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04. 9. 26. 04:02
연예인의 대표주자라고 하면 사람들은 역시 가수를 제일 먼저 떠올리고, 오죽하면 탤런트들조차도 멀티플레이어 아이돌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음반을 내는 경우가 부지기수일 정도로 가수라고 하면 그야말로 누구나 주목받는 대중적인 우상이라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정말 음악을 하고 싶어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줄어들고,
자신의 명예, 인기를 위해, 스타성을 위해, 그냥 가수라는 직업이 탐이 나서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은 점차 한국 가요계의 경쟁력을 잃게 만들고 있다. 순수성을 가져야 할 가수라는 직업이 다른 직업 연예인 소속사의 사업 영역 확장으로 이용되고, 가창력보다는 쇼 프로그램에서의 재치와 얼마만큼의 TV 출연으로 인한 홍보 여부가 성공의 척도로 등장하면서 원래 그 무대에 있어야 할 재능 있는 수많은 유망주들이 홍대, 영화음악계를 전전한다. 우리나라 애니음악도 비슷한 맥략에서 그들의 도피처, 혹은 소위 밤무대라 불리우는 야간업소와 비슷한,
마이너리그의 개념으로서 성장해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데뷰 때부터 메이저 음반 기획사의 홍보 수단으로 활발하게 발전하고 있는 옆나라의 애니음악과는 사뭇 다른 형태지만, 일본도 충분히 그러한 시기를 겪었다. 옆나라라고 해서 처음부터 애니 인프라가 높았던 것도 아니고, 지금도 애니음악이 대박흥행의 보증수표가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데다 반짝스타로서 생을 마감하는 가수들이 부지기수로 애니음악계를 거치는 것을 볼 때 애니음악은 어느 나라나 비슷한 수준에서 문화적 가치를 지니는지도 모른다.

정여진
이름으로 듣기에는 다소 생소한 이 가수, 우리가 항상 어떤 TV프로그램을 볼 때나 일반인이라면 스텝롤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는 것이 보통이고, 이는 애니메이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열성적으로 정말 1초나 제대로 나올까 말까 하는 스텝롤을 바삐 읽어내려갈 정도의 정성을 보이는 매니아가 아니라면 당연히 정여진이라는 이름은 생소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가수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노래로 기억되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듯, 그녀의 목소리는 누구나 어딘가에서 한번 정도는 들어봤던 것처럼 아련하게 우리 기억속에 남아있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영화 체인지의 테마곡과, 투니버스에서 방영되는 애니메이션의 번안곡을 두루 맡기 시작하면서부터지만 그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오랫동안 애니음악과 함께 인생을 살아온 전설적인 보컬이라 불리울 만큼의 오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무려 27년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그녀의 애니메이션 데뷰곡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필자 본인도 최근에서야 알게 된 사실, 전자인간 337, 똘이장군, 그레이트 마징가, 빨간머리 앤, 보물섬, 로보트 킹, 개구리 왕눈이,요술공주 밍키,허클베리 핀의 모험,... 그 시대를 유년기로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정말 정겨운 동요처럼 기억되고 있는 그 음악들이 모두 그녀의 보컬로서 불리웠던 것들이다. 그녀 나이 5세부터 시작된 애니음악 인생 27년, 어린아이들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애니메이션계에서 제대로 된 음악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수많은 시간동안 그녀는 한번도 노래를 멈추지 않았고, 지금도 언제나 자신의 목소리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노래를 불러줄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녀가 불러 온 애니음악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그녀가 인정받기까지는 정말 수많은 시간이 흘렀다. 우선적으로 애니메이션이라는 분야가 아동물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까지 수많은 시간이 필요했으며,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들의 권리 회복에 또한번 수 년이 걸렸다. 가수라는 직업, 연예인으로서 대중에게 존재가 공개적으로 노출되는 공인이라는 개념이 매스미디어 도입 당시부터 굳어져 왔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귀천을 잣대질당하며 성장해왔던 음악들, 그 속에 애니음악이 있었다. 아직도 애니음악의 자체작곡 비중이 높지 않는 상태에서 수많은 애니음악 보컬들이 가수들의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는 오리지널리티를 갖지 못하고 원곡 그대로 따라서 불러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에 이들의 음악성이 인정받기에는 아직 많은 어려움이 있고, 최근에서야 애니음악 업계 자체를 주목하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가수들이 자신들의 인기를 보다 고취시키고자 마치 정치인이 득표유세를 하는 식으로 반짝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번안곡 가수라는 딱지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애니음악인들에 대한 편견의 시각은 쉽게 나아지기는 힘들 것이다.

세상 일 쉬운 게 하나 없다는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믿고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면서도 일의 귀천, 직업의 귀천을 매기고 보다 쉬운 일이라는 것을 찾아 취업난 속에서도 사무직을 선호하는 사회, 음악계도 이러한 개념에서 1류 2류를 나누고 인기가 가늠되며, 사람들의 관심도
차이가 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애니음악을 하는 보컬들이 2류,3류라 칭할 정도로 가창력면에서 메이저 가수들과 경쟁이 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메이저 가수들에게 정말 각양각색으로 쏟아져 나오는 정체불명의 새로운 음악장르를 지닌 곡들만을 부르게 했을 때 얼마만큼 그 곡들을 소화할 수 있을까? 팝, 발라드 가수가 힙합을 하면 자연스러워 보일 리가 없고, 록가수가 트로트를 부르면 트로트만의 감칠맛이 나지 않는 것이 상식인데, 특별히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매 작품마다 애매모호한 곡 색깔을 가지는 애니음악들을 꾸준히 평균 이상으로 소화해 낼 수 있는 가수가 그리 흔하겠는가? 매 레코딩때마다 듣도보지도 못한 희안한 음악들을 보컬로서 소화해낼 수 있는 능력은 1류 2류로서 표현할 수 있는 가창력의 기준으로 평가가 불가능한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대중의 평가는 자신의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보다 극명하고 때로는 매우 냉정하게 스타를 만들어내고 퇴물을 걸러낸다. 연예계를 치열한 격전지로 만드는 것은 연예인 본인들이 아닌 대중이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연예인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은 TV에 나와서 한번이라도 대중들에게 얼굴을 내밀고, 내밀었으면 자신의 얼굴이 한번에 기억될 수 있도록 소위 말하는 ‘끼’를 보여주어 존재를 각인시키는데에 열중이다. 대중들은 그들이 가요프로그램에 나와서 노래를 부르면 노래를 어떻게 부르는지 보다는 그들이 노래를 부른다는 그 사실과 그들이 TV에 한번 더 나왔다는 사실만을 받아들일 뿐, 특별히 음악으로서 그들을 기억하기는 힘들다. 이렇듯 연예인들마다 각자의 정체성이 흐릿해지고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장인이라 불리울만한 연예계의 전설적인 인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은 필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표현하지 못할 아쉬움일 것이다. 연기를 겸하고 있는 가수, 연기자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출시했던 수많은 탤런트들, 그들이 과연 10년 후에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노래 잘했던 탤런트?, 연기 잘했던 가수?, 사람의 능력은 200%라는 오버 페이스 속에서도 언제나 1이라는 능력을 부여받으며 그것이 어떤 한 분야에 전부 투입되지 않고 분산되면 그 존재감은 희미해질 뿐이라는 것을 당장 지금을 사는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전설이라는 의미가 현대에 와서는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할 수도 있지만, 자신이 무언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로 최대한의 결과를 도출해낸다는 것은 연예인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의 누구라도 생각하고픈 인생의 성공이란 달디단 열매의 맛이 아닐까?, 그 성공이 부와, 명예 그리고 대중적 인기로 한정되기 보다는 가수로서 자신의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가수에게 노래를 불러주기를 바라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열망을 함께 나누면서 살아가는 인생 그 자체에서 성공이라는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자신의 노래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 무엇보다 가장 큰 행복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그녀, 정여진처럼 말이다.

- Rush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