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09. 8. 28. 10:25
20세기 말부터 지금까지 가장 장수한 유행어는 무엇일까? 다름아닌 '썰렁해!'이다. 국어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었지만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이 단어는 사실 유행하기 전 개그맨 최병서씨가 '병팔이의 일기' 라는 코너에서 처음 쓰기 시작했지만 당시에는 어감 자체로 웃음을 유도했을 뿐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이 단어가 가진 힘은 '기존 개그'를 비판하는 역설적인 개그 코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개그나 유머가 사라지지 않는 한 반영구적인 지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썰렁하다는 의미는 유행에 지나치게 뒤쳐져있거나 대중적으로 개그 코드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이른바 '마이 개그'인 경우를 뜻하며 최근에는 유행에 뒤쳐진 개그라는 의미보다는 마이개그, 즉 어떤 특정한 계층이나 배경 지식이 수반되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소수들만의 개그인 경우 그 소수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이같은 반응을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개그라는게 이쯤 되면 이미 개그 혹은 유머로서의 가치가 크게 반감된다고 할 수 있다. 그냥 단순히 1인과 1인 사이에 주고받는 농담 정도라면 아무런 상품적 가치가 없기 때문에 '썰렁해'라는 가벼운 힐난 정도로 끝나겠지만, 본격적으로 작품에 대한 가치를 사람들에게 파는 프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도 처음부터 '편의점'처럼 특정 계층을 소재로 다룬게 아닌 대놓고 '객관적 시각'을 표명했다면 더더욱 있어서는 안될 일일 것이다. '실질관객동화'는 그래서 약관 스무살의 프로에게는 너무나도 버거운 스타트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인지 비평을 시작하는 기분이 이전과는 조금 색다른 느낌이다

'실질관객동화'는 마치 메이저리그에 데뷰한 김병현의 사례처럼 아주 특별하다. 작가에 대해서 알려진 바도 별로 없을뿐더러 거의 데뷰작에 가까운 작품이 도전, 베스트를 순식간에 각개격파하고 메이저리그라고 할 수 있는 요일 웹툰에 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면 역시 젊은 나이에 비교적 다른 작품에 영향을 받지 않은 독창적인 포맷을 주창했으며 그 포맷이 아주 적은 확율이지만 시대적 트랜드와 독자들의 성향에 한 방에 명중하는 커다란 운을 부여받았기 때문으로 생각하는데 실제 작가 본인의 노력이 단지 운 만으로 치부되기는 힘든 감이 없지 않은만큼 단지 보여지는 부분만으로 그의 포텐셜을 단정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더 아쉽게 느껴지는지도 모르는 부분이 바로 왜 데뷰작으로 '실질객관동화'를 택했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물론 작품이 데뷰작으로는 정말 이례적인 대히트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선택에 대한 문제는 터무니없는 결과론이 될 수도 있겠으나 타이틀에서 보이는 것처럼 작품 역시 동화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면 어떨까? 하는 컨셉에서 나온 작품이니만큼 신인 작가, 특히 경험이 많다고 하더라도 아직 한계가 있을 약관의 나이에 도전할 만한 장르는 아니지 않은가 하는 섣부른 걱정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며 실제로 그 걱정이 개인적인 판단에 의거했을 때 상당 부분 들어맞고 있다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나름대로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하려는 노력이 보이기는 하나, 초창기의 '한차원 다른 재조명'보다는 주로 패러디에 의존하는 모습이 짙어지고 있으며 이는 실질객관동화만이 가지고 있었던 아주 특별한 개성이었던 '예측 불가능한 세계관'이 '예측 가능'하게 되고 있다는 아주 치명적인 문제를 내포하게 된다. 연재를 언제까지 할 생각인지를 미리 정해두고 있는 것 같은 뉘양스를 풍기고 있는 걸로 봐서는 100회 조금 넘는 수준에서 완결이 될 것으로 보이고 있지만 과거 베스트작 시절에 보여주었던 센스가 점차 독자들에게 간파당하고 있는 실정에서 미리 준비해둔 것으로 보이는 갖가지 소재들이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패러디'이든 '재조명'이든 여기에 쓰이는 동화와 쓰이는 웃음 소재들을 선정하는 데에 한계가 너무 명확하다보니 작가 본인의 경험 부족과 맞물려 매화 상당히 어렵게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작가의 연령대가 비교적 낮은 편에 속하다보니 웃음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연령대 범위가 너무 좁은 개그 코드를 삽입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고 작가는 작가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하이레벨 개그를 활용하고 있지만 이게 개그를 제대로 이해가 가능하도록 풀어내는 능력이 부족하다보니 '동료 만화가'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도 다양한 연령대가 공존하고 있는 독자들의 반응 중에는 '어랏?'하는 반응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는 어쨌든 개그 옴니버스를 추구하고 있는 실질객관동화의 생명력에 직결되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경험 부족을 이유로 안주시키기에는 문제가 꽤 깊다.

다만 재미있는 점은 그 역시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매번 한결같이 '실소도 웃음입니다'라는 주장을 작가의 말에 써넣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험 부족으로 인해 독자들에게 빵 터지는 작품이 될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웃으셨다면 좋게 봐달라는 젊은 작가다운 센스라고나 할까? 자신의 개그가 좁은 계층에게만 통할 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충분히 알고 그에 대해서 양해를 구하는 자세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건방진 겸손'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은데, 작품만큼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작가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부분으로 아직 처녀작에 불과한 실질객관동화이지만 작품의 마지막, 그리고 차기작에 대한 작가 본인에 거는 기대를 숨기기 어렵게 만들어준다.

천편일률적인,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수도 있었던 옴니버스 웹툰에서 젊은 발상에서 등장한 보기 드물게 '신작'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는 작품이 나와주었다는 점은 무엇보다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겠지만 조금 나중에 이 포맷을 써먹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독자로서 가지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여름의 파란 사과는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지만 사과는 역시 늦가을 사과가 인정받듯이 작가는 베스트 시절과 지금의 시간차가 거의 나지 않음에도 '그림체'나 다시 재구성한 내용적 측면에서 이전보다 한층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며 그것도 아직 질풍노도의 청소년기처럼 '급성장'중인 만큼 지금 작품도 좋지만 너무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 나머지 자신의 성장 포텐셜을 정체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게 일개 독자로서 가지는 유일한 바람이다. 진심으로 그의 '비상식적인' 성장을 기원해보며 비평을 마칠까 한다.

그림 사용을 허가해주신 무적핑크님께 감사드립니다.
요청하신 웹툰 주소 링크입니다.
'실질객관동화' 보러가기
다음주는 번외판 '웹.툰.호.평'이 나올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