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6. 7. 15. 12:00

어떤 회사가 상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봅시다. 무엇이 필요할까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차분히 재무재표를 만들고 주식 상장 심사 기준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하고 ... 이런 것들도 물론 필요합니다만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다릅니다. 무엇보다 상장이라 함은 그동안 투자했던, 그리고 그 동안 이 회사를 위해 헌신했던 임원들에게 그 댓가가 돌아가는 것이 목적이므로 무엇보다 그들이 이번 상장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느냐가 최우선시됩니다. 


이런 부분은 지극히 표면적이겠지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주식시장에 '상장'만 하면 그냥 떼돈이 굴러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투자자들은 예전처럼 상장주 공모에 그렇게 열을 올리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엔터테인먼트사는 사람을 키워내서 사람을 파는 전형적인 무형자산 사업이기 때문에 이렇다 할 유형적 회사 자산이나 성장 전망을 보여주는 데에 있어서 큰 어려움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지 상장만 하면 잘 될거라는 기대감에 상장했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엔터테인먼트 업체도 적지 않은데요. '비'가 JYP에서 독립해서 상장한 제이튠엔터테인먼트도 그 중 하나입니다. 


제이튠엔터테인먼트는 처음 설립 당시부터 상장을 염두에 둔 회사였습니다. 비의 독립에는 정말 많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었고 그들은 비라는 이슈메이킹을 극대화한 시점에서 적절하게 JYP에서 독립시켜 체리피킹이 될 것으로 기대했던 모양입니다만 그 이후 키워낸 가수들의 잇따른 성적부진, 비 본인의 급격한 인지도 하락 등 이렇다할 주가상장요인을 만들어주지 못했고 결국 군 입대와 제대를 기점으로 제이튠엔터테인먼트는 JYP와 인수합병 우회상장의 희생물로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생각보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다는 사례를 남기면서 말이죠



비를 떠나보낸 JYP도 그 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미국 진출'이라는 커다란 상징물을 최전성기에 잃어버린 타격은 그 후 주식시장 상장까지 투자자들을 무려 5년이나 기다리게 만들었고 그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전편에서 언급했던 JYP의 이른바 '돈 쏟아붓기'식의 미국진출은 예언했던 대로 돈줄이 말라붙어버리는 즉시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원더걸스는 보여지는 화려함 속에 처첨하고 현실적인 굴욕을 겪으며 핫 100 진입까지 그야말로 악으로 깡으로 버텨냈지만 핫 100진입 떡밥은 JYP를 주식상장의 길로 이끌어내기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을 그 수치 하나로 실적 하나로 버텨오던 JYPㅇ제국은 그 뒤로 더 이상 지속가능한 동력을 잃었고 JYP의 아이덴티티 그 자체였던 JYP 미국법인이 쌓아가는 연간 수십 수백억 규모의 부채를 JYP 본사가 감당할 차원을 아득히 초월해버린 시점이 되자 결국 버티지 못하고 GG를 치게 됩니다. 


그렇게 JYP가 만든 JYP에 의한 JYP는 그 구심점과 철학을 모두 잃어버리고 오로지 한 사람에 의해 좌우되던 기획사에서 보통의 기획사가 갖춰야 할 (그동안 JYP가 미처 갖추지 못했던) 상식적인 부분을 채워나가기 시작하는데요. 제가 왜 PART 1과는 달리 JYP를 제일 첫 꼭지로 뽑은 이유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이 부분 때문입니다. 다름아닌 JYP의 구조조정. 엔터테인먼트업계로서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그것도 엔터테인먼트를 알지도 못하는 외부사람들에 의해 강제로 이루어진 점이죠.


정욱 / JYP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JYP의 IMF구제금융


2013년까지 이어지는 소속가수들의 고른 부진(?)과, 미국 사업의 악화일로를 통해 사실상 거의 망가지기 일보 직전까지 몰렸을 JYP가 선택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방법이라고 한다면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갔지만 상장을 못한 JYP보다 훨씬 더 상황이 좋지 않았던 사실상의 공멸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든 제이튠엔터와의 합병을 통한 우회상장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이라송한 것이 제가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JYP에는 당시 어떤 해외진출 떡밥도, 성장동력도 남아있지 않은 그야말로 '수지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기획사였기 때문에 한창 해외진출 떡밥이 충만했던 비조차 실패했던 JYP가 과연 이 상장으로 기사회생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결과를 낙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그토록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악수 중의 악수라고 강조했던 주식상장이 JYP에게는 전혀 엉뚱한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하는데요


JYP는 지난 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굉장히 기형적인 회사였습니다. 박진영 1인이 프로듀서 작사 작곡 편곡, 캐스팅, 안무, 의상, 무대컨셉까지 모두 장악하고 그를 위한 그에 의한 그 자체인 기획사였기 때문에 들어가기는 쉬워도 데뷰할 수 있는 그룹과 그 소화할 수 있는 파이는 지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마치 병목현상이 벌어지듯 회사의 역량 중 대부분을 유망주 양성에 쏟아붓고 정작 데뷰 시기를 놓치거나 다른 기획사로 이적하는 유망주들을 미처 붙잡지 못했습니다. 이에 지쳐 자신만의 유망주 세력을 모아 독립한 회사들도 여럿 생길만큼 이 기형적 조직의 불균형과 이를 단지 단 한명의 제왕적 결정권으로 처리하는 체계는 어느 누가 봐도 비효율적이었으며 영리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JYP는 우회상장을 통해 상장사로서 갖춰야 할 기틀을 억지로 갖춰나가면서 체질개선을 하기 시작합니다. 돈먹는 하마였던 JYP 미국 법인을 즉시 정리한 것은 물론 수많은 우호관계에 있으면서 유망주를 소비해주던 계열 회사와의 관계도 속속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과다하게 뻗어있는, 어쩌면 몸통줄기보다 더 굵어서 몸통의 허리를 휘게 만들었던 불필요한 지사나 다른 이름으로 활동하던 차명 그룹사들을 중앙집중, 일원화시키기 시작한것도 이 무렵인데요. 이같은 JYP의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인해 새우등이 아주 직격탄을 맞은 중소 기획사들도 여럿 생겼는데 이 이야기는 조금 나중에...


JYP의 이같은 강력한 구조조정은 단지 회사 내부 조직의 기형적인 부분을 다듬는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야구팀의 리빌딩처럼 단지 선수 뿐만 아니라 지도자를 비롯한 코칭스테프 역시도 이같은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는데요. 앞서 언급했던 박진영 1인 권력집중체계부터 우선적으로 손을 보기 시작하여, 메인 스트림쪽에 외부 작곡가 영입 및 각 분야 전문가들이 포진하게 되는 아마도 창립이래 처음이 아닐까 싶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JYP는 단지 이미 완성된 전문가들만을 초빙하는 것이 아닌 작곡부터 시작하는 유망주를 모으거나 아예 내부 아이돌 유망주를 프리프로듀스 쪽으로 돌리는 마치 YG의 종가라인처럼 보이지만 철저하게 육성 라인 자체를 분업화하는 복수의 박진영 키즈 육성 대책도 바로 이 무렵부터 찾아볼 수 있는데요.


이런 변화가 말 그대로 IMF 구제금융 당시처럼 대단히 강제적으로 그리고 아무 대책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적용하다보니 JYP가 새로운 시스템이 정착하고 안정화되기까지는 2013년 10월 이후에도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부분도 매우 놀라운 것이 JYP는 철저하게 구제금융시스템으로 급진적 변화를 시도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완벽한 경제학에 기초하여 연착륙을 시도했다는 것이죠.


아직 JYP의 시스템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사례도 있는가 하면


새로운 시스템을 최소화된 리스크 상에서 실험해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실험들은 고스란히 JYP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 그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실험, 대중들의 반응 등을 종합한 데이터로서 남게 됩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할 사실은 JYP가 더 이상 기획단계에서 최종목표를 '특정 국가 진출' 및 그에 따른 언론플레이를 통한 주가진작이 아닌 보다 내실을 갖추며 적어도 자생이 가능한 그럴싸한 회사로서 기틀을 다지는 데에 주력했다는 부분이죠. 


지금까지 JYP는 정말 많은 씨앗이 있었지만 그 씨앗을 뿌릴 땅이 너무나도 좁았고 그 씨앗을 좁은 땅에 억지로 심다 보니 서로 한정된 양분을 나눠먹다가 죄다 싹이 트지 않거나 시들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JYP는 2013년 말 이후부터는 3대 기획사라는 타이틀을 아슬아슬하게 붙잡아가며 미련을 갖는 자세에서 탈피하여 당분간은 다른 회사들에게 대세를 넘기는 한이 있더라도 착실하게 리빌딩을 해서 재반격을 노리는 쪽을 택했다는 부분이 적어도 JYP에게 있어서는 정말 잘 먹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에초에 JYP가 뭔가 잃을 만한 것들을 잔뜩 가지고 있었다면 제가 누차 강조한대로 상장 그리고 이같은 경제학적 측면의 경영간섭이 JYP에겐 악수가 되었겠지만 웃프게도 JYP는 전혀 회사같지 않은 모습을 갖추고 있었기때문에 이러한 체질개선이 오히려 약이 되었던 부분이겠죠. 


아쉽게도 이는 JYP의 체질을 완전히 개선하는 보약이 될지 아니면 일시적으로 항생제를 먹여서 어떻게든 팔아제끼려는 학교 앞 문방구의 병든 병아리 신세가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왜 JYP에게 일어나는 일종의 변화를 IMF로 표현했는지에 대한 부분을 알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사례가 지금 바로 여러분 눈 앞에서 나타나고 있기에 우선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JYP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근미래의 변화를 상징하는 바로 이 그룹으로 말이죠




中에서 계속됩니다.

posted by RushAm 2011. 8. 20. 22:19
JYP는 유명 프로듀서의 이름을 직접 쓴 효과를 본격적으로 누린 기획사라고 상 편에서 말씀드린 바 있었죠? 이름을 건 기획사가 JYP한 곳만은 아닙니다만, 그 기획사의 능력을 처음부터 인정받은 상태에서 프로듀서의 이름값과 검증된 제작 능력으로 신인의 가치를 높이는 식의 회사는 달리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만큼 JYP가 프로듀서로서 복합적으로 능력을 대중으로부터 장기간 검증된 사례를 통해 인정받아왔기 때문이었고, 그 능력은 어떤 컨셉 디자인만이 아닌 작사, 작곡, 안무에 이르기까지 고르게 뻗어있었으니까요.


물론 이 능력들은 god를 비롯해서 대부분 성공을 거두긴 합니다만, 중 편에서 말씀드렸던바와 같이 음악 장르가 R&B, 혹은 80년대 영미권 댄스팝 음악의 어레인지에 한정되다보니 '새로움'을 꾸준히 보여주는 것이 매우 힘들어집니다. 특히 JYP의 그룹은 어떤 음악적 컨셉의 변동 없이 R&B그룹이면 R&B만 주구장창하게 되고 댄스팝 그룹이면 댄스팝만 쭉 하게 되니까요. 아무리 박진영이 가진 음악에 대한 식견이 넓다고 해도 그가 추구하는 음악은 80년대에 멈춰있습니다. 음악적 세련됨에 있어서는 개선을 거듭합니다만, 그 컨셉은 철저하게 자신이 최고라고 믿고 있는 그 시대의 그것을 고집스럽게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죠.

그것을 극복하고자 그가 택한 퍼포먼스 위주의 프로듀스는 의외로 빠른 시점인 두 번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비의 4집 I'm coming에서부터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It's raining 때보다 한층 더 음악성을 베제하고 철저하게 퍼포먼스에 보조를 맞추는 수준의 음악을 추구했는데요. (멜로디부분은 아예 피쳐링을 맡겨버리고 퍼포먼스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음악 성향은 이후 퍼포먼스 컨셉으로 기획된 다른 아이돌들에게도 다소 영향을 끼치게 되죠


문제는 월드스타로 칭송을 받으며 기세를 올리던 비의 능력적 한계가 점차 정점을 찍고 있었다는 것이 바로 이때부터 감지가 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4집 이후 비와 박진영의 결별은 당시 최고 주가를 달리고 있던 비가 박진영을 배신한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는데요. 사실 계약이라는게 한쪽이 일방적으로 기분이 상해서 계약이 틀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계약은 어차피 상호 윈윈을 위해 맺는건데 한쪽이 입장이 틀어졌다면 한쪽이 양보하는 형태가 되는 게 맞거든요. 왜냐하면 에초 계약을 맺는 관계라면 상대방이랑 계약을 맺는 편이 안 맺는 것에 비해 자신에게 이익이 그것도 꽤 크게 된다고 생각해서 맺는 것이니까요. 즉 비 역시 뭔가 박진영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들어서 재계약을 안했던게 맞지만 박진영 역시도 당시에 사활을 걸고 비를 잡을 만한 가치를 못느꼈다는 의미가 됩니다.

비 입장에서는 박진영의 해외 진출에 관한 경쟁력에 의구심을 가졌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가 가진 '미국 진출'과 관련된 능력이라는게 비가 얼핏 보기에는 단지 미국인들로 하여금 진한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음악을 추구한다는 점과 자신의 이름값을 이용해서 해외 진출 관련 투자 자금을 유치하는 것 뿐이었거든요. 비는 아마 이런 부분이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고 더불어 박진영이 추구하는 음악이 실제 미국 시장 초연에서 아시아 교민들로 가득채운 공연장의 모습과 유수의 언론들이 그에게 내린 평가는 '마이클잭슨 이미테이션'이라는 다소 냉혹한 평가가 나온 게 아마 결정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박진영으론 안된다'라는 마음을 굳히기에 충분했던것이죠.

그런데 사실 비가 이렇게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던게, 비 자신이 아시아투어를 꾸준히 다니면서도 실제 체감하는 관객들의 반응이 점점 식어가는 게 눈에 보였기 때문입니다. 비가 새로운 음악을 계속 내놓고 그 음악이 아시아를 호령할만한 상품성을 가지고 있는 게 틀림없다면 새로운 앨범과 곡을 발표하는 족족 반응이 식어간다는건 모순되니까요. 물론 여기에는 드라마 풀하우스의 약빨이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방영 1년을 넘겨 비의 인기가 한물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더불어 실제로 박진영의 음악이 그 풀하우스 버프를 이어갈만큼 아시아권에서 매력적으로 어필하지 못했던 것 때문입니다.

대만의 F4는 드라마 버프를 잘 이어간 사례로 꼽힌다.


이런 변화의 조짐을 느낀 건 박진영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그의 음악이 아시아에 통했는지의 여부보다는 비가 가진 상품성이 '풀하우스 버프'에 그 폭발력이 응집되었을뿐, 비 자체가 가진 가치를 오판했음을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와 굳이 재계약을 안할 이유는 없었는데요. 다소 거품이 빠지긴 했어도 비는 아직 미국 시장에서 도전할만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가능성이 미국 내 아시아계 시장 공략이라는 점과 '비'가 가진 아시아권에서의 성과로 인해 '미국 도전'이라는 키워드를 투자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떡밥이 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는 것이죠.

이런 부분은 비의 젊은 헐기와 패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비는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도전을 멈추지 않은 말 그대로 굶주린 맹수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런 보수적인 방침을 용납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한편으로는 박진영이 가진 능력에 대한 의구심 중 그가 결국 미국 진출에 있어서 가질 수 있었던 강점은 미국형 음악을 추구하는 것도, 미국에 있다는 수많은 인맥도 아닌 '국내 투자를 유치하는 능력'이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상한 건 박진영은 철저하게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통해서만 자금유치를 할 뿐 회사의 명성이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선뜻 회사를 주식상장하지 않았는데요. 비는 바로 이 점을 예의주시합니다. 그리고 그 뒤에 있었던 일은, 여러분들이 알고 계시는 대로입니다.

 

박진영이 주식상장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필자가 이전에도 누차 강조했던 대로입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꼰대 투자자들이 명목적으로 '경영 참여와 간섭'이 법적으로 가능해지는 '주식투자'는 사실상 엔터테인먼트 회사로서는 사망선고나 다름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아티스트로서의 자율성을 보장받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건 회사를 세우고 직접적인 경영권보다는 실무 참여 권한을 최우선으로 해왔던 박진영으로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주식상장은 하지 않으려 했는데요. 비 입장에서는 한창 미국 진출이 잘 이루어지고 있고 조만간 풀하우스 버프가 없어진다는 것을 감지했기에 초초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미국 마케팅에서 돈이 부족하다는 것은 그야말로 치명적임에도 고집스럽게 박진영 네트워크만을 활용한 투자 유치를 고집하는 박진영이 답답하게만 느껴졌을테니까요.

비가 JYP를 나온 직후 제일 먼저 한 일은 제이툰 엔터테인먼트와 관계를 맺고, 우회상장시키는 일이었다. 제이툰엔터테인먼트는 경영권 간섭이라는 떡밥 대신 경영 책임을 철저히 비 자신이 아닌 투자자와 바지사장이 부담하도록 하는 구조를 택했다. 결과적으로 비의 미국 진출 점진적 실패로 인해 책임 소재가 분산되면서 비는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었지만, 경영 일원화가 제대로 되지 않은 문제점으로 각종 소송에 휘말리는 등 외부적인 악재에 일일히 대응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박진영은 비와의 결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퍼포먼스'위주의 아이돌을 기획합니다. 텔미댄스, 노바디댄스로 거의 대한민국을 집어삼킬 기세였던 원더걸스, 본격 퍼포먼스 머신들로 구성된 2PM까지 보이, 걸 그룹 투톱라인을 갖추었죠. 이 두 그룹은 사실상 서로 번갈아가며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들 만큼 성공적이었습니다만, 이 성공 뒤에는 JYP의 예견된 몰락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사실 표면적인 붐 조성 면에서는 정말 나무랄데가 없었습니다만, 문제는 '돈'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퍼포먼스는 음반에 담을 수 없습니다. 디지털 음원 역시 마찬가지죠. 원더걸스의 텔미, 노바디, 2PM의 데뷰곡부터 지금까지의 주요 곡들, 미쓰에이의 주요 곡까지 모두 음반, 디지털 음원 매상은 조성된 붐에 비해 형편없을 정도였습니다. 텔미 CD판매고가 5만장밖에 안된다는 사실이 뉴스에 보도될 정도였으니까요. 왜냐하면 이들 음악 모두 '음악 자체만으로는 그다지 큰 매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안무와 퍼포먼스에 상품성을 집중시켰는데 정작 그 안무와 퍼포먼스를 팔 수 있는 수단이 되기에는 지금의 음반 시장 수익 구조로는 너무도 큰 한계가 있었던것이죠.


이들이 노릴 수 있는 수익 모델은 음악과 퍼포먼스를 동시에 팔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 '행사'밖에 없었는데요. 문제는 우리나라 행사들이 으례 그렇듯 '개런티'에 대단히 민감해서 대박톱스타를 섭외하기보다는 가성비를 따지는 분위기가 지방으로 갈수록 분명해지는데요. 이런 분위기에 이미 정상급 개런티를 받을 수 있는 JYP의 아이돌들이 섭외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로 아주 비싼 행사를 골라서 뛸 수 밖에 없었는데요. 이런 행사가 날이면 날마다 있는 게 아니기때문에 결국 타산 맞추기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이 정도 끕이 아니면 안된다는 이야기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퍼포먼스 위주로 기획 노선을 수정했다는 것은 결국 기존 god 라인을 타기 위해 들어왔던 JYP의 수많은 보컬 유망주들의 데뷰가 급격히 정체되어버리고 마는데요. 대한민국 아이돌 산업을 말한다편에서 말씀드렸듯이 연습생이 한 번 메이저 기획사에 들어가게 되면 짬 문제나 타사간의 팽팽한 긴장관계 탓에 이적은 곧 낙오라는 각오로 버텨야만 합니다. 거기에 회사명이 JYP, 그리고 박진영이라는 프로듀서로서의 명성에 너무 지나치게 의존하는 이미지가 이미 대중에게 뿌리깊게 고착되어 버렸다는 점이 JYP에 남아있는 연습생들의 미래에 암운으로 작용하게 되는데요.

JYP에서 나오는 아이돌 그룹은 대중들에게 있어서는 당연히 '박진영'이 프로듀스를 했다고 믿습니다. 박진영의 성공 전례로 인해 그의 프로듀스 능력에 신뢰를 보내고 있기 때문에 신인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평판까지 끌어올리는게 가능해서 JYP는 이를 지금까지 의도적으로 활용해왔는데요. 문제는 박진영이 아무리 천재라고 할지라도 2개 그룹 이상을 동시에 기획하고, 그들에게 나오는 곡을 작사, 작곡, 편곡에다가 안무에 무대의상 기획, 캐릭터 컨셉, 퍼포먼스, 데뷰 플랜까지 모두 신경쓴다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에 있습니다. 즉 JYP는 아무리 많아도 한번에 2개 그룹 이상을 키워낼 수가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데, 보유중인 연습생 수는 이런 소수정예 시스템에 걸맞지 않게 너무 많다는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었다는 것이죠.

퍼포먼스 위주로 그룹을 기획하게 되면 사실 맴버 전체가 노래나 랩을 잘 할 필요가 없어진다. 노래나 랩은 각각 한 명씩 총 2명에게 맡겨버리고 나머지 맴버는 가능한 퍼포먼스를 부각시키는 위주로 활용하기 때문에 특별히 '연습생'들 사이에서 뽑을 명목이 사라지니까, 미쓰에이의 맴버 절반이 중국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해외진출을 노리는 한편, 퍼포먼스 위주의 그룹에서는 다국적 그룹을 꾸려도 특별히 저항이 덜할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기자를 꿈꾼다던 소희가 원더걸스에 합류한 이유도 특별히 다르지 않은데, 이처럼 가창력과 관계없이 선발된 원더걸스 이후 거의 JYP의 거의 모든 그룹은 맴버 중 최소 한명 이상을 중편 이상의 영화 혹은 드라마 '정극'에 출연시키고 있다. 가능한 '해외 수출'이 가능한 드라마에 집중적으로 관심을 보이는데 이는 비가 누린 풀하우스 버프의 재림을 노린다고 봐도 좋을 듯 싶다


그렇다고 박진영의 프로듀스 능력이 이처럼 거의 모든 분야를 아우를만큼 모든 면에서 완벽했느냐면 그렇지만도 않았는데요. 물론 안무와 퍼포먼스는 확실히 국내를 주름잡을 만큼의 상품성을 갖추고 있었고, 음악 역시 하던 만큼은 해왔습니다만, 문제는 그가 기획하는 캐릭터와 컨셉이 너무 80년대의 로망스 수준에서 정체되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복고컨셉' 을 잘 구사하는 인식이 대중들에게 자리잡고 있습니다만, 사실 그가 '복고'를 키워드로 집중 기획한 노바디나 텔미 이외에 나온 기획들은 어딘가모르게 어중간하고, 다소 시대에 뒤떨어지는 한계를 지속적으로 노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중에서도 특히 의상과 캐릭터 컨셉은 거의 최악이라고 봐도 무방한데요. 이같은 그의 고리타분한 기획에 태클을 걸 수 있을 만한 대내외적인 환경이 전혀 뒷받침되지 못했습니다. 이미 텔미와 노바디, 한 번도 아니고 두번 연속으로 성공시킨 그의 절대사례는 아무도 그의 기획에 토를 달 수 없게 만들었을테니까요. 아무튼 원더걸스 이후 그룹들은 복고와는 전혀 거리가 멀어보이는 그룹 컨셉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모르게 캐릭터의 개성이 뚜렷하지 못한데다 의상은 뜬금없이 컨셉은 복고인듯한데 세련되게 튜닝한 흔적만이 곳곳에 남아있는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그룹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합니다.

2PM과 미쓰에이가 대표적인데, 특히 미쓰에이의 지금까지 보여준 의상은 공히 최악에 가깝다. 2PM이야 처음부터 짐승돌이라는 (이마저도 박진영이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컨셉이 분명했기에 문제가 없지만 미쓰에이의 컨셉은 싱글 두장에 정규 1집까지 나온 지금 시점까지 제대로 잡혀있지 않고 있다.


JYP의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이 소리없이 곪아가며 하나 둘씩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하는데요. 첫 스타트를 끊은 것은 원더걸스 원년맴버 현아였습니다. 현아는 건강상의 문제로 원더걸스를 하차했으며, 박재범은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윤리적 문제를 저질러 영구 탈퇴를 시켜버렸는데요. 이중 현아의 케이스가 좀 특이한 사례입니다. 그녀를 복귀하게 만들어준 그룹 포미닛은 JYP가 아닌 JYP 전 대표 홍승성이 세운 큐브 엔터테인먼트 소속이였기 때문이죠.

JYP의 대표를 지냈던 홍승성이 세운 큐브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반드시 거론되어야만 하는 회사가 JYP 소속 작곡가였던 방시혁의 빅히트엔터테인먼트입니다. 이 두 회사는 설립 시기는 제각각 다릅니다만, 이들 기획사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가수들이 쏟아져 나온 시기가 마치 짜맞추기라도 하듯 2009년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들 대부분이 'JYP'연습생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요. 현아와 박재범 스캔들이 있었던 2년간의 텀 속에 JYP 대표 홍승성과 작곡가 방시혁, 그리고 수많은 JYP 연습생들에게 저 둘의 사건, 그리고 박진영이 보여준 한계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하기는 어려워 보이네요. 그들이 굳이 JYP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 차리는 기획사로 옮길 만한 동기가 있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말입니다.

이들이 과연 순수한 신인이었다면?


큐브 엔터테인먼트는 기본적으로 빠른 비트의 아이돌 음악을 추구합니다만, 가능한 퍼포먼스보다는 보컬에 중점을 두며 결정적으로 전속 작곡가를 과감히 베재한 외부 작곡가 체제를 택한 점이 JYP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점인데요. (비스트의 신사동호랑이, 포미닛의 용감한 형제가 대표적) 굉장히 기본에 충실한 아이돌을 배출하고 있고 음악 중심 정책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음원이나 음반 판매량도 괜찮은 편이며 기획사가 음악에 신경쓰지 않고 기획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기획 전환이 매우 빠른 편입니다. 그래서 소속 아이돌은 유연하게 새로운 컨셉을 준비하며 포텐을 폭발시킬 수 있는 여력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그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방시혁이라는 JYP출신의 걸출한 작곡가가 이끄는 기획사 답게 아예 처음부터 퍼포먼스를 철저히 배제하고 보컬의 능력과 완성도 높은 음악만을 추구합니다. 당연히 JYP에서 노래깨나 한다는 발라드 R&B 연습생들은 죄다 이쪽으로 옮겨온 모양새인데요. JYP가 JOO이후 이렇다할 발라드 라인을 내놓지 못하는 가운데 퍼포먼스 위주의 정책에 밀려 데뷰에 기약이 없던 연습생들이나, 실패한 정책의 희생양이 되었던 중고 유망주들이 대거 몰려들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최근에는 2AM 역시 빅히트쪽으로 완전히 무게추가 옮겨지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는 점도 이러한 분위기를 뒷받침하고 있죠.

이들 중 JYP에 남았거나 JYP에서 데뷰한 사람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이들이 무슨 생각으로 JYP에서 나와 JYP 출신 간부들이 세운 회사들로 어떤 기약도 없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이유는 당사자가 아닌 이상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적 후 활동하는 모습과 단기간에 이루어낸 급격한 성장과 성공가도, 그리고 그들이 가진 개개인의 놀라운 포텐셜을 보면 JYP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문제점이 어디에 있었고, 이들이 그런 JYP에서 무엇을 느낀 것인지를 결과가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god의 박준형, 원더걸스의 현아, 그리고 2PM의 박재범까지, 혹은 그 속에서 이미 드러나지 않은 사이에 더 많이 있을 수도 있었던 JYP내부의 고름들이 실제로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들이 아무 미련 없이 JYP를 나왔다는 팩트만이 존재할뿐


야망도 크고 능력도 충만한 프로듀서가 가요계 판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어떤 음악적 고집이 있어서도 안되고, 성공을 위해 노선을 너무 쉽게 바꾸어버려서도 안된다는 것을 잘 가르쳐주는 듯한 JYP의 사례는 단순히 한 기획사의 오판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많은 희생을 치루었다는 점, 그리고 그 희생은 지금 현재 진행형이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빅 3라는 이름에 가려져 있는 소화 불가능한 세 불리기의 말로, 그리고 실패에 대한 부분까지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프로듀서의 한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결국 한 사람의 오판으로 누구 하나 승자가 되지 못한 이 바닥이 재현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래봅니다.



JYP엔터테인먼트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2010년 12월 KBS2 김승우의 승승장구 박진영 편 방영분 중

 



...들어가지 마세요





공화국 연구소 - 아이돌 기획사 열전 'JYP엔터테인먼트'편을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11. 8. 4. 05:55
god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만 박진영은 '고생'을 계급화시키는 조직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길고 지겹기로 유명한 JYP의 연습생 기간은 '실력'을 키운다기보다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의무고생'이라는 개념이 강한 편인데요. 왜냐하면 SM처럼 음악최우선주의를 표방하거나 특정 국가의 아이돌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는 식으로 회사 체계를 잡아나가는 일관성이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도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JYP에는 특별한 육성과정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그룹 기획도 대단히 즉흥적이며 보수적이고 어떤 철학이나 컨셉이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기때문에 JYP의 연습생들은 상당히 오랜 기간 이 성향을 파악하는 데 상당히 애를 먹게 되는데요.


이런 생지옥이 따로 없는 JYP에 오래 붙어있으며 이른바 '의무고생기간'을 '비'가 훌륭히 마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물론 불행한 가정사도 있었고 그 이전 첫 데뷰 실패 이후의 생긴 악바리같은 근성 때문이기도 했죠. 아무튼 그가 우여곡절끝에 데뷰를 하고 지금의 월드스타에 반열에 오르게 도는 것까지는 잘 알려진 사실인데요. 그런데 지금은 사실 '비'라는 존재가 꽤나 신화와 같은 수준으로 인식되고 있긴 합니다만, 의외로 비의 성공은 상당히 얻어걸림성이 강한 편이었습니다.

그의 얻어걸림을 증명할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가 당시 남자 솔로 가수의 극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었던 절대지존 '유승준'의 병역 문제로 인한 급작스런 퇴장입니다. 이미 남성 솔로 가수로서는 최고의 위치에 오르며 가요계와 예능을 지배했던 그의 퇴장으로 인해 이른바 '짐승남'아이콘에 공백이 생기게 되는데요. 유승준이 가졌던 시장은 기존 아이돌 그룹이 10대들의 코묻은돈을 뺏는 시장이 아닌 20대 이상의 실구매층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매력적입니다만 그만큼 진입 장벽이 높고 기준이 까다롭다는 문제가 있었죠. 재능적인 측면에서 거의 완벽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만큼 제대로 된 유망주가 나오지 않는 한 투자 대비 리스크가 엄청나기에 기존 기획사들도 군침만 삼킬 뿐 섣부르게 진입을 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던 것이죠. 유승준의 독주는 이런 이유로 가능했으며, 그의 퇴장 이후 기라성같은 기획사들이 그의 공백을 눈앞에서 지켜보면서도 무주공산의 시장을 가져올 히든카드를 내놓을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난리통 속에 (정말 유승준을 대체한다는 생각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비'의 데뷰가 이루어졌지만, 사실 '비'는 '유승준'에 비하면 데뷰 당시의 임팩트가 상당히 부족한편이었습니다. 데뷰 직후부터 유명 통신회사의 CF를 찍고, 박진영이 손수 정성스례 푸시를 해주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만, 안타깝게도 가창력이나 댄스 실력은 물론 20대 이상 여성들을 사로잡을 가장 큰 포인트인 '페로몬'이 너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었으니까요. 일단 나이도 너무 어렸고 딱히 잘생겼다고 말하기 힘든데다, 당시에는 이렇다할 자기만의 스타일이 완성되지 않았기에 가진 포텐셜을 제대로 폭발시키지 못했다고 봐야할것 같습니다. 당시 비의 이미지는 어떻게 보면 동년배인 10대들에게 더 어필할 수 있는 수준에 그치는 수준이었고, 의욕적으로 출연한 드라마 역시 10대 학원물의 성격이 강했으니까요.


그러던 도중 비가 천운으로 얻어걸린 드라마 작품이 바로 '풀하우스'입니다. 이 드라마는 '동거'라는 소재와 순정만화의 대가 원수현 작가의 원작이 가진 성격으로 인해 미니시리즈 방영 시간대 주요 시청 결정권층이라고 할 수 있는 20대 후반 이상의 여성 시청자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게 되는데요. 여기에는 물론 이전 작품 상두야 학교가자의 정극 경험과 음반 시장에서 거둔 어느 정도의 성공을 바탕으로 캐스팅이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베재하지 못합니다만, 사실 풀하우스 제작 당시 남자 연예인의 대대적 병역 비리가 터지며 20대 젊은 남자 배우들이 줄줄이 군대에 끌려가버리는 통에 드라마 업계에 엄청난 남자 배우 기근이 겹친 시점이 맞아떨어지지 않았다면 과연 비의 캐스팅이 이루어졌을지는 의문입니다.

당시 풀하우스의 경쟁작으로 대두되던 '형수님은 열아홉'에는 무려 '윤계상'이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


풀하우스의 메가톤급 성공은 드디어 20대 여성 팬층이 비를 '유승준'을 대체할 수 있는 '남자'로서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풀하우스에서 보여준 무수한 상의탈의씬 역시 이러한 변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요. 그는 풀하우스로 인해 20대 팬층에 거의 완벽하게 안착한 상태였고 이런 변화를 박진영이 놓칠리 만무했습니다. 사실 데뷰 당시부터 풀하우스 이전까지의 앨범이나 활동 컨셉에 있어 어떤 캐릭터를 부여받기보다 단순히 남자솔로가수로서 '음악성'(가창력이 아닌)을 인정받는 수준에 그쳤던 그가 박진영의 집중 관리를 받은 직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색깔의 캐릭터로 돌아오게 되는데요.



2집 태양을 피하는 방법과 3집 It's raining의 뮤직비디오 영상,
음악적으로도 확실한 멜로디 라인이 존재했던 태양을 피하는 방법과는 달리 It's raining은 그야말로 박진영식 '랩'으로 점철되어 멜로디라인이라고는 찾아볼수 없는 곡을 선보였다. 이전 박진영 본인이 스스로 말한 것처럼 이런 곡은 마음만 먹으면 하루만에라도 간단히 뽑아낼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실제로도 노래 자체보다 그의 호흡 퍼포먼스가 대중들에게 부각되어 각인되었음은 물론 이를 충분히 의도적으로 노린 듯한 뮤직비디오와 더불어 실제 무대에서의 상의 탈의 및 의상의 기본 노출 빈도를 비약적으로 높이며, 풀하우스에서 터진 20대 여성팬층을 흡수하는데 총력을 다한다.



풀하우스 종영 1개월만에 발표된 비의 3집은 그의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는 역사적 의미 이외에도 JYP로 하여금 두 가지 큰 역사적 흐름의 변화를 야기시키는데요. 그 중 하나가 上편에 언급했던 'god'의 5집 실패 직후의 은퇴 해체입니다. 그들의 실패와 동시에 성공을 거둔 비의 사례는 이제 막 탄생한 JYP의 향후 방향성과 색깔을 결정짓는데 크게 기여하게 되죠. 이는 박진영이 '비'를 통해서 '음반 시장'이 급격하게 음악 자체를 소비하는 것에서 '캐릭터'를 소비하는 것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이에 대응한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만, 이에 대한 속사정은 조금 복잡합니다.

먼저 god와 비 사이에 있던 박진영을 논하기 전에 그가 가수를 키우기로 결심한 동기, 즉 대의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이른바 '팝송 키드'라고 불린 세대인데요. 때문에 그의 음악은 어딘가모르게 그의 어리고 젊었던 시절 한국 뿐만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던 음악의 감성이 스며있습니다. 그의 음악 패턴은 기본적으로는 '복고'를 추구하지만 '창작'을 했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가능하면 국내에서 공전의 히트를 거둔 음악 포멧을 사용하기보다는 이른바 '미국 로컬 시장에서의 복고'를 추구하는데요. 기본적인 줄기는 같으면서도 당시 한국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이른바 '매니악'한 음악을 들여와 리폼하는 형태가 대부분입니다. 흔히 박진영이 표절 시비가 붙는 곡들이 대부분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곡들이라는 점, 그리고 그 표절 시비가 의외로 아슬아슬하게 이슈를 매번 이탈한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그런데 이 복고라는 키워드와 '팝송 키드'로서의 음악적 감각을 통해 창작된 음악은 그 개성이 분명하고 국내 시장에 한정된 '신선함'을 줄 수 있다는 반면에 레파토리가 매우 제한적이어서 '신선함'을 준 이후를 이끌어나갈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음악이 아무리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이고 우리나라가 그들의 음악 센스보다 몇년을 뒤진다고 해도 어쨌든 옛날 곡임에는 분명하기 때문에 아무리 샘플링을 세련되게 리폼한다고 해도 기본 베이스가 구식이라는 한계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좁다는 점도 문제였죠. 한마디로 음악적 변신을 시도하기가 매우 까다롭다는 것인데, 0부터 새로 써내려가는 순수 창작보다 기존에 있는 음악 포멧을 리폼하는 정도로 새로움을 어필하는게 훨씬 힘들고 버거운 일이라는 것을 박진영은 꽤 오랫동안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초반 2집, 3집까지는 가지고 있는 팝송 키드의 레파토리로 신곡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지만 4집,5집까지 점점 롱런하게 되면 '음악 컨셉'만으로 새로움을 보여주기 어려워진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가 비 3집의 가공할만한 성적으로 어찌보면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새로운 자신의 능력과 그에 대한 시장성을 깨닫게 됩니다. 음악적으로는 이미 '순수 창작'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만큼 고지식화가 정착된 그였지만 '퍼포먼스'는 얼마든지 '순수 창작'이 가능할 창작 에너지가 충만했던 것이죠. 여기에는 그가 거의 기본 베이스 이외에 멜로디 라인을 거의 손보지 않은 채 랩으로 떡칠한 날림작 'It's raining'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는 점이 주효했습니다. 비의 3집을 듣는 많은 사람들은 비의 호흡 퍼포먼스에 열광했을뿐 음악이 급조된 날림이었다는 걸 인지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그가 만든 안무와 퍼포먼스는 음악 이상으로 뜨거운 반응을 얻어내며 그 상품성을 입증해냅니다.

비 3집 이후 JYP에 몰아닥친 변화는 박진영의 프로듀스 컨셉의 변화와 일치한다. 이 새로운 컨셉을 잘 보여주는 두 그룹 원더걸스와 2PM은 모두 곡 초반에 거의 모든 승부를 걸듯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내세워 관객기선을 제압하는데 반해 곡 자체는 초반 퍼포먼스에 비해 다소 김이 새는 느낌을 줄 만큼 완성도가 떨어진다. 음악에 신경을 많이 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음악 자체만으로 뭔가 '새롭다'라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박진영의 이같은 '안무' 혹은 '퍼포먼스' 제작 능력에 의한 성공은 단지 비의 풀하우스 버프처럼 우연히 시장의 흐름에 맞아떨어진 결과는 아니었습니다. 박진영은 음악 제작 능력 이상으로 안무와 퍼포먼스 제작 능력이 뛰어났으며 그것이 음악만으로 인정받았던 가요계의 판도를 바꿀 만큼 엄청난 '상품성'을 가질 수준의 완성도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의 안무는 지금까지 '춤'을 반드시 '음악'에 따라붙는 곁다리에서 음악 없이 안무 자체를 하나의 상품으로 즐길 수 있을 정도의 반열에 올릴 만큼 혁신적이었는데요. 실제로 원더걸스의 '텔미', '노바디'에서 보여준 그의 안무 콘텐츠는 [곡 중심/안무 곁다리]의 판도를 적어도 그가 연출한 무대에서만큼은 [안무 중심/곡 곁다리]로 역전시키는데 성공합니다. '음악'없이 출 수 있는 춤, 음악이 없어도 충분히 매력적인 안무, 그가 만드는 안무가 단지 시기적인 운을 타고난 것이 아닌 언제 나와도 성공할수밖에 없는 가치가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한계에 봉착했던 새로움에 대한 과제도 해결했음은 물론 대안으로 내놓은 컨셉이 대박을 터뜨리는 가운데 JYP의 앞날에는 별로 거칠 것이 없어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음악적 감각과 높은 상품적 포텐셜을 가진 그만의 독보적 안무 제작 능력으로 국내 가요 시장을 지배해나가는 JYP에 점차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하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단지 그의 이름을 건 JYP라는 회사 이름 때문에 그들이 위기를 맞게 되리라곤 당시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예상할수도 없었습니다.

下편에서 계속됩니다.
posted by RushAm 2011. 7. 25. 02:38
SM엔터테인먼트 도입부분에 들었던 서태지 계보에서 갈라져나온 세 가지 세력이 있었다는 말씀을 드렸었죠? 그의 음악을 인정하고 필요한 부분을 취했던 쪽이 SM엔터테인먼트 쪽이었다면 이번에 다루게 될 JYP 엔터테인먼트 (이하 JYP)는 서태지의 음악을 극렬히 비판하며 좋게 말하면 독자적인 노선, 나쁘게 말하자면 그의 음악과 반대되는 성향만을 골라서 간다는 식으로 자존심을 지켜왔던 기획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서태지가 '일본통'이었다면 JYP는 자칭 '미국통'이었기 때문에 에초 흐름의 급이 달랐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난 노는 물이 달라!


JYP는 이른바 1인 기획사로 시작하여 간간히 태흥기획이나 싸이더스를 통해 프로듀서로 소속, god를 기획,배출하는 등 프로듀서로서 명성을 쌓은 뒤 별도의 기획사로 독립하게 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 지금도 그는 그가 직접 경영에 참여하기보다는 프로듀서로서의 활동을 쌓고 기획사는 그의 명성에 의존하여 기획사명을 바꾼 형태가 되고 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어떤 회사로서의 체계는 잡혀있다고 하더라도 박진영이 실무이사급은 될지언정 직접적인 경영 즉 CFO에 간섭받을 가능성이 있는 권한을 갖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돈에 욕심이 없었다거나 하는 부분은 잘 모르겠지만, 이상하리만큼 경영실권을 회피하는 행보를 보이며 기획 그 자체에 집중했던것만큼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Post Seotaji

이런 이유로 JYP는 스타들로 인해 브랜드 가치가 높아진 것이 아닌 이미 'JYP'라는 스타 프로듀서의 브랜드 가치를 등에 업고 탄생한 기획사라는 점에서 기존 기획사들과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물론 이는 JYP의 독립기획사 설립이나 경영권 참여를 최대한 배제하고 자신의 이름을 적극적으로 내세운 전략이 있었는데요. 물론 일개 가수가 새로운 가수를 만들어낸다는 단순한 이슈만으로는 그다지 주목을 받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사람들이 박진영을 단순히 좀 지저분한 스타일의 댄스 보컬리스트가 아닌 음악적 조예가 깊은 아티스트로 인정하게 된 게기가 하나 있었는데요. 다름아닌 음악 대통령 '서태지'를 공개적으로 디스한 거의 최초의 가수라는 이력입니다.
 

서태지가 우리나라에 들여온 (당시의 표현 그대로) '랩'이라는 장르는 국내 음악계에 혁명이라 일컬어질만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이 서태지의 음악을 비판한 비평가나 음악 전문가들은 박진영 이외에도 제법 있었는데요. 그런데 그들이 주장하는 비평의 내용을 살펴보면 '악보도 없는 음악이 무슨 음악이냐', '컴퓨터 음악은 인간미가 떨어진다' 같은 지극히 보수적인 시각에서 새로운 것을 무조건 거부하고 배척하는 식의 비판이 대부분이었습니다만 박진영은 단순한 거부감 표출이 아닌 서태지의 음악 장르 자체 완성도에 대한 비판 시각을 가지고 접근했다는 점이 이들의 비판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었던 것이죠.

1995년 11월 1째주 SBS 인기가요 1위 후보 발표장면, 서태지 4집 활동 당시 이렇다할 가수들은 전부 활동을 미루거나 자취를 감추었던 것과는 달리 박진영은 '청혼가'를 내놓으며 서태지와 대등하게 맞서는 쪽을 택했다. 그는 결과를 떠나 서태지를 피하지 않았다는 이미지를 남기는데 성공하며 서태지 은퇴 이후 박진영이 그 반사이익을 누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가 모 방송에 나와 서태지의 '난 알아요'부터 쓰인 랩뮤직 라임들이 거의 대부분 '랩'의 장르적 룰을 어겼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 대표적인데요. (무려 이에 대해 대학 논문까지 내려고 했다는 첨언까지 덧붙였었다) 사실 이 비판의 내용이 정확했는지 아닌지를 떠나서 서태지가 하는 음악은 지금까지 없었던 음악이었기때문에 무조건 그가 하는 음악에서 태초의 신비만을 느꼈을 뿐 그가 틀렸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대중에게 있어 박진영의 이러한 '학구적'인 모습은 그를 일개 '댄스가수'에서 어쩌면 서태지 이상의 무언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티스트로 대우해주게 만들어주는 배경이 됩니다. 다만 당시 음악계는 서태지가 틀렸는지 아닌지조차 판단할 수 없을정도로 이 '랩'이라는 장르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전무했던 상황에서 '박진영'이 날린 서태지의 음악에 대한 비평이 정말 맞는 말인지 판단할 수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겠지만 말입니다.


신이 될 수 없었던 아이들...

이런 박진영이 키우는 아티스트, 게다가 서태지가 떠난 공백의 충격파를 흡수하기엔 단순히 음악적 한계가 분명한 아이돌로 매워지고 있었던 그 공백을 대놓고 노린 그룹 god는 음악적 재능이나 맴버들의 가치 이전에 박진영이라는 네임벨류로 먼저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음악적 색깔에서 그의 느낌이 묻어나온다는 평가에서부터, 김태우와 박준형이 균형을 맞춰주는 R&B와 정통랩의 조화까지, 그동안 컨셉이 맞추는데 급급해 불안한 음악적 완성도를 용인할수밖에 없었던 SM의 음악에 점차 질려가고 있을 무렵 등장한 god의 타이밍은 정말 절묘했습니다. 이들은 아이돌은 무조건 키크고 잘생겨야 성공한다는 편견을 벗었음은 물론 대형 전문 기획사의 버프가 없이 프로듀서 한 명의 능력과 명성만으로 아이돌 그룹의 궤도진입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컸다고 평가할 수 있었죠.

god는 당대 아이돌 중 가장 슬로우스타트를 한 사례에 손꼽힌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god의 기획사였던 싸이더스는 복합 엔터테인먼트 그룹이었던데다가 god를 전후해서 가수는 고사하고 이렇다할 연예인을 키워내거나 소속 운영한 전례가 손꼽힌다는 점에서 더욱 그럴수밖에 없는데, 이런 점은 god이후 싸이더스의 행보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그런데 당시 god를 박진영이 기획하고 곡을 주고 키워냈다는 인식 때문에 싸이더스의 역할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만, 사실 god가 국민그룹이 되기까지 싸이더스가 했던 역할을 무시하기 힘듭니다. god가 실질적으로 국민그룹이 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god의 육아일기까지 god를 이끈 건 박진영의 버프가 아닌 싸이더스의 인맥과 역량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기 때문이죠. 실제로 싸이더스는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MBC 예능국과의 라인을 매우 탄탄하게 이어오고 있기 때문에 지금으로 치면 칸무리프로그램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만한 (지금도 지상파에서는 상상도 할수없는) 그룹 이름을 내건 주말 가족시간대 버라이어티 편성을 안겨다주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봐도 무방했습니다.

싸이더스는 단순히 가수 매니지먼트사가 아닌 영화, 음악, 공연예술, 방송연예에 이르기까지 성역이 없는 복합엔터테인먼트사를 표방했기 때문에 가수를 직접 육성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만, 이미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신인을 집중투자 후 적절히 자금을 회수하는 능력이 매우 탁월합니다, 물론 이에 대한 노하우도 풍부하죠.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이바닥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점과 소속 연예인들의 근속기간이 업계 평균 이상이라는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즉 소속 연예인이 어떻게 해야 '회사'차원에서 이익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경영수완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러나 이런 싸이더스의 성향은 아무래도 전문 가수 매니지먼트사의 개념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던데다 그만큼 음악에 대한 가치를 홍보 소모품이나 상품 요소 정도로 치부하는 식의 보여지는 가치관 때문에 SM을 비롯한 많은 음악 전문 매니지먼트사의 갖은 비판과 견제를 받기 시작하는데, 이는 싸이더스에 협력하고 있는 박진영이라고 해서 불만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싸이더스가 시총 2천억의 위엄을 자랑했던 당시 시총 300억에 불과했던 SM의 싸이더스를 향한 극렬한 디스는 그들의 영업수완에 대한 질투심의 발로였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러던 SM이 이제는 싸이더스의 스타들 막굴리는 시스템에다 노예계약 옵션까지 도입하며 6년만에 시총 2천억을 달성하는 아이러니한 역사를 쓰고 있는 중이라는 점은 또 다른 이야기...


god의 활동 중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 중에서 크게 두 가지를 꼽자면, 하나는 '잇따르는 교통사고', 또 하나는 '리더 박준형의 그룹 제외 시도 스캔들'이 될 텐데요. 무리한 스케줄 편성으로 인한 과속 탓에 벌어졌던 잇따른 교통사고는  '벌때 바짝 벌자'는 싸이더스의 성향과 연관을 안지을수가 없는 노릇이었고, 리더 박준형을 god에서 제외하고자 하는 움직임 역시 상품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관련 부가가치 상품 매출만 봐도 답이 나오니까) 맴버를 사전에 제외함으로서 향후 재계약에 있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측면이 없었다고 보기 힘들었습니다. 실력파를 선호하는 박진영으로서는 김태우와 함께 god의 음악적 중심을 잡아주는 박준형의 탈퇴를 그냥 두고볼 리 없었고, 때마침 팬들 역시 박준형의 맴버 제외 시도가 있을때마다 반대 여론을 만들어준 덕에 박준형은 god의 마지막까지 함께할 수 있게 됩니다만, 잊을 때마다 나왔던 교통사고와 주기적으로 꺼냈던 박준형 맴버 제외 카드는 싸이더스와 박진영의 관계를 좋지 않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일이 반복되는 가운데 가수 보호를 내세웠던 박진영이 자신의 이름을 건 기획사를 직접 설립하고 god를 이적시키는 것으로 일단락되는데요. 그런데 이때 아주 묘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다름아닌 JYP의 설립과god의 이적이 맞물리는그  시점에 윤계상의 군입대가 결정, god에서 이탈하게 된 것입니다. god는 인기 구심점이었던 맴버를 잃은 충격을 극복하지 못했고, JYP체계에서는 이렇다할 성과 없이 4인 체계로 한 장만의 앨범과 뒤이은 전국투어 콘서트의 흥행 참패 충격을 뒤로 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윤계상은 군복무 뒤, 보란듯이 싸이더스에 남아 각종 드라마, 영화의 주연을 따냈음은 물론 연기자로서 거품이 아닌 착실한 내공을 쌓아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가수 출신 연기자로서는 보기 드문 롱런을 기록하고 있다. 싸이더스와는 2009년 말 결별했지만 그는 싸이더스 소속으로 군 제대 이후만 따져도 크고 작은 영화 4편에 주연급 캐스팅을 해내며 연기자로서 충분한 기회와 가능성을 부여받았다는 평가다.

god가 이렇게 좋지 않은 뒷맛을 남긴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박진영이 당시 자신의 능력을 너무 과신했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습니다. 아이돌이나 가수를 육성하는 데에는 단지 좋은 곡을 쓰고, 좋은 능력을 갖춘 맴버를 모으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음을 자각하지 못했다는 것, 다시말해 싸이더스라는 기획사의 능력과 수완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god가 박진영이라는 스타 프로듀서의 버프를 받았다는 것, 그러나 그 박진영을 스타 프로듀서로 인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었던 근본적인 홍보 전략 자체조차 싸이더스의 능력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던것이죠.

하지만 이를 단지 싸이더스의 능력 부재만으로 치부하기에는 다소 개운치 않은 결과론이 자리잡고 있는데요. 이들이 god로서 활동을 끝내고 각자 홀로서기를 할 때 어느 누구 하나 JYP에 남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국민그룹 god의 아쉬운 마지막 모습이 과연 박진영이 역량부족을 드러낸 결과였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100% 자신의 계획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그룹에 대한 미련을 전혀 남기지 않은 의도된 부분이 있었는지가 지금까지도 알 수 없는 의문으로 남고 있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SM엔터테인먼트가 동방신기를 데뷰시키기 전에 기존 유망주들을 정리하듯 박진영이 어떤 변화를 감지하고 그의 성향을 대폭 수정하는 가운데 기존 전략에 맞춰 육성되었던 가수들을 정리했다는 추측이 가능합니다만, SM보다는 내부적인 치부를 드러내는 헛점을 잘 노출하지 않았던 그의 전략 탓에 아직까지는 이 당시의 변화에 대한 답을 내리기가 애매한 것이 사실입니다.
 

활동중인 가수들을 대상으로 한 앙케이트에서 다시 보고 싶은 그룹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god, 하지만 서태지와 아이들, HOT가 각각 해체와 활동 중지를 선언했을 당시 사회적인 파장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이들의 쓸쓸한 퇴장은 많은 점을 시사하게 만들고 있다.


다만 아쉬운대로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조금이나마 대신해주고 있는 듯한 JYP발 최종병기가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god의 쓸쓸한 퇴장과 동시에 전혀 다른 스타일로 포텐셜을 폭발시키며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던 누군가가...


中 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