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5. 6. 23.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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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습니다.

제가 왜 아이들에게 맞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근데 저는 누군가를 때리는걸 좋아하지 않아서 그들에게 되갚아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끓어올라요. 


- 대체 내가 뭘 잘못했을까 - 하고요.


대체 왜 그들은 저를 때리는걸까요 제가 뭘 잘못한걸까요? 그리고 왜 선생님과 반 친구들, 그리고 부모님들도 제가 맞는 이유가 당연하다고 하는걸까요? 그리고 어떻게 해야 그만 맞을 수 있을까요?



<!>


넌 잘못한게 없어', '힘내, 괜찮아질거야' 

같은 원론적인 얘기는 집어치울게요. 이 코너는 '실용교과서'지 구역질나는 멘토서적이 아니거든요.


인간사회가 동물사회와 다른 점을 한번 말씀(http://rusham.tistory.com/235) 드린 적이 있어요. 그런데 해당 내용에서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그냥 사람들은 동물이 아닌 척 흉내만 내고 있는거지 사실 늑대소년 영화처럼 마냥 본성을 이성으로 억누르고 살아가는 존재들일 뿐이거든요. 왜냐하면 그게 인류에게 있어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합의'를 했을 뿐이지 그 합의가 도출된 순간 인간이 동물이 아니게 된 게 아니에요. 강력한 규율에 의해 그 본능이 드러나는 즉 마음가는 대로 행동했다가는 '큰 손해'와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집단의 힘이 있기 때문에 굴복하는것 뿐이죠.


그런데 그 본능이 가장 활발하게 에너지화하는 시기인 10대 초반에서 후반까지를 인류는 어처구니없게도 오랜 기간 '치외법권'으로 다스려왔어요. 청소년보호법, 청소년 면책 특권 등으로 말이죠. 물론 그 법은 청소년이 어떤 법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데에 따른 보상 차원임과 동시에 미성년자라는 타이틀을 통해 법적 지위를 가진 성년들이 그들의 갖은 권리를 응당 침해할 수 있다는 편리성때문에 이어져오고 있는거죠. 참정권을 포함해서 많은 권리를 제약당하고 있는 청소년을 통치하고 자신들의 세계관으로 이끌어내고 싶어했던 국가가 그런 일방적인 권리행사가 헌법의 자유평등권에 침해되는 모순을 정당화하기 위해 청소년의 범죄를 '치외법'으로 빼놓은 거에요. 원하든 원치 않든 그들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딜'을 한거죠.



청소년들이 법적 권리를 박탈당한 보상으로 치외법을 얻었다면 어른들은 청소년을 통치하고 싶은 욕망과 더불어 그 통치하는 청소년을 보호하고 그들의 범죄를 컨트롤하며 저질러진 범죄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자세가 수반되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 어른들은 어떤가요? 과연 청소년이 저지른 범죄에 얼마나 책임을 지려 하고 있나요? 선생님, 사법부 그리고 그들이 반 강제적으로 할당한 작은 우주라고 할 수 있는 '가정'의 '부모'들은 과연 얼마나 이에 대해 이해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요? 아마 안하고 있을거에요 그러니까 이지경이지...


그런데 요즘 뭐가 공론화되고 있는 줄 아세요? '청소년을 처벌하자'에요. 청소년의 범죄 처벌 연령대를 대폭 낮추자는 움직임이 공론화되고 있어요.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죠. 아니 법적으로 누리는 게 거의 없는데 처벌은 하겠다? 이게 무슨 개 풀뜯어먹는 소리입니까? 에초 쇼당이 안맞는 이야기잖아요. 청소년들에게 권리와 자유를 빼앗는 대신에 법적으로 처벌도 면제해줬던 걸 다시 빼앗겠다면 청소년들에게 참정권도 주고, 독립된 인격체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법적 지위도 부여해줘야 하는게 응당 맞지 않나요? 전 국민에게 주민등록번호와 열손가락 지문을 채취해가면서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만드는 몇 안되는 희귀한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말입니다.






당면한 현실을 되짚어볼게요.


학교폭력의 피해자로 사는 것은 향후에 수치스러운 낙인이 찍히고 뭐 이딴건 다 집어치우고 진짜 손해가 막심한 거에요. 여러분은 여러분이 살고 싶은 대로 인생을 살 수 있어요. 그건 미성년자로서 제약을 받는 관련법에도 나와있지 않은 그냥 대한민국 국민이 태어나면서 탯줄 끊음과 동시에 부여받는 국민 기본권이거든요. 그러니까 당신은 굳이 친구들을 많이 만들 필요도 없고, 소심하게 찌질하게 살아도 되요. 혼자 교실에서 책만 읽어도 되고 친구들 화제가 굳이 흥미가 없어도 무리해서 의무적으로 끼어들지 않아도 되요. 즉 내가 하고 싶지 않은것, 내가 잘하지 않는 것을 굳이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할 필요가 없어요.


개인적으로 '왕따'라는 단어를 굉장히 싫어해요. 왕따라는 단어는 그냥 '따돌린다'라는 거거든요.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각종 범죄들이 그냥 뭉뚱그려서 너무나도 소프트한 '왕따'라는 표현으로 치완되요. 그 속에 묻힌 '폭력', '성폭력', '쓰레기무단투기', '오물투척' ...심지어 '고문'까지 정말 구역질나는 액션들이 그냥 '왕따' 딱 한마디로 묻혀버리는거죠. 그리고 이 왕따라는 단어가 지극히 가해자 중심에서 만들어진 단어라는 점도 큰 문제에요. 왕따...즉 따돌린다는 건데, 피해자는 정말 아무런 액션이 없이. 가해자의 액션을 표현한 단어인데 정작 그 단어적 낙인은 피해자에게 붙여진다는거 참 웃긴 세상이죠.


'낙오 공포' 에 미쳐있는 사회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요. 어떤 사람은 매우 활달한 성격을 가지고 호탕하게 사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두루두루 사귀게 되죠. 그런 반면 어떤 사람은 별로 그런 걸 좋아하지 않고 혼자 조용히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딱히 정답은 없어요. 어떻게 살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그걸로 사회적 합의는 끝난거니까, 그런데 이노무 사회는 답을 정해놓은 모양이에요. 이미 기득권들이 어떻게 살고 어떤 사람들이냐에 따라서 그들을 맹목적으로 팔로우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내면과 관계없이 사회적으로 하급화시키는 데에 너무 익숙해져있어요.


당연히 그 답은 사람들과 아무런 교류가 되고 있지 않은 소수보다 사람들과 교류를 많이 하는 소수쪽으로 합의를 도출할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 교류가 비폭력적이던 폭력적이던 일단 장악하면 그쪽이 갑이고 선이며 진리라는 사고방식이 다수결의 원칙처럼 굳어지게 되는거죠. 비폭력적이라면 그냥 그 사람이 좋아서 그 사람 편, 폭력이 수반되었다면 그 사람 편이 되는 쪽이 내게 있어 더 안전하고 안심이 되니까 그 사람 편이 되는 것, 그렇게 소수는 지지받지 못하고 다수에 의해 다수에 합류하라는 강요를 받게 되는 게 이 사회에요. 제발 여기에서 끝나면 참 좋겠지만...





문제는 그 합류하지 않은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는거에요. '다수가 진리다', '넌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라는 오지랖과 간섭을 끊임없이 부리죠. 그게 왜 그러냐면 그들 역시 자신들의 선택에 확신이 없는 한심한 사람들이라서 어떻게든 하나로 일원화시키고 싶어하는거에요. 소수 의견이 남아있으면 내가 정말 이게 맞기 때문에 선택한건지, 아니면 권력이나 대세에 휩쓸린 한심한 사람인지 헛갈리거든요. 그것조차 싫으니까, 소수를 어떻게든 내가 있는 다수에 합류시켜서 합리화시키고 싶어하는거에요.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는거 잘 알죠?

만약 이런 대세적 움직임에도 휩쓸리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사람들은 슬슬 폭력을 가하기 시작해요. 그리고 그 작은 폭력은 곧 그들의 동의를 받고 있는 하나의 소수가 또다른 소수인 당신을 탄압하는 것을 방치하고 정당화하는 것으로 방점을 찍게 되죠. 그 소수가 당신을 강력하게 교화시키던, 혹은 그들이 늘 하던 대로 강력한 권력 혹은 폭력으로 당신을 탄압하던 그들을 따르는 대다수는 침묵해요. 그들도 알아요 그게 잘못되었다는걸, 하지만 그들은 이기적이게도 그것이 잘못된 것보다 자기 자신의 선택, 즉 인지부조화가 깨지지 않는 걸 더 많이 바라기 때문에 침묵하는거에요.





정말 유감스럽게도 이렇게 성장한 사람 절반 이상이 성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여러분들같은 청소년을 낳고 살고 있는 어른들이에요. 경찰도, 학부모도, 선생님도 말이에요. 그들은 이미 자신들이 뭘 잘못생각했는지조차 모른 채 똑같이 방관자로 살아가고 있어요. 난 노동자가 아니니까, 난 성폭력 피해자가 아니니까, 난 성 소수자가 아니니까, 난 극빈곤층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들 중 가장 높게 성공한 사람 (대부분 돈이겠지만)을 비추어 추앙할 뿐 자기 삶이 없죠. 교실 안의 방관자들이 그냥 머리만 커지고 얼굴만 좀 늙었을뿐이지 텅텅 빈 가치관은 다를 바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서 여러분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거에요.


그들은 피해자를 '찌질하다, 실패한 인생이다'라고 정의해버리고 있어요. 가해자에 이미 빙의하고 있으니까 가해자의 시점으로 보면 '나같아도 그랬을거야'라는 어처구니없는 공감대를 펼치고 있는거죠. 내가 너라도 진짜 패고싶었을거야, 내가 그 사람이었더라도 진짜 강간하고 싶었을거야 같은...그런 것들, 그런 결론을 도출하고 싶어하니까 그렇게 피해자의 인적사항에 관심이 많은거에요. 가해자에 공감하기 위해서, 피해자 여성은 얼마나 이뻤는지, 피해자 학생은 얼마나 사회부적응 찌질남이었는지를....



가해자에 대한 검증 노력은 조금도 없는거죠.




...해법을 이야기할 시간인데 마음이 좀 갑갑해집니다. 그래도 뭔가 이야기는 해드려야겠죠


현행법상 청소년이 절대보호를 받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선생님이 대신 뭘 하던 그런거 없고요. 부모도 대신 해주지 않습니다. 알잖아요. 위에 적은 인생을 살아온 그 방관자들이 당신을 위해 뭘 해줄 수 있는 건 조금도 없어요. 여러분은 누군가를 때리고 싶지 않은 인생을 추구하고 있으니까 '너도 한대 때려!'같은 무식한 소리에는 일단 귀를 닫으시고요. 때리면 즉시 '신고'하세요. 혹시 신고할 여력이 없으신 분들이나 신고하면 더 큰 보복이 될까봐 두려워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이고 그 기분 충분히 공감합니다만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인생관을 가장 덜 깎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주먹보다 법이 가깝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아요. 


자기가 손해가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교사들이 당신에게 이런 저런 회유책이나 자기만 믿으라는 식의 헛된 개소리를 지껄이거나, 학교에 먹칠하거나 풍파를 일으키지 말라는 협박을 하더라도 결코 굴하지 마세요. 방관자들은 사실 무섭지 않아요. 당신보다 더한 겁쟁이거든요.


만약 경찰조차 방관자로 자라온 꼰대라면 다른 경찰에게 사건을 재배정해달라고 하시면 되요. 꼰대검찰이 '이깟 애들 장난'이라고 던져버리거나 혹은 가해자 부모님이 금수저라서 대충 봐주고 사건을 덮어버리거나 하면 다른 검사에게 사건 재배정을 요청하고 해당 경찰과 검찰을 업무 태만으로 공무원윤리강령 위반 신고를 해두세요. 방관자들은 진짜 어리석은게 자신에게 피해가 되는게 뭐든 날아와야 그제서야 이쪽을 바라보는 속물들이라서 일단은 당신이 하기 싫어하는 것을 빼고서라도 조금 덜 하기 싫어하는 수단을 총동원해서 그 방관자들이 당신을 괴롭히는 소수에게 칼을 겨누도록 해야 하는거죠.


...



미안합니다.

사실 정말 답이 없어요.




하지만 한 가지

여러분은 잘못되지 않았어요.



절대!


posted by RushAm 2011. 12. 29. 14:41
사람이 죽었다,



그냥 중학생이 아닌, 사람이 죽었다는 것,
우리는 여기에서부터 생각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풍경은 그닥 다양하지 못하다. 기성세대들은 '우리 땐 그렇게 커도 문제 없었다'며 지금의 나약한 젊은이들의 근성을 질타한다. 젊은 세대들은 학교 폭력에 대한 무관심과 청소년 보호법 등을 원인으로 들며 가해자들에게 보다 강력하고 직접적인 처벌을 가해야한다는 강경론이 대다수를 이루는 가운데, 일부는 '왕따에는 이유가 있다'는 사회적 주류 학설을 들며 소수의 부적응자에 대한 보호가 어디까지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론이 속속 나오고 있는 모습이다.

  이제부터 이 억울한 죽음에 대해 산 자들이 터진 입이라고 떠들어대는 이야기에 나 역시 망자를 위한다는, 그리고 앞으로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있게 될 망자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터진 입을 좀 놀려볼까 한다. 

학교는 학생을 가르치는 기관이기 전에, 기본적으로 '미성년자'의 '위탁 보호'기능이 우선된다. 즉 미성년자는 어떻게든 보호받아야 할 존재임이 법에 명시되어 있고 그들은 이 사회에서 보호자가 언제나 잘못된 판단으로 현 사회에 대한 무지나 권리 부족으로 인한 피해를 보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보호자는 1차적으로 가족 구성원 중 양육권을 가진 사람을 우선시한다. 그리고 학교는 법적으로 부여된 시간 동안 이들의 신변을 위탁받아 관리하는 책임을 지니게 된다. 중학교는 법적으로 반드시 다녀야만 하는 '의무교육'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학교는 학교가 정해놓은 '방과 시간' (여기에는 학교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학교를 파하고 집 대문까지 들어오는 모든 과정을 포함한다) 에 이 학생의 신변에 이상이 없도록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학교를 오는 도중에 등교를 위한 교통수단인 버스가 고장을 일으켜 학생이 다쳤다면 이는 버스회사와 학교가 공동으로 책임을 지게 되며 책임의 범위는 학교가 더 많다는 것을 인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등교길처럼 '책임'을 나눌 수 없다. 학교 내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100% 학교의 책임이다. 법적으로 그들이 책임을 나눌 수 없도록 그들은 학교 내에 들어오는 잡상인을 포함한 모든 출입자를 통제할 권한과 그에 따른 노력을 해야만 한다. 학생이 철봉을 하다 다쳤으면 치료까지 모든 과정을 학교가 진행하고, 철봉 기구의 다친 원인을 파악해서 안전이 검증될때까지 모든 조치를 취해야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학교는 법적으로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라고 강제적 의무조항을 부여받지 않으면 설립될 수 없고, 제 1양육권자인 부모로부터 미성년자를 의무 위탁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학교들이 그런 책임을 지는 것을 모를리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가능하면 어떤 일이든 학교 내에서 벌어진 좋지 않은 일에 대해서 은폐하려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학교 폭력에 의한 자살이 정말 '학교 폭력'에 의한 자살로 수사가 종료되었다면 이를 책임져야 하는 건 가해자 학생이 아니라 학교가 되기 때문이다. 그 책임 범위를 산정하는 건 의미가 없다. 무슨 형태로든 피해자, 가해자 모두에게 책임을 져야 하는 가장 막중한 의무가 뒤따른다. 학교는 그걸 두려워하고 있고 귀찮아하고 있다. 그러길 거부하며 그 책임을 경감시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이 사건, 그리고 이 죽음에 대한 학교의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있다. 


미디어는 이 사건을 부디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형사사건으로 다루지 않길 바란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피해자는 미성년자인데 가해자가 성년인게 아니니까, 둘 다 미성년자이며 책임은 100% 학교에 있다. 이건 변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어떤 행동을 했건, 무슨 일이 있었건, 가해자가 어떤 일을 벌였던지 그 둘에게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가해자의 행동에 분노하고 그가 받는 솜방망이 처벌에 분노하시는 분들도 많으신걸로 알지만, 지금은 가해자를 처벌해서는 안된다. 그 역시 부모라는 제 1양육권자의 법적 위탁을 받은 학교에서 이런 일을 벌였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당장 사건의 본질인 '100% 학교 책임'을 흐리는 보도를 그만두었으면 한다. 지금 미디어는 빵셔틀을 비롯, 학교 폭력, 게임, 심지어 빈부갈등과 세대갈등까지 들먹이며 현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이 사건의 책임을 전가시키고 반성을 강요하고 있다. 구역질나지 않는가? 왜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할 학교 대신 그들의 죽음에 대해 간접적인 죄책감을 느끼고 반성해야 하는가? 이는 결국 학교 그들의 책임을 무마하고 싶어하는 학교를 관장하는 그 위에 누군가들이 벌이는 물타기에 지나지 않다.

애들을 잘못 가르치는 부모, 애들 기 살려주는 부모, 그게 뭐가 잘못일까? 아이 교육을 대신 해주겠다고 데려가는 곳이 학교다. 부모가 '학교에서 애들 때리지 말라'고 가르쳐야 할 하등의 의무는 없다. 그 부모가 가르치는 방법과 철학은 전적으로 그 부모의 자유다. 다만 학교는 다르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때리지 말라'는 전제는 전적으로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부분이다. 지금까지 학교 이미지, 위상, 실적같은 지극히 학교를 운영하는 자들의 배때기 기름칠에만 여념이 없어 학생들의 성적과 학군에만 관심을 가졌던 그들이 과연 '학교'라는 곳에서 가르쳐야 할 인성교육을 얼마나 성실히 수행했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학교는 이미 학생을 위한 기관이 아니게 되어버렸는데 말이다.


가해자 처벌해야 한다는 이야기 자주 들리는데, 심지어 '청보법'을 폐지해서 직접 처벌해야 한다는 강경론까지 나오는 걸 보면 참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다시 말하지만 피해자만 미성년자인게 아니라 가해자도 미성년자이긴 마찬가지다. 이 문제는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피해자를 보호하는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여론에는 정말 극명한 시대적 세대적 불통이 자리잡고 있다.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기성세대와 이를 피부로만 느낄 뿐 속으로 곱씹지 못하고 멀리 보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벌이는 충돌이다.

기성세대들이 겪은 학교폭력은 단순하다. 어려운 시절, 언제나 학교 혹은 교실에서 싸움 잘하고 권력을 잡았던 아이는 주로 '못사는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가난의 컴플랙스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학교 내의 권력에 집착했고 악바리처럼 체력을 키워 힘으로 그들을 제압한다. 그럼 '잘사는 집 아이'들은 어떤가? 하도 거친 세상이다보니 밖에 나가 뛰어놀게하기보다는 부모의 과잉 보호로 체력을 키울 틈이 없이 샌님으로 자라기 부지기수다, 이들은 '못사는 아이' 일진들의 이른바 '밥'이 된다.

기성세대들은 이런 학교폭력의 사회적 포지셔닝에 대한 은근한 환상과 카타르시스를 추억한다. '재수없는 잘난척하는 잘사는 집 아이'들을 통쾌하게 혼내주는 일진의 모습에서 다 같이 못사는 사람들은 '힘의 균형'이 맞춰지는 안도감을 가졌을것이다. 못사는 아이는 학교에서만큼은 최고로 군림하며 자신의 컴플랙스를 해소했으며 잘사는 집 아이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를 이같은 순기능을 통해 사회화되며 보다 더불어 사는 법을 터득한다. 그것을 지켜보는 대다수의 제 3자들은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처지에 대한 대리만족을 얻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기성세대들이 착각하는 것은 지금의 학교폭력은 그 당시 기성세대들과는 많이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에 있다. 당시에는 학교에 '어른들의 권력'이 영향을 끼칠 수 없었다. '내 아버지'가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난 일진의 밥이 될 수 밖에 없는 그들만의 힘의 균형이 있었다. 아버지가 국방부 장관이라고 해서 내가 일진에게 맞으면 일진이 가중처벌을 받는 그런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학교는 '어른들'의 권력이 고스란히 '아이들의 권력'이 된다. 그리고 학교와 사회는 그런 권력의 세습화를 위해 고군분투를 해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잘사는 집 학생을 부르는 감미로운 선생님의 말투와 못사는 집 아이를 부르는 선생님의 비속어섞인 무시성 호출에 익숙해지고, 학교는 학생이 뭘 했는지보다 그 학생의 학부모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그 학생에 대한 처분을 결정하는 데에 이미 너무 익숙해져 있다. 이런 환경이 오랫동안 고착되는 가운데 이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자신의 권력이 아버지로부터 충분히 세습되었다는 이른바 (빽)의 힘을 인지하게 되고 이는 고스란히 (빽)을 갖지 않은 자들에 대한 과시욕으로 이어지게 된다. 잘 사는 아이가 가지게 된 권력 과시에서는 못 사는 약자에 대한 배려 따윌 배울 기회 따윈 없다. 내가 가진 게 최고이며 많이 가지면 더 많은 권력을 내 마음대로 이기적으로 휘둘러도 괜찮은 사회라는 것을 조기교육을 통해 깨달을 뿐이다. 물론 제 3자들 역시 그런 힘의 불균형을 간접 채득하며 그런 불균형한 사회 체계를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게 된다. 이게 과연 학교폭력에 의한 순기능으로 볼 수 있을까?

(빽)이 없는 아이 입장은 어떨까?

내가 분명 (빽)있는 아이보다 더 힘이 세고 싸움도 잘 한다. 그러나 그들은 반칙을 한다. 아이들 싸움에 부모가 낀다. 우리 부모는 재네 부모에게 진다. 내가 만약 저 빽 있는 아이를 때려서 옥수수라도 몇개 날아가면 우리 집은 망할지도 모른다. 선생님도, 학교도 그 아이 편이다. 내가 아마 다 잘했고, 저 녀석이 다 잘못했다고 해도 내 손을 들어줄 쪽은 아무도 없다. 경찰에 신고해볼까? 애들 싸움이라고 무시당한다. 엄마에게 말해볼까? 아마 아무것도 못해줘서 미안하다며 또 우시겠지...



이번에 자살한 그 아이는...

학교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생들만이 학생으로서 경쟁하지 못하게 하는
힘의 불균형과
어른들의 반칙 플레이

그리고 그런 그들의 기를 살려주는
저열한 교사들과

자신들의 책임이 뭔지 알면서도
회피하기 급급한 학교...

그 학교에게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도
무슨 이유인지 그러지 못하는 정부

그 정부 하에 있는 경찰권력의 무관심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자신들의 어린 시절과
지금의 상황을 동일시하려고만 하는
벽창호같은 부모세대들의 몰이해...

그리고

그 더러운 힘의 균형이 무너진 사회가 이미 깊이 세습되어
권력을 가진 자의 편이 되는 것에 익숙해져 가는
같은 반 학생들 모두와...


혼자 싸워나갔던 것이다.



얼마나 외로운 싸움이었을지 상상이 가는가?





이런 싸움을 하는 아이들이 지금 그 아이 뿐이었겠는가?





더 못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