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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2 내겐 참을 수 없이 가볍지 않았던 그녀 장진영 4
posted by RushAm 2009. 9. 2. 02:23
그녀의 암 투병 소식이 전해졌을 당시 너무 많이 놀라서일까요? 아니면 호전되고 있다는 가사도, 암 자체가 거짓말이라는 기사도 어느쪽도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네이트온에 조그맣게 올라오는 속보 '장진영 별세'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움을 느끼기보다는 마치 예정된 임종을 바라보다가 끝난 느낌처럼 조용히 고개를 숙일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접시를 닦으며 피자 배달을 하며 조용히 그녀를 회상해보았습니다. 왜 그렇게 일찍 갔을까? 무엇보다 짧은 삶보다는 조금이라도 그 삶속에 행복함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녀에게 무슨 수식어를 붙여주고 싶었을텐데 그냥 신문에는 '톱스타' 장진영 이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사랑받던 국민배우도, 이름 하나만으로 명성을 떨친 '명배우'도 붙이기 조금 어색했나봅니다. 그만큼 저평가된 배우였고, 운이 많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야망도 컸고 그만큼 노력도 많이 했던 배우였지만 꿈에 가까워지는 순간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더 멀어지는 불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 언제나 그녀를 응원했었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을 거라고, 그건 절대 당신이 욕심을 부리는게 아니라고, 이 세상에는 노력한 것 이상을 바라고 그걸 얻으면서도 자신이 정당한 노력의 댓가를 받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넘치는 마당에 당신은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못받고 있다고, 그러니까 힘내라고...

그래서 저는 대한민국 영화대상을 좋아합니다. 1회때부터 다른 영화제와는 다르게 원로들의 고지식함보다 조금은 나은 시상을 기대했었고 제 5회 때 결국 그 기대는 빗나가지 않았음을 증명해주었습니다. 5회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은 괴물이 모든 상을 휩쓸던 당시 흥행에 두각을 보이지 못했던 두 작품 '비열한 거리'와 '연애 그 참을수 없는 가벼움'의 조인성과 장진영이었기 때문이죠. 참고로 동시기 '청룡영화제'와 대종상영화제에서는 '안성기','박중훈'이 남우주연상을 '김혜수', '김아중'이 여우주연상을 각각 수상했습니다. 받을 만한 분들이 받았다고 생각합니다만, 상대적으로 흥행이나 관심도 측면에서 묻힐 수 있었던 두 작품에게 남우, 여우 주연상을 준다는 건 그만큼 상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했다는 게 되니까요. 영화 시상식의 시상 부문별 평가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디 워가 특수효과나 미술상을 받는 건 인정할 수 있지만 최우수작품상에는 못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죠

이야기가 잠시 딴데로 샜습니다만 그녀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당시, 사나이 체면에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마치 내 가족이 상을 받는 것처럼 가슴속이 시원해지면서 눈물을 참기 어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비열한거리를 연기했던 조인성의 수상도 감격스러웠습니다만, 정말 당시도 그랬고 지금도 글로 표현이 되지 않을 만큼 행복했었네요. 그녀가 마침내 노력한 만큼의 인정을 받았구나 싶었습니다. 그녀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녀의 수상 소감 '연아를 떼어내기 참 힘들었다'는 말이 가슴 절절하게 아직도 제 가슴 속에 남아있습니다.

출처는 쿠에스님의 영화공감대 포스트입니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수상 소감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연아를 떼어내기 어렵다. 이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으시는 분들이 많으실 줄 압니다. 연아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서 그녀가 맡은 배역 이름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김해곤 감독'이 만들어낸 희대의 문제 캐릭터이죠. 영화를 보신 분들은 눈치채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까지 심각할 필요가 없었던 (영화포스터에도 그런 느낌이 묻어납니다만) 각본의 캐릭터를 배우 장진영이 '이거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배우로서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 설정 이상으로 몰입했던 캐릭터입니다. 약간의 정신적 외상을 가지고 있는 연아라는 캐릭터에 지나치게 빙의하다보니 그 정신적 외상마저 그녀에게 남아 한동안 그녀를 괴롭혔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녀를 이렇게까지 맹목적으로 배역에 몰입하게 만들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아마 전작 '청연'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녀가 주가를 한층 끌어올려주었던 싱글즈에 힘입어 정상급 배우로 도약할만한 대작을 물색하던 중에 선택한 작품이죠. 배우 이준기가 왕의 남자 차기작으로 선택한 플라디 대디의 실패 사례에서도 드러나지만 영화계는 '2학년 징크스'를 깨지 않으면 정상급으로 올라서기 힘듭니다. 그만큼 배우에게 있어 자신을 정상급으로 끌어올려줄 계기가 될 차기작 선택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죠. 그녀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고 그녀 역시 영화 속에서 자신의 역량을 바닥까지 드러낼 만큼 끌어냈습니다. 대작 답게 오랜 로케이션 촬영과 특수 촬영 기법으로 인해 제작 기간도 길었고 그만큼 배우 장진영에게도 고진감래라는 생각으로 임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영화는 그 노력한 만큼 높은 완성도로 나와주었고 노력한 만큼의 흥행을 누릴 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었지만 어처구니없는 비방전의 희생양이 되는 불운을 맞고 맙니다. 배우로서는 최전성기에 발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걸었던 만큼 그녀의 좌절은 이루 표현할 수 없었겠죠. 정말이지 그녀의 노력이 부족했다고도, 그녀가 영화를 고르는 눈이 잘못되었다고도 볼 수 없었던 그야말로 어느 누구도 그녀를 탓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으니까요.

그래서인지 그녀는 너무 큰 실망을 하고 재기를 하기 위해 독을 품은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그 품은 독이 얼마나 강한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 '연애 참' 이 되었다는게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녀가 연아에 그토록 목숨을 건 듯이 몰입했던 이유는 개인적인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묵묵히 노력하던 그녀를 한순간에 절벽으로 밀어버렸던 작품 '청연'이 그 계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네요.

여러모로 아까운 사람이고 아쉬운 인생이었습니다.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히 주어졌어야 했지만 너무나도 늦었던 그녀의 노력에 대한 댓가는 결국 그녀가 떠난 뒤에도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 안타깝습니다. 그녀의 인생에서 당연히 누릴 자격이 있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떠난 게 못내 아쉽습니다

콘텐츠 쪽을 꿈꾸고 있는 저에게 영화계는 각별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대한민국 영화대상을 보면서 '나도 언젠간 저 무대에 서서 수상소감을 말하고 싶어'라는 꿈을 키우고 있죠. 배우 황정민의 청룡영화제 수상 소감처럼 멋진 소감을 말하고 싶은 생각에 매년 언젠간 그 무대에서 발표하게 될 수상 소감 내용을 업데이트 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 중 한 구절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직접 들려드릴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이 문구는 삭제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죽는 날까지 그 무대에 설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제게 이 자리에 서기까지 그 계기를 만들어준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요.
영화배우 장진영씨도 그 중 한 분입니다. 지금 듣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한마디 드리고 싶어요..'

' 제가 당신의 팬이 아니라 당신이 저의 우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