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31. 22:14
여러분들은 '일본'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십니까? 이젠 더 이상 가깝고도 멀지만은 않은 나라 일본이 되었습니다만 아직 일본에 대한 잘못된 상식, 특히 과거에 쓰여진 서적이나 구전으로 전해지는 잘못된 상식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이러한 상식은 여행을 다녀오거나 단기간 유학을 다녀오는 것으로 깨어지기는 쉽지 않지요 (유학생들은 실제로 한국인들과 친분을 쌓는데에 주력하고 일본 사회 전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과연 어떤 상식들이 오해이고 또 진실은 무엇인지 일본에 대해 빠삭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 연구해보고 직접 느낀 바를 서술해보고자 합니다. 금번은 그 첫 번째로 '친절한 일본인'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선 일본인이 '친절하다', '상냥하다', '과도하게 자신을 낮춘다', '피해자가 민망할 만큼 사과를 한다'는 등의 이미지는 아직도 건재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전해져오는 상식은 물론이거나와 최근까지도 여행을 다녀온 젊은층들에 의해 그러한 상식이 아직 유효하다는 것을 꾸준히 증명해내고 있으니까요? 그것이 가식적이든 아니든 분위기 자체가 한국의 친절함과는 다른 뭔가 '민망할 만큼'상대방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부분에서 한국 사회와는 좀 다른 부분을 느끼고 충격을 받는 것 같습니다. 컬쳐 쇼크는 사살 그리 좋은 의미를 내포하는 것은 아니어서 쇼크상태에서는 절대 객관적인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판단이 신뢰성을 갖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인의 친절함은 다소 거품이 좀 있습니다. 게다가 잘 알려진것처럼 본성을 최대한 감추기 위해 만든 가면과도 같아서 그 본성을 걷어내기까지는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년이 걸릴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 좀 살다 왔다는 사람도 이러한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일본인들은 친절하다'는 상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요. 여기에는 부족한 일본어 실력과 네이티브들만의 문화를 완전히 습득하기에 시간적인 한계와 외국인이라는 제한적 요소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하겠지만 여행으로 이쪽에 대해 알 수 있는 확율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우선 왜 이런 거품이 생겼는지에 대해서 설명해드리자면 절반 정도는 '여행객'들이 만들어낸 거품입니다. 여행객들이 여행을 하면서 쓰는 블로그, 여행기 등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일본의 친절'인데, 이 친절이 사실 길 안내같은 일상적인 친절이 아니라 작은 잘못에도 사과하는 자세 특히 그들의 사과 문장 자체가 '번역'을 하면 정말 심각하게 사과하는 듯한 뉘양스를 풍기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에도 잘못을 사과하는 표현이 정말 다양합니다만, 일본은 정말 이렇게까지 자신을 낮춰 표현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만큼 심각한 사과 문장이 즐비합니다. 아시겠지만 '미안합니다'(すみません)은 말을 걸 때나 엘레베이터에 들어올때 거의 습관적으로 입에 붙어있을 만큼 이제 사과용 단어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데요 보통은 죄송합니다 (ごめんなさい)는 기본이고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申し訳ございません),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ご迷惑をかけてしまいました) 등 한국에서는 어지간히 잘못한게 아니면 거의 쓰이지 않는 표현이 '일상처럼'쓰입니다. 자 여기에서 눈치채셨겠지만 이 '일상처럼'쓰인다. 에 함정이 있는데요. 쉽게 말해 '사과문' 인플레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갑자기 왠 뜬금없는 경제 용어가 튀어나오냐고 하실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들어보세요.
이러한 사과 문장들은 '남성'들의 경우 계급사회, 즉 지금으로 말하면 '직장'이외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 자영업이라면 점원과 손님의 관계, 직장이라면 상사와 부하의 관계에서만 쓰이며 영업직일 경우 클라이언트 정도가 전부입니다. 그 밖에는 쓸 일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남성들은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잘못이 아니면 일상생활에서는 절대 먼저 사과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이러한 사과문장들은 주로 여성들, 특히 30대 이상의 나이 많은 여성들에 의해 쓰이는데요. 이는 '남편'을 '주인'으로 부를 만큼 계급차원에서 이미 남자보다 한 단계 아래로 치부받는 사회계급적 약자 위치에 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먼저 사과를 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게 과연 '진심'을 담은 사과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해석이 달라집니다. 작은 잘못에도 무슨 대역죄를 저지른마냥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라는 A급 표현을 써버리니까 그것보다 더 잘못했을 때에는 그저 '스미마센'의 반복이나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를 콤보로 섞어 연발하는 문자 그대로 몇 번이고 사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의미상으로는 '상당히 깊은 사과의 의미'를 담은 말이지만 너무 많이 쓰이다보니 일본 사회 내에서는 그 의미가 다소 가볍게 치부되는 것입니다. 즉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가 우리나라에서는 100의 잘못 중 90정도를 감해주는 정도의 사과 위력이 있다고 치면 일본에서는 10도 채 되지 않는 셈이죠. 다시 말해 완전히 용서받으려면 저 표현 한번으로는 부족하고 최소 열 번은 연발해야 사과의 의미가 '본인 자의적인 해석'으로 충족되는 것입니다. (상대방 기분이 풀리는지 어떤지를 이들은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콜 센터 직원이 뭔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정말 죄송합니다 고객님'이라는 말을 듣게되죠?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아 이 처자가 정말 자기 잘못을 반성하고 있구나'라고 느껴지십니까? 아니면 '에휴 귀찮은 콜이니까 얼른 사과하고 끝내야겠다'라는 회피성 발언이라고 느껴지십니까? 대체로 후자로 느끼시는 분들이 많으실텐데요. 이른바 영업용 미소가 있는것처럼 콜센터계에도 '영업용 사과'가 있는 셈입니다. 일본의 경우도 이와 비슷해서 전 국민이 '콜센터 직원'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하실텐데요. 다시말해 그들은 '정말 내가 잘못해서 미안한 감정을 전하기 위해'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이 내가 잘못한 게 맞는 것 같긴 한데 얼른 사과를 하고 내 책임이 조금 경감되거나 아니면 책임을 지지 않는 방향으로 도망쳐야겠다'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일본인들의 '사과'입니다. 그렇기에 절대 이들이 쓰는 사과 문장들을 우리나라식으로 해석하고 우리나라식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한데요. 조금 예가 다르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사과 문장 중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가 정말 죽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닌 것처럼 그 정도에는 분명 차이가 있고 일본의 경우는 그 정도 차가 무척 심하다는 게 핵심이 되겠습니다.
흔히 '친절하다'는 의미를 주는 '국민성'이라는 부분도 이와 다소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한데요. 일본은 가장 최근에 일어난 큰 전쟁의 '가해자'라는 이미지가 전 세계적으로 아직 강하게 남아 있다는 것을 잘 알고있기 때문에 국민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에 꽤나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는 얼마 전 있었던 한일 월드컵과 최근 유치전이 뜨거운 '도쿄'의 올림픽 유치 노력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 자체'로는 국가적 이미지 재고가 쉽지 않지만 '국가적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이벤트'를 유치하는 데에 있어서는 국민들의 친절도만이 '전쟁 가해국'아라는 '평화'에 걸맞지 않는 불리한 상황을 극복할만한 유일한 열쇠가 되고 있기 때문이죠. (관련기사 문화일보 ) 어떻게 보면 국민적인 친절함은 만들어지긴 했어도 진실로 볼 수 있겠습니다만, 이 부분도 사실 '뒷담화'를 죽을 정도로 싫어하는 일본 특유의 국민성에 기인하고 있어 진심에 가깝다기보다는 이쪽 역시 자기방어적 자세에서 나오는 이른바 (裏切り)방지 라고 할 수 있죠. 흔히 '배신자'로 번역되는 저 단어가 직역을 하면 '뒤돌아선 상대를 뒤에서 베어버린다'는 지극히 사무라이틱한 단어라는 사실 알고 계실련지요?
유학생들처럼 일본에 조금 오래 살고 있는 분들이 상대적으로 느끼는 '경찰'의 친절함은 시스템적인 문제에 기인합니다. 지갑 분실이나 길 안내 등 사소한 부분을 등한시하는 우리나라 파출소에 비해 이러한 부분이 상당히 친절하게 이루어지는 일본의 '코반'을 인상적으로 느낀 분들이 많으신데요. 이건 사실 국가 시스템과 더불어 국민적 시각차가 양국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차이점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일본은 지역치안과 소소한 민원을 담당하는 코반과 강력범죄를 담당하는 경찰 시스템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고 상호 업무가 연계되지 않는데다가 인력도 인구수 대비 부족하지 않도록 배치하고 있기 때문에 업무 부담이 적정 수준으로 배분됩니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동네치안센터가 본 취지와는 다르게 본청 업무가 하달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구획 배분에 있어 업무량이 다소 과다하게 책정되어 있기 때문에 '사소한 민원'을 등한시할수밖에 없는 (일의 중요도를 따질 수 밖에 없게 되는) 딜레마가 생깁니다. 인격적인 문제를 탓할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죠. 여기에 보다 구획을 촘촘히 하려다보니 그만큼 인력도 많이 들어가고 법적으로 8시간 이상을 근무할 수 없게 규정되어있기 때문에 최소 일일 3교대 근무체계 등 한국의 '고생하는 경찰'과는 이미지가 사뭇 다릅니다. 문제는 그만큼 이들에게 들어가는 세금이 많아집니다만 이 부분에 있어 일본인들은 관심이 없거나 특별히 불만이 없는 반면 우리나라는 일본의 코반같은 인력이 지금보다 늘어난다면 바로 언론에서 '낭비되는 공무원 인력으로 인한 근무태만, 세금낭비 현장'등의 꼭지로 기획기사가 나갈 가능성이 높죠. 국민들도 '세금낭비'에는 꽤 민감한 편이기때문에 이런 부분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여행객'이나 '단기채류객'이 접하기 거의 어려운 '은행', '구청 단위 관공서', '학교', '입국관리국' 등 '방문자들에게 영리적인 부분을 직접적으로 얻지 않는' 기관의 친절도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조금 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일본 역시 '직접적으로 손님에게 돈을 받지 않는'일의 경우 특별히 친절도를 철저하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며 은행의 경우 특히 '권위'적인 부분에 있어 불쾌감을 느낄 정도입니다. 입국관리국이야 말할 것도 없고요. 학교야 실제로 돈을 받는 곳이긴 하지만 직원들이 그 돈을 적접 눈앞에서 수수하는 역할은 아니기때문에 의사 결정을 따를 필요가 없는 사무국의 불친절함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떠세요? 물론 오해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이러한 이미지가 실제로는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한 자기보호방법'에 기인했다니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극히 인간답다고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인간이라면 그렇게 자기 내장 다 꺼내놓고 사과하면서 평생을 살 수 있는 사람들만 모여있는 나라라니 있을 수가 없지요. 일본의 인구가 1억 3천인데 그 대부분이 친절한 DNA를 가지고 태어날 이유도 없고 아무리 일본의 치안이 안정되었더라도 '친절하지 않은'사람으로 인한 사회문제는 어김없이 일어납니다. 이제부터는 일본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그 나라, 그 나라 사람을 바라볼때 그 나라의 이미지만으로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며 글을 마칩니다.
다음 시간에는 일본의 성문화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우선 일본인이 '친절하다', '상냥하다', '과도하게 자신을 낮춘다', '피해자가 민망할 만큼 사과를 한다'는 등의 이미지는 아직도 건재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전해져오는 상식은 물론이거나와 최근까지도 여행을 다녀온 젊은층들에 의해 그러한 상식이 아직 유효하다는 것을 꾸준히 증명해내고 있으니까요? 그것이 가식적이든 아니든 분위기 자체가 한국의 친절함과는 다른 뭔가 '민망할 만큼'상대방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부분에서 한국 사회와는 좀 다른 부분을 느끼고 충격을 받는 것 같습니다. 컬쳐 쇼크는 사살 그리 좋은 의미를 내포하는 것은 아니어서 쇼크상태에서는 절대 객관적인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판단이 신뢰성을 갖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인의 친절함은 다소 거품이 좀 있습니다. 게다가 잘 알려진것처럼 본성을 최대한 감추기 위해 만든 가면과도 같아서 그 본성을 걷어내기까지는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년이 걸릴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 좀 살다 왔다는 사람도 이러한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일본인들은 친절하다'는 상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요. 여기에는 부족한 일본어 실력과 네이티브들만의 문화를 완전히 습득하기에 시간적인 한계와 외국인이라는 제한적 요소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하겠지만 여행으로 이쪽에 대해 알 수 있는 확율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우선 왜 이런 거품이 생겼는지에 대해서 설명해드리자면 절반 정도는 '여행객'들이 만들어낸 거품입니다. 여행객들이 여행을 하면서 쓰는 블로그, 여행기 등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일본의 친절'인데, 이 친절이 사실 길 안내같은 일상적인 친절이 아니라 작은 잘못에도 사과하는 자세 특히 그들의 사과 문장 자체가 '번역'을 하면 정말 심각하게 사과하는 듯한 뉘양스를 풍기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에도 잘못을 사과하는 표현이 정말 다양합니다만, 일본은 정말 이렇게까지 자신을 낮춰 표현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만큼 심각한 사과 문장이 즐비합니다. 아시겠지만 '미안합니다'(すみません)은 말을 걸 때나 엘레베이터에 들어올때 거의 습관적으로 입에 붙어있을 만큼 이제 사과용 단어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데요 보통은 죄송합니다 (ごめんなさい)는 기본이고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申し訳ございません),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ご迷惑をかけてしまいました) 등 한국에서는 어지간히 잘못한게 아니면 거의 쓰이지 않는 표현이 '일상처럼'쓰입니다. 자 여기에서 눈치채셨겠지만 이 '일상처럼'쓰인다. 에 함정이 있는데요. 쉽게 말해 '사과문' 인플레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갑자기 왠 뜬금없는 경제 용어가 튀어나오냐고 하실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들어보세요.
이러한 사과 문장들은 '남성'들의 경우 계급사회, 즉 지금으로 말하면 '직장'이외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 자영업이라면 점원과 손님의 관계, 직장이라면 상사와 부하의 관계에서만 쓰이며 영업직일 경우 클라이언트 정도가 전부입니다. 그 밖에는 쓸 일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남성들은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잘못이 아니면 일상생활에서는 절대 먼저 사과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이러한 사과문장들은 주로 여성들, 특히 30대 이상의 나이 많은 여성들에 의해 쓰이는데요. 이는 '남편'을 '주인'으로 부를 만큼 계급차원에서 이미 남자보다 한 단계 아래로 치부받는 사회계급적 약자 위치에 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먼저 사과를 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게 과연 '진심'을 담은 사과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해석이 달라집니다. 작은 잘못에도 무슨 대역죄를 저지른마냥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라는 A급 표현을 써버리니까 그것보다 더 잘못했을 때에는 그저 '스미마센'의 반복이나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를 콤보로 섞어 연발하는 문자 그대로 몇 번이고 사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의미상으로는 '상당히 깊은 사과의 의미'를 담은 말이지만 너무 많이 쓰이다보니 일본 사회 내에서는 그 의미가 다소 가볍게 치부되는 것입니다. 즉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가 우리나라에서는 100의 잘못 중 90정도를 감해주는 정도의 사과 위력이 있다고 치면 일본에서는 10도 채 되지 않는 셈이죠. 다시 말해 완전히 용서받으려면 저 표현 한번으로는 부족하고 최소 열 번은 연발해야 사과의 의미가 '본인 자의적인 해석'으로 충족되는 것입니다. (상대방 기분이 풀리는지 어떤지를 이들은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콜 센터 직원이 뭔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정말 죄송합니다 고객님'이라는 말을 듣게되죠?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아 이 처자가 정말 자기 잘못을 반성하고 있구나'라고 느껴지십니까? 아니면 '에휴 귀찮은 콜이니까 얼른 사과하고 끝내야겠다'라는 회피성 발언이라고 느껴지십니까? 대체로 후자로 느끼시는 분들이 많으실텐데요. 이른바 영업용 미소가 있는것처럼 콜센터계에도 '영업용 사과'가 있는 셈입니다. 일본의 경우도 이와 비슷해서 전 국민이 '콜센터 직원'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하실텐데요. 다시말해 그들은 '정말 내가 잘못해서 미안한 감정을 전하기 위해'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이 내가 잘못한 게 맞는 것 같긴 한데 얼른 사과를 하고 내 책임이 조금 경감되거나 아니면 책임을 지지 않는 방향으로 도망쳐야겠다'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일본인들의 '사과'입니다. 그렇기에 절대 이들이 쓰는 사과 문장들을 우리나라식으로 해석하고 우리나라식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한데요. 조금 예가 다르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사과 문장 중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가 정말 죽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닌 것처럼 그 정도에는 분명 차이가 있고 일본의 경우는 그 정도 차가 무척 심하다는 게 핵심이 되겠습니다.
흔히 '친절하다'는 의미를 주는 '국민성'이라는 부분도 이와 다소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한데요. 일본은 가장 최근에 일어난 큰 전쟁의 '가해자'라는 이미지가 전 세계적으로 아직 강하게 남아 있다는 것을 잘 알고있기 때문에 국민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에 꽤나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는 얼마 전 있었던 한일 월드컵과 최근 유치전이 뜨거운 '도쿄'의 올림픽 유치 노력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 자체'로는 국가적 이미지 재고가 쉽지 않지만 '국가적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이벤트'를 유치하는 데에 있어서는 국민들의 친절도만이 '전쟁 가해국'아라는 '평화'에 걸맞지 않는 불리한 상황을 극복할만한 유일한 열쇠가 되고 있기 때문이죠. (관련기사 문화일보 ) 어떻게 보면 국민적인 친절함은 만들어지긴 했어도 진실로 볼 수 있겠습니다만, 이 부분도 사실 '뒷담화'를 죽을 정도로 싫어하는 일본 특유의 국민성에 기인하고 있어 진심에 가깝다기보다는 이쪽 역시 자기방어적 자세에서 나오는 이른바 (裏切り)방지 라고 할 수 있죠. 흔히 '배신자'로 번역되는 저 단어가 직역을 하면 '뒤돌아선 상대를 뒤에서 베어버린다'는 지극히 사무라이틱한 단어라는 사실 알고 계실련지요?
유학생들처럼 일본에 조금 오래 살고 있는 분들이 상대적으로 느끼는 '경찰'의 친절함은 시스템적인 문제에 기인합니다. 지갑 분실이나 길 안내 등 사소한 부분을 등한시하는 우리나라 파출소에 비해 이러한 부분이 상당히 친절하게 이루어지는 일본의 '코반'을 인상적으로 느낀 분들이 많으신데요. 이건 사실 국가 시스템과 더불어 국민적 시각차가 양국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차이점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일본은 지역치안과 소소한 민원을 담당하는 코반과 강력범죄를 담당하는 경찰 시스템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고 상호 업무가 연계되지 않는데다가 인력도 인구수 대비 부족하지 않도록 배치하고 있기 때문에 업무 부담이 적정 수준으로 배분됩니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동네치안센터가 본 취지와는 다르게 본청 업무가 하달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구획 배분에 있어 업무량이 다소 과다하게 책정되어 있기 때문에 '사소한 민원'을 등한시할수밖에 없는 (일의 중요도를 따질 수 밖에 없게 되는) 딜레마가 생깁니다. 인격적인 문제를 탓할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죠. 여기에 보다 구획을 촘촘히 하려다보니 그만큼 인력도 많이 들어가고 법적으로 8시간 이상을 근무할 수 없게 규정되어있기 때문에 최소 일일 3교대 근무체계 등 한국의 '고생하는 경찰'과는 이미지가 사뭇 다릅니다. 문제는 그만큼 이들에게 들어가는 세금이 많아집니다만 이 부분에 있어 일본인들은 관심이 없거나 특별히 불만이 없는 반면 우리나라는 일본의 코반같은 인력이 지금보다 늘어난다면 바로 언론에서 '낭비되는 공무원 인력으로 인한 근무태만, 세금낭비 현장'등의 꼭지로 기획기사가 나갈 가능성이 높죠. 국민들도 '세금낭비'에는 꽤 민감한 편이기때문에 이런 부분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여행객'이나 '단기채류객'이 접하기 거의 어려운 '은행', '구청 단위 관공서', '학교', '입국관리국' 등 '방문자들에게 영리적인 부분을 직접적으로 얻지 않는' 기관의 친절도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조금 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일본 역시 '직접적으로 손님에게 돈을 받지 않는'일의 경우 특별히 친절도를 철저하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며 은행의 경우 특히 '권위'적인 부분에 있어 불쾌감을 느낄 정도입니다. 입국관리국이야 말할 것도 없고요. 학교야 실제로 돈을 받는 곳이긴 하지만 직원들이 그 돈을 적접 눈앞에서 수수하는 역할은 아니기때문에 의사 결정을 따를 필요가 없는 사무국의 불친절함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떠세요? 물론 오해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이러한 이미지가 실제로는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한 자기보호방법'에 기인했다니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극히 인간답다고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인간이라면 그렇게 자기 내장 다 꺼내놓고 사과하면서 평생을 살 수 있는 사람들만 모여있는 나라라니 있을 수가 없지요. 일본의 인구가 1억 3천인데 그 대부분이 친절한 DNA를 가지고 태어날 이유도 없고 아무리 일본의 치안이 안정되었더라도 '친절하지 않은'사람으로 인한 사회문제는 어김없이 일어납니다. 이제부터는 일본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그 나라, 그 나라 사람을 바라볼때 그 나라의 이미지만으로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며 글을 마칩니다.
다음 시간에는 일본의 성문화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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