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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8.02 특별기획 '취업' - 누가 워커홀릭을 만드는가 : 야근 편
posted by RushAm 2012. 8. 2. 10:22


급여, 흔히 월급이라고 하죠. 이 급여라는 것에 대한 의미를 혹시 제대로 알고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급여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죠.

 

급여給與

1 .
돈이나 물품 따위를 줌. 또는 그 돈이나 물품.

2 .
[북한어] 동물에게 사료를 줌.

 

뜻 자체로 급여는 그냥 돈이나 물품 따위를 '준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댓가성에 대한 내용이 없죠. 뭐 다른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월급, 주급, 시급에 들어가는 給자는 공급하다는 의미로 어이없지만 대단히 공산주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2번 뜻이 더 현실적이군요. 이 단어대로라면 우리는 북한의 배급에 의존하는 국민들처럼 회사의 급여가 아니면 '생존 자체가 안되는' 가축같은 의미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반면 영어의 경우는 어떨까요? 영어로 급여는 'pay'라고 합니다. 친숙하죠? 영어권 국가에서 물건을 살때도 이 단어를 분명 써본 경험이 있을겁니다. 이쪽 단어 그대로 해석하면 이들에게 월급은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넘겨주고 받은 '대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급여에 비교하면 엄청난 의미적 차이가 아닐 수 없네요.

 

...

 

우리 사회에서 백수 즉 무직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습니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자'라는 것은 '소비만을 하는 자', '생산하지 않는 자'라는 의미를 넘어 '밥버러지', '시간을 낭비하는 자 (잉여)'라고까지 불리기도 하는데요. 그런데 이 생산하지 않는 자, 시간을 낭비하는 자를 잉여라 부르며 괄시하고 심지어 사회 암적인 존재로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여러분들은 과연 무엇을 얻고 계십니까? 오늘 특별기획 취업 시간에서는 바로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자들과 그 사회분위기로 인해서 이득을 얻는, 또한 손해를 입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우리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자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원론적으로 돌려보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시간'은 '무의미한 시간' 이며 '경제활동을 하는 시간'은 매우 의미있고 가치있는 시간이라는 인식이 깔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같은 인식 속에서 시간을 경제활동에 쏟지 않는 사람이나 조금 덜 쓰는 사람을 깔보거나 조롱하며 자신이 가진 경제적 가치를 경제시간과 환산하는 식으로 우월감을 표출하곤 하죠. 아마 이와 같은 사회 분위기가 유지되는 이유에는 이 우월감을 누리기 위한 방편적 기준이라는 점도 내면에 깔려있을지 모릅니다.

 

http://quadue.wordpress.com/

 

그런데 이와 같은 사회 분위기가 계속되는 것을 원하고 또한 그로 인해 이득을 보는 쪽은 과연 어디일까요? 모든 논리는 이득을 보는 쪽과 그 이득을 보는 쪽을 위해 희생하는자, 그리고 손해를 보는 자로 나뉘어집니다. 여기에서 이득을 보는 쪽을 위해 희생하는 쪽은 '백수'가 되겠고요. 그리고 그로 인해 손해를 보는 쪽이 바로 경제생활자가 됩니다. 물론 이득을 보는 쪽은 회사가 되겠죠. 왜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결과적으로 회사에 이득을 가져다주는걸까요? 그건 바로 '근로자의 시간에 대한 가치 절하'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

 

경제활동에 쓰는 시간은 비싼 시간이고, 경제활동에 쓰이지 않는 시간은 싼 시간이다라는 논리는 결국 비싼 시간에 대한 급격한 수요를 야기합니다. 비싼 시간을 원하는 사람이 많고 그 비싼 시간을 주는 사람 (기업)이 적으면 자연스럽게 물가가 올라가게 되죠. 그러면 이 시간을 주는 사람은 얼마든지 더 낮은 가격에 많은 시간을 주는 사람에게 팔고 싶어할것이고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더 낮은 가격을 부를 것입니다.

 

여기에 기업들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있지 않은 시간을 더 끼워주지 않으면 원래 사려고 했던 시간도 사지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게 되는것이죠. 여기에서 당신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고민의 주체는 당신이 가치없는 시간을 가치있는 시간으로 바꾸는 대신 얻을 수 있는 것, 바로 '사회적 우월감'이고 또 하나는 당신이 원래 팔려고 했던 하루 8시간 정도의 시간을 팔 수 없게 되었을 경우 그 '사회적 우월감'을 잃게 될 것을 우려하게 됩니다.

 

이같은 거래가 계속될 경우 당신은 당신의 시간을 사회적 통념상 가치있는 시간으로 보내지 않으면 돈이 술술 나가는 듯한 불안감에 몸을 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시간을 판 댓가를 받은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우월감에 대한 중독성도 더욱 심각해지게 되겠죠.

 

이 기회를 시간을 사는 자는 놓치지 않습니다. 더 낮은 가격에 더 많은 시간을 사려는 것은 물론, 당신의 시간 말고도 살 수 있는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며 당신과의 거래를 얼마든지 끝낼 권리가 있다는 점을 어필하며 당신을 압박합니다. 당신은 이미 그 사회적 우월감이 주는 마약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유지하는데에 더 많은 시간을 더 저렴한 가격에 그들에게 넘기는 것에 아무런 거부감을 갖지 않게 됩니다. 거의 거저나 다름없는 가격에 주는데에도 당신은 손해를 보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합니다. 오히려 아무런 가치가 없는 시간을 아주 조금이나마 가치있게 쓰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기뻐할 것입니다.

 

 

우왕 이제 키스도 할수 있네, 어썸!!

 

 

...

 

이런 과정에 의해 탄생하는 것이 야근과 연장근무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쓸 수 있는 비근로시간에 대한 가치를 스스로 아무 의미 없거나 지나치게 낮은 가치를 매기는 것으로 옭아맵니다. 기업은 이러한 분위기를 환영하는 것은 물론 도의적으로 조장하기에 주저함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러는 편이 훨씬 기업에게 이득이 될 것이기 때문이죠.

 

야근과 연장근무, 그리고 그 연장근무로 인한 댓가가 형편없이 낮은 것에 분노하고 불합리함에 분통을 터뜨리고 계십니까? 안타깝게도 그 책임은 모두 회사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부터 우리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스스로가 '회사에 주는 시간'이외의 시간에 대한 가치를 너무나도 떨어뜨렸음은 물론 그 시간을 회사에게 너무 싼 값이 주는 것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참극입니다. 회사입장에서는 특별히 도덕성을 가질 필요도 없고 당신들이 손해를 보는 것에 대해 하등 인도주의적인 관점을 가져야 할 의무도 법규정도 없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우리를 먹어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도 회사를 먹여살리기 위해 존재하지 않고요. 그러기에 회사가 우리에게 돈을 주는 고마운 단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회사와 우리는 거래를 하는 관계일 뿐입니다. 우리가 회사에게 그들이 필요한 시간과 그 시간 안에 해낼 수 있는 업무 능력을 보여주는 댓가를 정당하게 받는 거래 관계입니다. 혹 그들이 더 많은 시간과 능력을 정당한 댓가 없이 지불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응당 거부해야 하며 거부까지 갈 수 없다고 해도 응당 이게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불합리한것인지를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일하지 않는 시간'과 '일하지 않는 자'에 대한 가치절하를 중단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퇴근 후'에는 누구나 백수가 됩니다. 그 백수가 되기 싫어서 회사에 남는 시간을 '기부'까지 해가며 억지로 나는 '열심히 일하는 사회 구성원이야'라며 자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같은 사실을 어필하며 '우월감'을 느낄 가치는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 사실을 응당 창피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호구'라는 단어처럼 당신은 회사에게 호구처럼 당신의 시간을, 인생을, 능력을, 존재 가치를 덤핑세일로 빼앗긴것과 다름없으며 그걸 우두커니 지켜보기만 하는것도 모자라 바보처럼 그것을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회사들에게 말합니다. 당신들의 하는 작태는 비단 우리가 연장근무에 관대한 사회분위기를 자초했다고 하더라 할 지언정 너무나도 치졸하고 비겁합니다. 그러한 사회분위기를 적극적으로 주도하며 자신들의 거래를 유리하게 이끌어나가는 것은 이윤창출로는 완벽할지도 모르지만,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는 것을 처음부터 거부했다는 점에서 경제학적 관점에서는 최악입니다. 굳이 윤리까지 들먹일 필요조차도 없을것입니다.

 

 

연장근무와 야근은 법적으로 규제할 수 없습니다. 근로계약상에 추가근무에 대한 조항이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기업은 그래서 야근과 연장근무를 거리낌없이 시킵니다. 그리고 그 야근과 연장근무에 투입되는 자신의 인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라는 미친 나치시대 파치즘적인 이념같은 병신논리를 설파합니다. 그리고 이 논리에 의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야근과 연장근무에 대한 정당한 수당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고 있습니다.

 

 

야근과 연장근무에 대한 지불은 법적으로 반드시 지불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처음부터 야근수당을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그 전에 우리가 기업에 던지는 추가근무시간에 대한 가치를 최대한 떨어뜨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이없게도 추가 근무 수당으로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아이구 우리 잉여시간 남아서 드린 것 뿐인데 돈까지 주시다니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라며 머리를 조아리며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기업은 당신의 시간을 더 싼 값에 사고 싶어하는 거지근성들로 가득한 놈들일 뿐이라는 점을 알아야 하며, 그러기에 우리는 그들에 맞서 절대 우리의 시간을 덤핑으로 넘기지 않아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 스스로 '일하지 않는 시간'에 대한 가치를 높이는 분위기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시간이 싸다고 생각하는데 기업이 우리 시간을 비싸게 사줄 리가 없을테니까요.

 

 

당신의 시간은 기업이 생각하는 그것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잊지 마세요

 

 

특별기획 취업 - 누가 워커홀릭을 만드는가 : 야근 편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