 느낌이 강하다. 마치 유럽 여행에서 에펠탑을 반드시 봐야 하듯이 그들은 일본에 온 유명인이라면 별 관심이 없어도 콘서트의 자리를 꽉꽉 채우곤 한다




그들은 어느 정점에 다다른 연예인을 '신'이라 부른다. 그들에 대한 대우가 어느정도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들이 F1경기장에 몰리고, 우리나라에선 생소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예인이 일본을 방문하면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그들이 진짜 좋아서라기보다 그들을 이미 '신'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종교적 행위와 다르지 않다.




문제는 우리나라는 이미 그렇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는데 일본의 그런 모습이 점점 보이고 있다는 거에요. 정치인을 신격화하고, 무언가 나라를 위해 직접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권력에 기가 눌려 묵묵히 살다가 죽는 것을 택하는 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자신들을 위한 정책이라곤 눈꼽만큼도 내지 않은 자들에게 표를 던지고 그들에 의해 온갖 불이익을 받아도 묵묵히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데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어요. 회사 면접에서 인격적인 조롱을 당해도, 회사 내의 봉건주의 잔재에 변화를 요구하기보다 그에 순응하는 쪽을 택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단순히 일본 탓만 할수도 있지만, 그것을 뿌리뽑을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린 책임도 분명하다는 점이 이 나라를 사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울 따름이에요. 


결국 민주주의는 그 자체만으로 결코 만능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이에요. 그것이 입헌군주제에 의해 더럽혀지건 더럽혀지지 않건 결국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생각이 오염되지 않아야 본격적으로 자유로우며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토대로 제 역할을 해줄 테니까요. 그러기 위해서 무엇부터 어떻게 얼만큼 해야 하는지를 정해야 할 시기를 이미 지나쳐버린 지 오래지만 아직 늦지 않았어요. 더 늦기 전에 서둘러야 겠지만 말이죠.




...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릴 차례네요.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평등해질 수 없어요. 그것은 입헌군주제의 영향을 받았던 받지 않았던 그 사상은 말 그대로 법이든 뭐든 '최소한'이에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 군락을 이루고 그들이 함께 세력으로서 잘 살 수 있도록 만드는 어떤 합의체가 그들이 살아온 역사와 사회적 형태를 단박에 특정 나라가 발전시키고 만들어온 이론울 바로 적용시킬 수 있을 만큼 녹록할리가 없을테니까요.


우리나라는 애석하게도 일본의 입헌군주제에 의해 오염되어 버린 민주주의를 갖고 살고 있어요. 그래서 만인이 평등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굽실거려야하고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뒷목에 힘이 들어가는 먹이사슬같은 귀천체계 공화국 카스트 제도가 자리잡고 말았죠. 우리 민족은 왕한테도 개기던 자존감이 강한 민족이라 누구한테 당하면 꼭 그 분노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서 누군가에게 갚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탓에 갑을관계가 생기고 또한 사회문제가 되며 직장상사에게 받은 스트레스는 자기보다 낮은 카스트라고 생각하는 서비스업종에게 풀어내는 보기 안좋은 사회문제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 있어요.



우리는 늘 직장상사보다 낮은 등급의 차를 사야만 해요. 우리 회사가 처우가 좋지 않은건 갑의 회사보다 나은 처우나 직원복지를 하면 갑의 회사가 불쾌해하기 때문이죠. 을의 회사가 더 나은 처우를 하고 싶어도 갑의 회사가 그 처우에 미치지 못하면 항상 그보다 낮은 처우를 이야기해야만 하는 것은 전혀 민주적이지도 자유경제주의적이지도 않은 악습에 지나지 않는데도 아무도 이것을 고치려 들지 않아요. 


임대아파드 사는 주민이 자기 집 앞을 지나가는게 싫어서 바리케이트를 쳐요. 그리고 어떻게든 정말 어렵게 모으고 그 가치를 더 많이 인정받는 돈이라는 물건으로 자신의 카스트를 증명하려 애쓰죠. TV에는 더 좋은 옷, 더 좋은 음식, 더 좋은 집이 늘 부각되고 카스트를 상징하는 지표로서 광고하고 사람들은 어떻게든 가짜로라도 자신의 카스트를 돋보이게 하려 애써요. 자신의 본질적인 성격이나 내적인 아름다움은 고리타분한 선비들이나 하는 얘기로 핀잔을 듣기 일쑤에요.



돈으로 카스트를 과시하는 것이 일생일대의 목표가 되다보니 그 밖의 가치들은 모두 하대를 당해요. 문화 공연은 그 내용보다 얼마나 제목이나 작품 자체가 돋보이고 역사가 깊느냐가 중요해요. 작품 내용을 하나도 이해를 못하면서도 그 작품을 봤다는 상징 자체에 집착하죠. 해외여행, 자동차, 명품백, 처음 들어가는 직장, 부모들의 직장 .... 지금의 민주주의 사회라 불리는 대한민국은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어요. 민주주의는 내가 주인공이고 내가 어떻게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사회인데도 말이에요.


이건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부터 직시해야 해요. 다행이 우리나라가 아직 일본보다 나은 점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그 끊임없는 개김성으로 인해 결코 독재나 봉건식 민주주의에 굴복하지 않고 나라가 큰일이 날 때마다 사람들이 힘을 합쳐 나라를 바로세워온 결과 우리 손에는 적어도 투표용지 한 장씩은 아직 골고루 갖고 있게 되었잖아요. 총리대신 하나 스스로 못 뽑는 옆나라가 결국 그 봉건주의로 파국을 맞는 걸 보면 아직 가능성이 있는 거죠.



...


자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그 권력으로 무엇을 해야만 할까요? 


다른 건 다 필요없고 이거 하나만 기억하세요



지금에 만족하는 사람은

결코 지금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살 수 없어요.


왕족, 재벌, 현직 정치인, 셀레브레이트, 고액 재산가들...

모두 지금에 만족하고 지금의 카스트를 누리는 데 거리낌이 없어요

이들이 진정 지금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


당신이 지금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그 지금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표를 던지세요.


만족하지 않는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더라도


단 하나라도 만족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위해 자기 인생을 바칠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표를 던지시는 것


그리고 지금의 민주주의가 뭐가 잘못되었으며

진짜 우리 몸에 맞는 우리 민족이 해왔던 우리들만의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늘 생각하고 행동하고 깨달아가는 것...


저는 그것이 민주주의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화국 사회교과서 제 6장-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정말 평등한가요 편을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11. 2. 17. 00:14
1부에서 언급했던 친일파 시조급 인사들의 혁혁한 공로 그리고 그로 인해 일어난 사건들과 피해, 그리고 그 영향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 아니 이어질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누구보다 친일파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우리나라가 정말 우울한점이 대한민국 근대사에 대해서 친일파가 아닌 분들보다 친일파 새끼들이 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근대사에 대해서는 예전 박통시절도 아닌 이상 조금만 찾아보면 외국인의 손에 의해 보다 객관적으로 서술된 자료를 정말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데도 말이다. 친일파는 이에 대한 나름의 동기 부여가 될 만한 이유가 있다. 역사를 충분히 바닥에 붙은 먼지까지 훑을 만큼 충분히 알아야 자신들을 변호할 수 있으니까, 일본이 역사 연구에 천문학적인 돈을 쓰는 이유도, 중국이 동북공정을 위해 역사학자들을 열심히 구워삶는 이유도 다 '뭘 좀 알아야'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역사가 그냥 지나간 이야기일 뿐이라며 역사 교과서를 천대시하는 대한민국 학원계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 친일파들은 그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사실 '일본이 나쁘다'라는 것을 주장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여기에 두 가지의 속임수가 있다는 걸 반드시 인지해야만 한다. 하나는 지난 번 글에서 밝힌 대로 친일파들은 '자신들이 친일파라는 걸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일본을 씹음으로서 '친일'이라는 단어적 의미에 대한 회피와 희석을 노리는 것이 첫번째이며 두 번째는 '역사에 드러나있는 대로 일제의 침략과 그로 인한 전 국민, 국토의 피폐화의 대한 책임이 100% 일본에 있음'을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이제부터 차차 짚어보도록 하자.

이승만 대통령이 이기봉 부통령과 1954년 월드컵 예선전부터 추진했던 한일전, 그리고 정권 내내 꾸준히 주장해왔던 이른바 '반일 정신'은 그들의 친일 행적에 대해 '개과천선'의 이미지를 가져다주는 데 성공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독립운동가 경력에 어울리지 않은 광복 이후 친일파와의 정치적 결탁은 누구 하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었지만 (특별히 드러내지 않아도 이미 국민들 대부분이 세대가 같기 때문에 숨길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김영삼 대통령의 IMF를 기억하듯이) 의외로 4.19까지 이렇다할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이 정권을 잡은 뒤 열심히 '자신들의 반일 성향'을 어필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향은 성골 친일파라고 할 수 있는 박정희 정권 말년까지 이어지는데, 이렇듯 친일파들이 독립운동가 출신 대통령을 지원사격해주면서까지'반일 행동'을 하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대표팀 숙소에 삶은 계란 준 에피소드도 있었다. 사실 그렇게 유명해질만한 일화도 아니건만...


우선 앞서 언급한 대로 국민들에게 '친일파'에 대한 이미지를 하루바삐 벗어야 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아쉽게도 정이 넘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러한 거짓 개과천선을 믿어버린 채로 지지를 보내게 되는데 물론 여기에는 그들의 개과천선과 더불어 앞서 언급했던 '북한의 위협'을 언급했던 것이 주효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자신들을 구제해줄 반민특위를 해체하면서 생긴 친일파에 대한 반감을 돌리기 위한 방편, 즉 빨갱이 후보가 당선되면 이북이 다시한번 남한을 공격하게 된다는 식으로 자신들의 정권을 정당화하며 국민들을 위협하는 양동작전을 펼쳤던 것이다. 그들의 정권이 굳이 투표 조작을 하지 않더라도 지지율이 오를 수밖에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렇듯 계속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한다는 것은 당시 미국 입장에서는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미국은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 재임 시절이었는데 1960년까지 연임하며 한국전쟁으로 벌어들인 각종 국제적인 이득 조항을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내수 시장을 팽창시켜나간다. 이른바 미국의 고도성장최전성기라 불리우는 이 시대에 가뜩이나 한국전쟁 휴전협정 성과를 내세워 재선에 성공한 (미국은 어쨌든 임기 내 종전 업적을 남기는게 킹왕짱임) 아이젠하워에게 있어 틈만나면 반동이니 뭐니 북한을 자극하며 자신들의 정권을 지켜나가려는 친일파들이 달가워보일리가 없었을 것이다. 특히나 미국이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할 듯한 이 시대 친미파의 교과서 이승만 대통령은 이러한 미국의 헛기침 한방에 바로 쫄아주시는데 공교롭게도 문제의 아이젠하워와 재임 기간을 같이한 이승만은 그 뒤 재임 기간 내내 북풍을 활용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된다.

소련 덕분인지는 몰라도 종전 후에는 나름 ㅎㄷㄷ한 리즈시절도 누렸던 북한..


이승만은 가뜩이나 불안한 내정을 바로잡을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북풍'이 사라지자 정치적 입지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사실 미국의 간섭을 무시하고 멋대로 북풍을 이용할수도 있었지만 당시 우리나라의 군사력으로는 북한과 단독으로 맞서서 승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즉 미국이 '나몰라라'하는 상황에서 정말 북한이 재침공이라도 하게되면 정권이고 뭐고 다 끝장나게 생겼는데 어쩌겠는가? 결국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대신할 것을 찾게 되는데 그것이 다름아닌 '일본'이다. 즉 대한민국 근대사에서 반일 감정이 국민들 사이에서 가장 극도로 심했던 시기는 다름아닌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자신과 반대편에 서 있던 독립운동가 정치세력을 규탄하고 있었던 이승만 정권이었다는 아이러니한 역사적 사실이 존재한다.

일본을 싫어하게 만든다. 우리나라가 일제침략기를 거친 것도, 지금처럼 못살게 된 것도 다 일본 탓이다. 남북전쟁을 부추겨 중간에 무기중간도매로 엄청난 이익을 챙겨 경제부국이 된 야비한 국가다라고 일부 진실을 섞어 일본을 철저하게 호도하기 시작했다. 이는 독립운동가 세력의 '일제침략기에 대한 친일파 책임론'을 회피하고 정면으로 반박하기 위한 포석임에 다르지 않았지만 사실 이승만 정권에는 다른 믿는 구석이 있었다. 군사력으로는 북한이나 일본이나 밀리긴 마찬가지였지만, 좀 건드리면 우리를 바로 작살낼 수 있는 힘을 보유했고 그 힘이 닿는 사정거리에 있던 북한과는 달리 일본은 당시 전범국으로 발이 묶여 아무리 도발해도 우리나라를 공격해오지 않을 거라는 것, 이승만 대통령은 심지어 한국전쟁기간중에도 일본의 침략을 걱정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재임기간 내내 일본의 재침략 가능성을 제시하며 일풍을 아주 적절하게 이용해먹는다.

이승만이 무려 한국전쟁 당시부터 임기말까지 이용해먹었던 일풍의 근거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장면, 내용을 보면 이승만의 일풍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이러한 일풍은 윤보선 이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에 의해 다시 '북풍'을 이용하는 쪽으로 변화되며 정말 타이밍 좋게 이승만이 사망한 직후인 1965년부터 미국의 압박에도 거의 진척이 없었던 한일협정이 재개되는 한편 침묵하던 북한이 도발을 즉시 개시하며 박정희의 재임기간 16년간 무려 29건의 진실과 거짓이 섞인 북풍 도발이 기록된다. 정계에 빨갱이 색출 작업이 재개되었음은 물론이다.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북한 도발은 윤보선과 김대중과의 대결이 시작되었던 1967~71년사이에 집중되었다.

이렇듯 거의 1,2,3공화국 대한민국의 경제부흥기 정권의 핵심을 틀어쥐며 대한민국에 뿌리를 박은 친일파와 그의 후손들은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 당연하겠지만 이들은 이승만이 그랬던 것처럼 국민들이 가능한 '반일 감정'을 더 많이 가져주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들은 잊을 만 하면 일제침략기를 들먹이며 종군위안부 문제를 뉴스에 올린다.(동아일보가 대표적) 그리고 가능하면 일제의 만행이 좀 더 이슈가 되기를 원한다. 물론 그들의 목적은 이승만이 그랬듯, 자신들의 차악과 개과 천선 이미지와 더불어 자신들의 친일 행적이 일제의 만행보다 더 작게 비춰지길 원하며,  그 시기의 모든 국민적 고통에 대한 책임을 일제에 전가시켜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실 부분이 있다. 바로 뉴라이트라는 조직의 존재 의미다.  뉴라이트는 일본의 우익교과서를 지지하며 위안부를 부정하는 등, 그야말로 대놓고 친일임을 과시하는 듯한 행동을 하고 있다. 이들이 친일파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인데, 이들이 지원하는 뉴라이트의 활동을 보면정말 친일파들이 국민들에게 개과천선의 이미지를 심고 있는 것이 맞느냐는 반론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뉴라이트의 주요 먹이 '역사교과서' 문제 그들은 사실 가능하면 일본의 만행에 대한 사실이 적나라하게 적힌 역사교과서가 채택되길 바란다, 사실 역사교과서가 의무교육이 되길 바라는 쪽은 친일파쪽이 더 적극적인데. 단! 가능한 만큼 일제강점기의 만행들은 대부분 일본의 책임이라고 기록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그들은 뉴라이트를 이용해 '일본 강점기를 옹호하고 변론하는' 기자회견을 몇 번이고 갖는 것이다. 이러면 국민들은 발끈해서 국사 교육에 더 신경을 쓰게 되고 가능하면 일제에 대해 더 크게 다룰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들의 친일 행각보다 일제의 악랄함이 더 크게 부각될것임은 두말할필요가 없다.


그런데 사실 뉴라이트는 모로 보나 바로 보나 친일파의 정실(?)이라고 보긴 힘든 구석이 많다 그들의 성분 상 가문 단위의 친일 전력도 별로 없고 일부 맴버를 제외하면 정말 어디에서 뭐하다 나왔는지 모를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그렇다. 의문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들이 대체 지금와서 친일을 해서 대체 무슨 이득을 볼 수 있냐는 것, 아무리 친일파가 빽이 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자신들의 이미지가 나빠지면 사회생활하면서 이념이 다른 사람과 섞이기 두고두고 어렵다는 것을 각오한 이들의 무모함은 마치 자살폭탄테러에 뛰어드는 인간폭탄을 연상시키게 만든다.

이 부분에서 답이 이미 나온 셈인데. 그들은 국민들로 하여금 '일본을 싫어하게 만드는' 즉 일본을 주적으로 만들게끔 공작하는 공작원들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이들의 활동 내용, 즉 일본에 대한 생각을 환기시키는 데에 전력을 쏟는다는 것. 바로 이 코드가 일본의 극우랑 맞아떨어져. 일본의 극우들과 연합해 교과서를 만들거나 일본의 극우들의 활약에 동조함으로서 뉴라이트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의 극우 이미지가 되는데, 이로 인해서 뉴라이트가 득을 보는 것은 사실 거의 없다시피한다. 하지만 뉴라이트로 인해 일본을 주적으로 돌려 일제침략기에 대한 책임을 연신 일본으로 돌릴 수 있도록 만드는 데에 성공한 댓가로 자신들에게 날아오는 친일파 청산의 화살을 피할 수 있었던 진성 친일파들은 아주 짭짤한 재미를 본다. 이들에게 있어 뉴라이트는 총알받이... 친일파들에게 자금을 받아 알바를 뛰는 소모품일 뿐인 것이다.

친일파는 종군위안부를, 일본 극우는 요코다 메구미를 주기적으로 이용해먹는다.


뉴라이트의 활동은 일본 극우와 맥을 같이한다. 일본 극우 역시 젊고 유능하며 사회적 명망이 있는 인사들을 대거 지원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이어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데, 한국에서는 뉴라이트가 그 젊고 유능하며 친일파들의 스폰서를 받는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세력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역할은 가짜 친일파가 되는 것, 가능하면 과거 친일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지금 와서 당시의 일본을 지지하는 듯한 모양새를 만들어나가는것, 그래서 다시금 일제강점기가 일어나고 당시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등의 저항이 잇따라 실패로 돌아간 원인에 대한 책임을 모두 일제에게 싸잡아 떠넘기는 것, 그것이 지금 이 시대를 살며 권력을 쥐고 후에 있을 자신들의 후손에게 닥칠 친일파 책임론을 회피하기 위한 친일파들의 중장기 방안인 것이다.


4부에서 계속
posted by RushAm 2011. 2. 11. 16:59
1부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승만 대통령부터 시작되는 친일파들로 인한 우리나라 근현대 흑역사는 박정희 대통령의 굴욕적 일제 전범 보상 판결에서 절정을 이룬다. 중요한 점은 광복 이후의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3년 이상 정권을 잡았던 세력 중 어느 하나 친일파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벌인 행적은 실로 화려하기 그지없어서 무려 친일파로서 '독재'까지 쌍으로 지랄을 해대는 통해 국민들은 둘 중 어느쪽부터 잡아야 할지 감을 못잡았는데, 이에 대해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 이른바 '친일파 권력층'은 국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속삭인다.

(이봐 우리들보다 나쁜 놈들이 훨씬 더 많다구)

그 대상은 다름아닌 공산당이다. 북괴라는 단어보다 공산당이라는 단어가 주적으로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말 한마디 잘못 한 죄로 해괴한 짓을 당했지만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세상에 이름을 남긴 이승복군 덕분이리라, 아무튼 이 공산당의 존재 그리고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이라 불리는 한반도 내전, 이 내전 속에서 우리는 북한이라는 주적을 얻었다. 왜 주적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북한의 수장이 저지른 일로 인해 북한 주민 전체를 적시했던 게 불과 20년전 이야기였다. 그만큼 친일파들은 적이 필요했다. 나라가 평화로우면 그동안 평화롭지 않았던 이유에 대한 지도층의 책임을 묻게 되니까... 그들이 정권을 잡고 있을 동안에는 언제나 한국은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여야만 했다. 국민들은 이미 끝난지 한참 지난 전쟁을 아직 종전이 아닌 휴전상태라는 점을 강조하는 국가 지도층 때문에 언제나 북한에 벌벌 떨어야 했다. 친일파 권력층들은 '차악'의 이미지로서 북한을 일단 막고 난 다음에 생각해보자는 식의 정치 키워드를 국민들에게 던졌고 국민들은 그에 철저하게 놀아났다.

군대가 모병제가 되면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건 누구보다 정부 본인들이 제일 잘 안다. 예산 집행을 하는 당사자들이니까, 그런데 왜 안할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 공식적으로 줄어든, 혹은 줄어들 것으로 확정 발표한 군 복무 기간은 다 합쳐 10개월이 넘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3년동안 페지안을 포함해 갑자기 늘어난 복무기간이 6개월이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전시작전 통제권을 돌려받기로 한 2011년인데 왜 이명박이 미국에게 전작권 받는 것을 4년 연기한걸까? 참여정부 막바지 노무현이 김정일을 만나고 국방부장관들이 활발하게 협의하던 '종전'선언 문제가 왜 갑자기 쏙 들어가고 참여정부 5년동안 아무일 없었던 서해안에 왜 두 번이나 폭격이 있었던걸까?

6.25 당시의 자료사진....이 아닌 2010년 말 연평도


그들은 모병제가 되면 안된다. 군 복무기간도 줄어들어선 곤란하다. 전작권도 미국이 계속 쥐고 있어야 한다. 당연하지만 '종전 선언'이 이루어지면 친일파들은 끝장이다!

군 복무기간이 줄어든다는 것은 국가가 이미 '이 나라는 전쟁의 위험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즉 나라가 평화로우면 내정의 비리, 그리고 과거사 청산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다. 당연히 친일파에게 그 화살이 날아올수밖에 없다. 모병제가 되면 훨씬 위험하다. 지금이야 거의 대부분의 남자, 즉 누군가의 아들이나 오빠 남동생, 가족의 일원이 '군대'라는 것을 감으로서 아직 이 나라가 군대가 필요한 나라라는 점을 전 국민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군대라는 키워드는 전국민화되었고, 언제나 시기적절하게 군 관련 가산점같은 팩트에 벗어난 정책을 쥐었다 놨다 하는 식으로 여론을 들끓게 만들어 군대에 대한 관심과 국가 위기 상황을 고취시키는 것이 가능했는데 만일 모병제가 되어 가고 싶은 사람만 가게 되면 전국민적인 키워드 '군대'에 대한 관심도가 크게 하락할 것이고, 그 다음은 뻔하지 않은가? 종전 선언은 아예 '전쟁 끝'이니 친일파들에게는 '인생 끝'이나 다름없다.

전작권 4년 연기는 좀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왜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에게 4년 더 맡아달라고 했을까? 그것도 아주 절묘한 숫자 4년... 이명박의 임기는 2013년 3월에 끝난다 . 그리고 전시작전통제권 종료 시점은 2015년 12월, 원래 환수 예정은 2011년 즉 지금 환수가 되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안된 거다. 참고로 19대 총선은 2012년, 대통령 선거도 2012년, 그리고 다음 지방선거는 2014년에 열린다. 그 다음 총선은 2016년에 열리는데 보통 추세대로라면 4월에서 5월 사이 늦봄에 열린다. 2015년 그것도 12월 끝자락까지 연기한 속사정은 바로 여기에 있다. 2011년에 전작권 환수가 되어버리면 2012년 총선 대선은 당연히 친일파에게 불리할수밖에 없다. 만일 대선에서 지고 총선에서도 패배해서 다시금 친일파들이 정권을 빼앗기게 되면 반격할 만한 근거를 만들어야만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되기까지 채 2년이 안걸렸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떻게든 야당이 껀수를 만들어 대통령을 쳐야만 한다. 전작권은 그에 대한 보험이다. 그리고 그 반격이 성공하는 정점에 2014년 지방선거와 2016년 총선이 있다. 그 뒤로는? 누가 당선되더라도 레임덕 확정적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말년이 어땠는지 생각해보자


전작권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설명을 해보자, 북한이 우리나라가 정말 짜증나고 미워서 혹은 심심해서 천안함을 치고 연평도를 포격했다고 하면 크게 오산이다. 그 이후 북한이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를 보면 목적이 너무 확연히 보인다. 결국 북한은 '미국'이 목적이었지 한국을 도발해서 전쟁 분위기 고취시키고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더 심하게 말하면 북한 머릿속에 대한민국은 아웃 오브 안중이다. 우리가 북한에 쌀을 몇만톤을 줘도 미국에게 협상 한번 이끌어내는게 북한 입장으로서는 국익이 훨씬 도움이 된다. 북한은 어떻게든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야만 하는데 미국을 자극할 수 있는 방법이 생각보다 별로 없다는 것이 북한으로서는 치명적이다. 미사일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가장 가까운 미국령인 괌까지의 거리 절반에도 못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전시작전통제권, 즉 북한이 우리나라를 공격할 때 군대를 움직일 권한은 '미국'에 있다. 이 전작권덕분에 주한미군의 숫자는 언제나 고정이다. 적어도 작전에 투입될 만한 병력은 주둔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미국 입장에서는 상당히 신경쓰이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이 전작권을 쥐고 있는 한 우리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곧 미국을 공격하는 것이 된다. 자국민 군대가 상당수 주둔하고 있으니까 (미군이 가지는 전작권은 60만 육군이 모두 미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북한이 우리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미국을 자극해 미국을 북한이 원하는 협상 테이블로 부를 수 있는 차임벨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친일파는? 전작권을 미국이 계속 갖게 됨으로서 북한이 우리나라를 수시로 필요에 따라 '공격'하게 만들 수 있는 명분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공격당하면? 당연히 그때마다 좀 느슨해질 뻔 한 반공 감정을 일시에 고취시킬 수 있으니까... 전작권은 미국으로부터 우리나라를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반대로 북한이 우리나라를 공격할 명분을 만들어주기 위해 존재하며 그 효과를 대선과 지방선거, 그리고 총선의 시기에 영향을 끼쳐 향후 정치전략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5년을 연장하기로 합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국 보호는 커녕 오히려 더 위험을 초래하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물론 자기 밥줄이 나라의 안녕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가훈을 몇 대째 이어오고 계시는 친일파 입장에서야 그게 아니겠지만 말이다.

지난 6.2선거 직전 조중동 1면보도행태...



이 전작권으로 인해 북한의 공격이 있을까봐 늘상 벌벌떠는 존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이 북한으로부터 공격받을 것을 매우 두려워하는 나라 중 하나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북한의 군사 도발 움직임에 민감하며 일주일이 멀다하고 북한의 별 시덥잖은 동정을 보도한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일단 오키나와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사정거리가 좀 긴 미사일을 개발하면 오키나와를 폭격함으로서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낼 이벤트를 제공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첫번째이다. 사실 두 번째가 중요한데, 북한의 이같은 위협, 어찌 보면 단지 전작권이 있다는 핑게로 북한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 '남한이 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예로 들어 자국의 자위대 권한을 확대할 명분을 얻는 것이 그것이다. 아직도 일본은 1%의 극우들이 사실상 미디어를 포함한 대부분의 권력을 독식하고 있는 체계가 무너지지 않고 있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격상시켜 일본이 예전 다이쇼 시대의 위상을 되찾는 것이다. 그것이 굳이 세계정복 야망의 부활 같은 해석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이들 극우주의자들은 군국주의 부활로 자신들 그리고 자신을 지지하는 지지층과 후손들이 일본 땅에서 더 대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군국주의 부활? 말은 거창하게 해도 사실 밥그릇 싸움일 뿐 얘들도 별거 없다.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는 6.25때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 원류를 찾을 수 있다. 정말 북한이 우리나라를 깡그리 먹고 싶어서 전쟁을 일으켰을까? 정말 북한을 단지 정치적 색깔이 같다는 이유로 소련이 그 많은 대량의 군사물자를 지원해준걸까? UN군중 가장 많은 수가 참전한 미군이 정말 평화유지군의 명목으로 온 걸까? 당시 대통령 이승만은 그는 임시정부에서 그 화려한 사상 덕분에 한번 탄핵당한 경력이 있고 김구 선생 암살 사건으로 민심이 땅에 떨어진데다가 반민특위가 결성되어 친일파들의 색출 작업이 본격화되는 등 자신의 대통령 자리는 물론 정치 생명까지 위협받는 지경이었다.

그러나 6.25 이후 그는 4.19가 있기까지 무려 10년여동안 대통령직을 계속할 수 있었고 그 배경에는 인혁당 사건을 통해 전 국민들에게 종전 대신 전시상태라는 공포감을 심어주어 주적 감정을 북한으로 집중시키는 가운데 반민 특위를 해체함으로서 자신에게 돌아올 칼날을 피할 수 있었다. 최근 무죄 판결을 받은 죽산 조봉암 선생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킨 사건이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죽산 조봉암 선생은 소련의 컨트롤로 북한이 남침을 기획한 것과 이승만을 앞세워 소련과의 대리전을 펼치려 했던 6.25의 진실을 잘 알고 있던 인물로 북한의 위협보다 친일파의 청산을 주장했던 독립운동가 세력의 가장 유력한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하겠지만 북한의 남침을 적절히 이용해서 정치생명을 연장하고 친일파 색출을 늦추려는 이승만과 대치할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3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