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1. 1. 8. 22:58
동방신기는 데뷰부터 아주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그룹입니다. 한자 문화권을 의식해 그룹명부터 맴버들 이름까지 4글자로 맞추어져 있었고 사실 전략상에 있어서 그들의 활동은 다분히 일본보다는 중국쪽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들이 왜 첫 방문지로 일본을 택했느냐하면 당시까지만 해도 아직 SM의 중국쪽 기반 닦기가 완성되지 않은 시기였기에 이른바 일본 가요시장의 중화권 영향력 (사카이 노리코 약물시망에 중국이 들썩거렸던 그 내공)을 빌리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사실 중화권에 퍼져있는 JPOP의 영향력은 상당한편이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당시 중국의 '혐한'기류는 동방신기에 있어 이로울게 없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초창기 SM이 기획했던 실력파 아이돌이라는 이미지가 국내에서 제대로 먹히지 않자 급격히 음악의 무게가 가벼워지면서 HOT나 신화 때와는 다른 지극히 평범한 수준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에 그치고 있었던 점도 이들의 해외 진출을 가속화시켰습니다.


그들이 가지는 이미지는 보아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보아는 단 싱글 없이 정규 1집 달랑 한장만을 내고 일본에 진출한 이른바 '순혈 유망주'였지만 동방신기는 싱글 1집 HUG 부터 정규 2집 '라이징 썬'까지 싱글을 포함 6장 이상의 음반을 내며 2년간 국내에서 활동하면서도 가요계를 '지배한다'싶을만큼의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하고 예정된 수순처럼 일본행을 결정합니다. '유망주'가 가지는 기대감보다는 지금의 '카라'가 가진 이미지와 상당히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생각하시면 쉬우실텐데요. 보아때는 이런 저런 스캔들로 인해 생각보다 해외 진출을 도망치듯 서두른 감도 있었습니다만, 동방신기는 SM이 가장 자신있어하던 보이그룹의 계보를 잇는 매우 중요한 위치였기 때문에 이들이 어느정도 브레이크를 해주지 못하면 뒤를 잇는 SM표 아이돌들이 고스란히 하향세에 편승하게 되는 아주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어떻게든 국내를 평정하고 떠나야만 했던거죠.

그러나 당시 SM이 몇 가지 오판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이들의 '포텐셜'로서. 실력파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을 너무 조기에 포기해버린 감이 없지 않은데요. 당시에는 SG워너비를 필두로 실력있는 R&B뮤지션들의 대거 히트로 사실상 이들과 실력으로의 맞대결에서 진다는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본래의 시장층인 10대 아이돌로 대상을 급히 선회하여 본전이라도 찾자는 시도를 하게 되는데 결정적으로 이 선택이 SM으로 하여금 '본전'을 찾는데 어느 정도 도움을 주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른바 '실력파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에 기대를 걸었던 동방신기의 일부 맴버들에게는 상당한 좌절감을 가져다줍니다. 이들이 목표로 했던 것과 다른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죠. 전편에서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이는 생각보다 제법 큰 파장을 불러옵니다.


두 번째로 오판했던 부분은 이들이 '일본'에서 지금만큼 히트를 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SM은 보아 때와는 상당히 다른 전략으로 동방신기 일본 진출을 준비합니다. 다름아닌 '돈으로 밀어부치기' 로서 일본 진출이 본격화될 당시에 시부야 109의 벽면에 동방신기 전면광고가 걸리는(옥외광고로는 천문학적인 광고비가 투입되는 일본의 타임스퀘어급 장소입니다) 등 마케팅을 대단히 공격적으로 진행하는데요. 이는 일본에서 그들이 초반에 강한 인상을 남겨야 그 파도가 계속 이어나간다는 지극히 '한국적'인 발상에서 나왔던 전략이었습니다. 일본 시장은 그야말로 '꾸준함'이 핵심인데 이러한 공격적인 마케팅은 아무리 돈줄이 넘치는 SM이라도 오래 지속하지 못하게 되죠. 당연하겠지만 아무리 초반에 돈을 많이 쏟아붓는다한들 일본 시장의 우직함은 즉결적인 반응을 내지 못했습니다. 지금이야 제 2의 한류라고 해서 한국 그룹들이 데뷰 직후부터 주목받습니다만 당시에는 한류 열풍 사그러드나 뭐 이런 기사가 쏟아져나올 때이니 즉각적인 반응이 있을 리가 없었겠죠. 당연하겠지만 지금의 소녀시대에 거는 기대와 당시 동방신기가 받았던 기대 수준은 많이 다릅니다. 소녀시대는 국내를 완벽하게 평정한 뒤 일본에 진출했지만 동방신기는 그 정도까지는 못 해냈거든요. 그렇기에 국내에서의 기대감이나 관심 역시 지금의 소녀시대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동방신기 해체 후 다시 등장한 전면광고


이런 현실을 SM이라고 모를 리가 없었습니다만 여기에서 그들이 마지막으로 오판한 부분은 그만큼 돈을 투자했는데 동방신기가 투자한 만큼의 반응을 얻지 못하자 너무 쉽게 동방신기의 해외 시장 가능성을 포기해버린 것입니다. 물론 국내 소속은 SM으로 남아있었습니다만, '보아'의 리즈시절 당시 거의 지분을 얻지 못했던 실패를 거울삼아 동방신기만큼은 AVEX에 의존하지 않고 어떻게든 스스로 일본 마케팅을 전개해 일본 지분을 확보하겠다는 움직임이 있었던 점을 생각해보면 SM은 동방신기의 일본 활동에 대한 성공 가능성과 그에 따른 지분을 사실상 투자 실패로 규정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쯤을 기준으로 AVEX에게 다시 무게추가 넘어가게 되는데 그들은 '보아' 마케팅의 경험과 이른바 '고무로테츠야'의 노하우를 접목시켜 국내에 거의 그 소식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고 치밀하게 동방신기의 일본 활동을 '일본식 정석'대로 전개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는 슈퍼주니어가 데뷰하게 되는데 동방신기의 정식 데뷰 후 채 2년이 지나지 않은데다가 동방신기가 국내 시장에서 정통 아이돌 음악으로 회귀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이른바 '5년 주기'에도 전혀 걸맞지 않은 매우 시급한 조치였는데요. 슈퍼주니어는 우려했던 대로 동방신기로 인해 다소 하락세를 맞은 아이돌 시장의 부담을 그대로 안고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그들의 역할은 특별히 국내 시장 평정이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지금 그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들은 한국에서 인지도를 높이는데 (예전 SM에 비하면) 그렇게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SM의 돈줄이 말랐을수도 있고 그밖에 이런 저런 이유가 있었겠지만 슈퍼주니어의 역할은 처음부터 SM의 이른바 '중국공정'이 완료될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 공정이 완료된 직후 미련없이 '중국'으로 건너가 그야말로 SM의 중국 간판으로 활약합니다. 동방신기를 위해 닦은 길을 슈퍼주니어가 어부지리로 혜택을 본 셈이 되겠네요.

이렇게 SM이 점점 국내 시장에서도 딱히 대박을 낳지 못하던 와중에도 동방신기는 소리소문없이 일본에서 기반을 닦고 있었습니다. SM도 물론 그쪽을 신경쓰고 있었습니다만, 그들은 뭔지 알 수 없는 믿는 구석이 있는 듯 했죠. 동방신기를 공동소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손 안대고 코푸는 입장이었던 SM이 특별히 불만이 있었을 턱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AVEX와 동방신기 본인들 입장은 상당히 달랐던 것 같은데요. 그도 그럴것이 그들이 전개하는 음악 성향이 한국에서 활동하던 때와 정말 너무 많이 차이가 났기 때문입니다.


AVEX는 원래 아이돌을 육성하는 기획사가 아닙니다. 그들이 동방신기를 택하고 동방신기에 공들이는 과정에서 실력이나 가진 내공을 철저히 깔아뭉개고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음악을 배정하는 일은 거의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있죠. 마케팅은 맞춤으로 하지만 자신들이 추구하는 음악에 있어서는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자부심이 과해 미국 진출 후 빚더미에 앉게 되기도 했습니다만) 그래서인지 동방신기는 하마사키 아유미나 오오츠카 아이, 코다 쿠미 등 주로 거물급 여성 가수들이 중심이 되고 있는 AVEX본사가 아닌 당시로서는 신인에 가까웠던 EXILE이 소속되어 있는 '리듬존'소속으로 활동하며 지금의 EXILE과 거의 유사한 음악 색깔과 육성, 마케팅 전략을 적용받게 되는데요. 이게 생각보다 조금씩 먹혀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음반 판매에 있어서도 팡 터지다 바로 사라지는 게 아닌 차분히 50위권 내를 오래 지켜나가는 일이 많아지던 것도 이 시기죠.


'하라는 음악'이 아닌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 성공을 하게 되면 앞서 예를 들었던 '원더걸스'의 사례와 정 반대의 결과를 낳게 되는데요. 이른바 '원 소속사에 대한 불신'이 그것입니다. 특히 한국에서 시아준수가 당했던 '아이돌답지 않은 외모'로 인한 무시는 거의 전설적인 수준이었는데요. 일본에서는 한국에서 맴버 중 가장 인기가 많았던 아이돌다운 '유노윤호'를 제치고 톱에 나서는 둥 전세가 역전된 점도 많은 영향을 끼쳤을것이라 생각합니다 (일본에서의 유노윤호는 맴버 전체의 인기에 비해서는 거의 존재감이 없는 수준입니다) 게다가 이런 활동의 극단적 변화 속에서도 특별히 한국에서의 위상을 잃지 않으면서 한국에서 발매된 미로틱으로 50만을 돌파하는 등 이전과 달라지지 않은, 아니 오히려 더 높아진 위상을 얻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 점도 큰 영향을 끼쳤을것이라 사료됩니다. 미로틱 이전, 동방신기는 국내에서 거의 마케팅을 전개하지 않았기에 인지도가 많이 낮아진 상태였음에도 결과가 좋았다는 것은 그들의 멘탈 깊숙한 곳에 어떤 완고한 무언가를 만드는데에 부족함이 없었겠지요

아이돌 형태의 그룹도 노래 못하면 쳐주질 않는 AVEX, 사진은 최근 고무로가 밀고 있는 AAA


이런 와중에 일본에서는 동방신기의 영향력이 점차 내실을 갖추고 가속엔진을 달기 시작하는데요. 다년간 다져온 내실에서 커가는 나무는 거침이 없었고 그들은 2008년과 2009년 그룹 결성 이후 최전성기를 맞으며 쾌진격을 계속합니다. 이와 거의 동시에 일본은 이 시기부터 음반 시장, 특히 음반 판매율 평균치에 있어 거의 전년도의 반토막 수준으로 급락하게 되는데요. 대형 신인들의 잇따른 실패와, 장기불황으로 인한 음반 시장의 침체, 그리고 자스락이라는 일본 저작권단체의 너무나도 완고한 폐쇄적 정책으로 인해 시장이 빠르게 디지털화하는 변화의 흐름을 더디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국민들이 음악을 접할 기회를 상당 부분 제한하게 됩니다. 이와 함께 일본에서는 아이팟의 보급이 거의 안정권으로 접어들어 아이팟 음원 다운로드 시장이 순수 음반 시장을 잠식해가는 이른바 '검은 배'효과가 현실화되고 있어서 젊은 층들은 이제 더 이상 음반을 사지 않게 되었죠. 싱글 시장은 그럭저럭 명맥을 유지하게 됩니다만 앨범 시장에서는 정말 가창력이 있는 깊은 인지도의 가수들조차 100만장을 팔기 힘겨워하는 실로 상상하기 힘든 일이 현실화되고 있었습니다.

동방신기는 바로 이 때와 맞물려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즉 '가창력'과 '아이돌'의 중간자적 역할을 하며 20대 이상의 소비 연령층에게 대거 어필하게 되죠. 이같은 음악계의 상대적 고연령층시장은 '아이팟'을 활용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음반을 구매하는 세대가 대부분으로 이들은 아라시 이후에 등장한 쟈니즈표 아이돌들을 동방신기가 가볍게 짓밟는 것을 가능케 한 가장 강력한 우군이 되어줍니다. 아무리 오리콘에서 음원 판매 비중을 반영한다 한들 일본 레코드 대상은 여전히 실 음반 판매 비중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사실 그게 실제 인기와 수익성에 결부되어 있기도 하니까요. 다시 말해 동방신기는 실제 얻는 인기 수준을 가지고 비교해봤을때 거의 동급수준의 아이돌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내줄 수 있는 파워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는 단지 음반시장뿐만이 아니라 콘서트 등 실질적인 구매력을 가늠하는 부분에 직결되는 것이죠.

' 관련글 > 동방신기' 콘서트 보고 싶은 가수 2위 선정 <

사실 음반 시장의 침체는 전통적으로 음악성에 승부를 걸어왔던 AVEX에는 거의 치명타였습니다. 하마사키 아유미나 오오츠카 아이 등 간판 레코드이터들이 국내외적으로 예전만 못한 부진에 휩싸인데다 자금 사정마저 좋지 못해 한때 납세자 3위에 올랐던 고무로테츠야가 사기죄로 구속되는 등 이런저런 내홍으로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죠. 이런 와중에 동방신기의 독주는 AVEX를 거의 먹여살리다시피 하던 셈이었습니다. 이런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동방신기의 음반 판매량은 줄어들기는 커녕 더 늘어났으며 마치 가뭄이 들어 물이 줄어드는 가운데 드러나기 시작하는 바위산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죠. 그 페이스는 정말 대단해서 보이그룹의 철옹성이라 불리던 쟈니즈 라인을 그들 아래로 속속 떨구며 정상권을 향해 진입합니다. 이들의 인기는 그들의 이름을 건 방송 하나 없이 순수하게 음악 활동으로 이루어낸 성과이기에 더 대단했고 가치가 있었으며 급기야는 쟈니즈 라인들이 동방신기의 발매 시기를 피해 음반을 발표하는 그야말로 '대놓고 견제'까지 이끌어낼 정도의 존재감을 발휘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들이 데뷰한지 딱 5년째 되는 2009년,
이미 예고되었던 것과 다름없는 사상 초유의 계약 분쟁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는 본의아니게 단지 SM만의 문제가 아닌 AVEX와 일본 가요계 전반이 직 간접적으로 관여된
생각보다 상당히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사건이 되고 마는데요.
국내에 보도된 단지 소속사와의 계약금 분쟁 이상의 더 큰 무언가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하편에서 이어집니다.

4부작 기획 '대한민국 아이돌 산업을 말한다' 목차

제 1부 : 계약
제 2부 : 기획사
제 3부 : 2PM, 동방신기
제 4부 : 쟈니즈, 에이벡스
posted by RushAm 2010. 4. 25. 09:43
그냥 단편 기획으로 생각했던 게 쓰다보니 길어질 것 같아 일단 4부작으로 나누었습니다.
어쩌다보니 반말체로 시작했는데 그냥 반말체로 끝내볼까 합니다. 양해 바랍니다.




시대를 풍미했던 아이돌 그룹들, 그들은 그들과 같이 호흡했던 팬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팬들은 하나의 세대로서 함께 존재한다. 서태지 세대, HOT 세대 등 약 5년여간의 주기를 거치는데 5년은 정확하게 13세부터 18세까지 즉 1318을 거치는 주기이기 때문이다. 중학교 입학 직후부터 팬을 시작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아이돌 팬 역시 함께 졸업한다. 그렇게 고정팬층이 사라지는 아이돌은 자연스럽게 신인들에 치여 퇴출되고 또 다시 새로운 별이 나타나는 주기가 반복되고 있다.
                Seotaiji 15th Anniversary
 Seotaiji 15th Anniversary by taijin Jung 저작자 표시비영리


 
사회현상까지 일으킬만큼 폭발적인 아이돌그룹의 인기만큼이나 퇴출 후 그들의 관심이 세간에서 멀어지는 것 역시 빠르다. 그들에게 팬들은 남지 않고, 팬들을 위해 그들은 남아주지 않는다. 기획사의 전폭적인 영업력에 의해 만들어진 아이돌은 뭐 하나 할 수 있는 어떤 자구책조차 없이 껍데기만 남아 연예계에 버려지고 당연하게도 그들에게는 홀로 일어설 힘따윈 없다. 서태지, 신승훈, 김건모 ... 하물며 조용필까지 예전만 못할지언정 시대를 풍미한 가수로서 가요계에 남아 그들을 사랑했고 그들에게 청춘을 걸었던 팬들을 만날 수 있는 힘은 '음악성'이라는 단단한 기반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이들에게 음악성을 바라기에는 한참 부족해보이는 것이 사실이니까...

왜 그들은 가요계...아니 연예계에서 끊임없는 퇴출과 해체, 정든 맴버와의 결별, 소속사와의 분쟁을 수십년째 반복해오며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는 자기자신들의 존재를 팬들 앞에서 지워버리는 것일까? 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일까?, 공화국 연구소에서는 이같은 현상이 지속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아이돌 산업의 문제점과 현주소를 짚어보고 이같은 병폐들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불공정 계약

아이돌 그룹의 노예계약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몇 년 주기로 반복되고 있는 기획사와 아이돌 그룹간의 불공정 계약 분쟁과 이에 따르는 양측의 여론전쟁은 매번 씁쓸한 뒷맛만을 남긴 채 어느 한쪽도 승리자가 되지 못한 채 끝나버리고 그들을 응원하던 팬들은 그들에게 걸었던 학창시절 청춘의 추억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채 울부짖는다. 겉보기에는 떠나는 자와 떠나는 자를 잡는 자의 실갱이로 보이는 이 구도는 사실 3자구도로 봤을 때 돈을 더 벌고 싶은 자 (아이돌)와 돈을 더 주고 싶지 않은 자 (기획사)의 싸움일 뿐이며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나 순수하게 떠나지 않기만을 기원하는 쪽은 어느쪽도 아닌 그들을 응원하던 팬들 뿐이었다. 1318을 졸업하고 아이돌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되더라도 누구나 첫사랑을 잊지 못하듯 언제나 그 자리에 바라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소녀시절 추억으로 좋은 모습만 간직하고 싶었을 뿐인 그들에게 남는 건 결국 아무것도 없다.

어느 한쪽도 승리하지 못하는 이 지리멸렬한 싸움은 왜 시대가 변하고 그 문제에 대한 분석과 지적이 매번 끊임없이 반복 지적되고 있음에도 나아지지 않는 것일까? 당연하겠지만 여기에는 뿌리부터 잘못되어 있는 대한민국 아이돌 산업의 병폐가 작용하고 있다. 우선 기획사의 역할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 대한민국의 기획사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원석을 처음부터 발굴해내 자신들만의 철학에 맞는 완벽한 로봇으로 길러내는 데에 수억을 쏟고 그렇게 만들어진 그들에 맞는 장기 플랜을 준비하고 그걸 그대로 운용하면서 중간중간 발생하는 스캔들 등의 리스크까지 관리해내야만 한다. 당연하겠지만 여기에는 정말 천문학적인 인건비가 들어갈수밖에 없고 기획사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정도로 거대화될수밖에 없다.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젊은이들이 흔히 '취업'을 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할까? 우선 원하는 목표 기업을 정하고 그 기업이 요구하는 입사 기준에 맞게 자신을 준비한다. 토익 점수를 원하면 토익학원에 다니고 면접이 까다로우면 면접대비학원, 논술이 필요하면 논술학원, 특정 자격시험이 필요하면 또 그에 맞는 학원을 다닐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을 준비하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을 앞으로 지원하게 될 회사에서 지원해줄리는 없다. 모두 자비로 자신을 그 회사가 요구하는 인재상에 맞추어 도전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취업 풍경이다.

그런데 똑같은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연예계의 경우는 기획사 문만 통과하면 그 뒤로는 음악 실력 향상과 댄스, 연기 등 거의 대부분의 자가발전비용을 기획사 책임 하에 전액 부담하는 것이 완전히 일반화되어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사회적 문제가 작용했는데 첫번째가 HOT를 필두로 아이돌 산업이 최전성기를 맞던 20세기말 무렵 사이비 연예기획사가 급증하며 나이 어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고액의 레슨비를 받아 가로채는 사기 사건이 기승을 부린 후 메이저 기획사들이 길거리 캐스팅에 있어 레슨비를 요구하지 않는 풍토가 관행으로 자리잡은 것이 첫번째이고 두번째는 오디션 문화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지망생을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 자체가 부실했기에 조금 가능성 있고 외모가 좀 된다 싶은 아이들을 주먹구구식으로 캐스팅하는 방식이 산업 전반에 뿌리깊게 박혀버렸기 때문이다.

이렇듯 헛점이 많은 캐스팅 방식은 뒷돈, 성상납 등 다양한 비리의 온상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여기에 아이돌 산업 특유의 이른바 '팔리는 캐릭터'이론이 접목되면서 점차 음악성이나 기타 예능 관련 재능과는 거리가 먼데다 공정성마저 결여된 선발 기준이 고착화된다. 음악이나 연기는 가르치면 그만이지만 외모는 아무리 뜯어고친다 한들 한계점이 분명히 존재할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시장이 점차 그 음악이 어떤 음악이냐보다는 누가 부른 음악이냐에 더 관심을 갖는 즉 '음악이 별로면 뜰 수가 없는 음악시장'에서 '음악이 별로더라도 잘나가는 아이돌이 부르면 팔린다'는 식의 가치관 대 이동이 이미 끝난 상황이었으니까, 당시 기획사들의 선택을 비난하기에는 음악 시장이 어지간히도 미쳐있었던 것 같다.

어떤 재능도 없이 그냥 소녀들에게 팔릴 만한 외모를 가진, 그리고 컨트롤하기 쉬운 뚜렷한 개성을 가진 아이들을 선발해 그들을 만드는 모든 비용을 전부 부담하는 이러한 관행은 이른바 인격체에 대한 '지분 개념'을 만들기에 이른다. 이들은 에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녀석들이었고 기획사에 들어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기획사의 돈을 들여 가르쳤기 때문에 이를 충분히 보상받아야한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인데 당연하게도 법적인 효력이 없기 때문에 분쟁의 불씨로 남을 수 밖에 없었고 이것이 결국 대부분의 기획사와 이이돌 간 분쟁의 주요 원인이라 하겠다.

우선 기획사의 역할이 지금보다 훨씬 더 축소되어야 한다. 기획사는 말 그대로 '기획'에만 충실한 기획사가 되어야 함이 옮다. 오디션은 '연습생'을 뽑는 게 아니라 '즉시전력'을 뽑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와야 하며 이러한 선발 과정에는 어떤 불합리한 절차 없이 투명하게 진행, 있을 수 있는 혼란을 사전에 잠재워야만 한다. 기획사는 회사이며 그들에게 있어 지망생은 재산이라기보다는 고용된 사원이라는 인식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관행'보다 법이 우선되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지망생 역시 단지 사회적 우월함을 위한다든지 신기루같은 꿈을 동경하여 연예계로 나서는 불확실한 미래만으로 쉽게 도전을 결정해서는 곤란하다. 어떤 업계도 마찬가지겠지만 자기 자신의 가치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의 지분을 100% 가지고 있지 않으면 어떤 형태로든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 연예계에 재능이 있고 그 재능을 잘 살려 진출을 꿈꾼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기획사의 오디션이 아니라 노래와 연기 연습 그리고 개인 트레이닝을 통해 자기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그리고 그 가치를 인정해줄 수 있는 기획사에게 자신의 가치를 보이고 지불받는 파트너 관계로서 계약에 임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태 키워줬더니 배신하더라'는 논리는 '부모'를 제외한 어느 누구에게도 쓸 자격이 없다. 적어도 대한민국은 그런 사회다. 노예 제도가 없는 대한민국에서 인간에게 있어 계약서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수 없다. 물론 그 반대편에 있는 피계약자 역시 자신이 응당 해야 할 역할인 '자기계발'을 회사에게 떠넘겨서도 안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할것도 없이 두 가지 모두 거의 동시에 바뀌지 않는 한 어느 한쪽의 희생만으로는 답이 나올 수 없는 것이 아이돌 산업의 '계약'문제이니만큼 급진적이지 않더라도 보다 차분히 산업 전반의 성숙화를 도모함이 옮을 것이다.

계약은 결국 지분싸움이다.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관행'이라는 패착이 가져온 아이돌 산업의 불공정 계약 문제는 말로서는 한없이 단순한 '인식 변화'라는 대수술을 감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어려운 문제다. 관행이란 어떤 산업을 막론하고 '기존 세력에게 한없이 유리하게 짜여진 트릭'임에는 분명하므로 끊임없이 세대교체를 이루어야 할 사회 전반에 있어 좋은 영향은 단 1g도 끼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이를 바꿀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결정권자인 기득권자들은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그대로 있는 것이 전혀 손해될 게 없기에 바뀌기를 거부하고 있고 그렇게 아이돌 산업은 서서히 도려내기 힘든 깊숙한 곳까지 썩어들어갈 뿐이다. 누가 순순히 쥐고 있는 권리를 기꺼히 나누는 데에 기쁘게 협조해줄 것인가? 국회의원이 자신들의 월급을 결정하는 조례안에 만장일치를 누른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결코 쉽지 않을 것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다음 편에서는 기획사의 본질적인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4부작 기획 '대한민국 아이돌 산업을 말한다' 목차

제 1부 : 계약
제 2부 : 기획사
제 3부 : 2PM, 동방신기
제 4부 : 쟈니즈, 에이벡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