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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ushAm 2009. 5. 15. 02:02
팜 시스템이 갖는 의미는 생각 이상으로 범위가 넓다. 야구를 예로 들어보면 클럽 시스템별로 팜 시스템을 갖춘 미국의 경우 팀 내에서 유망주를 키워내는 것은 물론 유망주 단계에서 충분히 실력을 인정받아 팜 시스템 내에서 트레이드가 이루어지는, 다시 말해 기회에 주어지는 시간이 보다 길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순간의 선택이 많은 것을 좌우하는 세상에서 선택의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선수를 놓치지 않을 가능성도, 대기만성형의 선수를 꾸준히 지켜볼 수 있는 기회도 함께 얻을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팜 시스템은 메이저에서의 데이터와는 다르게 순전히 '스타성'만으로 평가할 수 밖에 없어 향후 이 선수가 지금 보여지는 만큼 선수 생활 시작부터 끝까지 꾸준한 성적을 보여줄것인가에 대한 부분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건 사실 팜 시스템만을 탓할 문제는 아니지만, 선수 육성 시스템에 대한 별다른 연구나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사실상 해결책이 없는 문제로 굳어지고 있다. 이른바 12지의 힘을 믿는 수밖에 없다랄까



야심작 정열맨(이하 정열맨)은 그런 팜 시스템이 웹툰 시스템에 정착되면서 가져오는 장점과 문제점을 동시에, 그것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루리웹 만지소 (만화가지망생소모임) 에서 처음 연재를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열맨은 이후 각 커뮤니티에 속속 개그 관련 게시물로 퍼지면서 이른바 '아는 사람은 아는' 작품으로까지 인지도를 확대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네이버는 이례적으로 자체 팜 시스템이 아닌 신인 작품의 연재를 결정하게 되고 2008년 6월 30일 주 1회 방식으로 연재를 시작하게 된다.

시작은 문제가 없었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작품 내에서 큰 수정 없이 그대로 연재를 시작했으나 이미 만지소에서부터 인정받은 개그 센스가 까다로운(?)네이버 독자에게 어필하는 데에 성공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인다. 네이버측이 우려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작화 부분은 생각만큼 거부반응이 크지 않았으며, 이미 어느 정도 인지도가 쌓인 중고 신작으로서 가지는 이득을 충분히 누리면서 흔히 신작의 고비라고 불리는 1쿠르를 무난히 넘기게 된다.

그런데 챕터가 늘어나고 점차 스토리가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초반 플롯 준비 과정이 충실하지 못한 작품들에게서 나오는 문제점들이 불거지기 시작한다. 작품 내 가장 큰 문제점은 이미 10화부터 시작되고 있는 무협형 에피소드가 30화분이 넘어가도록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타입의 만화는 준 옴니버스 타입으로 소재 위주의 스토리를 다수 배치하여 장편을 이어나가는 것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의 유일한 장편 구성 방식이지만 정열맨은 에피소드의 길이를 조절하는 데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초반 주인공 김정열보다 비중이 높았던 허새만은 최근들어 비중이 거의 없는 캐릭터로 전락했다.


이는 시작 단계부터 작품이 어떻게 시작될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해 독자들로 하여금 알 수 있는 핀트가 전혀 없었다는 문제에 기인한다. 정열맨 김정열 위주로 진행될 것으로 보였던 스토리라인은 단지 정열맨의 엉뚱한 캐릭터성을 활용한 몇 가지 과거형 에피소드 몇 가지 이후 선보이고 있는 주작파 스토리에서는 전혀 역할을 찾지 못한 채 겉돌고 있다. 물론 작가도 이런 부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매회 다소 억지스럽게 장면 전환을 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면서 김정열 캐릭터를 등장시키려 애쓰고 있지만 여전히 작품 자체의 아이덴티티를 찾지 못해 가지는 독자들의 혼란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스토리에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는 신 캐릭터 '최우장'이 별달리 매력을 어필하지 못하고 잇다는 점도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할 수 있다. 최근에는 역할이 거의 없지만 초반 훅을 확실하게 책임져주었던 허세만에 비해 등장 횟수는 3배 이상 많은데다 주작파 스토리의 중심에 서 있는 최우장은 이름 조차도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만큼 존재감이 떨어지고 있다. 악역이면 확실한 악역다운 카리스마 혹은 악역의 독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의 연출력이라든지 캐릭터성을 한층 살리는 대사가 다소 부족한 부분 등 작가의 능력과 직결되는 부분에서 원인의 시발점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은 확실히 짚고 넘어갈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가 더 문제


다소 서두르는 감이 없진 않지만 5월 13일 연재분을 기준으로 주작파 에피소드는 마무리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정열맨 이외의 열혈 초등학교라든지 드라곤볼 등의 다른 작품들을 한주 혹은 무기한 휴간에 들어간 것을 비추어 볼때 귀귀 작가는 정열맨의 다음 에피소드 준비에 이미 착수했으며 어느 정도 소기의 성과가 보이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작품을 기획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초창기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 휴간을 하지 않는다. 보통은 그 아이디어를 플롯 단계에서 구체화시키는데에 훨씬 더 많은 체력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열혈 초등학교 휴간에 대한 안내문 중 일부


이유는 조금 더 있다. 정열맨을 비롯한 귀귀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연재 시작 단계부터 작가 본인의 의중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상당 부분 멀티유즈를 노리고 있기 때문에 작품의 매력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2차 3차적인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이른바 굿즈라고 불리는 상품들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블로그를 통해 판매하기 위해서는 다른 광고보다 캐릭터의 힘이 떨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데, 최근 관심도가 떨어진 만큼 티셔츠 매출이 예전같지 않다거나 예전만큼 독자들의 참여, 특히 머리를 직접 미는 수준의 높은 충성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귀귀 작가 본인이 이미 감지하고 심각성을 깨달았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어떤 스토리가 어떻게 나와준들 지금 단계에서 정열맨이 가지고 있는 숙변과도 같은 문제들을 한번에 씻어낼 수 있을지는 다소 의문이 남고 있다. 독자들은 매너리즘에 빠지기 시작하면 제대로 된 평가를 내지 않는다. 매너리즘은 고정적인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로도 쓰일 수 있는 한편 소리없이 떠날 수 있는 팬층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반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다음 에피소드에 실리는 무게감이 커진 상황에서 귀귀 작가가 과연 얼마나 심혈을 기울인, 사실상 차기작이나 다름없는 수준의 스토리가 나와주어야 하는 상황이기에 한층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김정열 캐릭터 역시 그간의 도망자 스토리라인을 종료, 향후 등장할 채비를 마친다. 주작파 스토리 마무리와 더불어 작가가 심각하게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여러 근거 중 하나


만일 지금 시점에서 또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 주작파 스토리와 무관한 전혀 다른 스토리, 혹은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명목 하에 다시 옴니버스 개그물의 분위기로 전환한다면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아무도 답을 모르는 상황에서 제한 시간은 부족하고, 이미 초반 분위기 장악 실패에 대한 경험이 있기에 작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수밖에 없다.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좋은 선택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작가 입장에서는 생계 문제도 있고 여러가지 측면에서 마음먹은 대로 쉬지 못하는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을수 있기에 당장은 어떤 결론도 답이 될수도 답이라고 말할수도 없는 노릇이다.


초반의 중요성

최근 필자가 배우는 영화 관련 수업에서 나오는 단어 중 '훅' (Hook)이라는 영화 기법이 있다. 말 그대로 영화 초반 5분 내에 관객들을 영화에 집중하고 눈을 떼지 못하도록 끌어당기는 기법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기법이 영화 내에서 차지하는 중요도가 제법 높다고 보고 있다. 영화든 드라마든 애니메이션이든 만화든 스토리 텔링과 관련된 작품들은 초반에 제대로 훅을 만들어낸 경우 실패 사례를 찾기가 어려울정도니까, (대표적으로는 최근 종영한 아내의 유혹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보통은 훅이 가지는 역할은 영화나 애니메이션이 결국 어떤 스토리로 진행되서 어떤 식으로 결말지어질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데에 있기 때문에 영화 깨나 만들었다는 사람들도 일면 인정하려 들지 않으면서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이 허다한 실로 기묘한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초반에 훅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초반 내용 중간중간 향후 스토리나 등장 인물을 시사하는 장면들이 소수 있었으나 다만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던 이유는 분량 자체가 적을뿐더러 당시 작품 분위기상 한 컷에 집중하기 힘들다는 이유 등이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정열맨의 부진에 대한 원인은 다름아닌 훅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의 정열맨이 가진 문제점은 훅에서 본편까지의 갭이 지나치기 길었거나 혹은 훅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다. 이미 옴니버스 스토리가 아닌 제대로 된 에피소드 스토리에 돌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초반 훅 단계에서 이미 옴니버스 카툰과 같이 인식되며 매회 다른 스토리로 웃겨주는 만화로 인식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초반에 개그에 대해 너무 무리하지 않는 차원에서 조금이라도 향후 스토리라인에 대한 힌트를 주었으면 어땠을까? 주작파 스토리가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 결코 아님에도 독자들이 어색해하는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작가 역시 제대로 된 스토리 진행에 있어 매회 어느 정도 빵 터뜨려줘야한다는 강박관념때문에 재대로 스토리를 다듬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앞으로의 스토리 전개 혹은 새로운 에피소드의 활약 여부에 따라서 정열맨의 향후 거취와 작품 수명이 결정되겠지만 개인적으로 팜 시스템에서 가장 이색적이면서 독특한 데뷰 라인으로 성공한 사례를 잃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있다.

그다지 보편적인 상황이 아닌데다가 작품의 흐름 상 작가가 자초한 부분이 크기에 쉽지 않은 연재가 예상되지만 개인적으로 귀귀 작가의 분발을 기대하고 있다. 행여 연재하는 여러가지 작품들 중 한두가지가 사라지게 되더라도 크게 염려할 일은 아니며 오히려 지금까지의 분위기를 벗고 새로운 작품 세계를 연구할 수 있는 온고지신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고 센스 측면에서는 정말이지 아깝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할만큼 높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에 더더욱 그렇다. 특히나 한국 웹툰계에서 좀처럼 나오기 힘든 작품 타입 아니던가 작가라면 부던히 겪고 또 겪는 것이 작품 슬럼프다. 하루바삐 몸에 꼭 맞으면서도 마음에 쏙 들기까지 하는 옷을 찾듯이 귀귀 작가의 '이상' 이 아닌 '목표'로서의 작품 활동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해본다.


그림 사용 허가해주신 귀귀 작가님에게 감사드립니다.
다음주에는 마음의 소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