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ushAm 2010. 3. 27. 01:37
저는 굳이 따지자면 PC통신의 막차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딱 제 세대 뒤부터는 PC통신을 모르고 대부분 웹을 시작했으니까요. 당시 텔넷 프로그램을 통해서 학교 컴퓨터에서 PC통신을 접속하고 있으니 후배들이 '형 지금 해킹하는 거에요?'라고 묻던 게 생생하네요. 아무튼 이 PC통신을 기점으로 현재의 넷상에는 세대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합니다. 과거 통신에서의 낭만과 추억을 기억하는 PC통신 세대와 모든 게 갖춰진 인터넷 세대로 말이죠.


이 PC통신 세대들이 생겨난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분명한 것은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인구가 대거 이동할 당시 PC통신의 매력을 포기하지 못하고 인터넷에 적응하지 못했던 계층이 상당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의 인터넷은 무개념에 악플 문화, 상호 비방 문화, 비뚤어진 카폐지기의 권력 남용 등 실생활의 활력소가 되기에는 너무 실생활과 닮아 버렸다고들 하는데요. 특히 이들은 PC통신을 거치지 않고 인터넷에 바로 입성한 이른바 '초딩'세대들을 혐오합니다. 네티켓을 먹는 거라며 우걱우걱 먹어버린 그들의 예의없는 행동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 충분했으니까요.

어쨌든 지금의 인터넷에는 예전 PC통신에서 느꼈던 재미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의견인데요. 이를 단순히 네트워크 세대차이라고 보기에는 지금의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이전과는 너무 다르게 (특히 한국이) 변해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네트워크였기에 혹은 네트워크만이 가능했던 강력한 개성들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는 것인데요? 이미 생활 필수품이 되어있고 너도 지금 인터넷으로 글 쓰고 있는 주제에 무슨 헛소리냐! 라고 하실수도 있으시겠습니다만, 일단 한 번 들어보세요.


인터넷 주로 어디에 쓰시나요?

아침에 일어나서 PC를 켜는 건 이미 당연한 일과가 되었습니다. 켜서 바로 하시는 건 보통은 웹브라우저를 로딩하시죠. 언제부터인가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컴퓨터는 아무것도 못하는 깡통으로 인식하는 분들도 많은데요. 그만큼 첫 일과는 부팅이 아닌 웹브라우저 접속입니다. 모든 용도는 우선 여기까지의 공통점을 지닌 채 세분화됩니다. 메일을 읽는 분, 뉴스를 읽는 분, 쇼핑을 하는 분, 인터넷 뱅킹으로 돈을 보내는 분 메신저에 접속하는 분, 게임을 바로 로딩하는 분, 업무 파일을 다운로드해서 일을 시작하는 분들 등 여러 가지 쓰임새를 보이는데요.

특별히 이상하다고 트집잡으려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세히 보시면 굳이 인터넷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가능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즉 지금의 인터넷은 마치 휴대폰에 달린 손톱깎이처럼 우리가 움직이는 동선을 줄여주거나 시간적 비용적 절감을 해주는 (대체 수단)으로서의 가치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죠. 인터넷만이 가능한 게 아니라 마치 예전에 교과서에서 배우듯 '전화가 없으면 얼마나 불편할까"라는 것처럼 '인터넷이 없으면 얼마나 불편할까?'라는 식의 역할 부여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예전 PC통신과는 다르게 심히 다양한 연령대가 대거 참여하는 범국민 네트웍이 된 인터넷은 점차 현실의 그것을 닮아가고 있는데요. 모르는 사람과 벽이 없는 솔직한 교류가 가능했던 것에서 이제는 각종 사이버 범죄로 인해 점차 '아는 사람들끼리'의 제한된 네트워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초창기 네트워크에서 선보였던 ICQ나 넷미팅 등 인터넷이 처음 내세웠던 '전 세계인을 내 친구로 만들자'는 구호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됐죠. 지금은 누군가가 나를 친구로 추가하면 아는 사람이 아닌 경우 대화조차 걸지 않은 채 바로 삭제되는 것이 현실이며 국제적 교류는 이미 관심밖으로 멀어진 지 오래입니다.

사이버 범죄 탓일까?

물론 인터넷에서 지금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사이버 범죄, 매춘 등이 사람들의 열린 마음을 닫히게 만들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이런 사이버 범죄는 PC통신 시절이라고 해서 없었던 것은 아닌데요. 당시에는 이런 '사기' 행각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자가 많지 않았고 간간히 뉴스에 등장하는 정도에서 사건이 더 커지지는 않았습니다. 즉 인터넷 사기나 범죄 등이 많아지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이에 흥미를 보이는'사람도 인터넷에 덩달아 늘어났기 때문이며 한발 더 나아가 우리가 인터넷 자체의 정화 활동에 지나치게 무관심한 채 양적 팽창에만 전념해 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흥미를 보인다는 것은 결국 '돈'이겠지요. 언제부터인가 인터넷은 '돈'이 되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시간 대비, 노동력 대비 결코 효율적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는 인터넷이 조금이나마 돈이 된다면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모습이 지나치리만큼 자주 보여지고 있는데요. 노력에 비해서는 정말 하찮을 정도로 푼돈입니다만, 많은 사람들은 그 금액에도 만족스러워하죠. 아 내가 '놀면서'도 돈을 벌었구나, 라고 말입니다.

여기에는 장기화되고 있는 청년 실업 문제와 더불어 부모 세대들의 몰이해로 인한 보수적 시선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있습니다. '게임'을 포함한 컴퓨터로 하는 모든 것들은 이미 '공부'에 방해가 되는, 혹은 '돈도 쌀도 나오지 않은 무생산성의 폐인짓'으로 규정하는 것이 거의 공통화되어 있죠. 이에 새뇌당한 지금의 인터넷 2,3세대들은 인터넷이 '생산성이 없다'라는 것을 뒤집을 만한 작은 것에도 집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결코 '노는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리고 인터넷을 하면서 편하게 돈을 벌수 있는 법을 찾는 데에 집착했고 기업들은 이를 악용하여 여러 가지 병폐를 낳는 수단들을 만들어 냅니다.

블로그는 이미 돈을 받고 쓴 상품평, 이벤트 참여 포스트로 도배가 되어가고 있고 쇼핑몰의 상품평은 신뢰도가 점점 하락하고 있습니다. 어디에서나 댓글 알바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고 게임 업계의 성공 요인으로는 '환금성'이 '참신성'을 능가한지 오래이며 양질의 포스트를 양산하는 블로거들은 자세히 살펴보면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계약조건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애드센스를 달아놓습니다. 그리고 그 애드센스를 위한 포스팅 재생산, 자극적인 제목, 흥미 위주의 포스팅 남발 등 기존 언론사들의 병폐로 지적했던 것들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죠. 결국 언론사들의 기준없는 상업화를 지탄했지만 정말 아주 약간의 돈 관계가 들어가자 블로그계가 그보다 한술 더 뜨고 있는 모습은 아쉽다 못해 씁쓸하기까지 합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이렇듯 자신의 노력에 대한 '댓가'를 지불받는 것에 집착한 문화는 비단 '금전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데요.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면 늘 볼 수 있는 '방명록 홍보 - 글 잘 읽었습니다. 시간나시면 제 블로그에도 들러주세요 -라든지 인기 블로거들끼리 의리 추천으로 추천수를 서로 올리기,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방문자수 집착, 트위터의 '맞팔로' 문화 (내가 너한테 아무 관심이 없지만 내가 팔로우해줬으니 너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팔로워해야한다)등 자신의 인간적 평가기준을 지나치게 인터넷 수치 평가에 의존하는 데에서 파생된 반드시 준 만큼 받아야한다는 '제 몫 챙기기'심리가 인터넷을 점점 재미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돈'이 되지 않으면, 준 만큼 나한테 되돌아 오지 않으면 '재미'도 없다는 식의 논리가 자발적인 의사결정을 방해하고 일원화된 흐름을 고착시키고 있죠.

자신이 쓴 시간을 인정받기 위한 것이 반드시 당장 돌아오는 금전적 혹은 인간관계적 수치평가에 기인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에 집착하면 할수록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정말 헛된 시간이 될 수밖에 없는데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 시간적 금전적인 부분에 지나치게 집착한 결과가 현실사회에서는 입을 닫은 채 굳은 표정으로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으로, 인터넷에서는 베타적 인간관계, 금전만능주의, 보상심리에 근거한 병폐로서 보여지고 있습니다. 현실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서 등장했던 인터넷이 점차 그 기능을 잃어가고 현실의 악랄함을 닮아가고 있는, 아니 오히려 한술 더 뜰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습니다의 기쁨을 앗아가버린 것은 기업들의 홍보메일매거진과 스팸메일이었던 것처럼 즐거움과 '돈'은 결코 일치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결과는 이루어졌을때의 기쁨이 아닌 이루어지지 않았을때의 '배신감'만이 남게 되죠. 지금의 인터넷이 보여주고 있는 현실, 그것은 마이너스 이론처럼 '당연히 얻어야 할 것을 얻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불만입니다. 이것이 플러스 이론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인터넷으로 얻을 수 있는 조건에서 '돈'과 '수치적 평가'를 제외하면 되는 것이죠.

블로그 방문자수를 늘리기 위해, 팔로워수를 늘리기 위해, 추천수를 늘리기 위해 '영업'을 뛸 필요 없이 자신의 글 그리고 자신의 면면만을 보고 방문해주는 방문자 그리고 추천은 영업에 의한 그것에 비해 몇 배의 가치와 기쁨을 안겨다줄 것입니다. 인터넷에서든 현실에서든 결국 인간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인간 본연의 본질적인 가치에 기인할 뿐 수치적인 데이터는 전면의 통과의례에 불과합니다. 자신이 인터넷에서 쓴 시간을 어떻게든 보상을 받고 싶다면 인터넷을 바라보는 시선부터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요?

인터넷은 예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쓰는 사람에 따라 식도가 사람을 찌르는 범죄도구가 되는 것처럼 변한 것은 인터넷이 아니라 그것을 쓰는 사람들의 생각에 있음은 두말할필요가 없겠지요. 인터넷은 여전히 재미있고 유익하며 그 문은 여전히 활짝 열려 있습니다. 돈은 반드시 인터넷으로만 벌어야할 필요도 없고, 자신이 가진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한낱 팔로워수, 방문자수, 추천수가 아닙니다. 인터넷을 다시 재미있는 곳으로 그리고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인간적 매력을 느낄수 있는 장이 되기를 희망해보며 인터넷 그리고 인간  번외편 '인터넷이 즐겁지 않게 된 이유' 편을 마칩니다.


posted by RushAm 2010. 1. 9. 17:51
우선 여기에서 말하는 '셀카','셀카녀'라 함은 여러분들이 이 단어를 보고 느끼는 그것입니다.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그 수위가 달라질 수 있으며 받아들이는 분들에 의한 자의적인 수위 판단이 가져오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는 본 블로그는 하등 책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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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국어사전에도 등재되려 하고 있는 단어 '셀카'는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요? 누구나 자신의 독사진을 남기고 싶어하지만 예전 필름카메라 시절에는 독사진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찍고 싶어하는 성향이 강했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사진 한 장 대비 지불하는 비용이 크기 때문에 비용절감상의 이유가 가장 컸다고 할 수 있겠죠. 여튼 적어도 필름카메라 시절처럼 사진 촬영에 자본적 책임을 져야하는 당시에는 셀카의 개념이 지금만큼 대중화되지는 않았음이 분명해보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했기 때문에 없던 셀카의 본능이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닐것입니다. 주부들이 시장을 볼때 저렴한 것만을 선호하는 이유가 돈을 쓸 줄 몰라서가 아니라 돈이 풍족하지 않기 때문인것처럼 셀카 역시 확실히 꽤 오래전부터 인간의 본성 속에 잠재되어 있는 '자아실현'욕구 중 한 가지였고 그것이 사진 촬영 대비 단가가 급격이 낮아진 디지털카메라에 이르러 폭발했다고 볼 수 있겠죠. 필연적으로 셀카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 확율이 높기 때문에 필름카메라에서 대중화가 되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니까요.

셀카를 찍는, 그리고 찍고 싶어하는 이유는 잘 알려진 것처럼 '자아실현'욕구에 의거합니다. 이는 최근 30년간 TV의 영향력이 거대해지고 대중가수나 텔런트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표현 방법이 비주얼적인 측면으로 대거 쏠린 탓인데요. 즉 자기자신의 자아를 다수에게 인정받는 방법론이 점차 심화되고 있는 학생들의 고된 학습고문으로 인해 급격히 단순화되고 있는 것이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방법, 사람들에게 내 존재, 내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현대사회에서 오히려 일원화되고 단순해지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아이러니합니다.

지금도 어떤 다른 형태로 계속되고 있습니다만 보통 초등학교 시절에는 보통 자신의 자아를 대신하는 수단 중 하나로 '딱지'형태의 물건이 각광을 받곤 합니다. 이 딱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암묵적으로 높은 지위를 갖게 되고 적으면 적을수록 낮은 지위를 얻게 되죠. 점심시간만 되면 서로의 딱지를 차지하기 위한 배틀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이른바 '올인'을 당한 사람은 슈퍼마켓에서 빵 봉지를 무단으로 뜯어 스티커를 훔쳐내는 등 막다른 행동을 보이면서까지 자신의 자아를 지켜내려는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이런 딱지가 배틀 카드 게임이나 인터넷 게임의 레벨, 훈장 등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격과 역할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이네요.

뜬금없이 왜 딱지 이야기가 나오는지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의 셀카는 딱 이 수준에서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외모는 누구나 어떤 특정한 사회적 기준에 모두 완벽히 부합해서 나올 수는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등급(?)이 생기게 되는데요. 어떤 형태의 얼굴이 대세인 사회에서 그 얼굴에 100% 부합되는사람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며 그 관계는 냉혹할 만큼 부합 정도에 정비례합니다. 그 얼굴이 사회적 대세라고 해서 대세에 부합하지 않은 얼굴이 분명 예쁘지 않은 건 아니건만 (분명 근미래 혹은 과거에 그 얼굴 형이 대세가 되는 혹은 되었었던 때가 있었음에도) 부합되지 않는 쪽은 철저하게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특히 질풍노도의 시기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소외감을 견디기 어려워할수밖에 없는데요.

예전에는 이러한 관심의 카스트가 네트워크에 부재로 인해 넓어봐야 약 1천명 안팎에서 이루어지던 것이었다면 최근에는 인터넷의 발달과 소셜네트워크의 대중화 그리고 셀카 문화의 정착으로 인해 그 범위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넓어졌습니다. 셀카 하나 잘 찍어서 연예인 되었다는 소문이 나돌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적 추세에 부합하는 얼굴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셀카 사진을 소셜네트워크 혹은 더 넓은 공간에 공개함으로서 네트워크 상의 지위와 관심을 확보하는 활동에 적극적인데요. TV미디어의 연예인들에게 추앙받는 대중권력을 지켜보며 자라온 그들에게 있어 대중의 관심은 곧 권력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다는 것은 곧 소외되는 쪽이 있다는 이야기가 되죠. 자신이 반드시 외모에 강점이 있는 것은 아닌데, 아니 지금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미적 기준을 가진 게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현실과 네트워크 모두에서 소외를 받는다는 것, 현대사회에서는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법적인 하자가 없는 왕따 정도로 설명이 되겠군요) 카스트 사회가 아닌 자본주의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카스트로 고통받는 것만큼 괴로운 것도 없을테니까요. 이들의 선택은 상당히 절박합니다. 포토샵 보정도 해보고 그나마도 안되면 진짜 얼굴을 뜯어고치기도 합니다. 심한 경우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PC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알몸을 촬영, 공개하면서까지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만 이런 극단적인 사례가 결코 희귀하지 않다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지네요.

이처럼 네트워크 상의 권력이 더 이상 무형의 그것이 아니라는 관점이 사회적으로 정착된다는 것은 곧 그 수단 자체에 자아를 몰입하는 정도가 점차 깊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셀카사진을 대량으로 양산하여 불특정다수의 대중들에게 평가를 받기를 원하고 그 평가에 일회일비하며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디지털 혹은 리얼 성형을 통해 보완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짙어집니다. 이른빠 뽀샵질이 대중화된 것도, 근 10년 내 성형산업이 폭발적으로 증가세를 보인 것도 디카 혹은 폰카의 보급과 관계가 적지 않을텐데요. 거울의 발명이 반드시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준 것만은 아닌 것처럼 셀카 역시 불편한 진실로 인한 불행을 자초했다고 보는 것도 과장은 아니겠죠.

내가 가장 자신있는 분야에서 다수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비단 그것이 외모냐 아니냐를 떠나서 상당히 중요한 인간의 본능적 감성이니만큼 현상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지금의 셀카 문화에서 벌어지는 갖은 문제들은 단순히 젋은 세대, 어린 학생들의 도덕적 태만으로 보기에는 지금의 사회가 지나치게 자신들이 벌여놓은 상황에 대한 책임회피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과연 이들이 외모 이외에 자신이 타고 난 특별한 개성을 스스로 존중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 단순히 시대적 흐름에 의한 어쩔 수 없는 변화의 바람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요? 카메라 앞에서 화장하고 성형하고, 사진을 뭉개고 빛나게 하고, 그렇게 해서라도 인정을 받지 못하면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치부까지 드러내면서까지 사람들의 눈길과 껍데기뿐인 관심이나마 얻고 싶어하는 현대인들, 누가 이들을 이토록 외롭고 단순하며 어리석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요?


공화국 연구소 특별기획 '인터넷 그리고 인간' 제 2화
'셀카녀 그들이 궁금하다' 편을 마칩니다.


인터넷 그리고 인간 시리즈 회차

1화 : 악플러 그들이 궁금하다.
2화 : 셀카녀 그들이 궁금하다.
3화 : 디씨인 그들이 궁금하다.
4화 : 대행녀 그들이 궁금하다.


posted by RushAm 2009. 11. 27. 09:33
인터넷이 오랜 역사가 흘러 미래에 어떤 발전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는 알 수 없지만 PC통신이 지금 세대에게 어필하는 모양새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인터넷도 미래를 사는 그들에게 있어 아주 오랜 세대차이를 느끼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합니다. 요즘 세대들에게 다이얼업모뎀은 생소하기 짝이 없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아마 인터넷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에피소드는 예나 지금이나 혹은 근 미래에 있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지금의 인터넷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저런 일들은 사실 그 형태만 달리했을 뿐 맥락적으로는 PC통신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었던 일들이니까요. 악플, 사이버 테러, 명예훼손, 번섹 등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흑막은 결국 '인터넷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이용하는 그 어떤 것이라면 어디에서나 표본 오차 하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정치권에서는 실명제를 해야한다, 인터넷을 제한시켜야 한다는 둥 그 해결책을 '인터넷을 폐쇄시키는' 데에 중점을 두고 찾고 있습니다만, 사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리얼월드가 절대적으로 평화롭지만은 않은 것처럼 인터넷 역시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합류해있는 이상 다양한 군상들의 면면이 드러나는 것이 결코 이상한 게 아닌 것이죠.

정치권이 실명제같은 어처구니없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이유도, 거기에 국민 반수 이상이 동의하는 상황도 모두 인터넷이라는 공간,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사회적인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맹목적으로 리얼 월드의 통제 방식을 그대로 적용시키는 데에 따른 거부반응과 역효과를 고려하지 못하고 있고 때문에 해결책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더 음지로 숨어들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공화국 연구소의 새로운 연구 주제 역시 사실 이를 완전히 이해하고 반듯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고는 보장할 수 없겠습니다만, 제대로 된 정공법을 쓴 논문이 사실상 전무한 실정에서 하나의 참고 자료로서 활용될 수 있는 정도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오늘은 첫 시간으로 '악플'을 쓰는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 패턴에 대해 연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화국 연구소에서 발표된 모든 연구 내용은 학술적으로 검증, 발표되지 않은 개인 연구 결과로 관련 내용을 응용, 활용하는 데에 있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는 글쓴이와 해당 블로그에 책임이 없음을 밝혀둡니다.

새로운 컨텐츠가 매일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인터넷의 속도만큼이나 악플 컨텐츠(?) 역시 지속적인 다양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이전 아무 의미없이 '욕설'을 써대던 것에 비하면 정말이지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 유형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원시형 : 단순히 욕설만을 쓰는 것이 아닌 해당 콘텐츠 (인물 등)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지칭하는 타입
2. 배틀형 : 해당 콘텐츠가 아닌 해당 콘텐츠를 옹호하는 다른 덧글 이용자들을 타깃으로 지칭하는 타입
3. 사상형 : 콘텐츠의 종류를 막론하고 모든 사건을 특정 계파, 색깔로 일원화시켜 주장하는 타입
4. 생떼형 : 콘텐츠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지 않았음에도 고객으로서 존중받아야 함을 주장하는 타입
5. 허영형 : 해당 콘텐츠를 비하하는 것으로 자신이 그 콘텐츠보다 위에 있음을 주장하는 타입

이밖에도 다양한 타입이 존재할 수 있겠습니다만, 직접적으로 어떤 목적에 의거하여 다른 사람을 공격하거나 눈살을 찌푸려지게 만드는 타입들은 저 정도 선에서 충분히 구분이 가능합니다. 물론 눈살이 찌푸려지는 덧글들은 '광고'를 비롯해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광고덧글은 사람이 쓰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사회현상이라고 보기는 다소 무리가 있겠지요.

우선 위에 제시한 다섯가지 악플 패턴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키워드는 '자아'입니다. 자기 자신이 '악플'로서 상대방을 공격할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데요. 이른바 사회적인 자격이라 불리우는 이것은 실제 현대 사회에서는 누릴 수 있는 계층이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특히 신 카스트 제도라고 할 수 있는 회사나 학교 등지에서 볼 수 있는 암묵적 계급 체계로 인해 하위 게급에 속한 사람들은 거의 상대에 대해서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니까요. 그래서 사실상 가장 하위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초등학생 계층의 악플 비율이 압도적인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욕설'에 별 거리낌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요 (오후 3시경 PC방에는 초등학생들의 욕설로 떠들썩합니다) 특히 초등학생 계층의 경우 사회적 하위 계급인 점도 그렇지만 핵가족화되는 가정에서 제대로 된 예절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 자녀가 상대방을 가차없이 비난할 경우 '기를 살려준다'는 명목으로 그러한 행동을 적극 장려하고 있는 부분이 이러한 현상을 낳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잘못된 가정교육이 지나친 자아성장을 야기하고 상대방을 무시하고 깔보는 감성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되는 것이죠.

청소년이나 20대 초반의 젊은층의 경우 개체수는 적지만 활약 빈도에 있어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데요. 이들은 대체로 성장하면서 부모가 커버하지 못하는 거대한 사회 조직에 점진적으로 합류하여 자신의 힘이 보잘것없음을 처음으로 절감하고 무너진 자아에 대한 보상심리가 악플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청소년기에는 특정 우상이 자신의 자아를 대변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들은 상대방의 우상을 비난하는 것으로 자신의 우상의 위상이 높아진다고 믿고 있으며 그 우상의 위상이 높아지는 만큼 그를 우상으로 삼고 있는 자신의 가치 역시 상승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80년대 초까지 흔히 유행했던 '1진'이라는 계급체계에서 이른바 '실세'에 붙기 위해 스스로 카스트를 만들어내던 고교생들의 심리가 인터넷상으로 표출이 되는 셈인데요. 대부분 이 우상에 자신의 자아를 거는 정도가 지나치다싶을 만큼 심하기때문에 실제로 서로 다른 우상을 가진 쪽과의 물리적 충돌을 빛는 경우도 잦고 우상의 행보에 따라 '자살'같은 충동적이고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20대 초반부터 30대 초반까지 비교적 젋은 층에 있어서는 주로 사회적 시스템이 자신의 자아를 펼치는 데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자신이 가진 사상이나 자아가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사회적 부조리로 인해 자신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자아 침탈형' 패턴이 주를 이룹니다. 즉 이들에게 있어 공격해야 할 대상은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에서 '성공'한 계층이 되는 것인데요. 자신의 자아가 인정받지 못한 사회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므로 이 문제가 있는 사회에서 성공한 그들은 당연히 내가 누려야 할 그것을 사회의 덕으로 빼앗아간 약탈자 정도로 어깁니다. 때문에 이들의 배틀은 현 사회에서 부와 명예를 얻은 사람들에게 집중되는데 어떻게 해서든 자신보다 못하거나 사회적으로 평균 이하의 부분을 찾아내어 집중적으로 그들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데에 열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들의 소비가 인터넷 전체의 흐름을 좌우하는 현실에서 언론은 본연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입맛에 맞춰 그들의 사사로운 사생활부터 과거사까지 끊임없이 이슈화를 시키는 데에만 열중하고 있으며 이에 만족하지 못한 일부는 언론이 미처 꺼내지 못한 민감한 부분까지 적극적으로 캐내 인터넷에 공표하는 모습도 보이는데요. 여기에는 앞서 언급했던 자아 침탈과 더불어 '동반자 심리'가 작용합니다. 즉 이런 사회에서 너만 성공하는 건 불공평하니까 우리 다 같이 불행해져야 억울한 사람이 없어지고 공평해진다는 하위 평준화 마이너스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죠.

최근 들어 상당히 흥미를 끄는 계층이 예전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30대 후반부터 60대까지 이어지는 '기성세대'계층입니다. 이들이 인터넷을 배우고 적극적으로 인터넷 사회에 동참하면서 예전에 볼 수 있었던 '인터넷 내'와 '외'의 세대 차이가 지금은 모두 '인터넷 내'의 여론으로 거의 통합되어가는 분위기입니다. 이들의 악플 패턴은 현 사회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20대의 그것과 흡사하지만 그 지칭 대상이 '젊은 세대'나 '지역 주의','특정 정치 사상'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상당히 낡은 논제임에도 이들은 아직 그 논제가 유효함을 설파하며 그 논제에 있어 조금이라도 반하는 사건이 일어날 경우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특정 사상을 근거로 자의적인 해석을 내리는 패턴을 자주 보이는데요. 때문에 급변하고 있는 국제 정세에 맞지 않고 특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상이 정론이라 굳게 믿는 일종의 '고집'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거의 듣지 않는 폐쇄적인 성향을 낳게 되어 토론조차 되지 않은 채 일방통행식의 주장 설파만을 지속하는 것도 이들의 특징입니다. 흔히 '알바'라고 오해를 받는 것도 이들의 이러한 성향에서 나오는 부분인데요. 각 상황에 맞는 논리보다는 자신의 주장이 관철될때까지 연역 논리를 내세우며 꿋꿋한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 꿋꿋함이 자신의 자아를 상징한다고 믿고 있으며 그 주장이 반박당하거나 혹은 그 주장에 어긋나는 정치, 사회적 사건이 일어날 경우 사상적인 연역법을 들어 모든 논제를 일원화시키기도 합니다.

개별적으로 살펴보면 주로 10대 초반부터 20대까지는 원시형과 배틀형 악플 패턴이 많습니다. 이는 이런 악플 패턴이 그들의 목적에 가장 부합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어리고 젋은 층일수록 한국의 교육 현실상 특정 지식에 의존하지 않는 자기만의 논조를 갖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1부터 10까지 창작을 해내기보다는 완성된 콘텐츠에 기초하여 그것에 덧붙이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것이 악플이 되고 각종 블로그에서 보이는 사회 현상들 (루저 논란 등)에 대한 의견과 비난 여론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사회를 관찰하여 스스롤 논제를 찾아내는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보니 악플조차도 까일 대상이 명확하지 않으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하는 빈약한 창작력을 감추지 못하며 때문에 이들을 상대할 수 있는 건 같은 20대 중에서도 자신의 의견과 상반되는 계층이 될 수 밖에 없으며 여기에 '우상'이 결부되게 되면 이른바 '콘텐츠'가 아닌 '다른 악플러'를 비난하는 '배틀형'으로 발전되는 것이죠.

30대에서 60대까지의 기성세대가 보이는 패턴이 '사상형' 되겠습니다. 이미 논리적으로 완전히 자리잡은 주관을 토대로 적어도 어떤 한 분야에 사상에 있어서는 스스로 논리를 창작해내는 것이 가능합니다. 다만 이들에게 있어 각 이슈에 걸맞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이미 큰 줄기가 잡혀 뿌리가 박혀버린 주관 탓에 그 주관에 맞지 않게 보이는 모든 것들이 일관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주관이 대체적으로 현대사회에서 그 입지 자체가 비좁은편이다보니 다양한 분야에 대한 악플들이 내세울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상당히 부실하지만 이들은 그 부실한 근거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으며 자신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진리임을 굳게 믿는 편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들의 책임감을 근거로 자신의 의견에 맞지 않는 의견을 '사상적 논리'로 일원화시켜 싸잡아 비판하거나 도의적으로 배틀을 유도하는 도발적 모습도 보입니다만 이는 배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기성세대로서 '그들 위'에 있고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우직함입니다. 즉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이 기성세대의 위엄을 보여줄 수 있다는 그릇된 발상과 현 사회에서 젊은 계층에게 밀려 변화되고 있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사회에서 점차 퇴출되고 있는 자신들을 직접 변호하고 자신들이 전성기를 누렸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억지로 조성하고자 하는 일종의 아집으로 볼 수 있죠.

생떼형 패턴은 자아가 지나치게 강하거나 혹은 부모의 과잉보호로 인해 사회 역시 자신을 보호하고 존중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고 있는 계층이 주를 이룹니다. 흔히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까지의 연령대가 주를 이룹니다만 핵가족화의 영향으로 이 연령대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게다가 점차 인터넷에 대기업 자본이 자리를 잡으면서 대고객 서비스에 있어서도 '무조건적인 친절'이 주를 이루다 보니 이로 인해 '피제공자는 존중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런 패턴이 비영리적 콘텐츠에도 이어져 문제를 양산하는 것입니다. 주로 개인 블로그나, 인터넷 신문, 무료 제공 콘텐츠 (웹툰 등) 가 그 대상으로 이들은 자신들이 그 콘텐츠를 공짜로 취하더라도 어떤 형태로는 콘텐츠 제공자에게 이익을 주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그런 발언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심지어는 해당 콘텐츠의 존폐나 방향성에 대해서도 명령할 수 있다는 다소 월권적인 개념을 보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재미있는 유형 중 하나인 '허영형'입니다.(허경영 아닙니다) 이 '허영형'이 자신의 신분이나, 재산 정도를 과장되게 표현하는 '거짓말'에서부터 출발했는데요 지금은 대부분 인터넷의 발달(?)로 개인의 신분 정도가 드러나는 것이 용이해진데다 그것이 대부분 허세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어 사라져가고 있는 추세에 있습니다. 대신 새롭게 등장한 형태가 어떤 완성된 콘텐츠나 성공한 인물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가함으로서 자신이 그들보다 '위'에 있음을 어필하는 패턴인데요. 연예인이나 그밖에 주요 공인에 대한 비판보다는 주로 자신과 큰 사회적 신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블로거'나 '웹툰'등에 집중되곤 합니다. 이것을 조금 재미있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만화 슬램덩크'의 영향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곳에서는 실제 뛰는 선수보다 옆에서 '비유적인 쓴소리'를 내뱉는 사람이 훨씬 더 위대해보이는 착시현상이 있습니다. 해남의 이정환이 관중석에서 한 말 '이 승부 윤대협의 승리다!'라든지 도미가 어떻고 가자미가 어떻다는 등의 이야기를 내뱉는 변덕규가 대표적이지요. 즉 이들은 뭔가 있어보이는 말로 축약적인 비판을 가하면 그 콘텐츠의 훌륭함을 딛고 자신이 그 훌륭함 위에 있다고 어겨지는 것입니다. '난 지금 초인기 파워블로거에게 쓴소리를 가할 만큼 위대하다'라는 착각이 바로 그것이죠. 특히나 개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의 경우 이런 악플에 동요하는 즉각적 반응이 있기 때문에 이들은 그것이 자신이 그 블로거를 단 몇줄의 답글로 이겼다는 쾌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들은 분명 자신들이 그 정도의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한다는 능력적 한계에 대한 불만을 다른 사람이 가진 콘텐츠의 수준과 얻은 명예를 빼앗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죠. 이른바 '남 탓' 잘 하는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떠세요 다소 수박 겉핥기식의 연구가 된 듯하여 개인적으로는 개운치않습니다만, 아직 악플의 세계는 종잡을수가 없는 게 현실인것 같습니다. 악플을 달 수 밖에 없는 유전자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 악플이 또 다른 악플러를 낳는 것을 보면 인간 본연적으로 내재된 잠재의식이 원래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러나 인터넷은 이제 인터넷 하나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해진 만큼 집전화를 완벽하게 대체해낼 기세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국민이 인터넷에 소속되어 있는 한 '인터넷'으로 인해 사람들이 병들어간다기보다는 '사람들'이 인터넷을 병들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옮은 답이겠죠. 인터넷을 규제하느냐 사람을 규제하느냐는 토씨 하나 다를 뿐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단지 국가관리체계의 편리성 때문에 대다수의 국민들이 불편을 감내해내는 것이 정당한 일인지, 아니면 불편을 막기 위해 해당하는 사람들만을 규제해내는 데에 집중할 것인지를 말이죠. 전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모는 것은 리얼 월드의 주민등록번호만으로 이제 지겹지 않으신가요? 국가경영의 편리를 위해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침해하는 일은 지금 시대에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제 1화 악플러 그들이 궁금하다 편을 마칩니다.



인터넷 그리고 인간 시리즈 회차

1화 : 악플러 그들이 궁금하다.
2화 : 셀카녀 그들이 궁금하다.
3화 : 디씨인 그들이 궁금하다.
4화 : 대행녀 그들이 궁금하다.


posted by RushAm 2009. 11. 21. 13:31
공화국 연구소 시간입니다.
약속드린 대로 '여자 그 특별함의 대하여'의 마지막 시간 번외편 나가겠습니다.

여러분은 '결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상하게 '죽음'과 더불어 인생에서 가장 큰 이벤트인데도 불구하고 좀 막연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죽음과 결혼의 공통점은 일어나기 바로 전날까지 '내 일이 아닐 거라'믿게 되는 점이라고 말이죠. (네 그 혹자가 접니다.) 얼핏 이해가 되면서도 어째서 그런 중요한 이벤트를 단지 '미리 생각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현실의 삶이 두렵고 괴로워질 뿐'이라는 이유로 인생에서 등한시하는 걸까요? 미리 대비한다고 해서 별반 달라질 게 없는 건 사실이긴 합니다만 적어도 그 문제에 대해 가볍게 넘기지 않고 조금이나마 '생각'해서 자신만의 '철학'을 만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는 정말 클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단지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의 문제가 되어버리는 결혼이라는 코드의 두려움부터 없에지 않으면 지금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의 '결혼'에 대한 걱정과 '갈등'이 사라질 턱이 없을 테니까요.


지금 결혼을 준비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단 처음으로 나오는 이야기는 예상대로 '돈'입니다. 일단 남자든 여자든 최소 월세가 나가지 않는 전세집 하나를 마련하고 최소 그 전세금의 배수 정도의 돈이 모일 정도가 되지 않으면 결혼 생활의 시작은 경제력 악화로부터 시작한다고 믿고 있으니까요. 생각해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이는 이게 사실 '결혼'그 자체만으로 보면 제법 문제투성이가 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결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결혼을 완전히 이해하고 대바힌다는 것은 사실상 무리일테니까요.

일단 이 '돈'을 무조건 먼저 많이 모아둬야 결혼할 수 있다라는 관점 자체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물론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돈'을 준비하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결혼과 관련된 대한민국 헌법에도 잘 나와있는 것처럼 '결혼'은 결국 내 재산이 부부라는 이름으로 아내와 공동 명의가 된다는 이야기가 되는데요. 지금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결국 '결혼'을 목표로 한 재산 불리기였다면 '내 소유'가 되는 재산은 지금 노력해서 얻는 것의 '절반'이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죠. 이 부분을 사람들은 의외로 재산을 '모을'때는 별로 의식하지 않고 재산을 다 모은 후 '결혼 적령기'가 되어 배우자를 찾을 때즈음이 되어서야 이를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상대방은 '내가 지금까지 노력해서 모은 재산과 지위'를 빼앗아가는 사람으로 보일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상대를 보는 눈이 점차 보수적으로 변하죠. 심지어는 자신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무조건 자신보다 더 돈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배우자만을 선호하는 지경에 이르는 것입니다. 결혼이라는 것을 준비하기 위해 '청춘'을 송두리째 회사에 바친 게 너무 아깝기도 하고 당연히 경력도 경험도 없는 신입 시절에 그 정도 돈을 벌기 위해서는 정말이지 고생이란 고생은 안해본 게 없을 테니까요. 물론 '셀레브레이터'들은 예외이긴 하겠습니다만 아무튼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는 연봉이 높을 리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결혼 적령기까지 정말 무리한다 싶을 만큼 전력스퍼트를 해서 모은 5천에서 1억 가까운 돈은 그냥 단순히 수치로 말할 수 있는 가치를 뛰어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주로 골드미스터, 골드미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결혼 적령기의 싱글 남녀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요. 젊은 시절 정말 다양한 경험과 연애를 통해 인생의 20대때 누릴 수 있는 감성을 충분히 누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극단적으로 결핍되어 이들의 결혼 활동은 그야말로 '내가 가진 재산을 빼앗기지 않는' 신경전과 다를 바 없는 모양새가 됩니다. 에초 다양한 이성을 만날 기회가 없었던 이들은 때문에 사람의 내면을 보는 것에 상당히 둔감하며 정신적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앞으로의 미래에 있어서도 물질적인 부분이 행복을 좌우한다고 굳게 믿게 되며 결혼 역시 그 물질적인 부분의 향상을 가져다주지 않는 한 큰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사람은 사실 원초적으로는 다 똑같기 때문에 이들에게 있어서도 '마음에 드는 이성과 함께 행복해지고 싶다'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는 내재되어 있습니다만 그 '마음에 드는 이성'을 판단하는 감성적 잣대가 정작 만들어져야 할 20대 때 전혀 만들어지지 못하다보니 정적 결혼 적령기 때 상대방을 보는 눈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연하겠지만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제대로 된 상대를 고를 턱이 없고 때문에 이들의 이혼율은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결혼 상대를 고를 당시 상대를 볼 수 있는 어떤 철학이나 기준이 없다 보니 다른 사람의 의견을 참고하거나 (주로 부모님이나 가까운 인생 선배의 의견을 빌리죠) 앞서 이야기한것처럼 인생의 절대가치라 믿고 있는 '돈'에 있어 내가 손해보지 않을 정도의 사회적 가치를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 사회적 가치에는 반드시 '돈'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암묵적인 '지위'로 표현되고 있는 것들 (여자 사회에서는 남성의 키, 남자 사회에서는 여성의 외모와 나이) 을 자신만의 계산법으로 일정 수준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여 자신과 대입하게 됩니다. 이쯤 되면 결혼이 아니라 '딜'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네요.

문제는 이런 골드미스(터)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상당히 일찍 사회 생활을 시작한 점도 있고 주어진 시간에 일에만 집중하는 워커홀릭이 되어 동년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고 연봉도 많다보니 평소 사는 모습도 상당히 화려한 편이기 때문에 평범하게 인생의 단계를 밟아나가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우상화'가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제 막 사회에 뛰어들어 회사 내의 상하관계 즉 현대사회의 신 카스트 제도라고 할 수 있는 회사 내 직위가 갖는 절대권력을 이제 막 맛보기 시작한 그들로서는 이미 성공하여 자산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동년배 친구들이 높게 보이는 건 당연한 것이겠지요. 이런 골드미스(터)들에게 주변 친구들이 필연적으로 던지는 질문 한마디가 바로...

'대체 비결이 뭐냐?'

...입니다. 현대사회가 만들어 낸 '소비문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향유하며 사회적 지위가 가져다주는 혜택을 막 배우기 시작한 그들에게 있어 이미 나보다 한발 더 앞서 그것을 누리고 있는 골드미스(터)들은 동경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여기에는 물론 부모세대들의 일방적인 전근대적 사상 주입과 (대부분 경제 부흥기 무렵의 가치관) 주변 사회의 압박, 서점에 나와 있는 수많은 서적들과 TV만 틀면 나오는 경제권력에 대한 찬양 등이 이들로 하여금 자발적인 인생 가치관을 만들지 못하게끔 짓누르고 있는 현실도 영향을 끼칩니다. 이들에게 있어 골드미스(터)들이 말하는 인생에 대한 조언은 이후 삶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에 중요한 기준점이 되는데요. 결국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속된 말로 '줏대 없는' 현대사회의 젊은이들이 스스로 자초하는 문제들인 셈이죠. 여기에는 비단 '사회적'인 관점 뿐만 아니라 '이성관'이나 '결혼관'도 포함되며 이들은 마치 연예인의 패션을 따라하듯 이들의 인생 가치관을 그대로 따르며 자신이 인생의 지름길을 가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게 되는 것은 물론 보편적인 관점에서 반드시 옮다고 볼 수 없는 골드미스(터)들의 삶의 방식이 하나의 사회적 목표이자 기준으로 확립되면서 사람들은 '젊을 때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짓'이고 '결혼은 감정만 가지고 했다가는 인생을 망치게'되며 '이성은 무조건 이런 저런 조건이 필요하다'는 식의 일원화된 포괄적 몰개성화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자신의 인생관을 남의 인생관과 결부시켜 결정하기에 급급한 현대인들의 자주성 결여도 한 몫 하겠습니다만 그렇다고 골드미스(터)들이 끼치는 영향력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는 보기 어렵겠지요. 일부 골드미스(터)들은 자신의 인생관을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의 가치관을 적극적으로 설파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아주 틀렸다고는 볼 수 없겠습니다. 늘 제가 강조하는 부분입니다만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느끼는 기준점이 제각각일테니 누군가에게는 이런 결혼 활동을 통해 얻은 배우자로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겠죠. 그러나 이게 보편적인 기준이 될 만큼 옮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결혼하는 연령대가 점차 높아지고 있고 성혼율은 점차 낮아지며 이혼율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볼 수 있는데요. 결국은 지금의 사회적 관점에서 보는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이 정신적인 행복은 물론 그들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경제 활동으로서의 결혼'역시 제대로 만족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얼핏 생각해보면 골드미스(터)들이 말한 대로 자신보다 더 재산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과 결혼하면 풍족한 결혼 생활이 이어질 것 같은데 그것도 아니라는 게 좀 아리송한데요.

그 이유는 '지금 현재의 모습'만을 '계산'적으로 판단하는 것 '밖에'하지 못하는 현대 남녀들의 모순적 계산법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상대가 연봉도 높고 사회적 지위도 나보다 높아서 경제적인 조건에서 완벽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일반적으로 결혼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매우 '포지티브'한 미래'만'을 예측하게 됩니다. 즉 이 사람이 지금 연봉이 이정도니까 앞으로 나이가 들면서 연봉이 얼마나 늘어날 것이고 결혼 후 몇년 안에 강남에 집 정도는 사겠구나 라는 식의 '돈이 늘어날' 계산만이 머릿속에 가득하게 되죠. 이런 와중에 그가 가진 '리스크'는 현재 드러나는 표면적인 모습에 철저하게 가려지게 됩니다. 상대가 가진 포텐셜, 인간성, 감성에 따라서 내가 생각하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계산적으로 정리된 절대적 법칙같은 '포지티브'한 미래가 반드시 시나리오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철저하게 무시되고 은폐되는 것이죠. 이 사람이 지금 가진 모습이 너무 눈부신 나머지 언제 이 사람의 전성기가 끝나고 '망하게'될 것인지에 대한 냉정한 '육감'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내는 게 결코 어려운 게 아님에도 말입니다. (사실 제 3자가 보면 누구나 그 사람이 앞으로 어떤 결말을 맞게 될 것이라는 걸 너무나도 쉽게 예측할수 있죠. 막장 드라마의 광팬들이 드라마를 쓰는 작가 이상으로 더 앞으로의 시나리오 전개를 척척 알아맞추듯이...)

그 반대로 지금의 모습이 '연봉도 적고 사회적 지위도 낮은'상대일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 사람의 현재 모습만을 비추어 '앞으로 연봉이 아무리 올라도 사회적 평균에 미치지 못할 것이 분명'하며 '강남에 아파트 정도 사는 시기가 동년배 친구들보다 최소 10년은 늦어지겠구나'라는 네거티브적인 미래예측만이 가득해집니다. 이 사람이 어떤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고 최소 10년 안에 이 사람의 능력이 새롭게 인정받아 갑자기 치트키라도 쓴 마냥 잘 나갈 수 있을 거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 사람이 돈을 앞으로 더 잘 벌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나, 적어도 이 사람과 함께하면 '돈을 잃지는 않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마치 주식투자를 하는 것처럼 '이 종목이 지금 상한가를 치고 있으니까 내일도 오를 것이라고 믿거나 오늘 하한가를 쳤다고 내일도 또 하한가를 칠 거라는 편견'과도 상당히 유사해보이네요.

돈이 중요한 현대 사회에서 결혼에 '경제력'을 고려하지 말라는 건 위선일것입니다. 그러나 그 '경제력'을 중시한다는 사람들조차 제대로 된 결혼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결국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그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은 불완전한 수단을 보편화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한데요. 요는 '결혼을 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결혼을 한다'는 생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돈을 번다는 개념은 마치 로또처럼 결혼 즉시 팡~ 하고 터지듯 재산이 확 늘어나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재산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점진적으로 재산을 늘려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지금 돈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사회적 지위를 충분히 유지하면서 재산을 잃지 않고 차분히 늘려나가는 사람을 고르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이죠. 아니 그런 식으로 어느 세월에 큰 돈을 만져보냐!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게시겠습니다만, 인생은 생각보다 무지 깁니다. 결혼 적령기까지 살아온 인생의 두 배 가량의 인생이 결혼생활로서 남아있는 셈인데, 과연 제대로 된 사회생활 기간으로 따지면 10년도 미치지 못하는 기간 동안 얻는 기회와 남은 30여년간 이어질 사회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기회 중 어느 쪽이 더 다사다난할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겠죠? 그렇기 때문에 흔히 '아무 의미 없다'고 치부되는 사람의 내면적인 가치가 결혼에 있어 지금 가진 사회적 지위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인생에 있어 승급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초등학교때는 중학생이 되는 것이 무섭게 느껴질수밖에 없고 중학생은 고등학생, 고등학생은 대학생 (이건 좀 다른 느낌이겠군요), 대학생은 군대 혹은 취업하는 것이 막연하게만 느껴지고 잘 와닿지 않는 불안감이 있기 마련이죠. 결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결혼부터는 인생이 흘러감에 있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선택적인 주관이 개입되다보니 이에 대한 두려움이 결국 '결혼은 필요없다'에서 심하게는 '결혼은 악습이다'라고까지 발전되는 모양새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두려워하던 그 승급의 대상이 직접 되어봤을 때의 경험을 기억하시는 분은 알고 계시겠지만 막상 두려워하던 그 시기가 오게 되면 그렇게 두려워하던 대상이었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습니다. 의외로 인간은 적응력이 뛰어난 동물이구나, 예상했던 대로의 수준이지만 그걸 못해낼 나도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시던가요? 사람은 계속 성장하고 있고 성장하기 전에 보이던 그것들이 막상 피부에 와닿게 되면 생각보다 잘 견뎌낼 수 있을 만큼 어느새인가 자신이 강해져있었음을 느끼지 않으셨나요?

결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결혼 전에 '고생'을 덜 하고 싶어서, 부모님 세대처럼 힘든 신혼생활을 보내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준비하는 것은 좋은 생각입니다만 결혼은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정작 돈을 벌면 벌수록 결혼 생활에서 있을 수 있는 수많은 다사다난을 견뎌낼 자기자신은 그 돈에 얽매여 점점 약해질테니까요. 돈은 언제든 벌 수 있지만 내가 강해질 수 있는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결혼을 대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레벨을 1부터 10까지 착실히 올리는 일이지 레벨 1이 현질로 레벨 10급 장비를 갖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레벨 10이 되지 못하면 레벨 10의 몬스터를 이길 확율은 높지 않습니다. 장비는 당신의 피를 하나도 안깎이게 만들지는 않으니까요. 그렇다고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생은 어차피 사는 사람의 것일 뿐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요. 결혼도 인생도 어차피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혼생활을 원활하게 이끌고 있다고 해서 인생이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고 해서 그들이 슈퍼맨이라도 되는 건 아닐테니까요.

그리고 결혼에 대한 자기 주관이 필요합니다. 결혼하면 뭘 해야한다. 뭘 해야한다 등등의 주변과 사회의 압박에 발맞추지 마시고 지금 함께 할 수 있고 앞으로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지속적으로 찾아보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공부에 때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인생의 가치관이 확립되는 시기는 확실히 정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결혼하고 40대에 접어들 무렵이면 이미 자신의 인생 가치관이 확립되어 그 가치관을 맹신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시기에 돈이 중요하다는 것을 머릿속에 가득 채워두고 결혼을 위해 노후를 위해 돈을 모으는 데에만 전념한다면 스스로 돈의 노예가 되는 인생을 자초하게 되는 셈이니까요. 여러분은 결혼의 행복도, 인생의 기쁨도, 만족스러운 인생을 회고하는 편안함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그걸 누리지 못할 시대에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 그것을 포기하지 마세요. '난 자격이 있다!'라고 늘 생각하시고 살아가주시길 바랍니다.

돈은 남의 돈을 벌어서 남에게 주는 것이 돈이지만.
행복은 내가 만들어서 내가 평생 가질 수 있는 나의 것이라는 것 잊지 마세요


공화국 연구소 '여자 그 특별함에 대하여'를 마칩니다.

1회차 담배를 피우는 여자 그 특별함에 관하여
2회차 바람을 피우는 여자 그 특별함에 관하여  
3회차 키스 그리고 또 한번의 키스 그 특별함에 관하여
4회차 재력에 끌리는 여자 그 특별함에 관하여
5회차 번외편
posted by RushAm 2009. 11. 11. 07:20
죄송합니다. 이번에 연재될 예정이었던 키스 또 한번의 키스는 수위 조절에 실패하여 등급을 걸 만한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버리는 바람에 비공개로 건너뛰도록 하겠습니다.

그야말로 경제가 최고인 시대입니다. 어느 때나 돈 돈 하지 않았던 때가 없긴 했습니다만 요즘만큼 심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드네요. 인생의 낭만을 즐기던 낭만주의자들은 철없는 정신병자 취급을 받으며 점차 멸종해가고 있고 부동산, 펀드, 주식까지 투자를 가장한 합법적인 파칭코에 전 국민이 몰리고 있습니다. 뭐 파칭코가 다 그렇지만 결국 돈을 일부 잃게 되어 있는 시스템인 점은 다 똑같아서 주변 어디 하나 돈 벌었다는 서민은 없네요. 카지노에서 돈을 가져가는 건 딜러고 파칭코에서는 파칭고 오너가 부자가 되는 시스템이니까요. 법적으로 금지되었다고 도박중독자가 사라진다고 착각하는 정부 하에 국민들은 원인이 '카지노'가 아닐 뿐 모두 도박에 미쳐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주제에 맞지 않게 왜 이런 뜬금없는 이야기로 시작했는지 궁금하실텐데요 결국 다 관게가 있으니 일단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각종 게시판에서 금지된 떡밥 중 하나가 '여자'라는 키워드인데요. 남여차별, 가산점 문제 뭐 등등 남녀간의 갈등은 한번 판이 벌어졌다 하면 끝도 없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그 중에 남성들이 가장 경기를 일으키는 떡밥 중 하나가 '된장녀'인데요. 이른바 '폼생폼사'로 소비가 치우치는 그런 된장녀는 차라리 애교이고 이들이 주로 문제삼는 '된장녀'는 그 폼생폼사를 하는 수단과 목적이 상당히 그릇되어 있는 삶을 영위하는 개념의 '된장녀' 지적하는 것입니다. 여성들이 명품 가방 매는 것 사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명품은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고 디자인적인 부분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데 공교롭게도 고가 명품인 경우도 있고 무엇보다 소유욕은 엄연히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이니 여성의 본능적인 이런 부분을 문제삼기는 힘듭니다. 다만 부 여성들이 그 소유를 위해 취하는 행동과 소유에 대한 목적이 남자들로 하여금 지극히 피해의식을 갖게끔 보이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으로, 정리하자면 열심히 아르바이트로 돈 모아서 명품 가방 사고 스타벅스 커피 마시는 건 문제가 없지만 이른바 어장관리를 하면서 남자의 경제력을 이용하는 부의 단계형 된장녀가 주로 까임의 대상이 되겠습니다.
NTS Launches First Tax Audit Of Starbucks Korea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논리가 좀 맴도는 느낌이 듭니다. 여기 부의 단계형 된장녀 한 분이 계신다고 칩시다. 이 여자는 지금 남자를 사귀면서 지금 남자보다 더 나은 남자를 만나기 위해 지금의 남자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아 명품을 사고 이미지 관리를 합니다. 그리고는 한 단계 올라가서는 또 다시 2단계 남자로부터 원조를 받아 앞서보다 훨씬 나은 명품으로 자신을 치장하여 더 상류층의 남자를 만나기 위해 노력하게 되겠죠. 이같은 신분 상승 패턴은 어느 정도 승부에 정점이 이르는 (나이나 외모의 변화) 때가 오기까지 계속됩니다. 즉 자신이 올리 수 있는 신분 상승을 여자가 가장 빛나는 시절에 모두 올인하여 승부를 내려는 모습인데요. 이게 얼핏 그냥 단순해보이지만 이상한 점은 이 여자분의 종착지가 생기더라도 결국 이 여자는 만족을 못할 거라는 사실입니다. 그건 이 여자가 허영심이 끝이 없어서가 아니라 에초 '물욕'으로부터 시작된 욕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상하죠? 보통은 '돈을 밝힌다'거나 '명품 중독'이라거나 해서 화려한 생활이나 자존심을 가지고 살 것 같은 이런 여자들이 가진 욕구의 원천이 '물질적'인 부분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의 스스로 자신의 인생 가치관을 생각해내기 힘들게 만들고 있는 사회 구조가 낳은 또 하나의 병폐일텐데요. 즉 명품에 대한 소유욕이 정말 순수함에 의거한 소유욕이라면 지금만큼 많이 팔리지도 않았지만 결국 같은 사회 내에서 경쟁만을 일삼아오면서 자라온 덕에 같은 사회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수단이 되어주고 있으며. 그것이 명품으로서, 그리고 결혼 후의 남편의 재력과 능력으로서 대표되는 것입니다.

사실 재력을 비롯한 능력을 우선시한 여성들의 남성 선택 기준은 꽤 역사가 오래 되었기 때문에 굳이 지금의 사회가 원인이 된 건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요. 과거부터 이른바 '재력'이나 '권력'을 가진 남성을 선택했다는 기록은 시대를 막론하고 꾸준히 전해지고 있고 흔히 능력의 척도로 삼게 되는 '차종'과 관련해서는 굳이 지금의 마이카 붐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오래전부터 언제나 시대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탈것은 부의 상징이었으며, 그것을 조종하는 것은 매우 오래 전부터 남성의 로망이 되어왔습니다. 이것이 현대에 이르러 남성들의 새로운 탈것에 대한 호기심과 조작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말을 타기 시작했으면 말이, 마차가 생기면 마차 등 어느 시대에서나 땅에 발을 많이 안 붙이고 살면 귀족이었고 많이 붙이고 살면 서민인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것이 뼛속까지 학습되어 본능적으로 남성의 탈것에 대한 등급에 집착하는 여성의 모습은 지금에서 크게 새로울 게 없는 셈이죠. 앞서 바람을 피우는 여자 편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여성은 본능적으로 '보수성'을 타고났기 때문에 자신과 곧 태어날 아이를 아무 탈 없이 키울 수 있는 미래적인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은 크게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다만 문제는 이것이 이른바 남녀평등사회가 주창되는 현대사회에서 급격히 악용되어 남녀간의 갈등을 초래한다는 점이죠. 결국 뼛속까지 남아있는 본능은 어쩔 수가 없겠습니다만 그 본능이 현대 사회에서 크게 통용되지 않음에도 반드시 통용되는 것처럼 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여성 사회에서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설득력이 높지 않은 기준을 남성들에게 무조건 따를 것을 강요하고 있어 갖가지 갈등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이런 여성 사회에서의 경쟁이 왜 남자들의 심리를 긁게 되는지는 잘 아시는 것처럼 지극히 '여성의 기준'으로 만들어진 '레벨'로 자신의 레벨이 높음을 '남성'들에게 어필하는 데에서 따른 '공감대 형성의 어려움'과 더불어 여성들만의 시선으로 만든 남성 등급 기준을 통해 남성을 봉건주의적으로 바라보는 자세 때문입니다. 전자는 '여성 사회'에서 통용되는 '레벨'의 기준 즉 '얼마나 비싼 명품'을 몸에 두르고 다니는지가 그 사람의 수준을 결정하는 기준이 상대에 대한 아무런 이해 없이 남성들에게 어필하려 드는 데에서 발생하는데요 '여성이 명품에 욕심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무조건 이해해달라'는 논리와 자신은 명품을 둘렀으니 더 수준이 높은 여자임을 남자들도 무조건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는 발상이라고 할 수 있겠고. 당연하겠지만 이런 성별이 다른 데에서 오는 가치관 차이를 아무런 노력 없이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주는 게 가능할리가 없겠죠.

게다가 이런 노력이 '스스로'에 의한 것이 아닌 '의존성'을 지니게 되면 그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자신의 레벨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 다른 영향력에 의존한다는 것은 그것이 순수하게 자신을 나타내는 경쟁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임에도 대부분의 '단계적 된장녀'의 경우 자신의 힘으로 신분 상승을 꿈꾸기보다는 각 단계를 돌파하는 데에 있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윤리적으로는 문제가 있는 방법을 다소 동원하고 있으며 그것이 대부분 남성과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인데요. 결국 명품을 통해 단계적인 레벨 상승을 노리는 것도 좋은 집안과 결혼해 높은 부의 환경 속에서 안정된 삶을 누리는 것도 모두 '의존성'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성 사회에서는 또 하나의 '능력'이라고 부르게 되고 결혼 전과 후 결국 남편의 능력에 의해 부러움을 사게 되며 자신의 능력을 한탄하고 지금 남편의 모습을 불만스럽게 보게 되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죠. 이런 과정에서 흔히 나오는 말이 '아 **는 나보다 예쁘지도 못했고 학창시절에 훨씬 날라리에 공부도 못하던 찌질이었는데 나보다 더 좋은 남편을 만나다니...'라는 것도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이렇듯 남성의 '재력'만을 평가하여 남성이 이루어낸 성공과 능력을 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승계받고자 하는 부분은 결과적으로 '인생'에 있어 아무런 의미를 남기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가 됩니다. 현대 사회에서 속속 여성들이 진출하고 각 직업군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만, 인생의 최종목적지가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낸 성취'가 아닌 이상 그 성공은 결코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죠. 어장관리를 통해 얻은 명품백을 한 개도 아니고 각 브랜드별로 수십개씩 구비하면서도 또다시 새로운 명품백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정말 자신의 눈에 예쁘다고 생각해서 애착을 가지고 명품백을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명품백을 샀을 때의 만족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고 당연히 브랜드를 우선시한 선택이 자신의 패션 감각에 들어맞을 가능성도 없는데다가 결정적으로 그것이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낸 레벨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비싼 명품백이라도 그것이 주는 가치가 높게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즉 남의 돈이든 뭐든 결국 내 것이 된 명품백이고 크든 작든 여성 사회에서 내 레벨을 높여준 것은 확실한데 묘하게 그것이 내 것이 아닌 느낌이 드는 것이죠. 게임에서 치트키를 써서 본 엔딩이 별로 반갑지 않은 것과 같은 느낌일까요?

여기에서 나올 수 있는 반론이 '여자들의 세계에서는 저런 것도 능력으로 인정된다'는 것인데 앞서 설명했지만 그 능력은 '여성들의 세계'에서만 인정되므로 그것이 '남성'들의 세계에서까지 통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의 확대가 지금의 갈등을 낳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여성의 세계'에서 '레벨 10'이 된다고 해서 남자들의 세계에서까지 '레벨 10'의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과 지극히 여성의 기준으로 만들어낸 남성의 레벨 측정으로 자신보다 낮은 레벨이라고 판단되는 남성들을 무시하는 행동이 성적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죠. 사회의 진출하는 여성들의 대부분은 '여성의 능력을 외모와 결부시키는 남성 사회'에 대한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결국 여성 사회에서 말하는 이른바 '능력있는 여자'가 되기 위한 노력은 명품과 성형수술 등 지극히 외적 치장에 대한 노력에 한정되고 있다는 부분도 재미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남성이 만들어낸 사회 즉 외모지상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인지 아니면 여성 사회에서 여성들만의 신분 상승 경쟁이 파생된 병폐인지는 아직 어느 쪽이 먼저다라고 말하기 어렵겠습니다만 여기까지 봤을 대 적어도 전자가 100%라고 말하기는 좀 힘들어 보이네요.

하지만 이런 여성들의 노력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한쪽만의 책임이 아니듯 그렇다고 다른 한쪽의 책임도 아니며 여성 모두가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남자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저렇게 살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는 없기 때문이죠. 이른바 '단계적 된장녀'라고 해서 인생의 목적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런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문제입니다. 이런 성향을 가진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의 레벨을 높이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포섭하여 자신과 같은 삶의 방식을 영위하게끔 만드는 노력 역시 게을리하지 않는 편인데요. 이는 자신이 이런 삶으로 성공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자신과 같은 방법으로 능력을 키우길 바라는 게 아니라 에초 스타트가 늦은 사람들이 동시기에 자신과 같은 레벨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다수의 하위레벨을 만듦으로서 자신이 그들보다 비교우위에 있음을 어필하기 위한 사전작업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어떤 세게에서 높은 레벨에 올라 있다 하더라도 자신이 있는 세계게 그런 세계가 아니면 여성들 사이에서는 물론 남성들에게도 어필할 수 없으니까요. 여성들은 자신보다 예쁘지 않은 친구들과 일부러 함께 다닌다는 것처럼 이런 부분은 정말 순수하게 친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삶의 방식을 전파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더 있습니다. 이렇게 전파되는 삶의 방식이 여성들의 다양한 감성적 개성을 망가뜨려 일원화시키는 것은 물론 그것이 결코 잘못되지 않았음에도 '단계적 된장녀'의 삶의 방식에 비해 매우 하찮고 어리석으며 꿈에서 깨지 않은 어린애같은 발상이라며 무시하고 평가절하하는 일들이 벌어지는데요 누구나 제각각 상대를 보는 눈이 다르고 상대를 판단하는 기준이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음에도 마치 '성공공식'을 전파하듯 주변 사람들을 포섭하는 것까지 모자라 '성격'이나 서로 '사랑'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을 저급하다거나 성장하지 못한 철없는 발상으로 치부하곤 합니다. 세상에 사랑만으로 결혼하는 건 어리석다 어리석게 사랑만 찾다가 평생 생고생한다. 사랑은 없는 세상이니까 남자가 나를 평생 사랑해줄 거라는 생각일랑 버리고 능력있는 남자를 찾는게 최고다 라고 바보취급하곤 하죠. 결국 많은 여성들은 '아 내가 시대의 변화에 뒤쳐지고 있구나'라며 어울리지도 않는 명품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이미 명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자신은 그녀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다양한 개성을 가진 여성들의 감성을 자신이 이미 수위를 점령한 방향으로 일원화시킴으로서 자신의 사회적 포인트를 보다 돋보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실 '사랑은 없다'라는 논리가 반드시 틀렸다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사람이란 각자 추구하는 행복론이 다를 수 있고 그 중에는 남자의 다른 부분보다 경제력을 갖춘 점에 자신의 행복을 충족할 수 있는 사람도 분명 존재할테니 누군가에게는 그 말이 정말 진리가 될 수도 있을테지요. 그런데 이렇듯 다른 건 다 필요없고 경제력만 있으면 성격이 개차반이든 자상함이 없든 심저어 이혼경력이 화려한 사람이라도 사랑없이 무조건 OK라고 말하던 '단계적 된장녀'분들이 결혼 이후에는 그 동안 탓하지 않았던 남자의 '결점'을 탓하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분명 바람끼가 다분하고 자상함도 없고 권위주의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결혼 전에 결코 몰랐던 게 아님에도 그런 건 필요없다며 경제력만 있으면 될 것 같던 이분들이 정작 결혼 후에는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 남편에게 불만을 드러내는 아이러니함을 보이는 것이죠. 이 부분은 서두에도 밝혔지만 '단계적 된장녀'의 목적은 결코 '많은 돈을 갖는'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분 상승'에 있기 때문에 최종 목적지인 이른바 '완전한 결혼'에 이르러서도 결코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한 그녀들은 자신이 이미 버렸다고 착각했던 본질적인 부분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그것을 얻지 못해 애를 태울 뿐이죠.

사랑은 거짓이다. 자상함도 좋은 성격도 경제력 앞에 모두 무력하다는 것을 주장하던 이들이 결혼 후 정작 그 경제력에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은 흥미롭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합니다. 결국은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대부분의 여성들이 가지 못하고 사회가 가리키고 있는 길을 그저 멍하니 따라가고 있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들은 돈 그 자체를 원한 게 아니라 '행복=돈'이라는 공식과 그 돈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켜야 한다는 잘못된 행복론을 학습받아 마치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답답한 인생을 살았을 뿐이거든요. 일면 그들의 말대로 '돈이 많은 남자라면 다른 건 다 무시해도 괜찮다'라는 논리였다면 '돈이 많은 남자'에게 어째서 사랑까지 바라는 되지도 않는 욕심을 부리는 것인지 아이러니한데요. 결국 선택의 대한 책임 대신 어떻게든 자신이 피해자임을 증명하고 그것을 누군가로 하여금 보상받아야 마땅하다는 지극히 의존적인 인생관이 부르는 예견된 결과였을 뿐입니다.

글머리에 말했던 '도박에 빠진 대한민국'이라는 예시가 이제 이해가 가시나요? 아파트 부동산 투자, 주식투자, 복권, 경마, 파칭코, 카지노가 모두 공통적으로 결국 허무함을 안겨다주는 이유는 그것이 '내가 가진 힘이 정비례해서 결과로 나오지 않는'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이 일순 허무해지기도 하고 조금도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 것이 저들의 공통점입니다. 그리고 모두 내 돈을 돈과 진배없는 무언가로 대신 바꿔준다는 점도 그렇지요. 손에는 그 순간에는 그 무엇보다 가치있게 보였던 주식, 복권, 마권, 카지노 칩이 그 가치를 잃어버린 채 남아있을 뿐이죠. 그렇기에 돈을 따도 돈을 잃어도 이것이 내 돈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 것입니다. 목적이 '무형에서 돈을 창출'하는 게 아니라 '돈이 돈을 만들어내는'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돈은 다시 누군가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다른 사람의 돈이 내 주머니로 들어오지만 결국 돈을 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허무함이 찾아오는 것이죠.

단계적 된장녀들의 삶 역시 이와 비슷합니다. 내실을 갖추기보다 명품가방을 좀 더 사는 것과 얼굴을 조금 더 뜯어고치는 것에 희박한 확율이 조금이라도 늘어났을거라는 희망을 갖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좀처럼 TV에서 본 것같은 기회가 오지 않습니다. 메뉴얼대로 주변에서 들은대로 상류층과의 만남을 위해 명품에 투자하고 많은 남자들에게 돈을 받아가며 자신을 꾸몄는데 별로 확율이 높아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주변에는 자신보다 명품가방을 덜 가진 사람이 보란듯이 재벌과 결혼합니다. 억울해하며 더 많은 명품 가방을 사며 얼굴을 좀 더 뜯어고칩니다. '나를'위한 것이 아니라 그 원천조차 알 수 없는 '사회적 신분'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든 결과는 행복이랑은 거리가 멉니다. 원하는 경제수준에 못미치는 남편을 만난 여자는 자신보다 덜 노력(신분 상승을 위한 노력)했음에도 훨씬 나은 남편을 만난 여자들을 부러워하며 지금의 남편에게 불만만을 갖게 될 것이고 운좋게 원하는 경제수준의 남편을 만난다 한들 앞서 언급한대로 자신이 진심으로 원한 '행복'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는 것과 그동안 높여왔던 '신분'이 결코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 '허상'에 불과함을 뒤늦게 깨닫게 될 뿐이죠. 그 '신분'이란 결국 일순 가치를 갖기도 하지만 결국 내 것이 될 수 없는 착각 즉 복권, 주식, 카지노 칩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예쁜 명품 가방을 사서 행복한 게 아니라 명품으로 인해 자신을 우러러봐주고 더 나은 남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만족했던 그녀들은 정작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게 되자 진짜 '갖고'싶은 것을 찾기 시작하게 되며 그것을 전혀 손에 넣지 못한다는 것에 불만을 가지게 될 뿐입니다. 돈 많은 남편의 돈이 모두 내 돈이 될 것 같았지만 정작 결혼하면 그렇지만도 않을 뿐더러 (세력다툼이 치열하다죠 ^^; ) 설령 쓸 수 있는 돈이 많아지더라도 에초 '돈'이나 '명품백'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수단'이었기 때문에 정점에 도착한 이상 돈은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그녀들에게는 돈도 그 동안의 인생에서 남길 수 있었던 경험, 추억 그 무엇도 남지 않은 인생과 앞으로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자신의 힘과 의지로 이루어낸 것이 아무것도 없고, 노력했지만 손에, 가슴에 아무것도 남지 않고, 앞으로도 남지 않을 인생이 말입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원칙은 하나 '귀가 두꺼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귀를 닫는 것'과 착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전혀 다릅니다. 사회가 아무리 '돈'이 중요시되는 사회라고 한들 태어난 시기가 다르고 배가 다르고 자라난 가족이 다른 이상 느끼는 행복 역시 제각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행복이란 결코 어떤 수단으로 다수가 일원화될 수 있는 단순한 감성이 아닙니다. 설령 그것이 지금 세상에서 절대무적으로 보이는 '돈'이라 할지도 말입니다.

'의미'가 있는 삶이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고 해서 채워질 수 있는 괄호가 아닙니다. 결국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삶이 아닌 이상 끝없는 허상만을 손에 쥐었다고 착각하며 배고픔을 느낄 뿐입니다. 비록 주식 투자나 아파트 투자로 번 돈보다 훨씬 적더라도 내가 노력한 댓가로 얻게 되는 건 결코 돈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정말 가지고 싶고 추구하고 싶고 되고 싶은 그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고 그 결과가 스스로 납득이 갈 수 있다면 설령 사회적으로 그 결과가 다소 저평가를 받더라도 자신에게는 그 무엇보다 세상에서 가장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천한 직업을 천하게 보지 않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직업이 사회적으로 어떤 취급을 받던 스스로 천하다고 어기지 않는'것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인생은 남이 무슨 말을 하던 스스로 생각해낸 가장 만족스러운 결론을 향해 뛰어가지 않으면 아무리 남들이 인정해주는 삶이더라도 정작 스스로는 매우 불행한 삶이 될 것이라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어린아이는 밥을 먹고 키를 키우며 어른은 나이를 먹으며 감성을 키우고 노인은 추억을 먹으며 삶의 의미를 키우는 법입니다. 우린 앞으로의 인생을 위해 연금을 들고 저축을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나이를 먹었을 때 나만이 가진 감성과 추억을 살찌울 수 있는 것을 미리 준비해보면 어떨지 싶습니다.


여자 그 특별함에 관하여 최종회 '재력에 끌리는 여자 그 특별함에 관하여' 편을 마칩니다.

원래는 이번 편이 '여자 그 특별함에 관하여' 시리즈 최종 연재물이 되겠습니다만
'3화 키스...'편이 불발된 점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다음 회에 번외편을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1회차 담배를 피우는 여자 그 특별함에 관하여
2회차 바람을 피우는 여자 그 특별함에 관하여  
3회차 키스 그리고 또 한번의 키스 그 특별함에 관하여
4회차 재력에 끌리는 여자 그 특별함에 관하여
5회차 번외편
posted by RushAm 2009. 10. 25. 13:43
글 무지하게 깁니다. 긴 글 읽기 싫으신 분들을 위해 미리 알려드립니다.
이 글은 '일본의 성 문화에 대한 오해와 진실'과 연관되어있습니다.

군가산점 문제, 김신명숙, 이화여대, 여성부에 이어 또 하나의 떡밥이 요즘 거의 매일 보이다시피 하고 있네요. 테마는 '야동 보는 남자'인 것 같은데 글을 읽어보면 대체 뭘 어쩌라는건지 알 길이 없는 글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런 글이다 보니 답글도 산으로 가고 있을 수밖에요. 건전한 토론장이 되기에는 떡밥이 너무 쉬었습니다. 오래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발점이 되는 글들이 나타내는 주장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을 만큼 포장에 덮칠이 거듭된 글을 아무리 정독한들 제대로 된 답글이 나올리가 없고 그런 글에서 핀트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글에 걸맞는 답글을 쓸 턱이 없겠죠.

결국은 너무나도 간단한 이유이지만 그 이유가 왜 생겼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결국 남녀는 서로 너무 모르고 있고 서로 알려는 노력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논란은 자기중심적인 결론밖에 나올 수 없게 되는 것이죠. 언제나 핀포인트는 서로를 알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냥 문제가 생길때 마다 눈 앞의 문제만 해결하려 하거나 남자에 맞춰 혹은 여자에 맞춰 자신의 성격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연애강좌의 설득에 놀아나기도 하는게 현실이니까요. 연애의 기술을 가르치는 강좌에 사람이 미어터지는 것을 보면 그저 어떻게든 자신을 감추고 속이려고만 할 뿐 남자와 여자, 그리고 내 사람에 대해 본질적으로 이해하고자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래서 이번 공화국 연구소에서는 남자들이 왜 야동을 보게 되었는지와 더불어 다른 나라의 사례 비교를 통해 유독 우리나라에서 남녀간의 몰이해와 이에 따른 성 갈등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 연구해볼까 합니다. 철저히 개인 연구 자료이므로 어떤 학술적인 근거나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신뢰 여부는 읽는 분의 판단에 맡기고 있음을 밝혀둡니다.

야동은 한국뿐만 아니라 주산지(?)인 일본과 미국은 물론 중국이나 유럽 각 국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상품입니다. 미디어 형태는 끊임없이 변해왔지만 비주얼 형태로 성욕을 만족시키는 상품은 고대 이집트부터 시작해서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야화, 일본의 우키요에 등에서도 볼 수 있죠. 이게 어떤 예술성을 지녔던지 간에 직 간접적으로 욕구만족을 위해 쓰였을 가능성은 배제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이쪽 관련 상품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고 특히 남성 타킷의 성욕 해소를 위한 상품은 과거부터 꽤 오랫동안 이어져온 셈이죠. 물론 실시간 야동도 있었습니다. 사극에서 보는 '혼례잔치 초야'를 훔쳐보는 창호지 구멍은 말이 좋지 몰카나 다를 바 없었던거죠.


그런데 과거의 이런 부분이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여기에 '몰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야화던 신방훔쳐보기던 그냥 레포츠일 뿐 그 자체가 어떤 목적성을 띄거나 성적 몰입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던 것이죠. 과거에는 한창 성욕이 폭발할 시기인 14세에 장가를 들었으니 에초 지금처럼 성욕이 쌓여 오갈 데 없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질 위험이 적었을 테니까요. 조선시대의 남녀칠세부동석은 이런 저런 문제를 낳았습니다만 성징이 활발한 시기를 알고 일찍 장가를 들이는 문화가 만들어짐으로서 성교육적인 측면은 물론 성 정체성이나 관념에 있어서도 비교적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되는 잇점도 있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시에는 남존여비사상으로 인해 성 문화가 그다지 신사적이지 못했을수도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성에 대한 관점에 있어서는 지금처럼 사회적으로 통제받는 상황보다는 훨씬 열려있었을 가능성이 높지 않았을까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중 하나가 '남성의 성욕'에도 단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흔히 남성의 성욕은 '1차적'즉 관계 자체에 집중하여 그 관계에서 끝난다고 어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실제로는 여성의 복잡한 감성에 뒤지지 않는 복잡한 감성이 남성의 성에도 얽혀 있습니다. 여성이 관계 자체 이외에도 관계 전과 후의 단계가 중요하듯이 남성에게도 원래는 여성과는 형태가 조금 다르지만 감성적으로 느끼는 바는 거의 일치하는 단계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게 사실 현실에서 충족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나 현대 사회처럼 남성에게 남성다움이라는 것을 강요하는 분위기에서는 이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어려운데다 실제로 이를 충실히 따라줄 여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죠. 여성들이 남성에게 가지는 성적 단계에 대한 불만 중 하나가 (여성이 원하는 복잡한 단계적 욕구를 모두 충족시키지 않고 관계 그 자체에만 집중한다)는 것인데 그 모든 것을 만족시켜주는 남성이 많지 않듯이 남성의 그 복잡한 무엇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여성 역시 찾기 힘든 것입니다.

남성의 단계는 그 형태로 보자면 여성의 그것을 역할을 바꾸는 것만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여성이 시작하기 전에 어루만짐이나 나지막한 대화 등을 나누며 다소 천천히 기분이 고조되는 것을 즐기듯이 남성 역시 기본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데요. 여성을 천천히 살펴보고 싶거나 차분한 마음으로 눈을 맞추며 대화를 나누거나 하는 이른바 느린 관계를 더 선호하는 것은 남성의 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좀 더 덧붙여 남성은 여성과의 관계에서 여성에게 모성애를 느끼게 되는데, 환한 얼굴로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모습이나, 관계 후 조심스럽게 자신을 가슴에 품어주는 등 이런 저런 판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남성은 성과 관련되어서는 상당히 연약해지기 때문에 (신체적이 아닌 감성적인 연약함) 평소 지쳐있거나 억눌렀던 우울함 등이 해금되며 감성에 표출되기도 하며 이는 일시적인 패닉이 아닌 대단히 자연스러운 감성의 발산입니다.

영화 왕의 남자를 보면 연산군과 장녹수의 관계가 표현되는 장면이 있는데요. 이 장면이 남성의 이런 단계적 감성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성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거나 조용히 무릎을 베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와 아들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것이 앞서 말씀드린 모성애와 관련된 감성입니다. 특히 연산군은 일찍 어머니를 여의었기 때문에 이런 감성이 훨씬 결핍되어 있었기도 했지요. 여성이 아이가 없는 상황에서도 모성애가 발휘되는 이유는 남성에게 있어 그 모성애가 더없이 소중한 감성충족제가 되어주기 때문이며 남성은 때문에 여성의 모성애를 갈망하고 끝없이 요구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만 지금의 남성들은 현대사회에서의 고정관념 주입으로 인해 이런 모습을 여성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하는 성향이 짙어지는 한편 이런 모습의 자신을 보듬어주기를 바라는 두 가지 생각이 공존하며 대부분 사회적 압박으로 인해 후자를 억누르기 때문에 이런 감성이 표출되지 않고 잠재되어버리게 됩니다.


이는 또 한편의 욕구불만으로 표출되게 되는데 이것이 남성이 성적으로 과격해지게 되는 원인이 되거나 혹은 스스로 이런 감성을 포기하고 1차적인 성욕 해소에 집중하는 것으로 바뀌는 등의 부작용을 낳게 되는데요. 이런 문제가 복잡하게 결부되어 야동이 예전처럼 '문화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아닌 점차 '본격적인 성욕 충족'의 수단으로서 사용되게 되고 시장 역시 이에 맞춰 갈수록 성욕 해소 목적에만 치우친 상품들만을 만들어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상품들은 성 관념이 확립될 시기인 14세 전후의 청소년들에게 유입이 되고 '남성의 성'은 그냥 '1차적인 관계'에서만 충족될 수 있다는 잘못된 역할론을 학습하게 되는 것이죠. 남성은 1단계 이외에도 정말 많은 성적 판타지와 개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가장 뇌리에 깊게 박히는 1단계만을 반복 학습하게 됨으로서 향후 실제 관계에 있어서도 역할이 1단계에 한정되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반복될 경우 당연하겠지만 정신적으로 이런 저런 부작용이 일어나게 되는데, 우리가 기본필수요소를 오랫동안 적정량을 충족시키지 못하게 되면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워지듯이 감성적인 부분 역시 오랜 기간 충족되지 못하게 되면 상당히 문제가 생깁니다. 유아성폭력은 흔히들 '유아성애'라는 정신병이 1차 관계와 결부되었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지만 사실상 그 이전의 억눌러왔던 부분들이 정신적 외상을 일으켜 이를 벌충하기 위해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존재하며, 흔히 성적 취향이 SM이나 동성애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는 일면에는 이런 감성적인 충족 결핍을 1차 관계의 다양성으로 충족시키려는 비뚤어진 관점에서 파생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에는 현실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성적 비하나 직업 여성들을 돈으로 산 상품으로 어기려는 그릇된 시각부터 심한 경우 1차 성욕마저 결핍되어 성범죄를 일으키거나 그 성범죄마저 감성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성범죄 대상으로 삼지 말아야 할 대상까지 손을 뻗히는 일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즉 야동 때문에, 성욕을 주체할 수 없기 때문에 남자는 짐승이니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전혀 부도덕하지 않은 남성들의 감성이 사회적인 변화로 인해 제대로 충족되지 못한데다가 사회가 반 강제적으로 충족되지 못한 감정을 1차 성욕으로 싸잡아 풀어내도록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광우병이 초식 동물에게 육류를 먹여서 생겨난 것처럼 에초 1차 성욕으로 풀어낼 수 없는 감성을 1차 성욕으로 일원화시켜 풀려고 하니 그게 될 리가 없는 것이죠. 인간은 아는 것처럼 극단적으로 인간을 구성하는 기본 욕구가 급격히 결핍되면 이성적인 판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그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니까요.


즉 감성적인 결핍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는 것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보니 위험 수준에 이를때까지 방치되다가 결국 일을 그르치거나 머릿속에 있는 것이 1차 관계에 대한 지식 뿐인 현실에서 갈 곳 없는 감성을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을 마치 깜깜한 밤에 벽을 더듬거리며 전기스위치를 찾듯이 계속 빗나가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시도들은 결코 정답에 근접할 수 없으며 1차 성욕은 물론 그로 인해 파생된 SM 등 성적 취향의 경우는 오히려 외부자극으로 인해 이런 감성을 억누르는 식이기 때문에 이 또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마약이나 SM이나 결국 뇌 도파민 분비를 통해 감성의 이상폭발을 억제하는 역할이므로 자극에 적응되고 더 많은 자극을 요하게 되는 중독성마저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죠. 당연하겠지만 이로 인한 범죄는 더욱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반복되고 게속 새로운 게 생겨나는 이유는 그 누구도 이를 해소할 방법을 알려주지도 찾아보려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죠. 그저 남자는 짐승처럼 성만 밝힌다는 또 하나의 사회적 무덤을 만들어 남자의 마지막 하나의 감성마저 묻어버리려 할 뿐이었으니까요.

정리하면 지금의 남성들은 기본적으로 다수의 단계적 성욕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남성상에 휩쓸린나머지 이러한 욕구를 제대로 요구하지 못함은 물론 어떤 욕구가 있는지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감성적인 부분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인간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이미 사회적으로 여성 지위가 상승함과 더불어 남성의 역할론이 대두되며 이른바 '자존심'이 정신적인 삶의 질보다 우선시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때문에 약 4개에서 많게는 6단계에 이르는 남성의 성욕은 대부분 이런 성장 과정에서 속으로 은폐되고 금지되며 성장하고 이렇게 은폐된 성욕은 1차적 성욕 즉 직접적인 관계에 모두 몰려버리는 것입니다. 아니 몰리게끔 사회가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사회는 남성이 이런 식으로 타고난 감성을 은폐시키며 살고 있는 것에 대한 미봉책으로 1차에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성욕을 충분히 풀어주기 위해 포르노, 즉 야동을 만들어 판매하거나 집창촌을 법적으로는 불법으로 정하고 현실에서는 묵인하는 등 지극히 사회 체제를 현상유지시키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죠. 이전과는 용도가 완전히 달라진 야동은 그 용도에 맞게 자극성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으며, 에전의 기방처럼 단순히 성적인 욕구만이 아닌 남자의 다친 마음까지 어루만져주던 모습은 지금의 집창촌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단지 관계를 사고 파는 1차 성욕 배출소가 되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이쯤해서 1차 2차 3차로 나누어지는 남성 성욕의 정체란 무엇인지 잠시 설명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우선 남자는 1차적으로 관계에 대한 성욕을 가집니다. 이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 되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서 1차 성욕에만 집중하는 것이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여성들 역시 관계에 있어서는 우선 전희부터 떠올린 후 그 다음을 생각하듯 남성에게는 우선 이 1차 성욕이 시작되지 않으면 다음 성욕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현실에서 보여주는 남자의 성욕은 단순하게 여성의 신체에 대한 육식동물같은 열망이 아니라 포괄적인 성욕의 제 1단계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이 2차 성욕입니다. 남성은 여성과 육체적으로 이어지게 되면 감정적으로 상당히 큰 변화를 겪습니다. 심리학적으로 여성의 자궁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있습니다만 아무튼 남성에게는 1차 성욕이 시작되면 2차 성욕을 발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한층 차분해지고 솔직해지며 그동안 차마 남자로서 이야기하지 못했던, 약한 이야기라던지, 술기운을 빌어서라도 이야기하지 못했던 서러운 이야기라던지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남성 스스로도 놀랄 만큼 손쉽게 발산됩니다. 자신이 태어난 곳에 가까워질때의 편안함이 남성을 사회적인 남성상에서 잠시 벗어나 솔직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 만들어주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이 과정은 거의 모든 남자들에게 있어 이미 금기시되고 있습니다. 남자는 첫 관계부터 이미 '여성을 실망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또 하나의 사회적 책임을 부여받고 도저히 자신의 2차 성욕에는 집중할 수 없을 만큼 여성의 만족도에 모든 신경을 곤두서게 되는 것이죠. 이미 '강한 남자'라는 타이틀이 남자들을 옥죄고 있는 현실에서 그 반대편에 서 있는 2차 성욕은 당연히 감춰져야 할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미 1차 관계에 집중하는 지금 문화에서는 이런 생각이나 대화를 나눌 틈 없이 1차 관계에서 오는 신경적 쾌락만이 머릿속에 가득해질 뿐이죠.


3차 성욕은 여성에게서 느낍니다. 이런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지 않고 보듬어주고 토닥여주고 격려해주는 어머니같은 모습을 여성에게서 발견하길 원하게 되는 것이죠. 여기에 자신이 여성을 아프게 하고 있거나 나만 좋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 (성을 터부시하는 사회일수록 심해지는 강박관념)을 하는 자신을 아무렇지도 않게 미소지으며 받아들이는 모습에 또 다른 감성을 느낍니다. 이것은 새디즘과 비슷해보이지만 상당히 다릅니다. 새디즘은 아프다는 것을 알고 더 아픔을 주기 위한 목적이 있지만 3차 관계는 그 목적부터 다르니까요 아마 현실에서 가장 많이 결핍을 느끼는 성욕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실제로 여성의 절대적인 협력이 없이는 결코 충족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4차 성욕은 '인정'입니다. 만일 관계가 첫 관계였다면 남자는 걱정이 태산입니다. 이런 일을 해버렸는데 여자가 나를 싫어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 지금의 여자 기분이 정말 너무나도 궁금해지는 것이죠. 여기에서는 남자가 어떤 질문을 하고 여자가 어떤 대답을 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남자의 감성은 직후 여성이 자신을 여전히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줄 때 안정됩니다. 남자가 관계 후 지쳐 나가떨어지더라도 조심스럽게 다가와 여전히 남자를 신뢰하고 있다는 마음을 표현한다면 남성은 극도의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남성은 여성으로부터 가까워졌다가 갑자기 멀어질 경우 여자가 자신으로부터 떠나갈것을 매우 걱정하게 되는데 이런 남은 불안까지 안정시켜주는 것이 마지막 성욕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떠신가요? 흔히 알려진 여성들의 복잡한 성욕과 상당 부분 닮아있다는 것이 느껴지십니까? 물론 남성 역시 여성들의 그 복잡한 성욕을 모두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만큼 남성 역시 모든 성욕을 여성들에게 충족받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은 무모합니다. 하지만 여성의 그것에 비해 에초 실체조차 알려지지도 않았던 남성의 성욕과 그에 관한 감성은 이루어지는 것과는 별개로 적어도 그것이 있다는 것만큼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인데요. 남성들이 수많은 1차 성욕을 대신 충족할 수 있는 것들에서 성욕을 착실히 만족시키고 있습니다만 누구나 느끼는 충족 후의 허탈함은 바로 1단계에서 바로 이어지는 2단계 이후의 성욕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알려진것처럼 남자는 1차적인 성욕만을 충족할 수 있어도 살 수 있는 성별이었다면 이미 여성과의 관계는 종말을 맞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지요. 단지 여성과의 관계가 1차 성욕에 있어 성기에 주어지는 자극이 더 현실적이어서일까요? 이미 감각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충분히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상품들이 차고 넘치는데 어째서 남자들은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여성을 갈망하는걸까요?

이 부분에서는 최근 일본의 변화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의 성 문화 역사는 알려진 대로 대단히 오랩니다. 우리나라에서 터부시되었던 역사 만큼을 그들은 터부시하지 않은 역사로서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니까요. 물론 우리나라의 관점에서 보았을 땐 도덕적이지 못하거나 짐승같은 삶이라거나 그렇게 보일 수 있겠습니다만, 아무리 시작이 거지 발싸개같은 문화라도 100년이 넘게 인간 사회에서 지속된 문화는 틀림없이 고유의 철학이 생기게 됩니다. 독일 병사들이 해골을 차고 놀거나 돼지 방광에 물을 채워 걷어차던 놀이에서 파생되었다는 축구가 지금은 인생의 축소판, 각본없는 드라마로 불리는것처럼 말입니다.


어떤 문화던 오랜 시간 다수의 사회 구성원을 통해 롱런하게 되면 이를 연구하는 학자도 생기게 되고 그 학자들에 의해 깎이고 다듬어집니다. 성 문화라고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그들은 오랜 시간동안 남성의 성, 여성의 성을 연구하면서 성에 있어서의 남성의 역할, 여성의 역할 대신 남성이 여성으로부터 받아야 할 것과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받아야 할 것을 분명하게 만들어놓는 데에 집중해 왔던 것으로 사료됩니다. 물론 이들 역시 야동 공화국(?)답게 1차 성욕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욕구불만 계층이 늘어나고 있는 피해가기 힘든 현대사회의 병폐가 없는 게 아닙니다만 적어도 이들은 이게 왜 심각한지 알고 그에 맞는 처방전을 업계 나름대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죠. 앵? 야동 공화국에서 이게 무슨 소리냐고 하시는 분들도 게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들어보세요.

다소 민감한 이야기입니다만 일본 도쿄에는 성매매 단속에 밀려 일본으로 건너온 직업여성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요. 이들은 대부분 취업비자가 아닌 관광비자로 (취업비자를 내줄 턱이 없겠죠) 들어오기 때문에 정식 업소에 취직이 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주로 전화를 통한 출장서비스에 가입하여 집으로 직접 찾아가는 형태의 서비스를 통해 영업을 하고 있는데요. 대체로 일본 여성에 비해 요구하는 금액도 적은 편이고 아시겠지만 상대적으로 일본 여성에 비해 외모가 앞서기 때문에 잠시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당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째서일까요?


이유는 바로 '일본어'입니다. 직업여성들은 일본에 와서 일본어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이유는 간단하죠. 어차피 1차 성욕만을 풀어줄거면 언어는 아무 상관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미 한국에서 그렇게만 영업을 해왔던 그들은 일본에서도 똑같이 단지 1차 성욕만을 제공하고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죠.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일본 남성들은 이들에게 관계 도중 끊임없이 이야기를 걸어왔고 이들은 전혀 대답을 하지 못했으며 남성들은 '2차 성욕'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불만이 쌓여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을 대거 외면하기 시작했는데요 최근에는 이런 이유로 업계에서 다시금 일본 여성들에게 밀려 영업 수익을 제대로 내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영화 '러브콜랙션'시리즈 중 '달과 체리'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여류 감독에 의해 정말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현실을 스케치하듯 그린 기법이 돋보이는 작품인데요. 이 영화 시나리오 후반부 짧은 에피소드 형태로 '출장 직업여성'이 등장합니다. 영화라서 다소 로맨틱하게 표현했을수도 있고 모든 일본의 직업여성이 그렇다는 보장도 없습니다만 남자는 여자를 '산'것이 아니라 성을 포함한 진심어린 위로를 받기 위한 카운셀러로서 맞이하고 직업여성 역시 이에 충실히 응합니다. 물론 1차 관계에 있어서는 대단히 계산적입니다만 그 남자의 품에 안겨 있는 동안에는 그 사람의 여자가 되어 위로해주고 등을 두드려주는 역할을 해주는 거죠. 이 작품에서 주인공도 무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고생을 털어놓으며 울먹입니다. 그런 주인공의 이야기를 여자는 모두 들어주고 따뜻하게 안아주며 그렇지 않을 거라고 위로해주죠. 이런 문화는 비단 직업여성뿐만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라면 나이를 막론하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우리나라의 성 문화로는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죠. 우리나라에서 일본의 야동이 이른바 '질질 끈다'라고 표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들은 성 행위가 오래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성이 접해 있는 그 시간을 오랫동안 차분히 즐기기 때문에 이른바 '빨리 좀 보여주고 빨리 좀 끝내자'는 한국의 추세에 전혀 들어맞지 못하는 것이죠.

하나 더 하죠. 일본의 오타쿠들이 자주 드나드는 메이드 카페, 풍속업계 중 가장 높은 단가를 가지고 있는 캬바쿠라, 가상 연애를 즐기게 해주는 연예 시뮬레이션 게임의 공통점이 뭘까요? 다음아닌 '1차 관계'를 제공하지 않고 남성으로 하여금 성욕을 충족시켜준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관점에서는 대체 '만지지도 못하고 안지도 관계를 갖지도 못하는' 메이드카페에 왜 그리도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인지 분명 이해하기 어렵겠습니다만, 분명 그들은 어떤 부분에서 1차 관계에 진배없는 가치를 가진 자신의 욕구 하나를 해소했으며 그 댓가를 지불할 뿐이죠. 단지 뜨거운 차를 후후 불어 식혀주는 것이나 자신을 기억해주고 이름을 불러주는 서비스의 형태에 요점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억눌러오고 있던 것을 그들은 당연한 삶의 권리로서 돈을 주고서라도 사서 당당하게 해소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현실의 여자에게 그것을 바라기에는 여성의 지위도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남성에 대한 복잡한 감성에 대한 이해를 하기 꺼려하는 여성들에게 감성을 해소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많이 변했음을 이미 자각하고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이죠. 이런 업소를 이용하는 계층은 미혼 남성만이 아닙니다. 이미 결혼 20년을 넘긴 중 장년층은 물론 무려 노년층까지 찾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이 지금의 부부 관계에서 어떤 부분의 결핍을 느꼈기에 이 곳을 찾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성 매매'가 아닌 업소에서 보수적인 기성세대들까지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지요.


이렇듯 일본의 남성들은 물론 사회적으로 1차 성욕에 집중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마련되고 있지만 결코 자신이 가진 다양한 감성을 포기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자신의 체면을 깍지 않는 선에서 비밀리에 충족하고 있을 뿐이죠. 여기에 한술 더 떠 이를 공개적으로 즐기는 오타쿠들은 변태가 아니라 차라리 순수한 쪽입니다. 아직 자신이 가진 감성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니까요. 과연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자신을 속이며 살고 있는 사회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닌 선에서 자신의 감성을 다양한 수단으로부터 채워나가며 살아가는 오타쿠 중 어느쪽이 더 이상한걸까요? 일본에서 흔히 사회악으로 인식되고 있는 오타쿠가 저지르는 범죄율과 같은 표본에서 일반인이 저지르는 범죄 확율 중 어느 쪽이 높은지는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오타쿠들의 범죄율은 상상이상으로 적습니다. 뭔가 모순되었군요 이상하지 않나요?

생각같아서는 허구언날 보는게 변태적이고 폭력적인 것만 보고 사니까 감성도 공격적이고 타락적으로 변해서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거라고 지레짐작하게 됩니다만 사실 이들은 그럴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미 사회에서 어떤 형태로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감성을 다 충족하고 살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모든 범죄는 '사회에 대한 열등감과 불만'에서 발생합니다. 오히려 1차 성욕으로 다른 감성을 억누르며 자신을 억지로 다스리는 현대인들 중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한 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범죄가 훨씬 많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고 있는 사실이죠. 단지 1차 성욕만을 채울 수 있는 것에 만족할 것을 종용당하며 사회적으로 요구하는 남성상에서 벗어나는 남성의 감성이 무시된 채로 그냥 잃어버린 채로 갈곳 없는 감성을 단지 1차 감성에 쏟아야만 하는 세상이 되고 그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야동이 만들어지고 후세 역시 그 야동을 통해 세상의 룰을 배우고 자신에게 내제되 었는 수많은 성욕 감성을 죽여나가는 지금의 현실이 과연 얼마나 행복함을 주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나라의 성을 터부시했던 역사는 어쩔 수 없다 치겠지만 그 사상이 지금까지 계속 영향을 끼치고 현대사회에 고정관념과 성적 역할부여까지 강요하게 만드는 현실은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리 안좋은 문화라도 100년 이상 지속되면 철학이 생긴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터부는 반대입니다. 터부는 시작할때는 정말 그럴싸해보입니다. 왠지 인간답게 사는 것 같고 성서에 더 가까워지는 인간의 존엄성마저 느껴질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터부는 안좋은 문화와는 달리 그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썩어들어갑니다. 사자가 초식동물을 죽여 고기를 먹는 것을 사자는 절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인간은 그것이 자연의 섭리네 약육강식이네 심지어는 초식동물이 불쌍하다는 동물보호론까지 별개 다 나오는 법인데요. 하물며 인간이 자연스럽게 본능적으로 나오는 감성을 정말 갖은 궤변으로 터부시에 성공했다 한들 그것이 단지 끊임없이 흘러가는 물을 막기만 한 댐에 불과했다면 언젠간 댐은 넘치게 되어있습니다. 터부를 지키기 위해 댐을 높게 쌓으면 쌓을수록 물은 썩어가고 악취를 풍기게 되며 댐의 의미는 점차 사라져갈 뿐입니다.

터부가 인간을 이롭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다만 지금 제가 보는 터부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같이 잘 되는 것들이 없습니다. 결국 개방된 사회에서조차 서로의 성에 대해 무지할 수 밖에 없고 한쪽은 아예 그걸 알아가려는 데에 관심조차 없습니다. 잘못된 성 역할론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그것이 결코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들이 아님에도) 감성들이 반강제적으로 억눌러지고 갈곳 없는 감성이 엉뚱한 곳으로 표출됩니다. 이런 감성이 쌓여 정신적인 외상을 가져오고 심지어는 1차 성욕에서 충족되지 않는 감성을 충족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잘못된 방법을 동원하거나 심지어는 이성을 잃고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이런 사회에서 태어나는 2세들은 단지 자신의 성이 1차 성욕에만 한정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미디어를 통해 인식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아예 처음부터 닫아버리게 됩니다. 인생에 있어 무엇보다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는 단 한번밖에 없을 수도 있는 그것을 금지도 아닌 아예 배우지도 깨닫지도 못한 채 자라나는 끔찍함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금 와서 남성의 이런 모든 성욕을 여성들이 모두 풀어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도 여자의 그것을 모두 풀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대사회의 한계이니까요. 다만 적어도 다른 누군가도 아닌 남성 스스로가 이런 감성이 스스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른 채 멍하니 1차 성욕에만 모든 것을 풀기 위해 애쓰는 것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성의 다양한 성의 형태는 서적으로도 많이 출시되었고 연구도 많이 되어 여성은 물론 남성에게도 많이 알려져있습니다. 남성은 여성을 만족시킨다는 출처불명의 의무감으로 인해 이러한 정보를 가능한 충실하게 습득하고 이해하려 '고민'만큼은 하고 있으니까요. 아직 이해까지는 머나멀게만 느껴지지만 말입니다.

여성들에게 당장 남성의 성에 대해 이해를 바라는 것은 지금 단계에서는 무리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관심'만큼은 가졌으면 합니다. 남자로서 내 여자가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다는 마음처럼 여성 역시 내 남자가 행복한 인생을 살기를 바랄 것으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남성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여보여면 어떨까요? 이 작은 노력 하나로 만들어지는 변화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남자가 야동을 왜 보는지, 무엇이 부족해서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그것을 보는지, 어째서 1차적인 관계 쾌락에만 집착하는지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본다면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유'는 조금 알 수 있게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인생을 함께 할 내 남자의 일이 결코 남의 일은 아니겠지요?



남자도 무척 섬세하고 예민합니다.
강하지만 내 여자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습니다.
남자라고 해서 단지 신경적인 쾌락만을 원하지 않습니다.
천천히 호흡을 맞추며 시간을 즐기는 것을 사실 더 좋아합니다.
남자답다라는 단어에 새뇌당해 차마 드러내지 못하고 있지만
누구보다 건전하고 감성적인 성적 판타지도 가지고 있습니다.

전 이런 모습이 진정 남자답고 자연스러운 진짜 남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RushAm 2009. 10. 25. 08:05
일본에서 넘어온 수많은 소문과 그 소문을 속속 확인시켜주는 각종 매체들에 의해 형성된 일본에 대한 이미지 중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일본은 성에 대해 대단히 개방된 나라다'라는 것입니다. 워낙 관련 매체와 사건, 사고들이 잘 알려져있고 공교롭게도 시중에서 접할 수 있는 수많은 일본 책들에서 이런 점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이미지는 쉽게 떨어지지 않고 있죠. 일부 사실이며 일본 정부도 이를 인정하고 어떻게든 감추려고 애를 쓰고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일본 가부키쵸는 사진 촬영이라도 좀 할라치면 코반이 제지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니까요. 물론 영업상의 보호 문제도 있겠습니다만 만일 기자나 인터넷 블로그를 운영중인 외국인일 경우 사진이 결정적인 이미지의 단초를 제공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의 이 산업은 최소 20년 안에는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부도 이쪽 산업의 사회적 역할을 일정 부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뿌리를 뽑으려 들기보다는 해외로 이미지가 굳어지지 않도록 외국인들에게만큼은 철저히 노출되지 않도록 통제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각 지역별 야쿠자들이 운영하는 전화출장 업계와 인터넷으로 운영되는 콜걸 서비스까지 막기에는 일본 정부의 능력상 역부족에 가깝습니다. 벽이 갈라져 새는 댐을 팔로 막는 무모한 짓을 할 생각은 더더욱 없을테니까요.

자 그렇다면 이런 나라의 성에 대한 관념은 이런 산업의 수준 만큼이나 전체적으로 하향평준화되어있을까요? 일부 사람들에게서 돌고 있는 소문대로 일본 여자들은 조금만 친해져도 스스럼 없이 성관계에 관대한걸까요? 뻔한 답변이 되겠습니다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NO! 입니다. 일본이 그런 오해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관계의 내용'에 있지 '관계까지 가는 과정'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뭐가 다른거냐고요?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한 일 양국간의 결정적인 시각차가 존재합니다.

우리나라의 일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본의 대한 오해가 왜 빗나갔냐면 우리나라의 '성 문화'에 대한 관점으로 일본을 똑같이 치부했기 때문인데요. 흔히 남녀가 커플이 되고 결혼을 하고 관계를 가지는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관계를 가지기 직전까지의 과정이 대단히 중요하게 치부되는 성향이 있습니다. 결국 이런 레이스는 '관계'에 이르러서는 남녀 모두 신경전이 극한까지 온 상황이기 때문에 양쪽 모두 긴장이 풀리고 한쪽은 목적성, 한쪽은 신경전에 대한 필요성이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리는 거죠. 에초 우리나라의 성 관계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이 '한쪽은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한쪽은 '도달하는 사람을 마지막까지 검증하고 경계'하는 데에만 거의 모든 것을 걸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남녀 모두 결국 '성 관계'의 허불허에만 모든 초점을 맞추고 신경을 곤두세우기 때문에 정작 그 다음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여기에는 인성과 관련된 성교육과 인식의 성숙도의 평균치가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결국 수많은 커플들이 정말 어이없게 '우린 너무 익숙해졌어'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수도 없이 해어짐을 거듭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커플의 최종목적지'를 처음부터 정해놓았기 때문이죠.

일본의 성관계에 대한 인식은 조금 다릅니다. 성관계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있어 관계는 커플이건 결혼한 부부이건 '현재진행형'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상대의 순결에 대해서 크게 집착하지 않습니다. 성관계 자체가 '커플'이라는 의미에서는 큰 비중이 없기 때문이죠. 이들은 '성관계'보다 같이 있는 시간이라는 더 큰 범주의 카테고리가 더 중요하며 성관계는 그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때문에 성관계에 있어서도 '관계 그 자체'에 집중하거나 흥분하여 이성을 잃거나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일상에서 대화하듯 '관계'를 가지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상당히 천천히 그리고 정말 다양한 시도(?)를 하기도 합니다. 마치 그 시간을 여유를 두고 충분히 즐기려는 것처럼 말이죠. 이런 모습이 한국에서 보기에는 '성을 가볍게 어긴다'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아니 저렇게 성관계가 생활화 될 정도면 대체 얼마나 문란한 사회인거야?'라는 오해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결국 시각차입니다. 이들이 성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성이라는 부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위험성을 내포해버린 탓이죠. 성관계 자체에 큰 의미를 두는 사회에서 이들의 성 의식은 충분히 이상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만, 이들이 이상한건지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지는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커플 관계일때는 단계별 미션의 최종단계처럼 어겨지는 성, 부부가 되어서는 의무방어전이라 불리울 만큼 관계 그 자체에 의미를 집중하는 우리나라의 성이 과연 불편하지 않은 진실이 되어주고 있는 것인지도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듯 싶네요.

성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아름다움 때문에 높이 추앙해야 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 일본의 성 관념입니다. 동성들끼리라도 알몸이 되면 서로 친근해지고 말문이 쉽게 열리는 것처럼 남녀관계도 성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말문을 열고 그동한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나 속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털어놓기도 하고 힘든 일이 있었을 때는 위로를 주고받기도 하는 것이죠. 서로 알몸이 되어있고 하나가 되어있는 상황에서는 마음이 편안해지고 한결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일본은 충분히 이용하는 것입니다. 결국 관계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관계를 가지면서 갖는 감정적 교감의 시간을 중시하는 것이 일본의 성 문화가 가진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런 문화는 이른바 뒷세계라 불리우는 '풍속업계'에도 잘 드러납니다. 물론 이쪽 업계도 예전과는 달라서 이른바 '성 그 자체'만을 중시하는 업소들이 업계를 거의 장악하고 있습니다만,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실체는 '쾌락'이 아닌 '위안'입니다. 이들은 여자의 성을 판매한다는 생각보다는 그 여자의 시간을 판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이들의 경험담은 정말 다채롭습니다. 물론 '관계'를 가진 경험이 제일 많지만, 뜬금없이 술자리를 같이 하자며 이런 저런 푸념을 늘어놓는 사람, 부여잡고 울먹이며 신세한탄하는 사람,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고민 상담을 하는 사람들까지 정말 다양한 사례들을 듣게 되죠. 직업여성들은 이런 사람들을 성 관계를 포함하여 그 시간만큼은 그사람의 편이 되어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위로해주며 가능한 그 시간만큼은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위안'은 '위로'와 '안정'으로 결국 남자가 가진 모든 욕구불만을 해소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것도 일종의 영업기술 중 하나입니다만, 어쨌든 일본의 풍속업계는 결코 성 그 자체만으로 돈을 지불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개념이 확고합니다. 앞서 설명했듯 일본의 성 관념은 관계 그 자체에 무게를 두지 않기 때문에 업계도 이에 발맞추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죠.

이야기를 다시 처음으로 되돌려서 일본은 정말 성이 문란한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한국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가 정답이 되겠습니다. 물론 일본 여성들이 성에 대해 관대하다는 것도 편견에 가까운데요. 최근 일본 잡지에서 발췌한 설문조사 기록을 보면 '애인이 있는데도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한 쪽이 절반을 넘었다는 부분이 이런 편견을 가중시키기도 합니다만, 이건 여성들이 성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성 그 자체에 의미를 크게 두지 않는을 뿐 일본 여성들이 혜프다는 증거로 치부할 근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성에 의미를 크게 두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끼치는 사회적 영향은 생각만큼 크지 않거든요, 성의 의미를 크게 두고 있는 한국이 자신있게 우리는 성이 문란하지 않다고 말 할 수 없는 것처럼 성에 의미를 크게 두지 않는 일본이 다른 나라의 기준으로 단정지어지는 혜픈 여성 이미지에 발끈할 자격도 충분합니다. 그걸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사람의 성숙도 차이일 뿐 보편적 사회기준이 어떤지는 사실 아무런 관계가 없거든요.

한국처럼 정말 오랜 시간동안 절차와 의식을 거쳐야 하는 게 아니라 조금만 꼬시면 성관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이른바 '단계 단축론'도 있는데 관계 자체를 떠나서 일본의 성 문화처럼 '속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로 인정받는 게 과연 흔히 생각하듯 마냥 쉽게 생각할 부분은 아닙니다. 관계에 의미를 두지 않을 뿐 이들에게 있어 관계를 갖는다는 의식 전체가 가지는 무게감은 한국과 큰 차이가 없거든요. 일본인에 대한 이미지들 중에 '마음속을 좀체로 털어놓지 않는다', '속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과연 이들에게 '후련하게 속을 털어놓고 그 고민을 진심으로 위로해주는'관계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정말 수많은 단게를 거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들에게 있어 성이란 내가 내 치부를 드러내고 마음껏 어리광을 부려도 결코 그가 그런 내 모습에 실망하여 돌아서지 않고 어루만져주고 위로받을 수 있는 관계에 다다랐음을 의마합니다. 형태만 다를 뿐 과정에 있어 특별함은 없습니다. 이 관게가 만들어지기가 쉬울리가 없겠죠 일본 사회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일본에 차고 넘칠만큼 수은 동정남 문제와 이로 인한 AV오타쿠들의 양산은 일본 역시 한국 그 이상으로 이성간의 관계가 극적으로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힘겨운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관점대로 성 그 자체만을 두고 보았을 때는 분명 일본의 성은 문란하기 짝이 없습니다. 풍속업소도 정말 다양한 형태로 성업중이며, 여성들이 관계 자체에 그다지 큰 무게감을 부여하지 않는 점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죠. 실제로 관계를 시작하는 연령대는 점차 어려지고 있고, 일부 여성들에 의해 다양한 이성 관계를 만들어가며 성 자체를 즐기는 계층이 만들어지기도 하죠. 다만 이들의 이런 면면들은 거리낌없이 모두 드러나 있고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통계 수치도 비교적 정확하며 설문 조사에서도 자신의 이미지를 생각해 솔직하지 못한 답변을 하는 계층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이미 드러나 있고 정확하게 그 사회의 실상을 수치로 반영하고 있는 쪽과 도대체 어디까지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쪽 중 어느 쪽이 더 무섭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편견은 무섭습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는 속담만큼 최악의 속담이 또 있을까요? 007 언리미티드에서 표현된 한국 배경이 많은 사람들에게 분노를 일으킨 이유는 '감독'이 한국에 한 번도 오지 않고서 그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눈에 뻔히 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린 그렇지 않아'라고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는 배경에는 그 누구보다 '한국'이란 나라에 오래 살고 있다는 '경험'이 있기 때문이죠.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에는 1억이 넘는 인구가 있고 정말 인간 쓰래기라고 불릴 만한 사람부터 인간냄새 풀풀 풍기는 인정 넘치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며 단일국가로는 100년 가까이, 영토역사로는 몇천년 가까운 삶을 살아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여지는 일본의 모습이 일본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것은 며칠 여행을 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이미 한국 사회에 젖어든 사람이 바라본 시각으로 쓴 저서에서 읽어낼 수도 없고 영화나 드라마로도 모두 볼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도 않으니까요. 우리나라가 가진 모든 색깔을 한 마디로 축약해 낼 수 없듯 일본이란 나라도 편견으로 솏아낼 수 있을 만큼 작지 않습니다. 비단 일본 뿐만 아니라 어떤 나라를 보던 잠깐 볼 수 있었던 일부분이나 한국의 시각으로 바라본 우리의 기준으로 평가된 잣대로 그 나라를 평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의 세 뼘 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이 세상은 넓어 터졌으니까요.

끝으로 10년쯤 전에 '사계절출판사'에서 출시한 '논리 시리즈'에서 나온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합니다. (기억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명칭이나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나그네가 길을 가고 있었다 이 나그네는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데다가 돈도 부족했다. 길을 가던 도중 갈림길에 섰는데, 한쪽은 밤골로 통하는 길이었고 한쪽은 샘골로 통하는 길이었다. 옳거니 두 마을 중 좀 잘 사는 마을로 가면 잘 얻어먹을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에 나그네는 때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노인에게 물었다.

'배고픈 나그네입니다. 어느 고을로 가야 잘 얻어먹을 수 있겠는지요'

노인은 대답했다
'두 고을 모두 인심은 후하지, 그런데 한쪽 고을은 올해 풍년이 들었고 한쪽은 흉년이 들었다네'

나그네는 생각했다. "아 그러면 풍년이 든 고을로 가야 더 잘 얻어먹을 수 있겠구나."

그때 한 뚱뚱한 사람이 걷고 있는 도중에도 먹을 것을 입에서 떼지 않은 채 걷고 있었다.

나그네가 물었다.
'저 사람은 어느 고을 사람이오?'

노인이 대답한다.
'아 저 사람은 밤골 사람이지'

뚱뚱한 사람이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빼빼 마른 노인이 힘없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그네가 물었다.
'저 사람은 어느 고을 사람이오?'

노인이 대답한다.
'아 저 사람은 샘골 사람이지'

나그네는 생각했다.
'그렇군 밤골로 가야겠어 밤골 사람들은 풍년이 들어서 모두 잘 먹어서 저렇게 뚱뚱한것일테니까'

나그네는 밤골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뒷모습을 보며 노인이 혀를 찬다.

"쯧쯔 샘골로 가야 잘 얻어먹을 텐데 똥꾸멍이 찢어질정도로 가난한 밤골로 가다니 아까 그 사람은 밤골에서 제일 뚱뚱한 사람이고 뒤따라나온 노인은 샘골에서 가장 마른 사람인데 한 사람을 보고 그 고을의 전체를 판단하다니 정말 어리석은 나그네로군'


posted by RushAm 2009. 8. 21. 12:05
지난 글 전편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2009/08/11 - 바람을 피우는 여자 그 특별함에 관하여 前

여성의 거짓말에 대한 목적은 이 정도로 하고 분위기를 조금 바꾸어 보겠습니다. 여성들이 바람을 피우기 위해 남성들의 감정적인 부분을 이용하게 된다는 말씀을 서두에 언급해 드렸습니다만 과연 어떻게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죠. 남성들 역시 그러한 성향이 없지는 않지만, 여성들은 연애를 시작하게 되면 우선적으로 상대의 대한 정보 수집에 대단히 적극적입니다. 남성들이 꽤나 기분나빠하는 부분이긴 합니다만 결혼정보업체들이 다양한 항목으로 남성들의 정보를 나열해서 서열화시키고 있는 부분 역시 이러한 여성들의 '정보 수집 욕구'를 잘 알고 있기에 그에 맞춰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뿐이죠. 반대로 남성은 상대적으로 여성의 대한 정보를 다양한 관점에서 수집하는 데에 취약한 반면 본질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하는데요. 지금은 여성 특집이니 이는 나중에 기회가 있을때 한번 더 언급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수집된 남성들의 정보들은 추후 활용될 수 있도록 착실히 데이터베이화되어 여성의 머릿속에 저장됩니다. 남성의 성격, 하루 스케줄, 평소 주요 이동 루트, 휴일 스케줄, 만날 때 주로 가는 장소, 만난지 며칠 째 되는 날, 주로 입는 옷 스타일, 멀리서도 구분될 수 있는 특징, 가족력 등은 기본이며 좀 더 상세하게 들어가면 전 여자친구 정보 (사귄 기간, 해어진 이유, 전 여자친구의 성격, 특징) , 가족력, 성정과정 트라우마 (가족의 불행한 사건, 성장과정에서 일어났던 정신적 외상 등) 입니다. 이런 정보들은 주로 남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이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에 여성들은 이를 얻기 위해 간접적인 접근 방법을 택하는데요. 최근에는 '블로그'나 '미니홈피'의 남성측 아이디와 비빌번호를 알아내 비밀 글이나 이전 여자친구 정보같은 민감한 사항들을 알아내는데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곤 합니다.

이런 노력으로 인해 사귄 기간은 동일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상대방에 대한 정보 양적 측면에서 여성과 남성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수밖에 없는데요. 이런 부분은 향후 관계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를 경우 남성에게 아주 불리한 상황으로 전개됩니다. 여성은 남성의 트라우마나 전 여자친구와의 해어진 과정과 계기 등을 통해 이 남자가 어떤 말과 어떤 패턴에 약점을 보이는지 (이성을 잃게 되는지)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불리해지는 상황에서 그러한 점을 적절히 활용하여 매 상황을 타파해나가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바람을 피우는 여자에게 있어서는 둘도 없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이 부분이 중요한 이유는 남성과 여성의 바람을 피우는 패턴의 차이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비유를 해보자면 쁘띠젤 같은 젤리를 모양 그대로 꺼내서 손 위에 놓고 반대편 사람이 내가 젤리를 쥐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도록 젤리를 손 안에 숨긴다고 생각해보세요. 남성은 젤리를 100이라고 생각하고 1이라도 밖으로 빠져나오게 하지 않도록 꼭 쥐다가 질질 흘리는 반면 여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설득력으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젤리를 버리고 핵심 코어 부분만을 가볍게 쥐고 숩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버려진 젤리가 상대방에게 발각되더라도 이게 젤리가 아니라는 점을 충분히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해서 눈과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기술도 포함됩니다.

즉 남성은 바람을 완전히 숨기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증거가 여성에 의해 적발되면 전혀 방어하지 못하고 앞마당부터 본진까지 털리는 반면 여성은 처음부터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부분 중 중요한 부분만을 완벽하게 숨기고, 적당히 걸릴 부분을 '떡밥'으로 내놓는 형태를 취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숨기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인데요. 이것은 남성에게 '거짓말'을 하기 위한다기보다 '이것이 당연하다'는 잘못된 자기만의 관점을 남성에게 심어주기 위한 작업의 일환입니다. 예를 들어 여성이 남성이 충분히 알고 있는 알리바이 범위 안에서 다른 남자와 외박을 했다고 한다면 여자는 '외박을 했다'는 정보는 일부러 걸리기 쉽게 남겨두고 '남성과 단둘이'라는 부분을 완전히 숨깁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런 일이 반복될 것을 알기 때문에 일회성으로 미봉시키는 거짓말을 일부러 만들어내기 보다 다음에 또 다시 외박을 했을 때에 더 이상 의심하지 않도록 만드는 2단계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즉 '외박'을 했지만 '바람'을 피운 것은 아니니까 앞으로 '외박'이라는 이벤트가 있더라도 크게 걱정할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남성에게 주입시키는 것이죠.

자 어떻습니까?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모두 제 3자이실테니까 위 문단이 별로 이해가 가지 않으시겠죠? 그렇습니다. 절대 당사자가 아닌 이상 저런 거짓말에는 속아넘어가지 않습니다, 여성도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일종의 '최면제'를 추가합니다. 여기에 들어가는 재료는 '가족력'과 '전 여자친구와 해어진 계기'등이 들어가게 되죠. 성장 과정에서 영향을 받은 부분과 더불어 전 여자친구와의 이별로 인해 굳어진 피딱지, 즉 편견의 함정입니다. 예를 들어 전 여자친구가 '술을 많이 마시고 다른 남자들과 많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면 기본적으로 그것을 활용하여 자신은 그와 정 반대의 사람이라는 것을 충분히 어필하는 것이죠. 남성은 이런 경우 중립적 시각을 지키지 못하고 맹목적인 신뢰를 보내게 됩니다. 흔히 이상형을 말할 때 등장하는 '**한 사람'이라는 조건을 붙이는 사람들은 전에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부터 어떤 상처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은데요. 예를 들면 전에 사귀던 여자친구가 술을 너무 잘 마셨는데 결국 남자들이랑 어울리다가 바람이 났기 때문에 술 잘 마시는 여자는 딱 질색이라는 식의 일차적인 조건이 충족되기 될 경우 다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여자가 다른건 잘 모르겠지만 술은 하나도 못마신다면 일단 평가는 평균 이상이 되고 전 여자친구가 바람피울때의 행동패턴 (남자들이랑 어울리는)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면 일반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이벤트(외박 등) 에도 관대해질 수 있는것이죠. 조금 설명이 어렵습니다만, 이것이 남자의 '상처'이고 여자는 이 상처의 원인과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한 후 그곳에 적당한 처방전을 '자신의 이름'으로 만들어 약을 발라둡니다. 물론 남자는 당장 아픈 곳이 나아지므로 다른 곳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이 이 여자에 대한 좋은 정보만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마약의 정체입니다.

외박이 여행이 되고 여행이 길어지고 만나는 시간이 짧아지고, 다른 남자와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 목격되고, 점점 소흘해지는 그녀를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도 남자는 여자의 마음이 변했다는 것을 해어지기 직전까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해어진 후에도 이미 그녀가 떠났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수두룩합니다. 이것이 상처에 발라지는 '마약'의 효과입니다. 여성들의 바람이 성공하는 패턴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이미 바람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다만 이 마약은 치료제가 아니므로 어떤 계기 (다른 남자 품에 안겨있는 모습 등 아주 극단적인 모습으로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가 생겨 순간적으로 이성을 찾고 그녀의 마음이 나에게서 완전히 떠났다는 것을 안 뒤의 후폭풍은 정말 엄청납니다. 서서히 아픔이 장기간 나누어서 오는 게 아니라 일순간 엄청난 타격이 한꺼번에 몰려오기 때문에 이별의 상처는 아주 깊고 심하게 패이게 되는 것이죠. 마취제의 끝은 평온이 아닌 엄청난 고통일 뿐인 것처럼 말입니다.

자 그러면 이 바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면 서두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여자의 바람은 간암과 같아서 가뜩이나 변화에 둔감한 '남성'이 발견될 정도면 이미 말기에 다다랐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없다'가 정답입니다. 평소 아무리 여자의 상태에 대해 꼼꼼히 살핀다 한들 여우꼬리를 능숙하게 감추는 여자들을 남자들이 당해낼리 만무하겠죠. 에초 상대가 되지 않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처방전도 없습니다.

다만 암도 '초기'에 발견하면 치료법이 있듯이 자기자신의 '감'을 믿지 말고 여성의 입장에 서서 몇 가지 진단을 해본다면 여성의 현재 상태를 쉽게 '파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커플에 따라 다르지만 해결책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원래 남여상열지사라는게 천가지 이유와 만가지 결과가 만발하는 중대사인지라 제가 쉽사리 '이게 해결책이다' 라고 말하는 것도 우스운 일일테니까요. 해결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의 몫으로 남기고, 저는 남자들의 한계라고 할 수 있는 여성의 현재 심리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진단법 정도를 소개해보겠습니다.

우선 명심하셔야 할 것은 '절대 조르지 마십시오' 입니다. '너 바람피웠지?, 누구랑 있었어?, 그 시간대에 어디서 뭘 했는지 바른대로 말햇!' 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과연 정직한 답변이 나올까요? 이건 지금 이 글을 보는 분들이 대부분 제 3자라면 '어처구니가 없게'보이는게 사실입니다만 막상 당사자가 되면 남자의 단순함이 나오는 듯 저런 바보같은 상황을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여성은 스스로의 동의 없이 절대 '묻는 말에 정직하게 대답하지 않습니다' 절대 말해달라고 조르거나 떼를 쓰지 마십시오, 그럴 수록 진실과는 더 멀어질수밖에 없고 남자의 촉은 갈수록 둔해지게 되며 머리는 단순무식해진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어떤 사건이 있었고 그것이 오해를 살 만한 일이라는 것을 여성 자신이 남성보다 훨씬 먼저 그리고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것이 '단순한 오해'이든 '의도적인 바람'이든 여성의 대응은 똑같습니다. 일단 숨기고 봅니다. 왜 숨기냐하면 우선 바람을 실제 피웠을 경우 이 상황을 끼워맞출만한 완벽한 해답이 머릿속에서 아직 도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남자의 상태를 보며 시간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고, 단순한 오해였다고 해도 자신이 충분히 오해를 받을 만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자책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추가로 남성에게 추궁을 받기 싫기 때문입니다. 여성은 자기보호 본능이 최종적으로 우선시되는 성별입니다..

이런 경우 우선 처방할 수 있는 해법은 '기다림'입니다. 남자는 절대 이 상황에서 여성 이상의 냉정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여성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던지간에 나중에 후회할만한 상황을 만들어낼수밖에 없게 됩니다. 조금 억울하지만 이때는 뭘 해도 무덤만 깊어질뿐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기다리십시오. 혹시 '마냥 기다리다가 승냥이같은 녀석에게 내여자 빼앗길때까지 잠자코 있으란말이냐!'라고 외치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처방전은 '상태 파악'이지 '예방이나 치료'가 가능하지 않습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여성이 바람을 피우면 돌이킬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당신이 잠자코 있던 무슨 일을 벌이던 에초 바람을 피우던 여자였다면 결론은 당신을 떠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기다림은 보름을 절대 넘기지 않습니다.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던 간에 여성은 두 번의 주말을 거치면서 충분히 스스로 판단하고 결론을 도출할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되니까요. 2주 정도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게 되는데, 그 전까지는 여자가 '떡밥'으로 이런 저런 헛점을 남발하더라도 절대 동요하지 마시고 모른 척 지내십시오. 여성은 이런 문제에 절대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과 상담하지 않으므로 이야기에 발을 맞춰봐야 득이 될 게 없습니다. 그냥 신뢰하십시오. 여성이 단순한 오해였다면 당신의 그 신뢰하는 모습에 마음을 놓고 오해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 과정을 실타래 풀듯 술술 풀어내줄 것입니다. 여성이 두려웠던 건 '당신의 직선적인 대처'로 인한 '신뢰 붕괴'였기 때문에 당신이 신뢰해주는 모습을 보인다면 여성도 자신이 더 이상 공격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털어놓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오해'에 대한 여성의 대처였고, 만일 바람을 피우는 상황이었다면 여성의 태도는 조금 다릅니다. 2주 후에 털어놓는다는 것까지는 동일합니다만 마찬가지로 2주 내에는 어떤 질문도 추궁도 하지 마세요. 이때 나오는 말은 남성측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2주간의 시간동안 바람을 피우는 여자라면 지금 이 두 남자에 대한 무게추를 달아보고 어느쪽에 자신의 마음이 기울어져 있는지 충분히 생각해본 다음 결론을 도출해서 각 남자들에게 털어놓게 됩니다. 만일 당신쪽에게 기울었다면 앞서 '오해'와 거의 비슷한 태도로 당신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을 것이고 무게추가 당신에게 기울지 않았다면 2주 후 당신은 여자로부터 대단히 뜬금없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단호한 이별 통보를 받게 될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꽤 직설적인 결론이라 뒤끝도 없고 깔끔합니다. 마음이 어느쪽에 가느냐를 가지고 누가 나쁘다를 논할 수는 없으니까요. 좀 슬프긴 해도 이것이 여성의 바람이고 마음의 이사이니까,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정말 악질중의 악질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바람이 있습니다만, '무게추'가 정확히 중심에 딱 맞춘, 즉 어느쪽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둘 다 잡아야겠다는 결론을 도출한 여자의 경우를 말합니다.

이런 여자의 경우 2주동안 당신에게는 물론 바람을 피우는 당사자에게도 상황을 심하게 왜곡한 두 가지의 패러랠 월드를 만들어 진술합니다. 물론 상당히 피곤한 작업입니다만, 두 가지의 설정을 모두 만들어 서로에게 서로 다른 사실을 주입시켜 두 가지 관계 모두 유지하는 것이죠. 흔히 말하는 '양다리'의 실체가 이것인데, 남자는 이걸 유지하기가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반면 (여자의 본능적인 육감에 지고 맙니다) 여성은 상대적으로 육감 대결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 남자를 상대로 하기 때문에 이게 남자가 하는 그것만큼 어렵지는 않습니다.

여기에 마약까지 능수능란하게 활용하여 알리바이를 조작한다면, 철저하게 원하는 부분만을 취하는 완벽한 양다리 전략이 구축됩니다. 물론 여기에서 무게추는 중립이지만 애정의 강도는 절대 당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당신은 오래된 연인이고, 상대는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쪽인데 어느쪽에 강도가 센 지는 당신도 초기를 경험해본 이상 모를 리는 없겠죠? 당연하겠지만 알리바이는 새로운 남자친구쪽에 기울게 됩니다. 물론 남자도 아주 둔해빠지지 않았다면야 이쯤해서 눈치를 채게 되는데, 여기에서 여성은 '상대 남성이 있다'는 것을 순순히 '떡밥'으로 내주고 '관계"에 대해서는 '커플'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왜곡하여 거짓말을 합니다. 예를 들면 '돈때문에 사귄다', '잠깐 얻을 게 있어서 지금 얻고 있고 다 이용해먹고 나면 버릴거다'는 식이죠. 절대 속지 않을 것 같지만 이것은 '그 남자'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면서 '그 남자'에게 절대 마음은 주지 않았다.는 식의 거의 최종적인 배팅입니다. 여기까지 말했다면 이미 당신과 그 남자의 비중은 1:9정도로 벌어져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자 만일 여기에서 당신이 운좋게 거짓말인 것을 알게 되었다면 두 가지 패턴이 있습니다. '세 사람'과 '두 사람'의 차이가 되죠. 만일 '두 사람'의 경우 즉 당신과 그 여자 단 둘이 있는 상황에서 거짓말이 발각될 경우 그 여자는 정말 최후의 몸부림이라도 치듯 온갖 불쌍한 척을 하며 당신에게 매달리는 시늉을 하게 됩니다. 어쨌든 1이지만 그 1이 없으면 당장 아쉽기 때문에 여자는 당신을 붙잡아둬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지죠. 그런데 '세 사람'일 경우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여기에서는 누가 우위에 있는지가 잔인할 만큼 명확하게 그 여자의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당신은 당신 눈앞에서 다른 남성에게 안겨 당신에게 지금까지 쌓여있던 온갖 경멸의 말을 쏟아내는 그녀의 모습을 어이없게 바라보는 아주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여성은 이미 상황이 세 사람이 될 경우 1과 9중 어느쪽을 버리고 어느쪽을 택하게 될 지는 명확한데다가 이미 이 바람 자체가 당신에게 누적된 불만이 한계치에 다다랐기에 시작된 일이므로, 당신에게 쌓여있던 말들이 폭발하기 시작하면 댐 터지듯 쏟아져나오는 비난을 감당하기 힘드실수도 있습니다.

이런 여성의 태도는 물론 그간 쌓여있던 부분도 있지만 이미 이 상황에서 누구 한 명을 건지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우선 '9'를 택하고 '9'에게 이 상황에서 당신을 택했다는 것에 대한 안심을 주는 한편 당신을 공격함으로서 당신에게서 완전히 마음이 떠났다는 것을 증명함과 동시에 9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보호본능을 일으키게 만드는 작전입니다. 재미있는건 이런 작전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것이 아닌 '여성의 본능'에서 나오는 위기 대처 방법이라는 사실인데요. 이쯤에서 여자쪽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거짓말을 해서라도 당신을 놓치고 싶지 않았어'라는 이야기인데, 남녀관계에 있어 공히 최악의 악질 거짓말로 올리고 싶을 정도의 악언이므로, 만일 그런 말을 입 밖에 내는 사람이 있다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까이 두지 않기를 권합니다. 그런 사람은 남녀관계를 떠나 사적인 관게에 있어서도 결코 신뢰하기 힘든 사람일 테니까요.

이야기가 꽤 길어졌습니다만 결론을 지어보자면 역시 여성의 바람은 '거짓말'이 빠지면 섭섭해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남성의 바람도 거짓말이 수반됩니다면, 그 본질적인 측면을 들여다보면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공화국 연구소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남성은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하여 진실을 들키지 않도록 노력'하지만 여성은 '남자의 신뢰를 먼저 일정 수준 얻은 후 그 얻은 신뢰 범위 내에서 진실로 믿게 만들 수 있을 만큼 통용되는 거짓말'만 한다는 것 입니다. 이 부분만 명심하신다면 적어도 여성의 바람과 거짓말에 대해서 조금은 본질에 접근하실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만 뭐니뭐니해도 역시 제일 중요한 건 '연애'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마세요. 서로를 처음부터 눈빛을 불태우며 정보탐색전을 벌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본능이 그렇다고 해도 사랑한다면, 그 또는 그녀가 어디가 안좋은지, 기분은 어떤지, 내가 아플 때 바로 느껴지듯 느낄 수 있을 만큼 살펴주는 것, 거창한 이벤트나 로맨틱한 프로포즈보다 더 '사랑'이라는 말에 가까워질 수 있는 것들일 테니까요.

자상한 남자보다 나쁜남자가 인기가 있는 이유는 자상한 남자는 '여자가 뭘 원하는지를 모르니까' 이곳 저곳을 찔러보고 여자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조건적인 친절을 배풀기 때문에 여자가 부담을 느끼고 오히려 거리를 둡니다만, 나쁜남자들은 평소 거칠고 무례하게 다루면서도 그런 인생들의 특성 상 '상대가 뭘 원하는지'만큼은 확실하게 파악하여 단 한방이라도 크리티컬 히트를 먹이기 때문입니다. 여자들이 90% 잘못해도 10% 잘하는 나쁜남자에게 빠지는 건 나쁜남자 컴플랙스의 심리적 헛점 탓도 있지만 나쁜남자들만큼 여자가 정확히 뭘 원하는지 확실히 아는 쪽도 드무니까요. 그렇다고 나쁜 남자가 되라는 것도 아니고 된다고 해서 모두 크리티컬의 능력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닌 만큼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연인이 오랫동안 당신 곁에 있기를 원한다면 어디가 아픈지 알아본다고 온몸을 떡주무르듯이 주무르고 쑤시고 찔러보지 말고, 찬찬히 그녀의 눈빛 말투 호흡 등을 살펴보세요. 남자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친절이 아니면 감지해내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여자는 겉으로 드러나는 친절 이상으로 그런 관심을 충분히 감지해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혹은 그녀를 한번이라도, 1분이라도 더 많이 바라보세요. 그리고 말로 표현하지 않는 대화를 나누어보세요. 충분히 알아들었다면, 아니 알아듣도록 노력하기라도 한다면, 그녀 역시도 당신에게서 떠나가고픈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우고, 아니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별 스트레스가 조금이라도 덜어지기를 바라면서 여자 그 특별함에 관하여.. 제 2부 바람을 피우는 여자 편을 이쯤에서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1회차 담배를 피우는 여자 그 특별함에 관하여
2회차 바람을 피우는 여자 그 특별함에 관하여   後
3회차 키스 그리고 또 한번의 키스 그 특별함에 관하여
4회차 재력에 끌리는 여자 그 특별함에 관하여
posted by RushAm 2009. 8. 11. 09:11
공화국 연구소 시간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지난회에 예고드렸던 대로 '바람을 피우는 여자를 말한다'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람, 하면 왠지 남자의 전유물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달리 표현할 단어가 부족할 뿐 문맥상의 의미를 따져보면 남녀를 가리지 않는 현상이 바로 '바람'이라는 심리변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남자들이 바람을 피우는 이유는 각종 서적, 특히 여성잡지등을 통해 충실히 분석이 되어 왔고, 실제로 그 분석 연구 결과 내용이 특별히 틀린 내용도 아니었기 때문에 많이 규명이 되었고 예방법 혹은 상황 대처법 등이 제시되고 있지만, 여자들의 '바람'에 대해서는 그 본질적인 심리 상태는 고사하고 진단 단계부터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이쪽 논문이 없거나 연구가 활발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사실 연구 결과나 논문들이 대부분 헛다리를 짚기도 하고 (여자 꼬시는 법 책 독파한 사람들의 연애 성공담 들어본 적 있나요?) 남자들은 거짓말을 할 지언정 행동이나 마음은 이른바 '남자답게'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직선적이기 때문에 연구가 어렵지 않습니다만, 여자들은 정말이지 수많은 변화구 속에 타자는 커녕 포수조차 제대로 잡기 힘든 너클볼을 던지는 선수들이 수두룩할정도로 심리상태에 따른 원인 분석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성의 심리를 알고자 함에 있어서 쉽사리 범하는 오류가 '어떤 목적성'을 띈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찾게 된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심리 파악에 실패하는 원인 되겠습니다. 이를 테면 '난 내 여자친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라는 아주 순수하고 단순한 이유라 할지라도 이런 이유에 얽매이게 되면 주변 정보를 걸러내는 냉정한 뇌기능이 발휘되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된 정보를 거름 없이 받아들여 상식으로 고착화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렇게 잘못 알려진 상식들이 정말 수두룩하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트러블은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합니다. 때론 범죄에 가까운 일도 벌어지니까요.

우선 이 글을 포함해서 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책을 뒤져본다면 일단 말리고 싶습니다. 이미 사태가 벌어진 다음에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한 어떤 조사를 벌인다는 것은 냉정을 잃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이 글을 포함해서 모든 연구 결과들은 특히 남자들에게 있어서는 철저하게 냉정하고 차가워진 머리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될 뿐입니다. 수도 없이 언급된 단순한 이유겠지만 이미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면 당사자들은 객관적인 시각을 잃을뿐만 아니라 한쪽에 치우쳐 상황이 컨트롤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니까요. 치료 백신보다는 예방 백신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물론 단순 개인 연구 결과이므로 맹신 역시 금물입니다.

자 이야기를 다시 본론으로 되돌려 오늘의 주제인 '여자들의 바람에는 남자들과는 다른 어떤 특별함'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죠. 우선 첫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거짓말의 유형'입니다. 남녀의 능력적인 차이에 대해서는 다른 연구 결과들이 수도 없이 상식화를 이룬 덕에 약간이나마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을 텐데요. 단순히 정리하자면 남자는 감정적인 표현보다는 이성적인 표현에 강하고 여성은 그 반대라는 것이 주가 됩니다만. 이 케케묵은 이론이 왜 여기에서 나오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차차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바람을 피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파트너를 속이고 있다는 것이 되므로 여기에는 언제나 '거짓말'이 수반되는데요. 그래서 진실한 사랑의 '진실'이 거짓말을 배제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거짓말의 유형, 특히 목적성에 있어서는 정말 남녀의 신체 구조 차이만큼이나 심히 극단적인 양극화 성향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우선 남성쪽을 살펴보면 남성은 바람을 피우는 것을 포함해 어떤 거짓말을 하기 위한 목적이 생길 경우 우선 '거짓말'이 먼저 앞선 후 나중에 그에 파생되는 일들에 대한 수습이 이루어지는 형태입니다. 당장 그 순간이 닥치면 침착성을 잃고 매우 당황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 상황을 즉흥적인 애드립으로 넘어가고자 하는 게 일반적인 남성의 패턴인데요. 남녀를 불문하고 인간이란 원래 이런 준비되지 않은 돌발적 패턴에 지극히 약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빈틈이 많고 따라서 남성의 거짓말은 분야를 막론하고 발각될 확율이 매우 높습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남자는 바람을 피울 때 파트너에게 우선 '거짓말'을 하고 그 뒤에 해당 거짓말에 해당되는 알리바이나 증거물 등을 인멸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는 것이죠.
15 Year Old Tallulah Willis Parties Hard for Big Sis, Maybe too Hard? 15 Year Old Tallulah Willis Parties Hard for Big Sis, Maybe too Hard? 15 Year Old Tallulah Willis Parties Hard for Big Sis, Maybe too Hard?

반면 여성은 정 반대인데 바람을 피울때나 상대를 속여야 할 일이 생겼을 경우 '거짓말'을 섣불리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선 거짓말을 하기 전에 상하전후 논리를 머릿속에서 재빨리 따져본 후 자신의 생각 내에서 합격 도장을 받아낸 거짓말만을 내뱉습니다. 왜 이렇게 앞뒤로 계산된 치밀한 설정을 해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성의 본능적인 특성 이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바람'의 의미와 목적 자체가 남녀 공히 아주 다르다는 것이죠.

여성들이 바람을 피우는 목적은 남성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여성들은 태초부터 '보수성'을 가지고 태어나며 거의 대부분의 여성들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모성애 등의 성향들 역시 대체로 자기 자신과 자기 핏줄을 지켜내기 위해 위험보다는 안정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른 분야보다 정치계에 여성 진출이 유난히 더딘 이유도 이와 관련이 깊죠. 이런 이유로 여성은 다른 무엇보다 결혼 제도에 걸맞은 남성을 고를 때 '안정성'을 가장 높게 보게 되는데요. 이 안정성을 파악하는 기준으로는 역시 자본력이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만, 그밖에 더욱 중요하게 보는 것은 남성의 건실성과 건강입니다. 앞서 담배를 피우는 여자 편에서 언급햇듯이 여성은 남성의 보이지 않는 건강 정보를 체크할 수 있는 본능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요. 여기에 플러스 되는 것이 바로 '외모'인데 이것은 단순히 '잘생겼다'라는 기준이 아닌 외모에서 나타나는 간접적인 유전학적 정보에 기인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이른바 '시대적 남성상'이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여성의 역할적 부분과도 무관하지 않은데요. 몇 년을 주기로 '훈남','마초남','미소년'이 번갈아가며 유행처럼 변화하는 것이 사실상 유행이 아닌 시대 상황에 맞는 여성들의 필요 욕구에 따라 조절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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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여성이 바람을 피운다는 것은 여성이 판단하기에필요한 남성의 특정 부분이 결핍되어 미래가 매우 불안하게 느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자본력'이외에도 '건강상태', '향후 전망' (실직, 재산 피해 관련 재해 포함), '불임', '성적 만족도'등이 작용하게 됩니다. 여성들 모두 유전학적으로 제각각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남성을 고를 때에도 자신의 유전자 중 취약한 부분을 커버할 수 있는 남성을 찾는 만큼 상기 기준에도 평균적인 절대최저한계선같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만 아무튼 제각각 필요로 하는 유전적 능력과 사회적 능력 등이 기준치 이하로 미달되었다고 느낄 경우 여성은 바람을 피우게 되는 것이지요.

 다만 이 바람을 피운다는 선택지가 남성에 비해 여성에게 있어서 그다지 자주 보이지 않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의 '보수성'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데요. 여성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신이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을 경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게 되므로 지금 있는 환경을 바꾸기까지 대단히 오랜 생각과 힘든 결심이 필요합니다. 즉 여성의 바람은 '내가 이 남자를 떠나 다른 남자에게 갈 경우' 아주 확실하게 지금과 다르지 않거나 훨씬 나은 생활적 안정성이 만들어진다는 '보장'이 되어야지만 비로소 '바람'이라는 수단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옛말에 남자는 바람을 피워도 집에 돌아오지만 여자는 바람을 피우면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여성은 이미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경우 남자에게서 마음이 완전히 떠나 다른 남자에게로 '이사'를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여기에서 남자가 이를 되돌릴 수 있는 선택지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텐데요. 당연하겠지만 이미 떠난 여자를 되찾아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됩니다. 남성들이 흔히들 착각하는 부분이 '내가 조금 더 잘하면 여자는 나에게 다시 돌아올거야'라는 부분인데 이는 남성 자신들의 바람과 여성의 바람을 동일한 개념으로 바라보는 데에 따른 일반화의 오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여성들의 극단적 보수성이 여성의 인생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을 하게 만들어주느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닌데요. 다름아닌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여성의 선택에 대한 댓가를 아주 크게 지불할 수 밖에 없게끔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흔히 TV에서 부부폭력이나 편력 등 아주 극단적인 삶을 살고 있거나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관점에서 매우 불합리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여성들을 보면 같은 여성들조차도 '왜 참고 살고 있을까? 이혼하면 될 텐데...'라고 혀를 끌끌 차곤 하는데요. 여기에는 '여성'이 바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단 지금 있는 남자와 해어지기까지 너무 많은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미혼일 경우 심리적인 부분과 지금보다 더 나은 상대를 찾아야 한다는 원론적인 부분 외적 측면에서는 리스크가 별로 크지 않습니다만 기혼녀의 경우 여기에 추가로 일단 사회적으로 이혼녀 라는 신분을 갖게 되는 '불리함'을 감수해야 하고 아이가 있다면 불리한 포인트가 하나 더 늘게 되죠. 나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불리함은 더욱 늘게 됩니다. 이런 불리한 조건 하에서 미혼녀들 혹은 자신보다 덜 불리한 이혼녀들과 경쟁하여 '지금'보다 더 나은 남자를 찾아야만 하는 여성으로서는 결심하기 매우 힘든 부분이 있고 이것을 여성들은 이미 모든 것을 실행하기에 앞서 충분히 예상을 해두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고통보다 미래에 있을 최악의 경우를 맞이하는 것이 훨씬 두렵다고 무게중심을 기울기 때문입니다. 즉 어떤 계기가 주어지지 않는 한 여성들은 움직이기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 되겠죠. 지금보다 더 나빠질 확율을 감수하고 모험을 감행한다는 건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각종 미래보장보험들이나 적금 상품들이 주로 여성들에 의해 판매가 이루어지는 부분이나, 회사에서 여성들의 이직율이 남성들에 비해 높지 않은 이유 역시 같은 맥락에서 설명 가능합니다.

즉 여성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선택의 기회가 좁아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때문에 결혼 문제에 대해서는 남성에 비해 매우 신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남성들이 중년의 여성에게 빠지는 비중보다 여성이 중년의 남성에게 빠지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죠. 기혼 중년 남성을 좋아하는 여성 계층에게는 '이혼 경력이 여러차례 있는 돈 많은 바람둥이형 미중년보다는 '한 가정에 충실하고 화목한 가정을 10년 이상 유지하고 있는' 평범한 중년 남성이 주로 인기가 있는데요. 여기에는 잘 생기고 돈을 많이 번다는 부분보다 '결혼 후 오랫동안 한 여자와 함게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 포인트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륜 소재의 드라마에 늘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별볼일 없는 가장들에게 맹목적으로 가정 파괴를 노리는 매력적이고 젊은 여성들이 나오는데 현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그녀들에게 필요한 건 그 남자의 옆이 아닌 그 남자의 집 부엌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죠. 이는 연애의 그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어서 다음 시간에는 여성들이 바람을 피울 때 하는 거짓말의 구조와 목적, 그리고 그에 대한 예방법과 대처 등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자 그 특별함에 관하여 회차별 테마 목록

1회차 담배를 피우는 여자 그 특별함에 관하여
2회차 바람을 피우는 여자 그 특별함에 관하여
3회차 키스 그리고 또 한번의 키스 그 특별함에 관하여
4회차 재력에 끌리는 여자 그 특별함에 관하여
posted by RushAm 2009. 7. 11. 11:51
여러분들은 여자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고 계십니까? 물론 이 질문은 남자분들에게만 드리는 질문은 아닙니다. 남자도 남자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만 여자도 마찬가지죠. 이성간이라면 말할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특별히 세분화할 필요도 없이 가장 많이 맞딱뜨리면서 가장 단순한 구분인 이성을 제대로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물론 자기 자신 역시 제대로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거죠. 물론 자동차 운전 이론처럼 굳이 알지 않아도 별 불편함이 없는 이론이긴 하겠습니다만 역시 생활 속 이론이라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누구에게나 일상에 인접해 있어 읽을거리로는 이만한 재미도 없죠. 혈액형 이론이 뜬 것도 그게 정확해서가 아니라 그냥 일상 생활에 그 이론이 적용이 안되는 사람이 없는데다가 4지선다형으로 특별히 어렵지 않는 통계학적 이론이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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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 볼 때 남자보다는 여자가 훨씬 더 복잡합니다. 아무래도 인류의 생존 측면에서 조금 더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고 있기 때문에 생체적으로 설계된 부분이 심리적인 본능과 결부되어 한층 복잡한 복선을 그리게 되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시중에도 '남자의 심리학'보다는 '여자의 심리학', '여자를 꼬시는 법', '여자도 모르는 여자' 등의 책이 훨씬 많고 훨씬 잘 팔리며 훨씬 내용도 충실합니다. 연구할 거리도 많고 그만큼 알기 힘들기 때문이죠. 그래서 오늘은 지극히 '개인적'으로 연구한 몇 가지 여성과 관련된 이론과 더불어 몇 가지 인용하여 정리한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남성의 시점에서 보고 듣고 느낀 부분을 연구한 것이니만큼 지극히 남성의 시점에서 쓰여졌으며 가급적 여성분들이 읽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중립적으로 기술하였습니다만 가급적 여성분들의 취독은 권하지 않습니다.

음주 흡연과 미인의 관계?
흔히 여성분들이 '피부의 적'이라고 부르는 것들 중 대표적인 게 술과 담배입니다. 그런데 동감하실 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봤을 때 정말 아이러니한 부분이 이런 것들을 가까이 하는 여성들일수록 미인일 확율이 높다는 이상한 통계가 나오는데요. 실제로 제가 지금 있는 일본의 경우 여성들의 흡연 비율(실제로는 한국과 별 차이가 없지만 일본은 여성들도 자유롭게 대놓고 피우죠)도 높은 편이고 쉽게 어떤 여성이 흡연자인지 확인이 가능한 시스템이다보니 (한국은 이미지상 그걸 숨기려 드는 정서가 깊죠) 편의점에서 담배를 팔 때는 물론 길거리에서 흔히 담배를 피우는 여성들을 손쉽게 만날 수 있는데요 대부분 가까이에서 확인을 해봐도 전체적으로 미인형에 (화장을 짙게 한 경우도 있지만) 피부도 상당히 매끄럽다는 것입니다. 피부 톤도 TV에서 알려진것처럼 어둡지 않고 오히려 순백미인형이 많았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사실 이건 여성만의 특징이 아닌 인류 자체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흔히 담배를 피우면 건강을 파괴하고 수명이 단축된다는 상식이 있지만 일본 장수 기록 보유자중에는 20대때부터 하루 3갑씩 피우던 담배를 116살에 끊은 뒤 4년 후 사망한 기록도 있어 이러한 이론에 찬물을 끼얹기도 할 만큼 상관관계에 있어서는 아직 의문이 많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과음하는 심리상태는 후천적인 스트레스도 한 원인이 될 수 있겠습니다만 '체질적으로 타고 난다'에 더 가깝다고 봅니다. 물론 의학적으로 아무런 근거자료를 제시하기도 어려운 가설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일단 한 번 들어보세요.

인간은 유전학적으로 우성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열성으로 태어나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이 후천적으로 이를 지식화하여 깨닫기 전에 태어나는 순간, 아니 더 엄밀히 말하면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 유전자는 이를 인식합니다. 즉 타고난 건강 지수를 100으로 봤을 때 200으로 태어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50도 채 안되는 아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미 태어난 순간부터 건강한 아이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게 이를 증명합니다. 인큐베이터 신세를 지는 아이도 적지 않다는 건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대로 현실입니다.
                        Thinkstock Single Image Set
문제는 이 타고난 건강지수가 수명 막바지에 이르러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살펴보면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200을 가졌던 사람이 50대에 이르러 10조차 남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50을 타고난 사람이 50대에 이르러서도 30수준을 지키는 경우도 있죠. 물론 200을 가진 사람이 건강 측면에서의 삶의 질은 뛰어날수도 있는 일이겠습니다만, 의학이 발달한 요즘에 이르러서는 건강의 질적인 부담을 본인 혼자서 짊어지는 일은 없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TV다큐멘터리에 보면 아니 저렇게 만신창이로 병든 사람이 나중에 회복한다고 해서 오래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사람들도 많습니다만 그 사람들 중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그런 걱정을 가볍게 무시하고 보란 듯이 오래 살아가고 있죠. 반대로 평소에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쳤던 사람이 돌연 50대를 못넘기고 돌연사했다는 뉴스는 이제 놀랍지도 않은 흔한 뉴스입니다. 이상하죠?

저도 이 부분이 상당히 이상해서 주변 사람들과 그 외 몇십 명 정도의 생활 패턴과 타고난 건강 이력 등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결과는 다소의 오차가 있었습니다만 대부분 '타고난 건강'을 가진 사람들의 흡연 음주 비율이 높았고 그 양도 많았습니다. 물론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건강지수의 대표적인 근거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감기 한번 걸려본 적 없는'사람들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고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어째서 타고난 건강체인 사람들일 수록 술과 담배를 즐기는 인구가 많은 것일까 하고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너무 건강하게' 태어난 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인간은 100정도의 건강지수에 딱 맞춰 타고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 넘어서거나 조금 모자란 정도에서 갖추어집니다. 그런데 자신의 건강 지수가 의식적으로는 모르더라도 세포 하나하나와 그들을 관장하는 뇌의 잠재의식속에서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신체는 의식적으로 건강지수를 '아낀다'는 의식적 판단을 게을리 하게 되는 것입니다. 200이나 되는 건강수치를 전부 관리하고 지켜내기엔 몸이 벅찬 것도 있겠지만 일단 '남아돈다'는 의미는 건강 지수에 대한 '희소적 가치'를 낮게 인식하는 결과를 낳게 되니까요. 즉 건강한 사람들이 흡연이나 음주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도 그들이 주는 쾌락적 수치에 비해 주는 신체적 타격이 그만큼 크지 않은 다시말해 가치적 손실이 다른 사람보다 적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타고난 건강으로 스트레스 등 외부적 건강방해요인에도 강점을 보이며 과음에도 숙취없이 잘 견디며, 줄담배를 피워도 폐활량 손실이 적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적은 손실을 지불하고 더 많은'쾌락'을 얻는다. 이것만큼 달콤한 유혹이 또 있을까요? 인간의 본능 중의 본능을 건드리고 있는데 말이죠. 싸고 좋은 물건에 약하지 않은 사람이 없듯이 말입니다.

반대로 건강지수가 낮은 사람은 의식적으로 그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는 광고 카피나 연구 결과에 대단히 민감합니다. 건강 보조식품에도 많은 관심을 갖는 편이며 담배나 술 이런 건 그 사람의 주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건강 검진을 게을리하지 않고 장수에 관심이 많습니다. 몸에 좋다는 제철과일, 채소, 영양제는 끼고 삽니다. 평소 몸이 약해 골골대는 사람 중 자기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습니다. 모두 자신의 지금 상태를 충분히 인식하고 그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죠. 200:50의 스코어로 시작한 '일생'이라는 마라톤 게임이 처음부터 자신에게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본능적으로 내부에서 관리하고자 하는 기관들이 발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면 공평한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역시 200으로 타고나서 잘 관리해서 오래 사는게 제일 이상적인 결과이긴 합니다. 그게 쉽지 않아서 그렇죠; 의학적 기준 이상으로 장수하는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연구해서 그 사람들이 먹는 음식, 생활 패턴, 환경 등 이른바 '장수의 비결'을 묻기 위해 혈안이 되고 있습니다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어떻게 타고 났는지 알 필요가 없는데 그걸 따를 필요가 없는 것이죠. 120년을 산 일본인이 담배를 116살까지 피웠다고 해서 담배가 몸에 해롭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는건 무리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자기기인, 지피지기... 이 두가지 사자성어에 장수의 비결이 담겨져 있는 셈이죠.
Australian Cigarette Advertising Threatened
담배를 피우는 이성, 술을 즐기는 이성들이 인기가 많은 이유, 이제 조금 감이 잡히십니까? 신체적으로 건강하기 때문에 도파민 분비를 자극하는 '담배'나 '술'에 강하고 도파민이 많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평소 스트레스가 적고 성격이 밝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연스럽게 성격이 좋아질 수밖에 없죠. 담배 피우는 여성 중에서도 미인형이 많지만, 남성 중에서도 성격이 호탕하거나 훈남이거나, 혹은 트랜드에 걸맞는 꽃미남이거나...흔히 전혀 담배를 피울 것 같지 않는 얼굴들이죠. 동성 이성을 불문하고 이런 타입들은 주변에 사람이 모여들수밖에 없습니다.

신기한 점은 흡연자 커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의외로 흡연자+비흡연자 커플이 눈에 많이 띄는데요. 비흡연자는 '금연'를 연인에게 끊임없이 권하지만 그로 인해서 이별을 통보하거나 극단적인 처방을 내리는 경우는 거의 드뭅니다. 그냥 저냥 커플 관계가 이어집니다. 친구 관계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비흡연자 위주로 사귀는 것과 대조적인데요. 여기에는 '유전학적'이유가 동반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흡연자 중에 매력적인 이성의 경우 대체적으로 건강지수가 매우 높게 타고난 유전자이기 때문에 천성적으로 비흡연자, 즉 건강 지수가 그리 높지 않은 유전자를 가진 이성들이 그들에게 끌리게 되는 것이죠. DNA적으로 말입니다. 어쨌든 나는 50이라도 내 아이는 최소 100 이상으로 태어나길 바라는 게 인간의, 아니 모든 포유동물들의 본능일테니까요.

다만 흡연자 남성 + 비흡연자 여성에 비해 비흡연자 남성 + 흡연자 여성의 커플 비율이 적은 이유는 남성이 비교적 상대 이성의 유전지수 파악 능력이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데다가 의학상식적으로 '흡연'이 '태아'와 '생식'기관에 별로 좋지 않다는 '이성적 지식'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평소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잠재적 의식 속에서는 충분히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결혼 상대'로는 고개를 가로젓게 되는 것이죠. 뭐 남자는 피워도 되고 여자는 피우면 안된다, 뭐 이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남성 생식에도 안좋다는 게 밝혀지고 있으니까요. 물론 여성 생식에 영향을 끼친다는 이론만큼 오래 전부터 상식화되지 않았기때문에 (수십년전부터 많은 여성들이 담배를 많이 피우면 자연스럽게 피임이 될 거라고 믿고 있죠, 남자의 경우 아직 예외조항이 너무 많습니다) 여성들의 선택권 내에서 흡연 여부가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풀어보았지만 '흡연은 안좋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건강지수 200인 사람에게도 50인 사람에게도 안좋은건 똑같습니다. 다만 HP가 충분한 사람에게는 오래 버틸 수 있는 것 뿐이죠. 담배의 유해한 물질들은 언제나 일정한 타격을 주는 것이 아닌 몸에 축적되어 몸 안에 있는 유해물질들과 새로 들어오는 유해물질들이 동반 타격을 주기 때문에 '돌연사'라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매번 HP를 1씩 까먹는게 아니라 어느 순간 100의 타격을 한방에 줄 수도 있는 위험성이 있는 것이죠.

물론 앞서 언급했던대로 건강지수 200인 사람이 담배나 술에 대한 유혹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 대처 등 긍정적인 효과도 있으니까요. 다만 너무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고 몸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를 두고 싸우는 이 세상에서 가장 바보같은 짓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술이 나를 마신다는 표현 참 끔찍하지요; 내 주량, 내 흡연량, 그거 높으면 건강지수 높다는 증거가 되긴 하지만 그런 걸로 증명하려 들지는 마세요.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아줄 만큼 당신은 매력적이니까요.

아울러 덧붙이고 싶은 것은 건강지수 200인 사람의 그 호탕하고 인기있는 모습이 '흡연'이나 '과음'에서 온다는 착각으로 건강지수 50인 사람이 무턱대고 그걸 따라하는 일은 더더욱 없어야 하겠습니다.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방에게 술을 권하거나 술은 마시면서 는다는 등 어처구니 없는 이론으로 일반화시키는 일도 있어서는 안되겠죠. 제각각의 개성만큼 타고난 신체적 건강지수와 특성, 체질은 제각각일수밖에 없으니까요. 절대 어떤 이유에서든 그 사람의 성공 비결이 담배나 술이 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건강 지수를 알고 그 건강 지수에 맞는 삶고 성공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 바로 지피지기, 자기기인이니까요.삼국지에서 조조가 전투에서 패한 뒤에도 껄껄껄 웃으며 '전투에서는 살아남은 자가 승리한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듯, 결국 지금 소주를 몇병 깔 수 있느냐 없느냐보다는 몇 살까지 더 건강하게 (늙어서 골골거리며 실낱같은 인생을 움켜쥐는 게 아닌) 사느냐가 결국 인생의 성패를 결정한다는 것,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여자 그 특별함에 관하여 회차별 테마 목록

1회차 담배를 피우는 여자 그 특별함에 관하여
2회차 바람을 피우는 여자 그 특별함에 관하여
3회차 키스 그리고 또 한번의 키스 그 특별함에 관하여
4회차 재력에 끌리는 여자 그 특별함에 관하여