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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ushAm 2009. 9. 22. 10:44
흔히 '잘 된 작품'을 말하고자 할 때 '어떤 점이 훌륭하고' 어떤 점이 잘 되었고 어떤 점이...등등의 말들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렇게 쓰여진 글은 개인적인 사견으로 보았을 때 글로서의 가치가 그닥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는 것 이외에 아무런 메시지도 전달하지 못했으니까, 비평은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고 그 의견이 타당하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쉽지만 호평은 '추천사'와 같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이 작품의 품질보증'을 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쓰는 부담이 한결 심한데, 필자가 처음에 '웹툰'과 관련된 글을 연재하기에 앞서 '비평'이라는 키워드를 택하게 된 이유도 필자의 능력 상 '호평'이나 '리뷰'를 소화해낼 능력이 갖춰지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필자는 '좋은 작품'에 대한 평가를 '어떤 면이 좋다'라고 부분적인 부분을 칭찬하기보다는 '약점이 없다'라는 표현으로 대체하곤 한다. 어떤 부분이 좋다는 것은 개인적인 의견으로 그 사람과 비슷한 취향과 생각을 가진 사람 이외에는 혹평을 받을 수도 있는 부분일 가능성이 있지만 '약점이 없다'는 것은 적어도 장르적인 취향을 제외한 과반 이상의 독자들에게 '비평'을 받을 거리가 없는 작품이라 말할 수 있으니까 취향에 따른 평가 번복이 필요가 없다. 좋은 작품도 약점이 많을 수 있으며 그럭저럭 평범한 작품이지만 약점이나 빈틈을 찾기 어려운 작품이 있기 때문에 이를 충분히 구분하여 양쪽 모두 제각각 걸맞는 평가를 내려 주었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웹툰비평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보기 시작한 '웹툰'들은 언제부터인가 단순 감상이 아닌 '비평'을 위한 감상이 되기도 한다. 뭔가 흐름이 엉키거나 페이스 다운이 일어나거나 문제점이 발견되면 가치없이 냉정한 비평을 가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편협된 시각으로 바라보던 중 앞서 언급한 '약점을 아무리 찾으려 해도 도무지 발견하기 힘든' 웹툰이 바로 '카라멜 마끼아또'였다. 결국 마지막화에 이르러서까지 이렇다할 약점을 찾지 못하게 되어 웹툰비평 연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 시점에 (하다못해 10회라도 채웠다면 모르겠지만) 특집편(백기)를 내걸게 만든 작품 '카라멜 마끼아또', 그 작품의 어떤 부분이 필자를 매료시켰는지 익숙하지 않은 호평을 시작해본다.

웹툰 작가들이 도전 만화가에서 처음 활동을 시작할때는 '프로 의식'이라기보다는 어디까지나 나이와 관계없이 말 그대로 '도전'하는 자세로 작업에 임한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치열한 경쟁을 벌여 올라가는 팜 시스템이다보니 일단 독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단시간내에 주목을 끌 수 있는 요소들을 내세우거나 일단 가볍게 잘 먹히는 '옴니버스'방식을 택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렇게 공감을 얻고 웹툰으로 올라오게 되면 웹툰에 올라왔다는 기쁨에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일주일 내내 공을 들여 컬러링이나 펜선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해서 작품을 내놓는다. 물론 그 뒤에는 선플과 악플이 공존하게 되고 이로 인한 사기 저하와 초반에 무리한 페이스 조절 실패로 약 20회분을 기점으로 '부상'혹은 '병'등의 이유로 연재를 거르기도 하는데, 그 이후로는 작품 퀄리티나 아이디어를 아끼는 측면에서 대단히 보수적인 성향으로 변하며 철저하게 반응을 살피면서 지금의 인기를 유지하면서 가능한 장기 연재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흔히 마감에 대한 공포감이 생기는 것도 이때부터인데, 만화 자체를 그리는 즐거움보다 '마감'에 쫒기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고통으로 인해 만화가 '일'로 둔갑되어버리는 일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카라멜 마끼아또는 이런 일반적인 시작 단계부터 사뭇 다른 느낌을 전해주는 작품이다. 도전하는 비장함보다는 만화를 그리는 즐거움이 화면 가득히 독자에게 전해지는 듯한 이 느낌은 사실 작가가 의도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풍겨나오는 것이어서 한층 신선하다. 처음부터 어떤 욕심이나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만화를 그리는 즐거움'그 자체를 연재 시작부터 끝까지 잃지 않고 유지한 점, 단 한번도 오버 페이스가 아닌 자신만의 페이스를 가지고 질질 끄는 기분 없이 그리고 싶은 대로, 표현하고 싶은 대로, 솔직하게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었다는 부분이 특히 그렇다. 91화까지 잠시간의 휴식 없이 달려오면서도 작품의 흐름, 작화 품질에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특별한 불만을 일으키지 않았음은 물론, 작가 본인 스스로도 마지막까지 이른바 '초심'을 잃지 않고 마감에 대한 부담이나 스트레스를 단 한번도 겉으로 표출한 적이 없었다는 점 역시 다른 작가들에게서는 보기 어려운 부분으로 작가가 얼마만큼 작품 활동을 '즐거워'했는지를 새삼 읽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카라멜 마끼아또을 보면서 놀랐던 부분은 작가의 '작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는 점에 있다. 단순히 '내 작품이 소중하다'는 소유욕이 아니라 작품 속 캐릭터, 펜선, 착화 색깔 심지어 지나가는 간판 하나까지 김명현 작가에게는 카라멜 마끼아또를 구성하는 요소 어디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 같다. 캐릭터를 작품의 구성 요소가 아닌 독립적인 생명체로 표현하여 '내가 탄생시켰지만 개별적인 인격을 가진 인격체'로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몸에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웹툰에서 무심코 저지르는 실수 가운데 하나가 캐릭터에 자기 자신의 모습과 가지고 있는 지식을 투영시켜 이야기를 구성하는 '구성 요소'로 치부하는 것인데, 카라멜 마끼아또는 자기 자신의 경험을 캐릭터에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의 독립적인 인격을 부여하고 이 상황에서 그 캐릭터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관찰자적 시점에서 이야기를 진행시켰다는 점이 독자들로 하여금 만화를 보는 것이 아닌 '캐릭터'가 '연기'하는 '지면상의 연극'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때문에 카라멜 마끼아또에서는 작가에 의해 남자주인공이 무리하게 엄친아가 될 필요도, 여자주인공이 초큐트한 공주님이 될 필요도 없어지게 된 셈이다. 주인공 이노마와 연이를 비롯해 등장 인물 대부분은 성격이나 행동에 빈틈이 있고 잘생기고 예쁘고 얌전함과는 거리가 먼, 하지만 지금까지의 어떤 캐릭터들보다도 감정 표현에 제약 없이 자유롭고 솔직하다. 작가가 중간 후기에서도 밝혔듯 연애 소재 만화로는 최초로 어느 한쪽 성별에 치우치지 않고 남녀 모두의 입장을 대변하는 캐릭터가 공존시킴으로서 마치 소년연애만화의 남자주인공과, 꽃보다 남자의 여자주인공이 모두 등장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이래적이게도 남성, 여성향 순정만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캐릭터들을 커플로 매치시켜 독자들로 하여금 '주인공에 대한 미움'이라는 감정보다는 평범한 연애 과정에서 일어나는 오해와 갈등에 초점을 맞춘 점도 특이할만한 점인데, 특히 갈등 부분에서 흔히 지겹도록 써먹는 '삼각관계'를 가능한 배제하고 다소 고전적인 '신파형'소재를 현대적인 감성으로 꾸며낸 점이 특히 그렇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연애만화에서 정말 지겨우리만큼 주인공을 두고 다른 남자, 혹은 여자가 접근하여 라이벌이 생기는 (결국은 다시 주인공을 택하는 여자주인공 그리고 라이벌은 '좋은 승부였다'면서 외투를 어깨에 걸치고 석양을 향해 걸어가는) 구도에 익숙해져 있어서인지 소재 자체로서는 카라멜 마끼아또쪽이 훨씬 고전적인 소재임에도 상당히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웹툰이 현재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문제점이라고 한다면 아주 혁신적인 조건을 갖춘 연재 마당임에도 불구하고 지면 연재와 아무런 차별성이 없는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이는 많은 웹툰 작가들과 이를 바라보는 만화인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다른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도 캐릭터가 움직이는 등의 소소한 시도들을 볼 수 있지만 카라멜 마끼아또는 '컷의 연결'을 통한 스톱모션이나 화면 비율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파노라마 씬 등 작화적인 제약 사항을 타파하고자하는 다양한 시도들은 물론이거니와 매화 '독자들의 러브스토리'를 소개하는 코너와 달님의 레이디오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웹'이라는 공간적 장점을 십분 활용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작품 전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부분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모습은 그 성과 여부를 떠나 노력 자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방해요소'로 지적하기도 했던 '달님의 레이디오'나 독자 사연 코너는 역으로 '작품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카라멜 마끼아또의 세계관이 현실적이지 못한 동화같은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에 작품 세계관을 구축하는 핀 포인트 캐릭터 '달님'을 통해 독자들의 일상적인 사연을 작품 내로 흡수함으로서 현실과 작품 사이의 괴리감을 없에 보다 작품을 현실적으로 몰입하게 만들어주는 데에 있다. 작품을 보고 있다보면 어느새 매일 보는 해와 달이 예사로 보이지 않게 되는 것처럼, 사실상 동화적인 설정에 가까운 '달님'캐릭터가 만들어놓은 카라멜 마끼아또의 비현실적 세계관을 독자들의 삶과 결부시켜 어느새 일상 속에 캐릭터가 투영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 '웹'이라는 공간이 단지 움직이는 그림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의 전부가 아니었음을 아마도 처음으로 증명해준 사레가 아닐까 싶다.

무려 마흔여덣컷이 들어간 문제작 (?)


만화가는 대부분 자신이 '작품의 조물주'라고 어기며 작품의 모든 부분을 자신이 관장하려는 성향이 있다. 정말 풍부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그 경험을 바탕으로 그려내는 이야기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스토리의 흐름 전반이 독자들에게 읽혀지게 되고 새로운 신작으로서의 가치는 그만큼 반감된다. 물론 신작의 가치가 '참신함'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소재가 아닌 '스토리'로서의 신작이 아니고서야 작가 본인 스스로 인정할 수 있을 신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신작이라는 개념은 '지을 작作' 즉 한 덩어리의 전편이 될 수도 있고 다음 시즌, 다음 챕터, 다음 컷, 심지어는 밑그림 펜선이 다음에 어디에 그어질 것인지까지 모두 신작의 범위에 포함되는 것이기에 창작은 그 자체만으로 쉽게 말하기 힘든 어려움이 존재하며 그래서 더 좋은 작품, 더 나은, 지금까지완 다른 것을 그려내기 위해 마감에 시달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를 살짝 비껴나갈 수 있는 치트키가 몇 가지 있다. 우선 작가 자신이 작품의 '조물주'라는 우월함을 버리는 것이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부분이고, 두 번째는 캐릭터를 '로봇'이 아닌 '인격체'로 그려내야 한다는 것, 정해준 기계적인 대사를 내뱉는 것이 아니라, 그 캐릭터에게 귀를 기울여 캐릭터가 말하는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를 단지 독자들에게 말풍선으로 번역해주는 역할이 되는 것, 마지막으로 '겸손함'에 대한 컴플랙스를 버리고 자기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작품애'를 가지고 어느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자기 작품을 가장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가장 많이 정주행해보며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작가이기 이전에 내 작품에 내가 팬이 되어 열심히 읽어보고 내가 만든 스토리, 아니 내가 잠시 생명을 불어넣은 캐릭터들이 만들어나가는 각본없는 드라마를 관객의 입장에서 즐겨보면 자신이 작품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이 줄고 있음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사견으로 김명현 작가는 이 치트키에 가장 근접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카라멜 마끼아또의 스토리를 축약해보면 너무나도 평범하고 뻔한 스토리,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별로 극적이지 않은 스토리지만, 단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 이상으로 스토리 자체에 상당한 몰입감을 느낀 독자는 필자 뿐만이 아닐 테니까, 카라멜 마끼아또가 완결이 된 직후 덧글란에 쏟아지는 시즌 2에 대한 염원은 '스토리'에 감명을 받은 게 아닌 '우리 주변의 이웃'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은 사람들의 아쉬움일 것이다. 하지만 감히 예상컨데 아쉽게도 시즌 2를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스토리'는 이어나가면 되지만 '이야기'는 끝이 정해져 있으니까, 그도 그걸 알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어울리지 않게 칭찬을 늘어놓았지만 그의 차기작을 기대하지 않는다. 애석하게도 카라멜 마끼아또를 처음 본 것도 연재가 시작된 지 꽤 지난 90화부터였고 보게 된 계기도 챕터 이름이 '중간 정리'라길래 (오호 간단하게 지금까지 스토리를 한번에 볼 수 있겠구만) 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고 처음부터 보기 시작한 이유는 '연이'가 내 타입이었기 때문 작가가 정리해준 스토리가 중간에 끊겨버려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일 만큼 이 작품에 대한 기대는 커녕 편견과 오해가 가득한 상태에서 접하게 시작했었기에 오히려 제 3의 눈으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의 웹툰처럼 마우스 스크롤을 휙휙 내려서 매주 한 편씩 1분만에 보는 심심풀이 땅콩처럼 보던 습관에서 벗어나 배용준의 커피 광고처럼 한박자 천천히 한 컷을 조용히 눈에 담으면서 보는 습관이 필요하니까, 처음부터 너무 많은 기대를 하거나 다른 웹툰에 대한 매너리즘이 수반되면 그의 작품에서 나오는 빛을 보기 쉽지 않을 테니까,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기다릴 뿐... 그가 들려주는 또 하나의 이야깃거리를 언젠가 다시 한번 들어볼 수 있기를 기다려보며 글을 마친다.

그림 사용을 허가해주신 김명현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음은 '일상날개짓'입니다.

다음부터는 정상적으로 비평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