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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ushAm 2011. 9. 27. 05:23

초유의 정전사태가 왠지 울고 싶은 놈 뺨을 때린 듯한 기분이 든다. 생활이 어렵고 경제가 안나아지고 안좋은 뉴스는 그칠 줄 모르고 정부탓하는 목소리는 그치지 않는데, 때마침 정전이 되어주니 이 모든 화살이 다 '한전'으로 가버렸다. 국정감사에서 팩스 잘못보냈다거나 점심시간에 연락 안닿아서 보고 못받는 시시콜콜하고 도움안되는 질문들만 날려대세는 국회의원들도, 뉴스에 분개하며 고작 엘레베이터 한두시간 갇힌걸 가지고 '시체치우는 줄 알았다'며 호들갑떠는 국민들도 '너 잘 걸렸다'는 식으로 몰아붙인다.

2010년 국감 당시 모습 - 이때는 아무것도 발견 못하시던 분들이 이번 정전때는 입에 모터들을 다셨다.



그런데 사실 그런 시시콜콜한 실수를 제외한다면 한전은 사실 할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여름 비상 근무를 종료하고 발전소를 점검에 들어간 게 그렇게 큰 잘못이었던 것일까?,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핀트를 어긋냈지만 이건 전력 수요 예측 실수가 아니라 기상청의 '기온 변화 분포 예측 실수'가 맞다. 한국전력이 갑자기 9월 중순에 여름보다 낮기온이 더 올라가는것까지 예측할수 있게 기상학까지 복수전공이라도 해야한다는 말인가? 만약 기상청 예측을 무시하고 '가을에도 갑자기 더워질 수 있다'라며 발전기 안끄고 준비상 체제 유지했는데 '안 더웠다', 면 국감에서 더 까이는게 한전이다. 한전은 그래서 '기상청 발표'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만 한다. 비전공자가 나대는 것보다 '전문가'의 의견을 근거하는게 훨씬 나으니까...

기상청이 지난 6월 11일에 예측한 올여름 전력수요


기상청이 틀렸다. 그래서 갑자기 예비전력율이 바닥을 뚫을 기세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도 까다 보니 착각하는게 한전이 신생벤처기업 아마추어들이 운영하는 떨거지기업쯤으로 착각하거나 공기업의 태만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아주 낙인을 찍어버리는데, 당장 검색해봐도 공기업 중 국민 만족도 1위를 몇년 연속 차지했는지 까마득할정도로 건실한 공기업이 한전이라는 걸 이번 정전 사태로 모두 잊어버린 듯 하다. 그들은 이번 정전 이전까지 '단 한번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칭찬받아 마땅한데 말이다.


감이 잘 안온다면 옆나라 도쿄전력의 작태를 보라...


 한전은 아마추어 집단이 아니다. 물론 대응 시스템이야 구식일지 몰라도 그들은 이런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충분히 대응책을 마련했고, 예비전력 위기를 몇십년째 넘겨오며 노하우가 쌓인 베테랑 기업이다. 그런 구식 시스템 속에서 그들이 만들어놓은 자구책이 바로 '절감효과'가 확실한 산업용 전기를 컨트롤하자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가 싼 이유는 기업들 배 불려주려고 해놓은 게 아니라 이런 '비상사태'때 기업들이 그동안 저렴하게 전기를 쓰고 거기에 '협조 보조금'까지 받아가는 댓가로 '긴급 비상 전력 소비 감축'에 신속하게 협조할 것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정전사태 대응책 중 가장 쓸만했던 이 대책에 협조한 기업이나 관공서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애석하게도 한전은 이들 기업에게 엄청난 혜택을 주면서 협조를 약속받았음에도 이를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는 것이 이번 사태를 불러온 결정적 원인 되시겠다.. 


뼛속까지 감탄고토(甘呑苦吐)


그런데 이번 사태에 대한 정부의 결론은 따분해서 하품이 나올 고려짝 시츄에이션 'OECD중 제일 싸다'는 것과 '국민들이 너무 전기를 막쓴다'는 거라니 참 기가 막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전의 시스템이니 운영 방만이니 위기대처 부족이니 한전만 줄기차게 씹어대던 정부가 이제 정전이 '국민들이 방만해서 생긴 인재'란다. 국민들의 생활전기와 산업용 전기 비율이 넉넉잡더라도 4:6일텐데 어느 쪽을 줄여야 하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위기때 어떻게 협조 체계를 만들어야 하는 시스템을 정비해야 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데, 쿨타임이 되자마자 이걸 '요금 올릴 핑계'거리로 이용하는데에는 기가 찰 지경이다.


저 중에 우리나라보다 서민 실소득 낮은 국가가 있나?


국민들이 전기를 평소에 아낀다고 전력위기상황이 방지될리 없다는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서민들 중 어느 누가 여름에 덥다고 전기를 막쓸 수 있겠는가. 지금도 서민들은 현 요금 체계에서 충분히 부담을 느끼고 전기를 가능한 절약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더 절약하고 싶어도 더 쥐어짤 게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이들에게 전기료를 인상한다는 것은 그냥 마른 걸레 쥐어짜기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다, 사실 전기를 낭비하고 있는 계층은 '전기 요금 몇천원 오르는걸 가렵지도 않게 생각하는' 고소득층일진데, 과연 그들이 전기료 20%올린다고 무서워 벌벌떨며 에어컨 온도를 올릴 리가 없다는 것에 500원을 건다. 물론 산업용 전기는 행여 기업님들이 삐져서 우리나라에 고용 투자 안하고 중국으로 튈까봐 무서워서 올릴 리가 없다는 것에도 천원쯤 걸 수 있다.


이번 한전 사태는 이번 정부의 친기업주의가 얼마만큼 도를 넘었는지를 잘 시사해주고 있다. 한전이 왜 그들에게 '혜택'이란 혜택은 다 주면서도 비상사태때 전력 감축 요구를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만일 정전 10분여를 남기고 나온 한전의 요청이 씨알이 먹혔다면 과연 이번 정전 사태가 일어났을까? 기업들은 왜 한전에게 혜택을 받으면서 위기상황에 대한 요청을 시원하게 쌩까고 입을 싹 닦아버리는 '지들이 늘 하던 짓거리'를 하면서도 가책없이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일까? 기업들에 의해 정부 직속 공기업이 국가비상사태 때 기업이 참가를 안하는 초유의 '군사재판급' 사태를 두고 정부는 기업들에게 왜 안지켰냐고 다그치기는 커녕 기업들이 행여 이번 정전으로 피해나 보지 않았을까 굽어살피기 여념이 없는 이유가 뭘까? 언론은 왜 이번 사태의 원인을 '기업들이 비상사태에 제대로 참가하지 않았다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지 않는 것일까? 그보다 왜 정부가 삽질하고 기상청이 병신짓한데다 한전 정책까지 시원하게 생까주신 기업들이 벌인 일을 왜 아무 짓도 안하고 피해만 주구장창 본 아무 죄없는 서민 호주머니를 터는 것으로 끝을 맺으려 드는 것인가? 이 정부가 정말 '정부'라고 불릴 자격이나 있는건가? 


이런 나라에는 정부랑 기업만 남기고 국민들이 다 떠나는 게 옮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