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09. 10. 12. 13:20
아이폰 출시에 대해 말들이 많다. 뭐 원래 말들 많았지만 출시된다고 확정이 된 듯한데도 말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문제다. KT의 요금제도 말이 많고, SK의 허울좋은 앱스토어도 자주 까이고 있다. 뭐 정당하네 그 정도면 싸네, 애플이 농간부려서 어쩔 수 없네 하는 의견부터 미국의 국민소득까지 제시하며 KT를 까는 의견까지 가지각색이다. 그런데 논란들을 아무리 읽어도 도무지 코어에 접근한 것 같지 않은 개운치않은 기분이 든다. 대체 이 논란의 끝은 어디일까?

개인적으로는 일단 '원산지'라고 할 수 있는 '미국'과 비교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애플'이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홈그라운드다. 한국에서도 삼성이나 현대가 마음껏 안방마님노릇을 하고 있듯이 애플도 마찬가지로 자국 법을 잘 이해하고 최대한으로 활용해 마케팅을 성공해낸 자국의 사례를 우리나라로 끌어오기엔 무리가 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서 이미 몇 년 전에 출시하고 히트를 친 것까지 검증된 것을 들여오는 '수입국'이기 때문이다. 비교 대상이 잘못됐기 때문에 까는 쪽도 옹호하는 쪽도 설득력이 없게 느껴지는게 당연하다.

그렇기에 비교대상은 원산지인 미국이 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같은 동양권, 그중에서도 비교적 하드웨어에 대한 시장 장벽이 높은 일본이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인데, 아이폰의 실패와 성공 사례를 모두 갖고 있다는 시장적 특성에도 기인하지만 무엇보다 아이폰을 바라보는 시각과 받아들인 관점 측면에서 일본의 소프트뱅크와 한국의 KT는 정말이지 북극과 남극의 거리차이만큼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요금제와 더불어 논란이 그칠 줄 모르고 있는 한국의 아이폰 문제와 이미 1년여 전 아이폰을 출시하여 시장의 쓴맛과 단맛을 모두 느끼고 있는 일본 소프트뱅크사의 사례를 통해 현재의 문제 원인을 보다 명확히 하고자 한다.

처음 아이폰이 일본 출시를 앞두고 에플은 당연하게도 업계 1위 도코모의 문부터 두드렸다. 반응은 지금의 SK와 비슷햇다고 한다. 그래도 이야기가 꽤 진척되다가 수익 배분 등 세세한 부분에서 의견이 엇갈려 파행을 겪었고 일본 출시가 물건너가는 듯 보였지만 그 순간 업계 하위 소프트뱅크가 손을 내밀었고 대부분의 조건을 급 수용하며 인터셉트를 한다. 그렇게 모험심 강한 소프트뱅크는 이른바 사운을 걸고 아이폰을 독점 출시하게 되는데, 사실 당시 관점에서 보자면 도코모의 반응이 그리 이상할게 없었다. 이미 기존 자바플랫폼에 최적화된 콘텐츠가 쌓여있는데다 도코모동화 등 자체적인 챌린지 10 프로젝트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덩치크고 무거운 아이폰이 시장에 먹힐 리가 없다는 것을 파악한 예측이 지금와서 결과론을 들어 빗나갔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이미 자사 휴대폰 전용 웹 서비스를 최적으로 활용한 휴대폰 소설 등 기존 휴대폰의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폰의 앱스토어는 그저 자사의 수익을 갉아먹는 존재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리라.

보다폰과 야후재팬 인수 이후에도 2차 수익 모델을 만들어내지 못하던 소프트뱅크의 모바일사업계열은 아이폰 출시에 많은 기대를 걸었지만 초반에는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일본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물론 발매 당시에는 아이폰을 기다려온 일부 매니아들에 의해 이른바 '초회판 확보'라는 이름의 긴 줄이 늘어서는 풍경은 연출되었지만 그 이후 이렇다할 붐을 타지 못했다. 즉 도코모의 아이폰에 대한 판단과 근미래 예측은 정확했다는 것이 다시금 증명되며 한동안 아이폰은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된다. 소프트뱅크는 이런 상황에서 더욱 공격적으로 '아이폰'을 일단 '보급'부터 시키고 보자는 식의 '무료폰 정책'을 들고 나오는데, 이 무료폰 정책은 다른 모델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가전 회사와의 제휴로 소프트뱅크의 손실은 그리 큰 편은 아니었던 것에 비해 애플사와의 적대적 제휴를 맺고 있던 소프트뱅크로서는 아이폰의 무료폰으로 인한 보조금 정책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커다란 손실을 가져올 것임에 분명했음에도 소프트뱅크는 이를 강행한다. 항간에서는 소프트뱅크가 아이폰 전략이 실패했음을 자인하고 재고 떨이를 한다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소프트뱅크는 묵묵히 언제나처럼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보이는 듯한 마케팅을 아이폰에서도 전개해나간다.

그렇게 아이폰은 일본에서 차츰 붐을 이루기 시작한다. 이미 아이폰에 대한 보조금 정책은 5월 말로 종료되었지만 아이폰의 판매량은 이전에 비해 전혀 줄지 않았다. 5월 판매량 1위를 기록할 당시만 하더라도 보조금으로 인한 반짝 증가로 예측했던 언론들은 이같은 시장의 반응에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일본 시장은 그렇다. 한번 붐을 일으키기는 참 어렵지만 붐을 일으키기 시작하면 그 붐은 대단히 오랫동안 타오른다. 소프트뱅크는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일본 시장을 제대로 파악하여 회심의 일격을 날린 셈이다. 내부적으로 손실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모두 안될거라는 시장 관념을 뒤엎었다는 것에는 그 의의가 결코 작지 않다. 그리고 소프트뱅크는 지금까지 그들이 벌여왔던 사업들을 비추어 볼때 중장기적으로는 분명 수익을 만들어낼 것이다. 일면 급진적이고 아무생각없이 보이는 소프트뱅크의 마케팅이지만 그간의 사업들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었으니까.

일본 이야기는 그만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KT를 바라보자, 일단 출시 전부터 시끌시끌한 것부터가 조금 다르다. 일본은 출시를 두고 업계 내에서의 선정 과정에서 밀고 당기기는 있었지만 일단 업계 전체적으로 시큰둥한 분위기였고 무려 정부가 나서서 아이폰 출시를 가로막는 지경에 이른다. 무슨 휴대폰 하나를 두고 정부가 출시를 하네 마네 하는 부분에서는 다른 분들이 수많은 헛점 (GPS 맵 문제 등)을 지적해주셨기 때문에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3사 모두 아이폰을 별로 탐탁지 않게 어긴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1년하고도몇 개월이 흘러가며 아이폰은 잊혀질만하면 이야기가 나오고 정작 업계는 요지부동에 네티즌들끼리만 논란이 가중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을 무렵 갑작스례 이야기가 급진전되는데...그것이 바로 올 6월 무렵부터 돌던 갖가지 소문들과 8월에 이르러 그 소문이 본격적으로 현실화되면서부터다.

예컨데 업계는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하나같이 과감하게 지르지 못하는 소심함, 정권이 그대로 황금알을 낳는 정부기반이동통신전파사업을 사기업에게 통째로 안겨줘 탄생한 선경그룹의 SKT나 공기업의 태만함에 국가통신기간망까지 아무탈없이 물려받은 데에 따른 자립십 부족과 더불어 그저 이동통신을 SK에게 빼앗긴 것에 대해 '밥 떠먹여주는 사업'을 빼앗긴 것에만 열등감을 느끼는 KT나 오십보백보일테니까, 그들에게 있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도 충분히 잘 벌어먹고 있고 국민들은 욕을 하면서도 알아서 그들에게 돈을 가져다 주고 있으니까. 독점의 폐해를 정부조차 방관해주고 있으니 이들은 사업자로 치면 공무원 이상으로 태만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말로만 21세기 IT기업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는 트랜드기업이라고 떠드는데에는 구역질조차 나지 않을 만큼 역겨운 차원을 넘어서있으니까.

그런데 일본에서 소프트뱅크가 보조금 사업이 끝난 뒤에도 아이폰이 곧잘 팔리고 애플의 신 기종 3G S 도 아무런 장벽 없이 시장에 그대로 유입될 만큼 제대로 갖춰지는 모습을 보니까 이 철없는 초딩기업들이 슬슬 탐이 나기 시작했나보다. 내가 만들기는 싫어도 누가 만들어준 건 먹고싶다는 것일까?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토록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이던 업계가 갑자기 법률을 따지고 출시에 정보통신부까지 나서는 등 뒤늦게 이야기를 급진전시킨 이유가 사실 궁금했다. 처음부터 옹골차게 베타적인 입장을 취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무려 1년 이상 끈 문제를 단 2개월만에 법률문제해결부터 출시사업자까지 끝낼만큼 급진전시킬거였으면 에초 1년동안 충분히 시장평가하고 자체적인 입장을 정리해서 차츰 캠페인을 벌여나갔어야 하지 않았을까? KT는 도코모 이상으로 엉덩이가 무거운 기업이었을텐데 왜 그리도 빨리 끝내려 안달을 내셨을까? 왜 갑자기 기업이 중심이 되어 '정부가 방해해서 우리가 출시하고 싶어도 못내놓고 있다'는 식으로 여론을 자극했던 것일까? 왜 하필 일본이 아무도 예상치못하게 아이폰을 히트시킨 직후에?

장담컨데 KT가 출시를 계획하고 아이폰 요금제라며 내놓은 갖은 플랜들을 기획한 아이폰 사업에 관계된 내부 사람들 중 아이폰을 실제로 서비스가 되고 있는 곳에서 제대로 써본 사람들은 많지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아이폰이 왜 히트했는지 미국은 고사하고 가까운 일본에만 가더라도 그들의 요금 플랜이나, 사용자들의 이용 패턴은 따로 연구 용역을 줄 필요도 없이 한두달만 써봐도 알 수 있는데, 에초 출시를 그토록 바랬으면서 1년동안 정부가 방해해서 못 출시했던 기업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을 만큼 아이폰에 대해 무지함이 느껴지는 요금제다. 에초 이건 새로 아이폰에 맞게 만들어진 요금제도 아니고 기존에 있는 '스마트폰'요금제를 이름만 바꿔 냈다는 의견도 있지 않은가? 그들은 아예 '연구'자체를 하기를 귀찮아했던 게 아닐까? 그저 떠먹여주는 밥만 먹을 줄 아는 그들은 이미 시장이 검증된 다음에 들여오는 소심함에도 모자라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알아서 팔리려니 하고 앉아있다. 지금까지 벌여왔던 사업들을 비추어 볼 때 KT는 언제나 그래왔으니까, 일면 꽤 그럴싸해 보이는 이미지 광고로 수준있는 기업처럼 느껴지는 KT지만 그간의 사업들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었으니까.

KT는 결코 '아이폰'을 직접 붐을 일으키는 데에 돈을 투자할 생각이 없다. 이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어차피 아이폰이 돈을 벌어주면 그걸로 좋고 안 벌어주면 그걸로 끝이다. 일본 시장과 마찬가지로 스마트폰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한국에서 아이폰의 진입 장벽은 한두가지가 아닌데도 KT는 그저 가만히 앉아만 있다. 일단 아이폰을 산 사람에게는 애플하고 계약한 것도 있으니까 애플 몫을 제외하고 그간의 마진만큼 떼어먹겠다는 취지가 이번 아이폰 요금제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고, 이 요금제가 미국에 비해 싸다는 것을 강조할 뿐 일본과의 비교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에 의해 국민소득이 2배 이상인 미국에 비해서도 결코 싸지 않다는 게 속속 검증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에초 떠먹여줄 숟가락이 수십개나 되는 기업에게 아이폰이 갔다는 것 자체가 문제겠지만 '앱스토어'가 돈을 좀 번다고 '검증'시켜주니까 부랴부랴 그저 모양새만 배껴와서 결국은 떠먹여주는 숟가락을 하나 더 만들어낸 것 이외에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는 SK라고 딱히 나을 게 없다는 것도 우울한 현실이다.

하는 짓거리를 보면 저들에게 우리나라의 정보산업 근간을 맡겨두고 있어도 되는건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대통령은 임기라도 있지 이들은 몇 대에 걸쳐서 족벌경영을 한다 한들 지금으로서는 막을 재간이 없지 않은가 이런 병폐가 앞으로 몇십년이 더 계속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아직도 돈은 그들을 배신하지 않고 있는데다 정부는 지금 몇 대째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이미 사기업이 된 그들을 무슨 떠나간 자식새끼마냥 보듬기에 여념이 없다. 초고속통신품질 세계1위, 이동통신통화품질 세계1위가 이들 기업들이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땅에서 돈이 될지 안될지 모르는 사업에 과감하게 손을 대고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 끝에 이루어낸 성과가 아니지 않은가? '더 작게'만 외치던 MP3시장에 후발주자로 나선 애플의 덩치큰 아이팟이 세계를 석권하게 된 것이 애플의 브랜드 파워였던가? 아니면 미국 정부가 그들에게 타국 MP3의 무거운 관세를 매겨 진입 장벽을 만들어주는 보호무역속에 안정적으로 만들어지기라도 했던가? 삼성과의 메모리 제휴로 더 싼 가격에 내놓을 수 있는 경쟁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면 결국 '아이튠즈'라는 당시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콜럼버스의 달걀을 만들어내어 역습에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이미 노키아와 삼성이 장악한 레드오션 시장에 도전해 독자적인 시장을 확보하고 앱스토어라는 지속적 수익 모델까지 만들어낸 애플과 보수적인걸로 악명높은 일본에서 시장의 인식과 개념 자체를 뒤집어야 하는 모험을 감행한 끝에 본 궤도에 올린 소프트뱅크를 보고 고작 배운 게 '검증될때까지 기다리기'와 '남이 만들어낸 수익모델 따라하기'가 전부라니 차마 한숨조차 쉬어지지 않는다. 초고속통신망이 속속 깔릴때 당당하게 '6년됐는데...'라는 광고를 때리며 ISDN을 주구장창 팔아대던 KT의 모습이 벌써 10년 전이건만 강산도 변하는 마당에 그들은 뭐하나 변한게 없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텐가?
원래는 뒤에 하하하하하하....를 붙여야하지만 도무지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