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1. 9. 13. 03:15

한류가 난리입니다. 처음에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아리송해하던 사람들도 속속 실물 증거들이 나오자 '오오!'하며 간증을 해버리는 모양새가 이어지고 있고, 실제로도 꽤 실물 자체는 굳건해보이기도 하는데요. 그들은 한결같이 지금 시장에 만족하지 않고 언젠가는 세계 최대의 음반 시장인 미국을 석권하겠다며 포부를 밝히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미국을 부르짖었던 JYP와 최근 대세를 몰아 미국 진출을 타진하는 SM이 대표적인데요. 완전히 상반된 길을 통해 미국 진출을 노리고 있는 이들 두 회사 중 과연 어느 쪽이 얼마나 미국에 다가서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JYP의 전략은 생각보다 매우 명쾌합니다. 미국에서 팔리는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미국인이 듣는 정서가 있고 그 정서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팝문화'에 기반하며 그 시기 한국에 있는 누구보다 그들의 음악을 많이 들었고, 연구했던 박진영 자신이 미국 진출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음악은 철저하게 미국 색깔에 맞춰나가게 되는데요. JYP의 미국 진출은 임정희, 비, 원더걸스 등으로 대표될 수 있는데 이 중 원더걸스는 아직 현재진행형으로 결론을 유보할 수 있지만 임정희와 비의 경우는 확실한 실패 사례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데요. 미국팝 키드라고 자부하는 적임자에게 무엇이 부족해서 이런 결과를 초래했던 것일까요?

빌보드를 매주 보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미국의 음악 유행이라는게 생각보다 꽤 변화무쌍한 편입니다. 첫 주에 복고바람이 불었다가 그 다음주에 갑자기 댄스팝이 핫100 1위를 먹고 전주 1위는 보이지도 않는 현상이 벌어지는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거죠. 이게 이른바 '주류'라고 불리는 빌보드계의 트랜드인데, 이런 주류는 대부분 '세터'와 '리더' 즉 그 트랜드를 만들고 이끌 수 있는 권력을 가진 기획사나 레이블들이 독식하게 됩니다. 주식시장에서 워런 버핏이 투자하는 종목이 오르는것처럼 그들이 어떤 장르를 띄우겠다고 선언하면 업계 판도가 그 장르 위주로 재편되는 것이죠. 당연히 미래를 '아는'것보다 미래를 '만드는'쪽이 훨씬 성공할 가능성이 높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이 분...


그리고 이 트랜드를 만들고 이끄는 리더들 뒤에는 언제나 그 트랜드를 '완벽히' 소화하여 시장의 파이를 키우면서 그 키워진 파이를 먹는 세력 이른바 '대세'들이 있게 됩니다. 이 대세들은 트랜드 정보를 누구보다 가장 먼저 캐치하여 다른 경쟁자들보다 더 빠른 시점에서 제작에 착수, 가장 완벽한 시기에 가장 완벽한 작품을 내놓는 역할을 하게 되는거죠. 이들 역시 성공 가능성이 높고, 돈을 많이 벌게 됩니다. 이들은 주로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을 유력 아티스트들에게 공급하는 공급책 역할도 겸하게 되는데요. A급 팝스타들이 받는 곡들의 장르가 대체적으로 천편일률성을 띄는 것도 바로 여기에 이유가 있습니다.


굳이 예를 들자면 이 분 정도...


그리고 그들의 뒤를 쫒아 한발 늦은 타이밍에서 떨어지는 고물을 받아먹는 중간세력층이 존재하고, 그들이 먹다 떨어뜨린 먼지를 쓸어담는 하층세력이 존재하는데요. 중간세력이 시작된 시점을 1단계로 봤을 때 하층세력까지 각 단계별로 최소 10단계 이상은 형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런 복잡한 먹이사슬이 왜 가능한지는 두말할필요도 없이 시장이 너무 크기 때문이죠. 우리나라 음반 시장이 아무리 커도 미국 하류 5단계 정도의 떡고물이 최대치라고 하니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2위 일본 역시 잘나가던 때에나 겨우 주류 끝자락 정도를 노려볼만 한 수준이었지, 지금은 중간층 2단계 정도에도 못미치는 수준인거죠.

이렇듯 미국 음반 시장에서 메이저라고 할 수 있는 주류 라인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실력은 기본이고, 시장에 대한 이해와 정보전에도 강해야 하며, 결정적으로 운까지 따라줘야만 합니다. JYP는 바로 이 주류 라인에 합류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인데요. 이 라인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안정적인 수익 구조가 정해져있는 만큼 진입 장벽이 매우 까다롭다는 점에 있습니다. 질량보존의 법칙과도 같이 메이저 라인이 먹고 남은 떡고물은 언제나 한정되어 있고, 그 한정된 시장을 나눠먹는 트리구조가 되어있다면 이미 수익지출 구조가 바늘하나 들어가기 힘들 만큼 꽉 짜여져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죠. 세터, 리더, 대세, 중간세력, 하층 할것없이 어느 하나 '새로운' 도전자를 받아들일 상황이 못됩니다. 떡고물이 10이 떨어진다면 그 아래에 있는 세력은 2만으로 케파가 딱 맞춰져 있는 회사 5개가 있는 생태계인데, 만일 여기에 새로운 회사가 끼어들게 된다면 그 회사가 2 이상을 먹던 1도 못먹던간에 원래 있던 회사들은 2에 맞춰져 있는 케파를 수정할 틈도 없이 궤멸하게 되니 저항이 심해질수밖에 없는 것이죠., 특히 미국에서는 제 3세계 음악이라고 하는 (이 부분은 아래에 따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한국계 프로듀서가 이 라인에 끼어든다는 것은 인종, 민족적 보수성에 따른 시장 저항까지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을 초래하게 됩니다.

이리 치이고, 저리 밟히고...


이런 구조에서 살아남으려면 당연하겠지만, 지극히 불필요한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게 됩니다. 새로 끼어들기 위해서는 그 계층에 있는 다른 회사들의 이해를 구해야 하니까요. 수익보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라인 전체가 등을 돌리지 않도록 많은 로비를 벌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유력 작곡가와 친분을 쌓아야 하고, 적어도 트랜드 세터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 중간세력 2단계 정도의 든든한 백은 필수로 있어야만 하죠. 위에서 내려다보는 눈이 아니면 '하류세력' 중 곧 도태될 세력이 어느쪽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고, 그들의 도움이 없이는 도태되는 타이밍에 맞춰 진입하려는 수많은 진입 경쟁자들보다 더 빠른 타이밍에 침투해야 하는 시간싸움에 이길 수 없기 떄문입니다.

원더걸스가 HOT 100위 최초 진입에 눈물짓는 이유, HOT100진입이 쾌거라며 JYP가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인터뷰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 아동복 매장에서 1달러에 팔렸다는 사건은 선뜻 와 닿지 않지만 나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비록 1달러에 팔리는 하류라인이지만 '메이저'에 진입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죠. 이들은 이 라인에 진입한 이상 적어도 그 라인의 그 계층에서만큼은 지속적으로 JYP의 아이돌이나 아티스트를 메이저 본류에 올려놓을 전용 포트를 만들어놓은 셈이 된 것입니다. 물론 그 이상의 라인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또다시 많은 투자 혹은 운이 따라주어야만 하겠지만 적어도 '단계적인 발전 가능성', 그리고 보수적인 투자자들이 좋아할만한 '안정적인 대세 라인'에 소속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용이하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대기업 사원보다 9급 공무원이 대접받는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당연한 이치인 것이죠.



문제는 이들이 반드시 착실하게 '윗 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말씀드렸지만, 어디까지나 이 트리구조에서 하위층은 케파를 맞출 수 있는 최소한의 수익만을 나눠먹는 구조이기 때문에 외부적인 자금 유입 없이는 과감한 투자를 통한 성장이 어렵다는 것인데요. 외부 자금의 유입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의 외환관리법과, 미국의 연방법을 동시에 준수해야하기때문에 세금 부담도 그만큼 많아지며, 현지 노하우가 없는 만큼 다른 기업들에 비해 배 이상의 지출을 야기하게 됩니다. 과연 이런 자금력을 지속적으로 받쳐줄 수 있을 만한 자금동원력이 유지될지가 미지수라는 점을 우선 들 수 있겠고요.

두 번째로는 이들의 트랜드 체이스 능력이 과연 미국 본토에서 활동중인 기획사들에 견줄 수 있거나 비교우위를 보일 수 있을 정도의 경쟁력이 있느냐는 점입니다. 대세의 정보 속도전이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본류에서 JYP가 가질 수 있는 위치, 즉 대세와 독창성의 벨런스를 얼마나 맞출 수 있느냐가 불투명하다는 약점이 작용하게 되는 것이죠. 언어의 장벽은 물론이고 타지인이 가지게 될 어쩔 수 없는 불리함에 대응하는 JYP의 대응은 애석하게도 '유행을 타지 않는 복고'라는 키워드였던 모양입니다. 이걸로 어떻게든 핫100을 맞춘 것은 칭찬받을만한 부분입니다만, 이후 국내 팬들에게 알려진 원더걸스의 활동 모습은 국내 팬들에게는 거부감이 느껴질만큼 현지화된 전략을 취하게 되죠.



사실 제일 큰 문제는 바로 지나치게 미국 라인을 지키려고 노력한 나머지 '국내 시장을 거의 포기'하다시피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다소 안좋은 모습 중 하나가 내수에서 돈을 벌어 해외마케팅에 쓰는 라인인데, 사실 이게 제대로 국내에 회수만 된다면야 딱히 욕할 부분은 아니거든요. 그러나 JYP는 미국 진출에 올인, 그것도 미국 내수 중에서도 하류쪽 컨셉을 맞추려 들다보니 미국 빌보드 1위권 가수들도 국내에서 히트하기 어려운 판국에 이들의 달라진 모습을 신선하게 받아들여줄 준비가 될 리 만무했습니다. 결국 JYP는 내수에서의 활동을 포기한 댓가로 매 활동마다 거의 밑빠진독에 물붓는 식의 투자를 할 수 밖에 없고, 끝이 안보이는 미국 시장 공략의 이같은 출혈 행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SM은 JYP와 완전히 정 반대의 노선을 취합니다. 필자의 지난 글 '대한민국 걸그룹 - 일본의 로리문화가 침투했다고?' 에서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SM의 전략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죠. JYP처럼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미국 시장에 '도전'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반드시 '조금이라도' 수익성이 검증되지 않는 한 엉덩이를 떼지 않는 묵직한 대기업의 행보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일 수 있겠죠.

메이저 기획사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정도를 걸을 것으로 보신다면 큰 오산입니다. SM은 국내 활동에 있어서도 실질적 구매층과 객단가가 높은 계층만을 집중적으로 빨아먹는 소수정예 정책을 취하기 때문이죠. 이런 행보는 해외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매니아층의 실구매력이 높기도 하고, SM이 표면적으로 유럽 내 인기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유투브 조회수, 광장에서의 플래시몹, K팝 동호회 등을 우리나라에서 서브컬쳐 인터넷 문화가 대중문화에 끼치는 영향이 어느정도인지를 비교해본다면 이해가 쉽게 되실 텐데요.


언제부터인가 걸그룹팬들이 오덕스러워졌다, 아니 그들이 오덕을 필요로 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왜 SM이 매니아 계층의 시장성에 주목하고 그들의 공략에 주력하느냐면, 그들의 활동은 굉장히 가시적으로 잘 드러나고 수치적으로도 굉장히 낙관적인 수치를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제연구소에서도 어떤 제품을 그 제품을 좋아하는 사람들만을 한정해서 여론을 분석하지는 않겠죠. 당연히 전국민,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보편적인 선호도를 조사하기 마련입니다. 당연하겠지만, 그 제품을 좋아하는 사람들만을 한정해서 마케팅 전략을 짜는 것은, 소들에게 파리채가 필요하니까 모든 동물은 파리채를 필요로 할 것이라고 판단한 일화와 다르지 않게 되갰죠.

이런 매니아층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것은 SM에게 있어 커다란 두 가지 메리트를 제공해주는데요. 하나는 이들의 활동이 가시적이기때문에 그로 인한 전시 치적을 과시할 근거를 제공해주는 것이 첫번째이고 두번째는 앞서 걸그룹 컬럼에서도 밝혔던 것처럼 '소수정예'식 확실한 고정 수익을 먹을 수 있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음반 판매량이 다른 가수들에 비해서 적지만 그 음반 가격을 높게 책정하거나 음반에 어떤 특전을 넣어서 1장 뿐만이 아니라 많게는 4~5장 정도를 살 수 밖에 없는 전략은 이미 잘 알려진 대로겠죠.


이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사실 SM이 늘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시장을 정복했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이면에는 한국보다 더한 아시아권의 '돈 안되는 치적성 성과'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SM엔터테인먼트의 2011년 1/4분기 매출 분포를 보면 총 매출 200여억원 중 150억원 가량을 국내에서, 나머지 50억원을 해외에서 벌어들였다고 나와있는데요. 그 50억원 중 40억원 가량을 일본에서 벌어들인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 중 일본과 국내를 제외한 12억 인구의 중국과 동아시아 전역에서 벌어들인 수익이 고작 10억원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이는 우리나라에 일본 문화가 본격적으로 개방되었던 2000년대 초반의 일본 애니메이션의 DVD, 일본 음반의 정식 수입 판매량과 비견될 정도로 처참한 수준인데요. 이는 SM이 얼마나 '소수정예'의 구매에 지독하게 의지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도의적인 '무상 문화 활동'에 지나치게 묵인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나쁘게만 말할 것도 아닐 것이 사실 SM이 노리고 있는 유럽이나 미국의 틈새 시장은 의외로 굉장히 가능성이 풍부한 편입니다. JYP가 미국을 직접적으로, 그것도 메이저 라인만을 노리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들은 독립리그에서 '확실히 돈을 챙기는' 스타일인것이죠. 한국을 제외한 동아시아권, 남미, 유럽 미국 모두 사실 '아시아 문화'를 즐기는 매니아층은 예전부터 매우 꾸준히 '고정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고, 그 시장을 지금까지는 거의 90%이상을 '일본 JPOP'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만, 최근 몇 년간 일본 시장에 불어닥친 어떤 '심각한 변화'로 인해 음반 시장에 새로운 투자와 신인 발굴에 정체가 벌어지고, 밀리언 스타들이 예전만 못한 기량을 보여주는 부진 속에 해외 시장에서 팬층이 급격히 빠져나가는 대안으로 KPOP이 선택받게 된 것이죠.


다만 이 문화가 미국이나 유럽이라고 해서 메이저로 당당하게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아시아 문화에 심취하는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오덕' 취급 이상을 받기 어려울 만큼 뭔가 '당당하게 드러내기 어려운 취향'인 것만은 분명하고, 이들 문화가 메이저 챠트에 털끝만큼의 영향을 끼칠 만큼의 파괴력을 미국이나 유럽 전역에 어필할 만큼 시장 권력이 강할 리도 없습니다. 아직도 아시아 문화를 즐기는 수많은 사람들은 '아시아 문화' 상품을 구매할 때 아주 부끄러운 취향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SM이 유럽정복의 근거라며 내세우는 공연 순식간에 매진, 추가 공연 요구, 커버 댄스 대회 성황, 유투브 조회수 같은 것들은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든지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라르크라는 록그룹이 내한공연을 했을 때 불과 1시간만에 전 좌석이 매진되었다는 일화도 있었고, 엄연히 일본 캐릭터와 음악 가수들을 흉내내는 동호회가 국내 곳곳에 성황중이며, 음악을 카피하거나 안무를 커버하는 이벤트 역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역시 이를 두고 '일본 문화가 한국을 정복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실제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일본 만화가 한국에서 그렇게 인기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무척 많았으며, 라르크의 매진 소식에는 경악을 금치 못해할만큼 이런 소식에 일본 언론은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일부 한국인의 활동일 뿐 한국을 정복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결정적인 것은 일본 문화 전체가 한국에 스며든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특정 회사', '특정 소속사'의 쾌거를 국가 전체의 경사로 보기 힘들다는 일본 언론의 이유있는 무관심이 있었던 것이죠.

라르크 내한공연


이야기를 원점으로 돌려 SM의 미국 진출에 대한 해석을 내리자면 '일본 JPOP'이 가지고 있었던 이른바 '아시아 오덕들' 시장을 먹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봅니다. 즉 '상륙' 자체는 JYP가 겪었던 것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이고 유럽에서 했던 '이벤트 쇼'를 미국에서 동일하게 연출해내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문제는 '거기까지'라는 것이죠. 미국의 '아시아 오덕'을 정복한 것이 미국을 정복한 것도 아니니까요. 이미 아시아 오덕은 아시아에서 나오는 문화 콘텐츠를 구매할 의사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 계층이기 때문에, 미국 국민들을 상대로 한국 문화 콘텐츠를 당당히 경쟁에서 이겨서 팔아서 국위선양했다는 식의 자뻑은 상당히 무리수가 될 것입니다.

다만 SM은 JYP가 그랬던 것처럼 굳이 미국 메이저 취향에 맞는 음악을 양산하려 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으례 듣던 음악을 가사 번역 없이 한글판 그대로 수출하는 전략을 고수할 것임은 분명해 보이는데요. SM이 딱히 음악에 대해 자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 편이 일단 더 잘 팔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시장은 '아시아 오덕'인데 굳이 영어가사로 불러서 어색한 작품이 나오는 것을 그들이 원할 리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일단 한국 가사 그대로 수출해야 국내에 국위선양 드립을 하기도 훨씬 수월할뿐더러 결정적으로 투자자들의 '애국심'을 자극하기에도 더할나위없는 효과를 주니, 그들로서는 돈은 들고 곡 형태를 망가뜨려가면서까지 영어가사를 넣을 이유가 없게 됩니다.

그들의 음반은, CD장이 아닌 침대 밑, XBOX 혹은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숨겨져 있다.


정석대로 가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한참 멀어보이는 JYP, 우회로를 택했지만 미국 정복이라는 실질적 대의보다는 눈가림식 치적에 치중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는 SM 중 누가 더 미국 진출에서 큰 성과를 거둘지는 속단하기 이릅니다. JYP역시 정석을 유지하기에는 자금력에 슬슬 한계를 드러내고 있고 SM은 아예 시장의 실질적 수익에는 관심도 없으니까요. 만일 두 회사의 미국 진출이 가시화가 된다면 먼저 두각을 나타낼 쪽은 SM이 될 것입니다. 팬 응집력은 오덕파워만한게 없으니까요. 우리는 유럽때 그랬던 것처럼 또 미국이 '한류에 열광한다' 고 보도되는 기사와 특집 다큐를 한동안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어느 정도 급성장 뉴스 이후에는 이렇다할 소식이 들려오기 힘들 것 같네요. 물론 JYP도 돈만 꾸준하고 충분히 가져다박는다면야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지금도 자금력이 바닥을 향해 돌진하는 마당에 개미 투자자들에게 기대는 시한부 돈줄이 언제 마르게 될지 몰라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결론은 SM,JYP 어느쪽도 'KPOP'을 가지고 '미국을 정복'할 가능성은 참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다만, 미국을 정복했다는 기쁨의 자위만큼은 충분히 누리게 해줄 능력이 충만해 보이니,
우리 모두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공화국 연구소 - 대한민국 아이돌 기획사 열전 JYP엔터테인먼트편 (부록) 을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11. 6. 25. 22:36
상 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 --- 못보신 분들은 클릭

그들이 HOT의 '실패'에서 깨닫게 된 실패 원인은 놀랍게도 '기획의 미숙함'이 아니라 기획은 완벽했으나 그 완벽한 기획을 제대로 소화해주지 못한 유망주들의 실력 부재였습니다. 물론 아무리 지난 이야기라고 해서 당시 SM의 이같은 판단이 반드시 잘못된 결과론을 도출하기도 애매합니다. 사실 문제는 어느 한 쪽의 책임이 아닌 SM, 나아가서는 가요 시장 전반에 있었거든요. 아직 대한민국은 아이돌 시장을 어떻게 소비해야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고, SM은 그런 아이돌 시장이 이미 안정화되었다는 전제 하에 너무 기획을 완벽하게만 짜내려고 했으며 그런 치밀한 기획을 접해보지 않았던 유망주들이 이를 이해하고 제대로 소화할 리가 없었던거죠. 다시말해 시장, 유망주, 기획사 모두 풋내기에 지나지 않았기때문에 시간을 두고 같이 성장시켜야 했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기획은 완벽하다'라는 SM의 편식성 자아도취로 인해 아이돌 시장은 아주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난 천재니까...


그 한계를 매우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 바로 HOT의 해체입니다. 얼핏 보면 계약분쟁만으로 보이는 이 사건은 사실 일부 SM맴버들이 '회사에 남았다'는 점에서 단순한 계약분쟁으로 치부하기에 어려운 감이 있는데요. 이들 5명이 지금까지 이어오는 행보를 보면 각각 롹커(...), 소프트팝가수 (이상 SM에 잔류한 문희준, 강타) 1인 기획사 창업 후 브리티시 팝, 힙합 음악, 댄스 위주 보컬 (이상 잔류하지 않은 토니안, 이재원, 장우혁) 입니다. 눈치채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잔류하지 않은 3인의 음악적 행보가 SM이 지금 현 시점까지 해왔던 음악적 색깔과 맞지 않았다는 점이 우선적인 문제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만, 단지 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음악을 하게 해준다는 것 이상의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SM은 HOT의 표면적 성공을 기반으로 꽤 빠른 시점에 주식회사로 전환 코스피에 상장을 하게 되는데요. 이 상장이라는게 벤처기업 입장에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만큼 성공 그 자체일수도 있습니다만, 냉정히 보면 결국 '회사'가 완전히 내 것이 되는 게 아니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즉 경영상의 간섭을 받게 된다는 것이고 업계에 전문적인 지식이나 애착이 없이도 얼마든지 돈만 있으면 이 회사를 소유해서 내 마음대로 주무르는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즉 '경영권 방어'가 안되는 것은 물론 주주들의 수익을 위해 무조건 생산적인 활동만을 해야하고 지출을 줄여 순익을 높이는 활동을 강요받게 되는데요. 바로 이 점이 SM전체 조직의 분위기를 결정해버리고 맙니다.

리더 문희준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사회비판적인 음악 코드와 강한 전사의 이미지라는 HOT의 기획은 문희준의 솔로 데뷰로 이어졌고 HOT의 금전적인 성공을 가져다준 소프트팝 음악을 추구했던 강타의 잔류는 매우 자연스러웠습니다. SM이 지금까지 해왔던 음악과 크게 차이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남은 3인은 일단 당시 시점에서 해오던 음악도 아니었고 그들의 음악을 뒷받침할 기획 인력도 없었습니다. 즉 추가 투자가 필요했던 사안이었다는 것이죠. 여기에 이들이 요구했던 부분은 '가수로서의 재계약'이 아닌 '일정 지위 이상의 승진'이었던 것 같습니다. 즉 가수로서 활동은 하면서 자신들의 음악을 추구하는 후배들을 SM 내에서 키워내는 새로운 파트를 맡고 싶다는 것이었죠. 이들의 요구는 기획사에 소속되어 5년 이상 활동한 가수로서는 지극히 당연할수밖에 없는 요구였습니다만, SM은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즉 그들은 새로운 음악을 기획할 자금도 그들을 중역급에 가까운 대우를 해주며 신인을 키우는 역할을 부여해줄 생각도 없거니와 결정적으로 'SM의 기획 가능한 권리'를 독점하고 싶어했던 경영진을 위시한 실무진들의 몽니가 자칫 아이돌들의 은퇴 후 승진이 당연시되는 풍토가 정착되는 것을 막았던 것입니다.

문희준의 솔로 데뷰가 지속적인 안티팬만 양산하자 SM은 아무미련없이 문희준을 포기한다. 그의 군입대는 안티팬들을 설득시키기 위함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진은 군 제대 후 2008년 싸이더스 소속으로 신보를 냈을 당시...


SM은 돈을 많이 안주거나 노예계약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신인으로 입사해서 열심히 SM이 하라는 대로 기획에 발맞춰 꼭두각시짓 하고 난 뒤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동네 피자집도 3년 이상 배달일 열심히 하면 매니저 승진의 기회가 있기 마련인데, SM은 적어도 가수들에게 있어서 '회사 내부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실무진 참여'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기획은 어디까지나 처음부터 프로듀서를 하던 사람들 즉 유영진 라인이 독점할수밖에 없었고 그 아래에서 아무리 강타나 문희준이 선배급 대우를 받으며 승진을 한 들 독립적으로 자신들의 경험을 살려 새로운 신인을 기획하거나 키워내는 것은 있을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즉 HOT의 해체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를 알고서도 그냥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쪽이 SM에 남았고 이에 반기를 든 3인이 박차고 나간 것이 되는 셈인데요, 물론 세간에 알려진대로 불공정한 계약 관행 역시 문제가 되었겠습니다만 그 이전에 사실 이들은 엄밀히 말해 SM 5년차로서 그에 걸맞는 지위 상승과 연봉을 요구했고 승진도 안시켜줄거고 돈도 지금 이상 더 줄 생각이 없다는 SM의 입장이 이들과 대치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자승자박에 가까웠던 SM의 HOT에 대한 오판은 이후 SM의 행보에 있어 갖은 후유증을 남기게 되는데요. 우선 4집부터 과감하게 시행한 실력파 아이돌의 육성을 완전히 포기하게 됩니다. 이는 물론 그렇게 나온 아웃풋이 상품성이 너무 떨어졌다는 점도 문제가 되었습니다만, 더 큰 문제점은 그렇게 키워놓은 결과 자신들의 능력과 경력을 내세워 '상관 대우'를 요구하는 빌미가 된다는 점이었죠. SM은 이후 5년 주기를 꾸준히 지키는 한편,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아티스트형' 유망주를 멀리하는 등 철저하게 아이돌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유닛형 유망주만을 선발하는 풍토가 자리잡게 됩니다. 그냥 기획한 대로 잘 소화해주는 유망주가 필요할 뿐 음악적 역량을 키워 새로운 음악 포멧을 추구하는 한 축으로 자리잡을 아티스트를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이죠.

바다 이야기는 좀 하고 넘어가자, SM 소속 가수 중 최초로 유영진 사단에 '개긴'뒤 재계약 불발과 소속사 이적 이후 전설적인 수준의 찌질한 방해공작은 이미 잘 알려져있지만, 그녀가 왜 SM에 개겼는지, 왜 그 개김에 SM이 발끈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위키에도 언급이 안되어있다) 가수였던 아버지에 의해 오랫동안 트레이닝된 그녀만의 독창적인 창법은 흔히 SM창법이라 불리는 그것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으며 이를 유영진 사단이 자신의 기획에 맞게 맞춰나가면서 창법 개조를 거부한 바다측과 트러블이 잦았다고 한다. 자신의 기획과 음악에 대한 프라이드가 하늘을 찔렀던 당시의 유영진 사단에게 있어 이런 행위는 하극상과 다름없게 받아들여졌고, 결국 메인 보컬의 탈퇴라는 흐름을 감수한 채 SES와 바다 모두를 떠나보내는 강수를 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바다 한 사람만으로 SM, 특히 유영진 사단의 성향을 적나라하게 설명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리고...보아!

보아는 이런 어수선한 환경 속에서 기획된 프로젝트였습니다. 당연하겠지만 HOT의 사례에서 굳어져 지금까지 이어져오고있는 SM의 철학이 모두 집대성된 최초의 작품이자 (좋지 않은 의미에서) 거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죠. 당연하겠지만, 보아가 일본에 진출한다는 의미는 SM엔터테인먼트의 일본 진출과 귀결되어 있었습니다. 사잔올스타즈의 300만장 싱글기록 우타다 히카루의 800만장 앨범신기록 등이 팡팡 터저나오며 음반 시장이 급폭발하던 당시 일본 시장은 SM이 소박만 치더라도 한국의 몇 배 이상의 돈을 벌 있다는 꿈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으니까요. 특히 아직도 음반협회에서 MP3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내수 음반 시장의 급격한 침체 역시 그들을 일본 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만든 계기로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보아는 '유영진'에 의해 기획되었다는 점에서 그 한계를 분명히 안고 출발할수밖에 없었는데요. 지금으로 치면 중2병이라도 걸린 듯한 유영진의 '사회비판'에 대한 집착은 보아의 데뷰곡 ID PEACE B의 실패로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나고 맙니다. 문제는 유영진이 진짜 10대를 제대로 분석하고 그들의 가슴에 불을 지필 수 있는 가사와 곡을 쓸 수 있느냐면 그렇지도 않았고, 그런 곡이 10대들에게 음악적으로라도 어필이 되었냐면 그쪽은 더더욱 아니었기 때문에 보아는 데뷰때부터 각종 구설수에 시달리며 기획 자체가 좌초될 위기에 처하는 등 분위기가 상당히 심각해집니다. 보아는 후속곡 '사라'로 SM의 거의 사력을 다한 푸쉬를 통해 명예회복에 성공하지만, 예정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일본 진출 준비에 전력을 쏟게 되죠. 준비를 하면서 간간히 국내에서의 신곡 활동을 겸할 수도 있었겠습니다만, 보아의 멘탈 손상이 극심하다고 판단했을것으로 본 SM은 외부노출을 극도로 꺼린 채 AVEX와 공동으로 제 2의 육성에 돌입합니다.


이 보아의 육성 과정 역시 SM의 아이돌 육성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요. 1999년 데뷰 이후 2년 이상의 공백기를 거친 2001년 일본 데뷰까지 2년간의 공백기간 동안 이루어졌던 제 2차 트레이닝이 그것입니다. 즉 지금까지의 SM의 육성 기간이라고 한다면 아무리 널널하게 잡아도 음악적 감각과 댄스 실력, 아이돌 컨셉 소화 능력까지 포함해서 2년을 넘기기 힘들었습니다만, (악명높았던 SES의 트레이닝기간도 2년 전후) 보아의 경우 투자 금액과 트레이닝 기간이 비약적으로 길어져버린 것이죠. 댄스나 음악에 대한 감각 등 기초 트레이닝 과정 2년에 연예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언어 능력이나 예능 개그 연습, 간단한 단막극 정도는 소화할 수 있는 연기까지 복합적으로 손을 대는 과정 2년이 다시 포함되게 됩니다. 물론 이렇게 길어진 트레이닝 기간이 정설이 된 이유는 보아의 기하학적인 성공 사례 때문임은 말할 필요가 없죠.

여기에 보아가 SM의 육성 과정에 끼친 또 하나의 영향은 '아이돌'의 데뷰기준 연령대를 높인 대신 육성시작연령대를 대폭 낮추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물론 10대 초반부터 육성을 시작하는 조기육성이 향후 재능 계발 측면에서 효과적인 부분이 분명 있을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생활 통제'가 가능하다는 점에 있죠. 단체 합숙과 끝없는 연습, 절대적인 서열 체계의 엄격함 속에서 자라나는 유망주들은 상대적으로 외부에서 머리가 굵어지기 전에 서열 체계 속 상하관계에 훨씬 더 익숙해지고 맙니다.

HOT 맴버가 아닌 보아가 서열 1위인 이유...


이는 SM에 있어 두 가지 큰 이득을 가져다주는데요. 우선 육성 과정에서 SM에 절대적인 충성도를 주입시켜 향후 재계약이나 불공정 계약을 강요하는 데에 드는 장벽을 대폭 낮출 수 있다는 것이 잘 알려진 첫 번째이고, 잘 알려져있지 않은 두 번째는 말 그대로 생활 통제, 즉 아이돌의 순수무결성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아이돌 윤리 기준은 매우 엄격하기 때문에 과거 담배를 피우는 사진이나 폭력에 연루된 증거 등 윤리의식에 반하는 과거가 적발될 경우 아이돌로서 살아남기 힘든 풍토가 (당시까지는)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아예 사춘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생활 전반을 통제함으로서 데뷰 이후 일어날 수 있는 각종 문제점을 사전 예방하고자 하는 포석이 있었던 것이죠. 일본이야 아이돌이 스캔들을 일으키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시스템입니다만, 에초 계약 자체가 일방적인 육성과 소유권을 주장하는 한국의 계약 조건에서는 그런 조항을 넣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에초 소속 정규직이 아니므로) 처음부터 상품에 손상을 가하지 않는 쪽에 투자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보아'의 성공 전후,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SM의 주식시장상장을 전후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SM의 육성 체계가 급작스럽게 늘어난 시기가 보아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한 뒤라고 가정한다면 2002년 후반 정도가 되는데요. 문제는 이 때까지 정상적인 흐름으로 국내 시장을 노리던 SM의 보이그룹 걸그룹 라인이 급작스럽게 '해외 경쟁력이 있는' 소수정예 라인으로 수정되면서 국내용 아이돌로 키워지던 아이돌이 떨이처리되듯 쏟아져나오게 되는데요. 보아 라인이었던 다나, SES라인이었던 밀크, HOT-신화 라인이었던 블랙비트가 속속 데뷰를 빙자한 '정리'가 되면서 SM의 유망주라인은 새 판을 짜게 됩니다.

SM의 잃어버린 역사로 남아있는 그들...블랙비트


사실 그냥 키우던 애들을 더 키워서 해외진출시키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블랙비트의 경우 이미 5년 이상 육성이 끝난 상태였고 그밖의 그룹 역시 그 시점에서 나이가 20줄을 넘긴 데뷰 시기가 꽉 차버린데다, 그렇게 머리가 굵어진 애들을 추가적인 비용과 시간을 들여 육성시키기에는 매우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들이 해외 진출하는 데에 있어 국내용 이상의 포텐셜을 보이지 않았던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진정 옮은 판단이었던 역사적인 오판이었건 말입니다.

그리고 SM이 가질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고민은 '보아'라는 거대한 떡밥에 비해 SM이 가진 실속이 너무 적었다는 사실인데요. 사실상 AVEX 산하의 이른바 '아무로 - 하마사키 - 코다'라인을 탔던 보아의 후광 탓에 SM이 보아에 대해 주장할 수 있는 지분이 거의 없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보아가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 곡들은 대부분 일본 원곡인데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곡 역시 스웨덴 리메이크곡 NO.1 .... 음악 최우선주의를 표방했던 SM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음에 분명했을테죠. 게다가 유영진의 곡 메이킹 능력 역시 이전의 불안한 중2병 때와는 달리 보아의 NO.1앨범을 기준으로 점점 완숙함을 보이고 있는 시점이었기때문에 진정 '지분 100%'를 가지고 '자신들이 만든 곡'을 내세워 일본 시장을 공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 했습니다. 물론 속사정을 살펴보면 보아의 성공에도 이렇다할 저작권료 수익같은 것이 대부분 AVEX좋은 일만 시켜버린 상황에서 SM에 돈이 돌지 않으니 주주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해외진출'을 위시한 투자금 추가 유치를 끌어낼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렇게 기존 라인을 다 버리는 모험수를 감행하며 그룹 하나를 데뷰시킵니다. 지금까지 AVEX나 BING을 벤치마킹했던 것과는 달리 지극히 쟈니즈 냄새가 풀풀풍기는 5인조 보이그룹이 ....



하 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